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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 역대상 29:1-9

11분 전
8분 분량

손을 채우는 기쁨

본문: 역대상 29장 1절 ~ 9절


여는 말

어제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성전의 설계도를 건넸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그려 알려 주신 그 설계도와 함께, 기구 하나하나에 들어갈 금과 은의 무게까지 적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셔서 이 일을 마치게 하실 것이니 강하고 담대하라고 격려했습니다.

그러나 설계도만으로 성전은 서지 않습니다. 종이 위의 선이 돌과 금이 되려면 그것을 채울 손이 필요합니다. 오늘 다윗은 솔로몬에게서 눈을 돌려 온 회중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묻습니다.

"오늘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

생명의 삶은 오늘 본문에 "자발적 헌신으로 이루어지는 기쁨의 공동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이 장면에는 명령이 없습니다. 모세는 성막을 지을 때 예물을 가져오라고 명령했지만, 다윗은 묻습니다. 그리고 묻기 전에 먼저 자기 것을 내놓습니다.

명령 : 하라고 말한다

질문 : 먼저 하고 나서 묻는다

오늘 새벽, 이 질문이 우리에게 옵니다. 누가 즐거이 손을 채우겠습니까.



1. 이 성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29:1~2)

"1 다윗왕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내 아들 솔로몬이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택하신 바 되었으나 아직 어리고 미숙하며 이 공사는 크도다 이 성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2 내가 이미 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준비하였나니 곧 기구를 만들 금과 은과 놋과 철과 나무와 또 마노와 가공할 검은 보석과 채석과 다른 모든 보석과 옥돌이 매우 많으며" (대상 29:1~2)


다윗은 먼저 사정을 솔직하게 말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택하셨지만 아직 어리고 미숙합니다. 그런데 공사는 큽니다. 일은 크고 일꾼은 작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이 일을 이루게 합니까?

다윗이 내놓는 답은 이 집의 주인입니다. "이 성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여기 '성전'으로 옮긴 말은 흔히 쓰는 '집'이나 '전'이 아니라 '비라', 곧 왕궁·성채를 뜻하는 말입니다. 에스더와 느헤미야에서 '수산 궁'을 가리킬 때 쓰인 단어입니다. 다윗은 성전을 하늘의 왕이신 하나님이 거하실 왕궁으로 보았습니다.

사람의 집 : 형편껏 지으면 그만이다

왕의 궁 : 힘을 다해 가장 좋은 것으로 짓는다

그 집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아는 순간, 그 일에 쏟는 정성의 크기가 달라집니다. 예배의 방향이 여기서 정해집니다. 예배는 사람의 만족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자리입니다.


2절, "내가 이미 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준비하였나니."

'힘을 다하여'는 원문으로 '내 모든 힘으로'입니다. 다윗은 성전을 짓지 못할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열매를 거두지 못할 일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짓는 수고는 아들이 하겠지만, 준비하는 수고는 자기가 온 힘을 다해 기꺼이 감당했습니다. 절반의 힘이나 남는 여력이 아니라 '모든 힘'. 이것이 다윗이 보여 준 섬김입니다.

금과 은과 놋과 철과 나무, 마노와 검은 보석과 채석과 옥돌. 이 목록을 듣는 이스라엘은 광야의 한 장면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성막을 지을 때입니다.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출 25:2)

"21 마음이 감동된 모든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가 와서 회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니" (출 35:21)


하나님은 처음부터 억지로 걷은 것으로 당신의 집을 짓지 않으셨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 마음이 감동된 자, 자원하는 자. 성막도 성전도 그 손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5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 6 모세가 명령을 내리매 그들이 진중에 공포하여 이르되 남녀를 막론하고 성소에 드릴 예물을 다시 만들지 말라 하매 백성이 가져오기를 그치니 7 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더라" (출 36:5~7)

그만 가져오라고 말려야 했던 백성. 하나님의 집은 넘치는 기쁨으로 지어졌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께로 갑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왕궁을 위해 '모든 힘'을 쏟았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무엇을 내놓으셨습니까. 남는 것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자기 자신을 드렸습니다.

"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엡 5:2)

다윗은 성전이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사람을 위해 자신을 드리셨습니다. 이 은혜를 아는 사람만이 "이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라는 말에 기쁨으로 응답할 수 있습니다.



2. 내 마음이 사모하므로 (29:3~5)

"3 성전을 위하여 준비한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이 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므로 내가 사유한 금, 은으로 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드렸노니 4 곧 오빌의 금 삼천 달란트와 순은 칠천 달란트라 모든 성전 벽에 입히며 5 금, 은 그릇을 만들며 장인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쓰게 하였노니 오늘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 하는지라" (대상 29:3~5)


2절까지가 왕으로서 준비한 것이라면, 3절부터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 모든 것 외에도." 다윗은 나라 곳간에 쌓인 공적 재산 위에 자기 개인의 것을 더합니다. 오빌의 금 삼천 달란트, 순은 칠천 달란트. 금만 백 톤이 넘는 엄청난 양입니다.

'사유한'이라는 말은 '세굴라'입니다. 아끼는 보물, 개인의 소유를 뜻합니다. 왕이 위기나 재난의 날을 대비해 따로 쌓아 둔 재산, 오늘로 말하면 비상금입니다. 다윗은 자기 안전을 위해 모아 둔 것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놀랍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부르실 때 쓰신 말이기 때문입니다.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출 19:5)

'내 소유', 세굴라. 하나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이스라엘을 가장 아끼는 보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세굴라가 된 사람이 자기의 세굴라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하는 예배입니다.

그 이유가 3절에 있습니다. "내 마음이 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므로." 의무가 아니라 사랑에서 우러난 드림이었습니다. 무엇을 사모하느냐가 무엇을 내놓느냐를 정합니다.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 6:19~21)

다윗의 마음이 성전에 있었기에 그의 보물이 성전으로 갔습니다. 거꾸로도 맞습니다. 보물을 옮기면 마음도 따라갑니다. 우리가 끝까지 쥐고 있는 마지막 것, 우리의 비상금은 어디에 있습니까. 거기에 우리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묻습니다. "오늘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 '손을 채우다'는 예사로운 표현이 아닙니다. 제사장을 세워 하나님께 구별할 때 쓰는 말, 곧 제사장 위임의 말입니다. 그러니 다윗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누가 자기 손을 채워, 곧 자기를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겠느냐." 물건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바치는 봉헌입니다.

이 제사장의 말이 여기서는 온 회중에게 쓰입니다. 제사장 한 사람의 일이 아니라 모든 백성의 일이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깊은 역설이 있습니다. 손을 비워 드리는 일이 실은 손을 '채우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내어드릴 때 우리 손은 비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것으로 채워집니다.

이 말이 신약에서 이렇게 열립니다.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1)

다윗이 묻기 전에 먼저 드렸듯, 바울은 권하기 전에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을 먼저 내놓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것은 언제나 먼저 받은 자비에 대한 응답입니다. 오늘 한 절 묵상의 글이 이것을 짚습니다. "진정한 헌신은 내게 남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바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헌신을 기대하면서 정작 내가 먼저 드리기는 주저할 때가 많습니다. 공동체가 이렇게 되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지만, 그 자리에 내가 먼저 서는 것은 부담스럽습니다. 다윗은 백성에게 요구하기 전에 자기의 귀한 것을 먼저 드렸습니다. 먼저 드리는 사람의 헌신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3. 백성이 기뻐하였으니 (29:6~9)

"6 이에 모든 가문의 지도자들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지도자들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의 사무관이 다 즐거이 드리되 7 하나님의 성전 공사를 위하여 금 오천 달란트와 금 만 다릭 은 만 달란트와 놋 만 팔천 달란트와 철 십만 달란트를 드리고 8 보석을 가진 모든 사람은 게르손 사람 여히엘의 손에 맡겨 여호와의 성전 곳간에 드렸더라 9 백성들은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기뻐하였으니 곧 그들이 성심으로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다윗왕도 심히 기뻐하니라" (대상 29:6~9)


다윗의 질문에 응답이 옵니다. 가문의 지도자, 지파의 지도자, 천부장과 백부장, 왕의 사무관까지 "다 즐거이 드리되." 지난주 27장에서 이름이 올랐던 그 사람들입니다. 군대도 행정도 지파도 한 목적 아래 하나입니다.

'즐거이 드리다'는 스스로 자원하여 나선다는 말입니다. 이 한 단어가 5절의 질문, 6절의 응답, 9절의 기쁨을 하나로 꿰어 냅니다. 드림은 강요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손을 내밀어 채우는 자원의 일입니다.

눈여겨볼 것은 순서입니다. 다윗이 먼저 자기 비상금을 내놓았고, 지도자들이 그 뒤를 따랐고, 마침내 온 백성이 기뻐했습니다. 본을 보이는 앞선 사람의 헌신만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없습니다. 위에서 시작된 기쁜 드림이 아래로 번져 온 회중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금 오천 달란트와 만 다릭, 은 만 달란트, 놋 만 팔천 달란트, 철 십만 달란트. 금만 해도 백오십 톤이 넘습니다. 그런데 '다릭'은 다윗보다 몇 세기 뒤 페르시아의 금화입니다. 저자는 포로에서 돌아와 다시 성전을 짓던 자기 시대 사람들이 알아듣는 돈으로 이 장면을 들려줍니다. 지금 우리 손에 있는 돈으로 이 질문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8절, 보석을 가진 사람은 보석을 드렸습니다. 금을 가진 자는 금을, 보석을 가진 자는 보석을. 저마다 자기 손에 있는 것으로 드렸습니다. 드림의 크기는 저마다 다르지만, 가진 것을 기꺼이 내놓는 마음은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게르손 사람 여히엘이 맡아 여호와의 곳간에 두었습니다. 드리는 손과 맡아 지키는 손이 함께 하나님의 집을 세웁니다.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후 9:7)

하나님은 우리 손의 크기가 아니라 마음의 진실함을 보십니다. 예수님은 헌금함 맞은편에 앉으셔서 바로 그것을 보셨습니다.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막 12:43~44)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제물은 땅 판 값의 절반, 상당히 큰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존재감을 섬기는 제물이었고, 그들은 그 제물로 자기 생명을 잃었습니다. 과부의 제물은 동전 두 닢이었지만 그의 전 재산이었습니다. 제물이 초라해도 드리는 자의 진정이 그 제물을 귀하게 합니다. 대충 드리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은 우리 자신을 속이는 일입니다.

이제 9절입니다. "백성들은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기뻐하였으니 곧 그들이 성심으로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다윗왕도 심히 기뻐하니라." 짧은 한 절 안에 '기뻐하다'가 두 번, '자원하여 드리다'가 두 번, 그리고 그 한가운데 '성심'이 있습니다. 다윗의 기쁨은 '심히', 큰 기쁨이었습니다. 드림의 열매가 큰 기쁨입니다.

우리의 오해 : 드리면 그만큼 잃는다

본문의 증언 : 드리면 그 자리가 기쁨으로 채워진다

내어 준 만큼 비는 것이 아니라, 내어 준 그 자리에 하나님의 기쁨이 채워집니다. 그리고 본문은 백성의 기쁨을 먼저 말하고 왕의 기쁨을 나중에 말합니다. 백성이 기꺼이 드리며 기뻐하는 것보다 지도자에게 더 큰 기쁨은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장면을 마게도냐 교회에서 다시 봅니다.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넘치는 기쁨으로 드린 교회였습니다.

"5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고후 8:5)

먼저 자신을 주께, 그다음에 물질입니다. 다윗의 질문 "누가 손을 채우겠느냐"에 대한 신약의 대답입니다. 헌금의 액수보다 먼저 묻는 것이 '누가'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께 갑니다. 이 땅에서 가장 즐거이 드리신 분이 계십니다.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2)

예수님은 억지로 십자가를 지지 않으셨습니다. 그 앞에 있는 기쁨, 곧 우리를 얻으시는 기쁨을 위해 자기 생명을 드리셨습니다. 그분이 먼저 손을 채우셨습니다. 못 박힌 손으로. 그 드림이 우리를 하나님의 세굴라, 하나님이 가장 아끼시는 보물로 만들었습니다. 이 사랑을 받은 사람은 드리는 자리에서 슬퍼하지 않습니다. 기뻐합니다!

묵상 에세이의 글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고레스가 포로 된 자리에서 자유를 얻은 백성에게 성전을 건축하라 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스 1:4). "기쁘게 드리는 헌신! 이 헌신을 하나님이 기대하시고 기쁘게 받으심을 분명히 알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묻습니다. "온전히 주님께 드려지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주님이 마음껏 쓰시겠습니까?"



맺는 말

본문을 다시 꿰어 봅시다. 다윗은 하나님의 왕궁을 위해 모든 힘을 다해 준비했고, 자기 비상금까지 먼저 내놓은 뒤에 물었습니다. "오늘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 지도자들이 응답했고, 온 백성과 왕이 함께 기뻐했습니다.

왕궁, 손, 그리고 기쁨입니다.


오늘 우리가 붙들 말은 이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일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집의 주인을 아는 사람은 남는 힘이 아니라 모든 힘을 드립니다.

둘째, 드림은 손을 채우는 일입니다. 물건보다 먼저 나 자신을 구별하여 드리는 것, 그것이 산 제물의 예배입니다.

셋째, 즐거이 드리는 곳에 기쁨이 넘칩니다.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이 먼저 자신을 드리셨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찬송이 새 317장 〈내 주 예수 주신 은혜〉입니다. 지면에 실린 가사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주 예수 주신 은혜 한없건만 내 주 앞에 이 적은 것 다 드리니 주 예수여 내 정성을 받으소서." 다윗의 금 삼천 달란트도, 과부의 두 렙돈도 주님의 은혜 앞에서는 "이 적은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적은 것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오늘 하루, 즐거이 손을 채우는 성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찬양

새 317장 〈내 주 예수 주신 은혜〉 — 오늘의 찬송.

"내 주 앞에 이 적은 것 다 드리니"가 3절, 다윗이 사유한 금과 은을 드린 고백과 겹칩니다. 받은 은혜에 비하면 모든 드림은 작습니다. 예배 여는 찬송으로.


〈빛 되신 주〉

원곡의 제목은 "내가 여기 예배하러 왔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5절 "오늘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입니다. 결단의 자리에서.


새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9절, 자원하여 드린 백성과 왕이 함께 크게 기뻐한 그 기쁨을 노래합니다. 받은 은혜를 기뻐하는 자리에서.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다윗은 공적 재산 위에 자기가 아끼던 비상금까지 먼저 내놓았습니다.

내가 끝까지 쥐고 있는 '세굴라', 가장 아끼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그중 무엇을 주님께 구별하여 드릴 수 있습니까?


다윗이 먼저 드리자 지도자들이 따랐고, 온 백성이 기뻐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헌신을 기대하면서 정작 내가 먼저 드리기는 주저하고 있지 않습니까?

시간이든 물질이든 섬김이든, 이번 주 내가 먼저 손을 채울 자리는 어디입니까?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더빛교회가 "오늘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는 물음 앞에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억지나 인색함이 아니라,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해 자신을 드리신 주님의 사랑으로 기꺼이 드리게 하소서.

드리는 손과 맡아 지키는 손이 함께 하나님의 집을 세우게 하소서.


주님, 우리가 주님 일에 시간과 물질을 적게 내려고 계산하지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생명까지 아낌없이 주신 주님을 생각하며, 우리가 공동체에서 헌신의 물꼬를 트는 마중물이 되게 하소서.

주님께 무엇이든 자원하여 드리고 싶은 마음이 우리 안에 샘솟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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