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역대상 27:25-34
왕의 벗
본문: 역대상 27장 25절 ~ 34절
여는 말
어제 우리는 다윗의 군대와 지파의 명단 앞에 서 있었습니다. 열두 반열이 달마다 2만 4천 명씩 교대로 왕을 섬겼고, 지파마다 지도자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그 목록에서 유일하게 숫자가 빠진 자리가 있었습니다. 다윗은 스무 살 이하는 세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리라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요압은 세기를 시작했으나 끝내지 못했고, 그 수는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번성은 다윗의 행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열매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23장부터 다섯 장에 걸쳐 이어진 다윗 조직표의 마지막 두 장면입니다. 하나는 왕의 곳간, 다른 하나는 왕의 곁입니다.
성전 봉사 조직, 군대와 지파에 이어 이제 왕국의 경제와 정책 결정 체계까지 질서 있게 세워집니다. 다섯 장의 조직표는 왕의 헌신으로 시작해서 왕의 헌신으로 끝납니다.
생명의 삶은 오늘 본문에 "성실한 관리자, 지혜로운 조언자"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솔직히 오늘 본문은 역대기의 모든 목록 가운데 가장 무망해 보입니다. 낙타, 나귀, 기름 곳간… 그러나 이 무망해 보이는 명단이 주일 아침 우리에게 두 가지를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맡았는가.
나는 누구의 곁에 서 있는가.
1. 내 것이 아닌 곳간 (27:25~31)
"25 아디엘의 아들 아스마웻은 왕의 곳간을 맡았고 웃시야의 아들 요나단은 밭과 성읍과 마을과 망대의 곳간을 맡았고 26 글룹의 아들 에스리는 밭 가는 농민을 거느렸고 27 라마 사람 시므이는 포도원을 맡았고 스밤 사람 삽디는 포도원의 소산 포도주 곳간을 맡았고 28 게델 사람 바알하난은 평야의 감람나무와 뽕나무를 맡았고 요아스는 기름 곳간을 맡았고 29 사론 사람 시드래는 사론에서 먹이는 소 떼를 맡았고 아들래의 아들 사밧은 골짜기에 있는 소 떼를 맡았고 30 이스마엘 사람 오빌은 낙타를 맡았고 메로놋 사람 예드야는 나귀를 맡았고 하갈 사람 야시스는 양 떼를 맡았으니 31 다윗왕의 재산을 맡은 자들이 이러하였더라" (대상 27:25~31)
이름이 열둘입니다. 그리고 열두 번 거듭되는 말이 있습니다. "맡았고." 이 명단에는 위아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곳간지기도, 소 치는 사람도 똑같이 "맡은 자"입니다.
곳간은 한 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원문을 보면 "밭에, 성읍들에, 마을들에, 망대들에 있는 곳간들"입니다. 도성의 큰 곳간부터 들판과 마을, 망대에 딸린 작은 곳간까지, 그 하나하나에 저마다 맡은 자가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이스라엘에 얼마나 풍족한 은혜를 주셨는지 보여 줍니다.
이 곳간들은 단순한 보관 창고가 아니었습니다. 썩기 쉬운 것은 때에 맞게 나누고, 어떤 것은 기근과 포위의 날을 위해 비축했을 것입니다. 왕의 곳간은 쌓아 두는 곳이 아니라 백성을 먹이는 곳이었습니다.
곳간 다음에 오는 사람이 "밭 가는 농민"을 거느린 자입니다. '밭'은 아다마, 흙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아담)을 지으신 재료가 아다마이고, 사람에게 갈고 지키라 맡기신 것도 아다마입니다. 땅을 가는 일이 나라 살림의 뿌리입니다.
31절의 "재산"은 레쿠쉬, '쌓아 모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기록된 모든 사람이 자기 재산이 아니라 왕의 재산을 맡았습니다.
소유주 : 내 것을 쌓는다
청지기 : 왕의 것을 맡는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맡아 내 것처럼 신실하게 지키는 것, 그것이 청지기의 본분입니다. 언젠가 셈하여 돌려드릴 날이 옵니다.
"왕실의 재산은 왕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나라를 운영하고 백성을 섬기며 하나님 뜻을 이루어 가는 데 사용되는 자원입니다." 오늘 생명의 삶 본문 해설의 글입니다. 왕의 부는 복의 표지였지만, 율법은 왕이 재물을 쌓는 것을 금했습니다(신 17:17). 재산은 관리되어야지 쌓여서는 안 됩니다.
"1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 24:1)
"42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43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눅 12:42~43)
"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눅 16:10)
30절을 다시 보십시오. 이스마엘 사람 오빌이 낙타를, 하갈 사람 야시스가 양 떼를 맡습니다. 왕의 재산 명단에 이방인이 있습니다. 광야와 대상 무역의 사람에게 낙타를 맡겼습니다. "가장 자격 있는 사람에게 우선권이 주어졌다!" 왕의 곳간은 혈통이 아니라 맡길 만한 신실함과 은사로 채워졌습니다.
우리 교회도 그렇습니다. 주차, 재정, 시설, 식탁… 예배당 바깥의 일처럼 보이는 섬김이 모두 왕의 곳간입니다. 다윗의 명단에는 거룩한 일과 세속의 일 사이에 선이 없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께로 갑니다. 이 모든 청지기 위에, 아버지께로부터 모든 것을 맡으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모든 것을 맡으신 줄 아시고 하신 일이 이것입니다.
"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요 13:3~4)
모든 것을 맡으신 손이 대야를 들었습니다. 그 발 가운데에는 곧 자기를 팔 자의 발도 있었습니다. 맡은 것은 쌓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극적인 일만 귀한 것이 아닙니다. 매일의 일터와 가정과 교회에서 감당하는 작은 책임도 하나님이 맡기신 왕의 곳간입니다.
2. 모사와 벗 (27:32~33)
"32 다윗의 숙부 요나단은 지혜가 있어서 모사가 되며 서기관도 되었고 학모니의 아들 여히엘은 왕자들의 수종자가 되었고 33 아히도벨은 왕의 모사가 되었고 아렉 사람 후새는 왕의 벗이 되었고" (대상 27:32~33)
곳간에서 왕의 곁으로 옮겨 갑니다. 일곱 사람입니다. 숙부 요나단은 모사요, 분별 있는 사람이요, 서기관입니다. 친족이라서가 아니라 그 자리를 맡을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모사"는 요에츠, 왕 곁에서 계획을 세우고 조언하는 자입니다. 나라는 힘과 재물만으로 다스려지지 않습니다. 옳은 판단과 성실한 조언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같은 뿌리의 말이 '방책'도 되고 '계략'도 됩니다. 모사의 지혜는 그 자체로 절대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사에게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겸손이 함께 있어야 했습니다.
"22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무너지고 지략이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 (잠 15:22)
"지도자는 독불장군이 되면 안 되고,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들의 조언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역시 본문 해설의 글입니다.
그리고 "벗"은 레아, '곁에 있는 사람'입니다. 사사로운 친구가 아니라, 왕의 가장 깊은 신임을 받아 곁을 지키는 공식 직함이었습니다.
모사 : 지혜로 왕을 섬긴다
벗 : 마음으로 왕을 섬긴다
지혜는 왕을 도울 수도 있고, 왕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은 왕 곁에 남습니다.
본문은 아히도벨과 후새를 한 절에 나란히 세웁니다. 아무 설명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무엘하를 아는 우리는 이 두 이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압니다.
아히도벨의 지혜는 이 정도였습니다.
"23 그 때에 아히도벨이 베푸는 계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은 것이라 아히도벨의 모든 계략은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그와 같이 여겨졌더라" (삼하 16:23)
하나님께 물어 받은 말씀 같은 지혜. 그 지혜가 압살롬의 반역 때 왕을 등졌습니다.
"12 제사 드릴 때에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의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지라 반역하는 일이 커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니라" (삼하 15:12)
"다윗의 모사"가 반역의 모사가 되었습니다. 다윗이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감람 산을 오를 때 그 소식을 듣습니다.
"31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알리되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하니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 (삼하 15:31)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에서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덮어쓴 후새가 다윗을 맞으러 옵니다.
"37 다윗의 친구 후새가 곧 성읍으로 들어가고 압살롬도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더라" (삼하 15:37)
후새는 목숨을 걸고 압살롬의 궁으로 들어갔습니다. 다윗의 기도는 후새의 발걸음으로 응답되었습니다.
"14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계략은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낫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라고 명령하셨음이더라" (삼하 17:14)
아히도벨은 고향으로 돌아가 스스로 생을 마쳤습니다. 뛰어난 지혜보다 귀한 것이 변치 않는 충성이고, 재능보다 오래가는 것이 마음을 다한 우정입니다.
역대기는 이 긴 이야기를 한 줄도 옮기지 않습니다. 두 이름만 나란히 둡니다. 그래서 더 묻게 됩니다. 나는 어느 이름 쪽에 서 있는가.
다윗은 이 아픔을 시로 남겼습니다.
"9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시 41:9)
천 년 뒤, 다윗의 자손이 다락방에서 이 시를 인용하십니다.
"18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요 13:18)
그 밤의 유다는 돈궤를 맡은 사람이었습니다(요 13:29). 곳간을 맡고, 곁에서 떡을 먹던 자가 등을 돌렸습니다. 아히도벨의 길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모략이 무너진 자리에서 참 모사가 드러나십니다.
"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엡 3:8)
다윗의 곳간에는 기름과 포도주가 쌓였지만, 그리스도 안에는 측량할 수 없는 풍성함이 있습니다. 오빌과 야시스가 왕의 곳간을 맡았듯, 그 풍성함이 이방인에게까지 맡겨졌습니다. 곳간과 모사가 한 분 안에서 만납니다. 그분은 배반하지 않는 모사이십니다.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사 9:6)
3.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27:34)
"34 브나야의 아들 여호야다와 아비아달은 아히도벨의 뒤를 이었고 요압은 왕의 군대 지휘관이 되었더라" (대상 27:34)
아히도벨의 자리는 비어 있지 않았습니다. 여호야다와 아비아달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이 명단은 배반의 상처를 감추지 않고, 그 자리가 다시 채워졌다고 기록합니다.
아비아달은 사울의 칼을 피해 홀로 살아남아 도망자 다윗에게 왔던 제사장입니다. 광야 시절부터 왕 곁에 있던 사람이 배반한 모사의 자리를 메웁니다. 자신을 반역할 사람이 모사로 세워졌던 것도, 그 빈자리가 오랜 동행자로 채워진 것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목록은 요압으로 끝납니다. 다윗의 친척이지만 반드시 친구는 아니었던 사람. 다윗은 그를 끝내 용서하지 못했지만, 제거하지도 않고 오랜 시간 인내했습니다.
이 일곱은 완벽한 내각이 아닙니다. 배반한 모사, 그 뒤를 이은 사람, 끝까지 남은 벗, 용서하지 못했으나 필요했던 장군.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로 다윗의 나라를 견고히 세우셨습니다.
영화 〈크레센도〉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젊은 연주자들로 평화 오케스트라를 만들려 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연습 때마다 분노가 터지고 서로 치고받습니다. 지휘자가 말합니다. "하나의 오케스트라가 되려면 연주보다 먼저 연주자들이 소통해야 한다." 자기 악기 소리에만 집중하던 단원들이 상대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합니다. 너의 소리를 들을 때, 비로소 평화의 길이 열립니다.
다윗의 곁에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숙부와 이방인, 제사장과 장군. 서로 다른 소리가 한 왕을 향할 때 나라가 섰습니다.
누군가는 앞에서 이끌고, 누군가는 지혜를 나누고,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일을 맡습니다. 내 역할만 중요하게 여기면 안 됩니다.
다윗의 궁정에서 "왕의 벗"은 단 한 사람의 칭호였습니다. 그런데 참 왕이신 예수님이 그 이름을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요 15:13~15)
후새는 왕을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예수님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왕이 벗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왕은 발꿈치를 들 자를 아시면서도 그 발을 씻기셨습니다.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 13:1)
끝까지 사랑하신 왕의 벗으로, 우리도 끝까지 그 곁에 남습니다.
왕의 벗은 왕의 마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지만, 벗은 압니다.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새벽마다 말씀 앞에 앉는 이 자리가 왕의 마음을 듣는 벗의 자리입니다.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약 2:23)
맺는 말
본문을 다시 꿰어 봅시다. 열두 청지기는 내 것이 아닌 왕의 곳간을 맡았고, 일곱 측근은 왕의 곁을 지켰습니다. 그 곁에서 지혜의 모사는 등을 돌렸고, 마음의 벗은 끝까지 남았으며, 빈자리는 다시 채워졌습니다.
곳간, 곁, 그리고 벗입니다.
역대기는 아히도벨을 "왕의 모사"로, 후새를 "왕의 벗"으로 기록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에 어떤 이름으로 기록되기를 바랍니까.
오늘 우리가 붙들 말은 이것입니다.
첫째, 맡은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 모든 것을 맡으신 주님은 그것으로 발을 씻기셨습니다.
둘째, 지혜보다 귀한 것이 충성입니다. 하나님께 물어 받은 말씀 같던 지혜도 왕을 등진 순간 무너졌습니다. 참 지혜의 보화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셋째, 왕이 우리를 벗이라 부르십니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그 사랑 안에서, 우리도 왕의 곁을 끝까지 지키는 벗이 됩니다.
오늘의 찬송이 새 450장 〈내 평생소원 이것뿐〉입니다. 지면에 함께 실린 경배와 찬양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 하나님의 신실한 친구 되기 원합니다." 아히도벨은 왕을 바꾸었고, 후새는 바꾸지 않았습니다. 이 찬송으로 주일 예배를 향해 나아갑시다. 오늘 예배 가운데 우리를 친구라 부르시는 주님을 만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찬양
새 450장 〈내 평생소원 이것뿐〉 — 오늘의 찬송.
지면에 함께 실린 경배와 찬양의 고백 "하나님의 신실한 친구 되기 원합니다"가 33절 "아렉 사람 후새는 왕의 벗이 되었고"와 겹칩니다. 왕을 바꾸지 않은 벗의 고백. 예배 여는 찬송으로.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지혜로 섬긴 모사가 아니라 마음으로 왕 곁에 남은 벗처럼, 주의 사랑에 매여 사는 고백입니다.
새 369장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우리의 친구 되신 예수님께 모든 짐을 맡기라는 찬송입니다.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요 15:15), 왕이 먼저 우리의 벗이 되셨습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다윗의 열두 청지기는 자기 재산이 아니라 "다윗왕의 재산"을 맡았습니다.
지금 내 손에 있는 시간·재물·재능·직분 가운데 내 것처럼 쥐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그것을 왕의 것으로 돌려드리는 작은 행동 하나는 무엇입니까?
아히도벨은 지혜로 왕을 섬겼으나 등을 돌렸고, 후새는 마음으로 왕 곁에 남았습니다.
나는 주님을 능력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마음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내 곁에서 지혜롭게 조언해 주는 사람은 누구이며, 나는 그를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오늘 주일 예배 가운데 우리를 친구라 부르시는 왕의 사랑을 경험하게 하소서.
더빛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일원으로 섬기는 일을 작게 여기지 않고, 맡겨진 자원을 잘 관리해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누구도 독불장군이 되지 않고, 서로의 소리를 듣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소형 교회 사모 대부분이 육체적·정신적 건강 위기를 경험했고, 탈진 증후군 비율도 목회자보다 높다고 합니다. 이들에게 주님의 위로와 힘을 더하여 주소서.
인구의 99% 이상이 이슬람교도인 예멘에서 생명을 위협당하면서도 믿음을 지키는 교회와 성도들을 보호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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