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역대상 28:11-21
여호와의 손이 그린 설계도
본문: 역대상 28장 11절 ~ 21절
여는 말
어제 우리는 일어선 다윗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모든 고관과 지휘관과 용사들을 예루살렘으로 모으고, 일어서서 말했습니다. 성전을 지을 마음이 있어 재료를 준비했으나, 전쟁을 많이 하여 피를 많이 흘렸으므로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하나님은 많은 아들 가운데 솔로몬을 택하셨다고. 그리고 아들에게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라고 당부했습니다.
오늘 다윗은 말을 마치고 손을 내밉니다. 그 손에 들린 것은 설계도입니다.
다윗은 곧 무대를 떠납니다. 다윗이 없는 시대에 무엇이 남습니까. 성전을 짓고 싶었던 사람의 꿈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계획입니까. 오늘 본문이 그 답입니다.
그 설계도는 어디서 왔습니까.
그 설계도는 얼마나 세밀했습니까.
그 설계도를 받은 아들은 혼자였습니까.
1. 여호와의 손이 그린 설계도 (28:11~13, 19)
"11 다윗이 성전의 복도와 그 집들과 그 곳간과 다락과 골방과 속죄소의 설계도를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주고 12 또 그가 영감으로 받은 모든 것 곧 여호와의 성전의 뜰과 사면의 모든 방과 하나님의 성전 곳간과 성물 곳간의 설계도를 주고 13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과 여호와의 성전에서 섬기는 모든 일과 여호와의 성전을 섬기는 데에 쓰는 모든 그릇의 양식을 설명하고" (대상 28:11~13)
"19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이 모든 일의 설계를 그려 나에게 알려 주셨느니라" (대상 28:19)
"설계도"는 타브니트, '지을 것의 본'입니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성막을 지으라 하실 때 쓰신 바로 그 말입니다. "40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양식대로 할지니라" (출 25:40)
다윗은 모세처럼 하늘에서 받은 본을 다음 세대에 넘겨줍니다. 같은 낱말이 우상을 금하는 계명에서는 '형상'으로 쓰입니다. 하나님이 보이신 타브니트대로 지으면 성전이 되고, 사람이 만든 타브니트를 섬기면 우상이 됩니다. 성전은 사람의 상상이나 취향으로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12절의 "영감으로 받은"은 '그와 함께한 영으로'입니다. 다윗이 구상한 것이 아니라 영으로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19절의 "그려"는 '글로', '기록으로'입니다. 막연한 느낌이나 흐릿한 형상이 아니라 또렷한 글로 받았습니다.
왕의 구상 : 내 이름을 남긴다
받은 설계 : 받은 그대로 건넨다
다윗은 여기에 자기 생각을 보태지 않았습니다. 성전을 그토록 짓고 싶었던 사람이, 자기 꿈을 한 줄도 끼워 넣지 않았습니다. "성전 설계도 역시 강력한 왕이나 전문 건축가의 구상의 산물이 아니라, 글로 그리고 하나님의 영을 통해 전달된 신적 계시의 산물이다!"
13절을 보십시오. 설계도에는 건물만 있지 않았습니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 성전에서 섬기는 모든 일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설계도에는 벽과 기둥만이 아니라 사람과 예배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성전은 건물을 짓는 일이기 전에 예배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모세는 산에서 본을 보았지만 자기가 직접 지었습니다. 다윗은 짓지 못합니다. 그래서 받은 것을 기록해 정확하게 전해야 했습니다. 우리에게 기록된 말씀이 주어진 것도 그 뜻이 세대를 넘어 온전히 전해지게 하시려는 은혜입니다.
11절 목록의 마지막은 "속죄소"입니다. 법궤를 덮는 덮개,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피를 뿌려 이스라엘의 죄를 덮던 자리입니다.
"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출 25:22)
피를 많이 흘려 성전을 짓지 못한 왕이, 피 뿌림으로 죄를 덮는 자리의 설계도를 아들에게 건넵니다. 그 자리는 왕과 백성, 모든 죄인에게 소망이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께로 갑니다. 히브리서는 그 설계도가 무엇이었는지 밝힙니다.
"5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히 8:5)
다윗의 설계도도 그림자였습니다. 그 실체가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어제 함께 읽은 말씀처럼, 예수님은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하셨습니다(요 2:19, 21).
그리고 속죄소의 실체는 그분의 피입니다.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히 10:19~20)
"교회는 사람의 계획이나 조직으로 세워지는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시고 이끌어 가시는 공동체입니다." 오늘 생명의 삶 한 절 묵상의 글입니다.
2. 갈고리와 대접과 종지까지 (28:14~18)
"14 또 모든 섬기는 데에 쓰는 금기구를 만들 금의 무게와 모든 섬기는 데에 쓰는 은기구를 만들 은의 무게를 정하고 15 또 금등잔대들과 그 등잔 곧 각 등잔대와 그 등잔을 만들 금의 무게와 은등잔대와 그 등잔을 만들 은의 무게를 각기 그 기구에 알맞게 하고 16 또 진설병의 각 상을 만들 금의 무게를 정하고 은상을 만들 은도 그렇게 하고 17 갈고리와 대접과 종지를 만들 순금과 금잔 곧 각 잔을 만들 금의 무게와 또 은잔 곧 각 잔을 만들 은의 무게를 정하고 18 또 향단에 쓸 순금과 또 수레 곧 금 그룹들의 설계도대로 만들 금의 무게를 정해 주니 이 그룹들은 날개를 펴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덮는 것이더라" (대상 28:14~18)
무게, 무게, 무게입니다. 그런데 정작 몇 근인지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본문이 말하려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갈고리 하나 종지 하나까지 규격이 정해져 솔로몬에게 건네졌다는 사실입니다. 아무것도 우연에 맡겨지지 않았습니다.
이 설계도에는 한가운데가 있습니다. 11절부터 19절은 앞뒤가 서로 마주 보는 구조인데, 처음과 끝을 "설계도"가 감싸고, 그 한복판에 15절의 등잔대와 16절의 진설병 상이 마주 놓입니다. 꺼지지 않는 빛과 끊이지 않는 떡입니다. 매 안식일마다 열두 개의 떡이 상 위에 새로 놓였습니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임재와 공급, 그것이 성전 질서의 심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목록의 맨 끝에 언약궤를 덮는 그룹들이 있습니다. 본문은 그것을 "수레"라고 부릅니다. 메르카바, 병거입니다. 그룹을 수레라고 부르는 곳은 성경에서 이 구절뿐입니다. 이스라엘 한복판, 지성소 안에 온 우주의 왕이 좌정하신 보좌-수레가 있었습니다. 에덴 동편에서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던 그룹이, 성전에서는 속죄소를 덮고 하나님의 보좌를 떠받칩니다. 가장 거룩한 중심의 형상 하나까지 하나님의 설계를 따랐습니다.
거대한 전체 구도에 관심하시는 분은 그것을 이루는 작은 것에도 똑같이 관심하십니다.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마 10:30)
갈고리와 종지의 무게를 정하신 하나님이 오늘 내 삶의 작은 일도 아십니다. 그렇다고 모든 갈림길마다 정답이 하나뿐이고 하나라도 틀리면 하나님의 뜻에서 밀려난다고 두려워할 일은 아닙니다. 솔로몬의 성전에는 솔로몬의 솜씨가 남았습니다. "우리는 계획 안에서 자유롭지만, 그 밖으로 나갈 자유는 없다!" 기차가 선로에 묶여 있어서 달릴 수 있듯,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를 가두지 않고 자유롭게 합니다.
"인간은 조급하기에 자기가 동원할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최상을 대체하려 합니다. 특히 사탄은 대체품을 만드는 데 천재적입니다." 묵상 에세이의 글입니다.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듣고 읽을 때, 우리 마음속에 장차 이루어질 어떤 것을 그려 주십니다. 그것이 '비전'이라는 설계도입니다."
대체품의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최상을 기다리지 못하고, 손에 잡히는 차선으로 서둘러 집을 짓습니다. 다윗도 한때 자기 마음으로 성전을 지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에 건넨 것은 자기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설계였습니다. 이 새벽 말씀 앞이 설계도를 받는 자리입니다.
설계도의 한가운데 있던 빛과 떡, 끝에 놓인 속죄소와 언약궤. 그 모든 그림자의 실체가 한 분 안에 있습니다. 세상의 빛이요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교회의 설계도는 결국 한 분을 가리킵니다.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고전 3:10~11)
다윗은 설계도를 받아 솔로몬에게 건넸고, 바울은 터를 닦아 다음 사람에게 넘겼습니다. 터는 하나뿐입니다. 그 위에 무엇을 어떻게 세울지는 각 세대가 조심할 일입니다.
3. 마치기까지 떠나지 아니하시고 (28:20~21)
"20 또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게 이 일을 행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여호와의 성전 공사의 모든 일을 마치기까지 여호와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사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시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21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이 있으니 하나님의 성전의 모든 공사를 도울 것이요 또 모든 공사에 유능한 기술자가 기쁜 마음으로 너와 함께할 것이요 또 모든 지휘관과 백성이 온전히 네 명령 아래에 있으리라" (대상 28:20~21)
다윗의 마지막 당부는 세 마디입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떠나지 아니하시고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세 마디 모두 여호수아에게 주셨던 말씀입니다.
"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수 1: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땅을 정복하는 사명을 넘겼듯, 다윗은 솔로몬에게 성전을 짓는 사명을 넘깁니다. 땅을 차지하는 일과 하나님의 집을 짓는 일이 같은 말로 맡겨집니다. 하나님의 도움은 옛날보다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양 치던 들판에서, 사울에게 쫓기던 광야에서, 압살롬에게 쫓겨 맨발로 오르던 감람 산에서, 한 번도 떠나지 않으신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을 아들에게 물려줍니다.
능력의 격려 : 네가 감당할 수 있으니 담대하라
임재의 격려 :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담대하라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능력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입니다.
"마치기까지"라는 말을 붙드십시오. 하나님은 시작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임재에는 목표가 있습니다. 성전이 다 지어지기까지입니다.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 1:6)
그리고 21절, 하나님은 사람도 붙여 주십니다. 제사장과 레위 사람, 유능한 기술자, 지휘관과 온 백성. 여호수아는 홀로 책임을 졌지만 솔로몬 곁에는 백성이 섭니다. 그들은 구경꾼이 아니라 동역자입니다. 성전은 더 이상 다윗의 기념비가 아니라 온 백성의 응답이 됩니다.
"기쁜 마음으로"는 나디브, '기꺼운', '자원하는'입니다. 낙헌제와 같은 뿌리의 말입니다. 억지로 끌려 나온 손이 아니라 기꺼운 손입니다. 기술만으로도, 열심만으로도 부족합니다. 갈고닦은 솜씨에 기꺼운 마음이 더해질 때 하나님의 집이 섭니다.
우리 교회도 그렇습니다. 찬양하는 손, 음향을 만지는 손, 주방에서 식탁을 차리는 손, 아이들을 가르치는 손. 그 손들이 억지로가 아니라 기꺼이 움직일 때, 하나님은 그 손들을 서로 붙여 주시고 그 가운데 함께 계십니다. 혼자 짓는 성전은 없습니다.
다윗은 자기 손으로 성전을 짓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설계도가 솔로몬의 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씨를 뿌리는 자리도, 물을 주는 자리도, 열매를 거두는 자리도 있습니다. 내 손으로 마치지 못할 일이라도 다음 세대를 위해 정성껏 준비하는 것, 그것이 다윗의 마지막 걸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따라가는 발자국은 사람의 것만이 아닙니다.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 성령으로 행할지니" (갈 5:25)
이제 그리스도께로 갑니다. 히브리서는 20절의 약속을 새 언약 백성에게 그대로 건넵니다.
"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 13:5)
"마치기까지" 함께하겠다고 하신 하나님은 그 아들 안에서 끝내 마치셨습니다.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요 19:30)
솔로몬이 마친 성전은 결국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마치신 일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 위에 우리가 함께 지어져 갑니다.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 2:21~22)
맺는 말
본문을 다시 꿰어 봅시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설계도를 건넸습니다. 그것은 다윗의 꿈이 아니라 여호와의 손이 그려 알려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 설계는 갈고리와 종지의 무게까지 정했고, 한가운데에는 빛과 떡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마치기까지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과, 기쁜 마음으로 함께할 사람들을 아들에게 남겼습니다.
설계도, 세부, 그리고 동행입니다.
오늘 우리가 붙들 말은 이것입니다.
첫째, 설계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다윗은 받은 것을 받은 그대로 건넸습니다. 그 설계도의 실체는 성전 된 몸으로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세밀하십니다. 종지의 무게까지 정하신 분이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십니다. 그 계획 안에서 우리는 자유롭습니다.
셋째, 마치기까지 함께하십니다. "다 이루었다" 하신 주님 위에 우리는 함께 지어져 갑니다. 그러므로 강하고 담대하게 이 일을 행합니다.
오늘의 찬송이 새 208장 〈내 주의 나라와〉입니다. 지면에 함께 실린 경배와 찬양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능력으로 인도하사 크신 일을 이루소서 의지합니다 주의 얼굴만을 찾으리니 주여 나와 함께하사 주 뜻 이루소서." 내 설계가 아니라 주의 뜻을, 내 능력이 아니라 주의 함께하심을 구하며 오늘 하루의 일터로 나아갑시다.
오늘의 찬양
새 208장 〈내 주의 나라와〉 — 오늘의 찬송.
다윗이 설계도를 건넨 성전, 그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세우시는 교회를 사랑하는 고백입니다. 21절 "기쁜 마음으로 너와 함께할 것이요"의 자원하는 마음으로. 예배 여는 찬송으로.
〈예수 안에 소망 있네〉
"떠나지 아니하시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리라"(20절). 여호와의 손에 붙들린 인생은 아무것도 그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기도 시간 배경으로.
새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다윗의 설계도가 가리킨 실체, 교회가 서는 유일한 터 "예수 그리스도"(고전 3:11) 위에 서는 고백입니다. 결단의 자리에서.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다윗은 하나님께 받은 설계도를 자기 생각을 보태지 않고 건넸습니다.
지금 내 삶과 가정, 내가 맡은 일의 설계도는 어디서 왔습니까?
말씀에서 받은 것입니까, 내가 동원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든 대체품입니까?
다윗은 "네가 할 수 있다"가 아니라 "나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사"라고 격려했습니다.
지금 버겁고 두려워 미루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내 곁에 붙여 주신 사람은 누구이며, 나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발자국을 남기고 있습니까?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더빛교회의 모든 걸음이 하나님이 주신 설계도를 따르는 걸음이 되게 하소서.
진정한 성전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각자 맡은 자리에서 기쁜 마음으로 함께 세우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우리 세대에 다 이루지 못하는 일도 다음 세대를 위해 정성껏 준비하게 하소서.
맡겨진 일 앞에서 버거움과 두려움을 느끼는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시니 감사합니다.
사명의 설계도를 만드신 하나님이 우리가 그 일을 마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도우실 줄 믿습니다.
임마누엘의 약속을 붙들고,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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