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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 역대상 29:10-19

5시간 전
8분 분량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본문: 역대상 29장 10절 ~ 19절


여는 말

어제 우리는 다윗의 마지막 헌금 장면 앞에 서 있었습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준비한 것 위에 자기 사유 재산까지 더해 드리고 물었습니다. "오늘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 지도자들이 즐거이 드렸고, 백성은 성심으로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기뻐하였고, 다윗 왕도 심히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큰 헌금이 끝난 바로 그 자리에서 다윗이 하는 첫마디가 놀랍습니다. 감사 연설도, 헌금자 명단 낭독도 아닙니다. 송축입니다. 그리고 그 송축의 한가운데에서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마지막 공적 기도이고, 역대기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기도 가운데 하나입니다. 역대기는 다윗의 생애를 두 편의 기도 사이에 두었습니다. 궤를 모신 날의 감사 찬송(16장)과 오늘의 기도입니다. 역대기는 다윗을 그의 업적이 아니라 그의 기도로 기억하게 합니다.

"이 장엄한 기도는 역대기의 관심이 예배의 형식이 아니라 예배의 마음에 있음을 보여 준다. 그 중심은 다윗도 성전도 아니고 하나님 자신과 그의 나라다!"

이 기도는 세 걸음으로 갑니다.

송영 : 하나님은 누구신가

고백 : 우리는 누구인가

간구 : 그러므로 무엇을 구할 것인가



1.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29:10~13)

"10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이르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1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13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대상 29:10~13)


"주는 송축을 받으시옵소서"는 우리말로는 청원처럼 들리지만, 원문은 청원이 아니라 선언입니다. "당신은 송축 받으실 분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찬양의 첫 자리에 "영원부터 영원까지"를 둡니다. 태초부터 다다를 수 없는 끝날까지 계신 하나님. 그 영원하심이 기도 전체의 바탕입니다.

11절에는 명사 다섯 개가 쌓입니다. 위대하심, 권능, 영광, 승리, 위엄. 하나를 말하고 또 하나를 얹고, 다시 얹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크심을 한 단어로는 다 담을 수 없었습니다.

"영광"은 티프에레트, 단순한 명예가 아니라 '아름다움', '찬란함'입니다. 힘으로 짓누르는 영광이 아니라 눈부시게 아름다워 마음을 사로잡는 영광입니다. 백성이 엄청난 헌물을 쌓은 그 자리에서, 다윗은 그 영광을 조금도 자기 것으로 가로채지 않습니다.

"승리"는 네차흐, 본래 뜻은 '끝까지 이어짐', 곧 영속입니다. 사무엘상 15장의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에서 '지존자'가 바로 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승리는 한때의 우세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가는 변함없음입니다.


그리고 기도의 한가운데 이 고백이 놓입니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다윗이 이 말을 하는 날이 언제입니까. 솔로몬에게 나라를 넘기는 날입니다. 왕위를 물려주는 그날, 다윗은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지부터 고백합니다. 주권은 하나님의 것이고, 사람 왕은 맡은 자일 뿐입니다.

"우리는 종종 기도를 나의 필요를 하나님께 아뢰는 시간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는 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다윗은 자신과 백성이 얼마나 많이 드렸는지를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이 송영은 그 뒤 어디로 갔을까요.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로 들어왔습니다.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 6:13)

괄호 안의 송영은 오래된 사본에는 없는 말입니다. 교회가 주기도의 끝에 덧붙여 드려 온 고백인데, 그 뿌리가 바로 오늘 다윗의 11절입니다. 우리는 주일마다 주기도로 예배를 닫으며, 3천 년 전 다윗의 기도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송영의 마지막 자리는 하늘 보좌 앞입니다.

"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계 5:12)

다윗이 하나님께 돌린 권능과 부와 영광이,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께 돌려집니다. 다윗의 송영은 십자가를 지신 왕 앞에서 완성됩니다.



2.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29:14~16)

"14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15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16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대상 29:14~16)


하나님을 바로 본 사람은 자기를 새로 봅니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가장 많이 드린 사람이 가장 낮아집니다. 목동에서 왕이 되기까지, 밧세바의 날과 압살롬의 날까지 다 지나온 노년의 다윗이 묻습니다. 나는 무엇이기에. 재물만 아니라 "드릴 힘"도 주셨습니다. 즐거이 드리는 마음조차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14절이 이 기도의 심장입니다.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고, 우리가 주의 손으로부터 주께 드렸나이다"입니다. '주의 손에서 주께.' 그 사이에 우리가 내 것이라 주장할 자리는 없습니다. 드린 것은 본래 하나님의 손에 있던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되돌려 드렸을 뿐입니다.

16절의 "물건"은 하몬, 본래 웅성거리는 무리, 그 무리가 내는 소리를 뜻하는 말입니다. 금과 은이 무리처럼 웅성거리며 쌓여 있습니다. 그 큰 무더기 앞에서 다윗은 말합니다.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봉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봉헌의 출처입니다.

"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고전 4:7)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롬 11:35~36)

바울의 송영과 다윗의 송영이 같은 길을 걷습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왔고, 주께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그 사이에서 잠시 맡았다가 돌려드리는 손입니다.


15절에서 다윗은 더 깊이 내려갑니다. 우리는 나그네요 거류민이고, 우리 날은 그림자 같다고 합니다. 다윗 자신이 지은 시편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12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시 39:12)

"나그네"는 혈족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 잠시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 말로 하면 영주권자쯤 됩니다. 살 수는 있지만 내 땅이라 주장할 권리는 없는 사람. 사울에게 쫓기고 압살롬에게 쫓겨 본 다윗은 그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알았습니다. 땅도 내 것이 아니고, 생명도 내 것이 아닙니다. 해 질 녘 그림자처럼 길어졌다가 사라집니다.

그런데 이 고백은 비관이 아닙니다. 자기 처지가 덧없고 위태롭다는 인식이 이 신앙 고백을 깎지 않고 오히려 보탭니다. 내가 주인이 아님을 알 때, 받은 것이 은혜임을 압니다. 은혜임을 알 때 감사가 나오고, 감사가 기쁨이 되고, 기쁨이 충성이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권리에 따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은총으로만 그분께 나아갈 수 있다." - 미로슬라브 볼프

그림자 같은 우리 앞에 이런 분이 계십니다.

"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 1:17)

우리는 그림자 같고, 그분은 그림자도 없으십니다. 신자의 기쁨이 오래갈 수 있는 이유는 내 감정이 한결같아서가 아니라, 그 기쁨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후하심이 한결같기 때문입니다.


테너 존 노는 미국 오페라 무대를 마치자마자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와 그날 저녁 오디션 녹화장으로 갔습니다.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차례가 왔습니다. 비몽사몽이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며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연주하시기에 편한 악기가 되고 싶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성대에 물혹이 생겨 평생 노래를 못할 수도 있었던 사람입니다. 30년 인생을 한 문장으로 말해 달라는 질문에 그가 답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목소리조차 받은 것이었습니다.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입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 가장 존귀한 대상이 없다는 선언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를 알려 준다. 섬김의 대상이 곧 나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묵상 에세이의 글입니다. 돈을 섬기면 돈의 손에서 살고, 하나님을 섬기면 주의 손에서 삽니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 물음의 마지막 대답은 십자가에 있습니다.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롬 8:32)

다윗은 주의 손에서 받은 금과 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는 빈 무덤에서 뒤집힙니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 1:3)

이 편지는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나그네에게 산 소망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편지도 다윗처럼 "찬송하리로다", 송축으로 시작합니다.



3. 그 마음을 주께로 (29:17~19)

"17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18 우리 조상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주의 백성의 심중에 영원히 두어 생각하게 하시고 그 마음을 준비하여 주께로 돌아오게 하시오며 19 또 내 아들 솔로몬에게 정성된 마음을 주사 주의 계명과 권면과 율례를 지켜 이 모든 일을 행하게 하시고 내가 위하여 준비한 것으로 성전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라" (대상 29:17~19)


"감찰"은 바한, 금속을 불에 달구어 순도를 가려내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예물의 양이 아니라 예물을 드린 마음의 순도를 보십니다. 일종의 마음 정밀검사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앞에서 떨지 않습니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마음을 감찰하시는 눈길은 순전한 자에게는 도리어 위로가 됩니다. 겉으로 작아 보이는 드림 속의 진심도 놓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윗이 구합니다. 무엇을 구할까요. 왕국의 번영, 원수에 대한 승리, 솔로몬의 장수와 부귀… 아닙니다.

다윗이 구한 것은 오직 마음입니다. 17절부터 19절까지 "마음"이 다섯 번 나옵니다.

18절의 "두어"는 '지키다'라는 말의 명령형입니다. 그냥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굳게 지켜 달라는 간구입니다. 무엇을 지켜 달라는 것입니까. "생각", 곧 마음속에 짓고 꾸미는 모든 계획입니다. 이 말이 처음 나오는 곳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월요일 새벽에 함께 읽은 창세기 6장 5절,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의 바로 그 "계획"입니다.

홍수 앞에서 "항상 악할 뿐"이라고 진단받았던 바로 그 마음의 계획입니다. 다윗은 그것을 주께 지켜 달라고 구합니다. 하나님 없이는 항상 악할 뿐인 사람의 마음도, 기도 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오늘 백성이 즐거이 드린 이 마음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구합니다. 헌신은 하루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선하심에 대한 신뢰가 너무 완전했기에, 다윗에게 남은 기도는 하나뿐이었습니다. 우리 쪽의 마음이 지켜지는 것. 나머지 번영과 형통은 그 마음에 저절로 따라올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솔로몬에게 정성된 마음을 주사." 성전을 짓는 일은 솔로몬의 지혜나 쌓아 둔 금과 은에 달리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지키는 온전한 마음에 달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역사를 압니다. 성전을 완공한 솔로몬은 말년에 마음이 돌아섰습니다(왕상 11:4). 다윗의 기도는 다윗이 죽은 뒤로는 이어질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기도는 아들의 마음을 끝까지 붙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다른 중보자가 필요합니다. 다윗의 마지막 공적 기도가 백성과 아들을 위한 중보였듯, 십자가를 앞둔 밤 예수님의 마지막 긴 기도도 제자들을 위한 중보였습니다.

"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요 17:9~10)

다윗은 "다 주의 것이니이다"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하십니다. 다윗은 금과 은을 주의 것이라 했고, 예수님은 사람을, 우리를 아버지의 것이라 하십니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 17:15~17)

다윗은 "영원히 두어", 지켜 달라 했고, 예수님은 "보전하시기를" 구하십니다. 다윗은 솔로몬이 주의 계명을 지키게 해 달라 했고, 예수님은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해 달라 하십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그네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요 17:20)

다윗이 다음 세대 솔로몬을 위해 기도했듯, 예수님은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오늘 새벽 이 자리에 앉은 우리가 그 기도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중보는 다윗처럼 죽음으로 끊어지지 않습니다.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 8:34)

다윗이 구했던 "그 마음을 준비하여 주께로 돌아오게" 하시는 일을, 하나님은 끝까지 이루십니다.

"24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25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유 1:24~25)



맺는 말

본문을 다시 꿰어 봅시다. 큰 헌금이 끝난 자리에서 다윗은 자기를 높이지 않고 하나님을 송축했습니다. 그리고 나그네요 그림자 같은 자기를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권력도 부도 아닌 마음을 구했습니다.

송영, 고백, 그리고 마음입니다.


오늘 우리가 붙들 말은 이것입니다.

첫째, 기도는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는 데서 시작합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있습니다. 그 송영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 앞에서 완성됩니다.

둘째, 우리는 주의 손에서 받은 것을 드릴 뿐입니다. 그림자 같은 인생이지만, 아들을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이 산 소망을 주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마음입니다. 다윗은 마음을 구했고,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 마음을 위해 간구하십니다.


오늘의 찬송이 새 66장 〈다 감사드리세〉입니다. 지면에 함께 실린 경배와 찬양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늘 위에 주님밖에 내가 사모할 자 이 세상에 없네 내 맘과 힘은 믿을 수 없네 오직 한 가지 그 진리를 믿네." 내 맘과 힘은 믿을 수 없습니다. 다윗이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물었던 그 자리입니다. 오늘 하루, 주의 손에서 받은 것을 감사로 돌려드리는 하루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찬양

새 66장 〈다 감사드리세〉 — 오늘의 찬송.

13절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큰 헌금 뒤 다윗의 첫마디가 감사였습니다. 예배 여는 찬송으로.


〈위대하신 주〉

11절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다윗의 송영을 오늘 우리의 고백으로. 송영의 자리에서.


새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14절),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 11:36). 모든 복의 근원을 송축하는 교회의 송영입니다. 맺는 기도 뒤 다 함께.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다윗은 큰 헌금을 마친 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라고 물었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내가 드린 것'으로 은근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주의 손에서 받은 것"이었다고 오늘 고백할 수 있습니까?


다윗은 권력도 부도 아닌 백성과 아들의 "마음"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번 주 나는 무엇을 위해 가장 많이 기도했습니까?

오늘 내 자녀나 내가 맡은 다음 세대 한 사람의 이름을 넣어 "정성된 마음을 주소서" 기도해 봅시다.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더빛교회의 기도가 우리의 필요보다 하나님의 주권을 먼저 바라보는 데서 시작되게 하소서.

드린 것을 자랑하지 않고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드렸을 뿐"이라 고백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보다 그들의 마음을 구하며 중보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우리가 누려 온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고백합니다.

아무 소망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 백성으로 삼아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만물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을 늘 찬양하며 그 이름을 높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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