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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 역대상 28:1-10

11분 전
8분 분량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본문: 역대상 28장 1절 ~ 10절


여는 말

어제 우리는 왕의 곳간과 왕의 곁에 서 있었습니다. 열두 청지기는 내 것이 아닌 왕의 재산을 맡았고, 일곱 사람이 왕의 곁을 지켰습니다. 그 곁에서 지혜의 모사 아히도벨은 등을 돌렸고, 마음의 벗 후새는 끝까지 남았습니다. 지혜보다 귀한 것이 충성이었고, 재능보다 오래가는 것이 마음이었습니다.

오늘 그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1절의 "왕과 왕자의 모든 소유와 가축의 감독"은 어제 이름을 불렀던 바로 그 청지기들입니다. 다섯 장에 걸친 명단이 끝나고, 22장에서 멈췄던 이야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열왕기상 1장의 다윗은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은 노인입니다. 침실 깊은 곳에서 후계 문제가 처리되고, 궁정의 책략 속에서 솔로몬이 왕이 됩니다. 그런데 역대기는 전혀 다른 장면을 보여 줍니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예루살렘으로 불러 모으고, 그들 앞에 "일어서서" 말합니다. 비밀리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온 회중이 보는 데에서, 그리고 "우리 하나님이 들으시는 데에서" 일어납니다.

생명의 삶은 오늘 본문에 "말씀 순종 위에 이루는 사명"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자리에 선 왕이 무엇을 남깁니까. 자기 업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 그리고 아들에게 주는 한 문장입니다.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1. 쉴 집을 짓고 싶었던 전쟁의 사람 (28:1~3)

"1 다윗이 이스라엘 모든 고관들 곧 각 지파의 어른과 왕을 섬기는 반장들과 천부장들과 백부장들과 및 왕과 왕자의 모든 소유와 가축의 감독과 내시와 장사와 모든 용사를 예루살렘으로 소집하고 2 이에 다윗왕이 일어서서 이르되 나의 형제들, 나의 백성들아 내 말을 들으라 나는 여호와의 언약궤 곧 우리 하나님의 발판을 봉안할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어서 건축할 재료를 준비하였으나 3 하나님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전쟁을 많이 한 사람이라 피를 많이 흘렸으니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대상 28:1~3)


다윗은 회중을 "나의 형제들, 나의 백성들아"라고 부릅니다. 역대기 전체에서 이 한 번뿐인 부름입니다. 왕이 백성 위에 군림하지 않고 그들 가운데 형제로 섭니다. 왕도 다른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있습니다.우리 모두는 같은 인간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붙잡힌 바되어 달려왔을 분입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나는 …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어서 건축할 재료를 준비하였으나." 다윗이 짓고 싶었던 집은 "언약궤 곧 우리 하나님의 발판을 봉안할 성전"입니다. 봉안은 잘 모셔 둔다는 뜻이고, 원문으로 보면 '안식의 집', 궤가 쉴 집입니다. 광야에서부터 장막을 옮겨 다니던 궤를 이제 편히 쉬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하늘과 땅의 주인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사 66:1)

하나님의 대답은 "아니다"였습니다. "너는 전쟁을 많이 한 사람이라 피를 많이 흘렸으니."

이것을 다윗에 대한 정죄로만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다윗의 전쟁은 대부분 하나님이 맡기신 싸움이었습니다. 문제는 어울림입니다. 성전은 언약궤가 쉬는 집입니다. 그러니 그 집을 짓는 자는 전쟁의 왕이 아니라 평화의 왕이어야 했습니다.

다윗 : 싸우고 준비하는 왕

솔로몬 : 안식 가운데 건축하는 왕

다윗이 제안하고, 하나님이 처분하십니다.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 16:9)


놀라운 것은 다윗의 태도입니다. 막으신 하나님 앞에서 토라지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재료를 갖추는 일에 마음을 쏟았습니다. 2절의 "준비하였으나"와 7절의 "견고하게 하리라"는 원문에서 같은 동사입니다. 무엇을 갖추어 세운다는 말입니다. 재목과 돌을 갖추면 '준비'가 되고, 나라를 갖추어 세우면 '견고함'이 됩니다. 다윗은 집 지을 재료를 갖추었고, 나라를 갖추어 세우는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오늘의 기도가 바로 이것입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나님이 막으실 때, 다윗처럼 겸손히 순복하게 하소서."


피를 많이 흘린 손으로는 쉴 집을 짓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천 년 뒤, 피를 흘려 쉴 집을 지으신 분이 오십니다. 다윗은 남의 피를 흘렸지만, 다윗의 자손은 자기 피를 흘리셨습니다.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골 1:20)

그리고 그분은 돌로 된 성전이 아니라 자기 몸을 성전이라 부르셨습니다.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 2:19, 21)

궤가 쉴 곳을 찾던 이스라엘처럼, 우리도 쉴 곳을 찾습니다.

그 집은 예루살렘의 돌집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십니다.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내가 하고 싶던 일이 막힌 자리, 거기서 우리는 더 큰 건축자를 만납니다.



2. 나를 기뻐하사 (28:4~8)

"4 그러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전에 나를 내 부친의 온 집에서 택하여 영원히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셨나니 곧 하나님이 유다 지파를 택하사 머리를 삼으시고 유다의 가문에서 내 부친의 집을 택하시고 내 부친의 아들들 중에서 나를 기뻐하사 온 이스라엘의 왕을 삼으셨느니라 5 여호와께서 내게 여러 아들을 주시고 그 모든 아들 중에서 내 아들 솔로몬을 택하사 여호와의 나라 왕위에 앉혀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려 하실새 6 내게 이르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 그가 내 성전을 건축하고 내 여러 뜰을 만들리니 이는 내가 그를 택하여 내 아들로 삼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될 것임이라 7 그가 만일 나의 계명과 법도를 힘써 준행하기를 오늘과 같이 하면 내가 그의 나라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8 이제 너희는 온 이스라엘 곧 여호와의 회중이 보는 데에서와 우리 하나님이 들으시는 데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구하여 지키기로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이 아름다운 땅을 누리고 너희 후손에게 끼쳐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대상 28:4~8)


다윗의 연설에서 거듭 나오는 말이 "택하다"입니다. 유다 지파를, 그 가운데 이새의 집을, 그 아들들 가운데 나를, 그리고 내 아들들 가운데 솔로몬을. 선택이 점점 좁혀집니다. "나를 기뻐하사."

'기뻐하다'는 라차, 기꺼이 좋아하다, 흔쾌히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제물을 기쁘게 받으실 때 쓰는 말입니다. 자격이 없는 것을 흔쾌히 받아 주시는 은혜의 결이 배어 있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왕이 된 이유를 자기 능력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높이 세워진 사람일수록 그 높음의 까닭을 하나님의 은혜에서 찾는 법입니다.

다윗은 이새의 여덟 아들 가운데 막내였습니다. 사무엘이 맏형 엘리압을 보고 "이 사람이다" 했을 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삼상 16:7)

솔로몬도 맏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출생을 둘러싼 이야기도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타고난 자질이나 업적과 상관이 없습니다. 특정한 일을 맡기시려는 선택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통해 자기 뜻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5절을 다시 보십시오. 솔로몬이 앉을 자리는 "다윗의 나라"가 아니라 "여호와의 나라" 왕위입니다. 이스라엘의 참된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왕도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맡은 청지기입니다. 어제 열두 청지기가 왕의 재산을 맡았다면, 오늘은 왕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를 맡은 청지기입니다.

그래서 약속에 '만일'이 붙습니다. "그가 만일 나의 계명과 법도를 힘써 준행하기를 오늘과 같이 하면." 이 조건은 약속을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약속을 살아 움직이게 합니다.

8절에서 다윗은 다시 온 회중을 향합니다. 1절에서 다윗이 "소집"한 그 무리가 8절에서는 "여호와의 회중"이 됩니다. 원문으로 같은 뿌리의 말입니다. 다윗이 불러 모은 무리가 사실은 하나님이 불러 모으신 회중이었습니다. 땅을 누리는 것은 한 번 주어지면 끝나는 자동 권리가 아닙니다. 세대마다 순종으로 새롭게 누리는 것입니다.


6절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내가 그를 택하여 내 아들로 삼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될 것임이라." 솔로몬은 이 말씀의 첫 수신자였지만 마지막 수신자는 아니었습니다. 요단강에서 하늘이 열렸습니다.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 3:17)

솔로몬은 "만일"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지만, 참 아들은 끝까지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아들 안에서 택함을 받았습니다.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엡 1:4)

택하심이 먼저이고, 순종이 그 뒤를 따릅니다. 그 순종은 무거운 의무가 아니라 사랑의 응답입니다.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 14:15)



3.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28:9~10)

"9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10 그런즉 이제 너는 삼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여 성전의 건물을 건축하게 하셨으니 힘써 행할지니라 하니라" (대상 28:9~10)


다윗이 회중에게서 아들에게로 몸을 돌립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성전 건축자에게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은 재료도, 기술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앎이 섬김보다 먼저입니다.

"네 아버지의 하나님"입니다. 남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광야에서, 굴에서, 왕궁에서 만난 그 하나님을 이제 네가 직접 만나라는 말입니다. 본문 해설의 글입니다. "이는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쌓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윗과 늘 함께하시고 그의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맛보아 아는 사람은 그분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떻게 섬기는가.

온전한 마음 : 나뉘지 않은 마음

기쁜 뜻 : 억지가 아닌 마음


왜 마음입니까.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의도'는 예체르, 토기장이가 흙을 빚어 만든 것을 가리키는 말에서 왔습니다. 이 표현은 창세기에서 온 말입니다.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 6:5)

다윗은 홍수 앞에서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에 내리신 진단을 아들 앞에 놓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같은 말이 시편에서는 '체질'로 번역됩니다.

"14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시 103:14)

우리를 빚으신 분이 우리 마음을 아십니다. 정죄하시려고만 아시는 것이 아니라, 긍휼히 여기시려고 아십니다.


외적인 행위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 일을 한다면서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는 태도로 진행한다면, 아무리 멋진 성과와 업적을 이루어도 그것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일이 되고 만다." 묵상 에세이의 글입니다. 이어서 이렇게 묻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영광이 아닌 우리 영광을 위해 선한 일을 할 수도 있다." 오늘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는 내 행위의 근거는 내 뜻입니까, 정말 하나님 뜻입니까.

그래서 다윗은 약속합니다.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렘 29:13)

예레미야에게 이 말씀은 포로 된 백성을 회개로 부르는 초대였습니다. 다윗에게는 이제 막 일을 시작하는 아들을 향한 초대, 행동으로의 초대입니다.

그리고 반대편도 있습니다.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솔로몬은 성전을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열왕기는 그의 말년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4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왕상 11:4)

과업은 이루었는데 마음은 지키지 못했습니다. 나뉜 마음이 결국 나뉜 왕국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우리 가운데 누가 온전한 마음입니까. 감찰하시는 눈앞에서 우리는 다 나뉜 마음입니다. 주님은 그 마음을 이미 아십니다.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요 2:25)

우리 속을 다 아시는 그분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찾아오셨습니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 (눅 19:10)

온전한 마음을 가지신 유일한 아들이 우리의 나뉜 마음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찰하시는 눈 앞에서 숨지 않고 나아갑니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5~16)

10절의 "삼갈지어다"는 원래 '보라', '살피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명령 앞에 근거가 놓여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여." 택하심이 먼저이고, "힘써 행할지니라"가 그 뒤를 따릅니다. 은혜가 명령보다 앞섭니다. 그 은혜를 맛본 사람이 기쁜 뜻으로 섬깁니다.



맺는 말

본문을 다시 꿰어 봅시다. 다윗은 쉴 집을 짓고 싶었지만 하나님은 막으셨고, 다윗은 그 자리에서 재료를 준비했습니다. 그는 자기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말했고,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마음을 당부했습니다.

막으심, 택하심, 그리고 마음입니다.

한 절 묵상의 글처럼, 다윗이 아들에게 남긴 유산은 왕위가 아니라 하나님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붙들 말은 이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이 막으시는 자리에서 겸손히 순복합니다. 피를 흘려 쉴 집을 지으신 분이 우리의 안식입니다.

둘째, 내가 선 자리는 나의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뻐하심입니다. 그 사랑하는 아들 안에서 우리가 택함을 받았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나뉜 마음을 아시는 주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깁니다.


오늘의 찬송이 새 446장 〈주 음성 외에는〉입니다. "주 음성 외에는 참기쁨 없도다 날 사랑하신 주 늘 계시옵소서." 기쁜 뜻으로 섬기는 마음은 억지로 짜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솟아납니다. 이 찬송으로 한 주를 엽니다. 오늘도 주님을 찾는 자리에서 주님을 만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찬양

새 446장 〈주 음성 외에는〉 — 오늘의 찬송.

"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 주께 왔사오니 복 주옵소서." 9절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와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가 이 찬송의 고백입니다. 예배 여는 찬송으로.


〈마음의 예배〉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음악도 형식도 아닌 마음 자체를 드리는 예배의 고백입니다. 대지 3 뒤 결단의 자리에서.


새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섬기라는 당부처럼, 주님을 아는 만큼 더 사랑하게 해 달라는 기도의 찬송입니다. 기도 시간에.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다윗은 하고 싶었던 일이 막혔을 때 낙심하지 않고 재료를 준비했습니다.

최근 하나님이 막으신 계획이 있습니까?

그 자리에서 내가 겸손히 준비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모든 마음을 감찰하시고 모든 의도를 아십니다.

오늘 내가 하나님을 위해 한다는 일의 숨은 동기는 무엇입니까?

나뉜 마음을 주님 앞에 내어놓고, 다시 "기쁜 뜻으로" 섬기기 위해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더빛교회가 사역의 성과보다 하나님을 아는 일을 앞세우게 하소서.

내 계획이 막히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선택을 신뢰하고, 다음 세대에게 왕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물려주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나님이 막으실 때, 다윗처럼 겸손히 순복하게 하소서.

저를 세밀히 돌보시고 가르치시는 하나님을 삶 속에서 경험하며 더욱 깊이 알아 가게 하소서.

참 좋으신 아버지를 사랑하고 섬기는 기쁨이 우리와 교회 공동체 안에 넘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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