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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 역대상 27:1-24

6시간 전
7분 분량

별을 세시는 분

본문: 역대상 27장 1절 ~ 24절


여는 말

어제 우리는 하나님의 전 곳간 앞에 서 있었습니다. 레위인들이 하나님의 전 곳간과 성물 곳간을 맡았고, 전쟁에서 얻은 물건을 구별해 드린 것을 관리했습니다. 그나냐와 그 아들들은 바깥일을 맡아 관원과 재판관이 되었고, 헤브론 사람들은 요단 서편과 동편에서 "여호와의 모든 일과 왕의 일"을 다스렸습니다. 성전 안에서 시작된 조직이 곳간을 지나 온 땅의 일로 번져 나갔습니다.

오늘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갑니다. 27장에는 성전도 제사장도 나오지 않습니다. 군대, 지파의 지도자, 그리고 세지 않은 수가 나옵니다.

솔직히 역대기의 모든 목록 가운데 가장 무미건조해 보이는 장입니다. 그러나 성전이 언급되지 않을 뿐, 이 장도 성전을 준비합니다. 초점이 레위인에서 "온 이스라엘"로 넓어졌을 뿐입니다. 이 사람들이 28장에 다시 모여 성전 건축의 위임을 듣고, 29장에서 예물을 드립니다.

성전 예배를 위한 질서와 나라를 위한 질서는 서로 다른 영역이 아닙니다. 둘 다 여호와의 통치 아래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두 축입니다.



1. 달마다 들어가며 나왔으니 (27:1~15)

"1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가문의 우두머리와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을 섬기는 관원들이 그들의 숫자대로 반이 나누이니 각 반열이 이만 사천 명씩이라 일 년 동안 달마다 들어가며 나왔으니 2 첫째 달 반의 반장은 삽디엘의 아들 야소브암이요 그의 반에 이만 사천 명이라 3 그는 베레스의 자손으로서 첫째 달 반의 모든 지휘관의 우두머리가 되었고 4 둘째 달 반의 반장은 아호아 사람 도대요 또 미글롯이 그의 반의 주장이 되었으니 그의 반에 이만 사천 명이요 5 셋째 달 군대의 셋째 지휘관은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요 그의 반에 이만 사천 명이라 6 이 브나야는 삼십 명 중에 용사요 삼십 명 위에 있으며 그의 반 중에 그의 아들 암미사밧이 있으며 7 넷째 달 넷째 지휘관은 요압의 아우 아사헬이요 그 다음은 그의 아들 스바댜이니 그의 반에 이만 사천 명이요" (대상 27:1~7)


열두 달, 열두 반열, 각 반열에 이만 사천 명. 한 달씩 번갈아 1년 동안 국경을 지키고, 무기를 관리하고, 정복한 땅의 질서를 지켰습니다. 상비군이라기보다 달마다 소집되는 예비군에 가깝습니다. 들어가는 달이 있고, 나오는 달이 있었습니다. 전쟁 때만 모이는 군대가 아니라 평시에도 돌아가는 제도였습니다.

지휘관들은 검증된 용사들입니다. 야소브암은 창으로 삼백 명을 죽였고, 브나야는 눈 오는 날 구덩이에 내려가 사자를 죽였습니다.

1절의 "섬기는"이 하메샤르팀입니다. 이 동사는 구약에서 주로 성소의 봉사에 쓰는 말입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말이 왕을 섬기는 군인들에게 그대로 쓰였습니다. 대제사장의 아들이 군대 지휘관입니다. 여기에는 거룩한 일과 세상일의 경계가 없습니다. 주님은 삶 전체를 다스리십니다.

주일에 예배당에서 드리는 섬김만 섬김이 아닙니다. 월요일 아침 일터로 들어가는 걸음도, 부엌에서 가족의 끼니를 차리는 손도 "섬기는" 자리입니다.


"8 다섯째 달 다섯째 지휘관은 이스라 사람 삼훗이니 그의 반에 이만 사천 명이요 9 여섯째 달 여섯째 지휘관은 드고아 사람 익게스의 아들 이라이니 그의 반에 이만 사천 명이요 10 일곱째 달 일곱째 지휘관은 에브라임 자손에 속한 발론 사람 헬레스이니 그의 반에 이만 사천 명이요 11 여덟째 달 여덟째 지휘관은 세라 족속 후사 사람 십브개이니 그의 반에 이만 사천 명이요 12 아홉째 달 아홉째 지휘관은 베냐민 자손 아나돗 사람 아비에셀이니 그의 반에 이만 사천 명이요 13 열째 달 열째 지휘관은 세라 족속 느도바 사람 마하래이니 그의 반에 이만 사천 명이요 14 열한째 달 열한째 지휘관은 에브라임 자손에 속한 비라돈 사람 브나야이니 그의 반에 이만 사천 명이요 15 열두째 달 열두째 지휘관은 옷니엘 자손에 속한 느도바 사람 헬대니 그 반에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 (대상 27:8~15)


같은 문장이 열두 번 되풀이됩니다. "몇째 달 몇째 지휘관은 누구이니 그의 반에 이만 사천 명이요." 지루해 보이는 이 반복이 오히려 말합니다. 어느 달도 비지 않았습니다. 어느 달도 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지휘관들의 출신도 섞여 있습니다. 유다 사람, 베냐민 사람, 에브라임 사람이 순서대로 들어가고 나옵니다. 반열은 지파의 울타리를 따라 나뉘지 않았습니다. 서로 다른 집안의 사람들이 한 달력 안에서 같은 왕을 섬겼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11장은 브나야를 "삼십 명 중에서 뛰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비교가 없습니다. "삼십 명 중에 용사요 삼십 명 위에." 소속과 배치만 남았습니다.

브나야는 누구보다 뛰어난 용사였지만, 그 역시 셋째 달에 들어가고 셋째 달이 끝나면 나왔습니다. 그의 용맹은 그를 질서 위에 군림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맡겨진 자리를 충실히 지키게 했습니다. 힘이 크다 해도 규례를 벗어나지 않고, 그 힘으로 정한 자리를 든든히 지키는 것. 그것이 참된 용사입니다.

7절에는 아사헬이 있습니다. 다윗 통치 초기에 죽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한 줄이 붙었습니다. "그 다음은 그의 아들 스바댜이니." 사람은 가도 반열은 이어집니다.

"40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고전 14:40)

"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딤후 2:3~4)


로마는 키가 큰 민족도, 지혜가 남달리 뛰어난 민족도, 체력이 강한 민족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로마 군대가 방패를 땅에 대고 구령에 맞춰 한 보 한 보 전진할 때 그 대열은 줄을 그어 놓은 것처럼 일사불란했습니다. 그 힘을 한 단어로 말하면 협력입니다.

교회에 혼자 튀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개성을 죽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누군가 조금 뒤처지면 기다렸다가 같이 가는 너그러움과 여유, 그것이 교회가 가져야 할 속성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몇 사람이 "항상" 버티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달마다" 교대하며 함께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 섬김의 목적은 좋은 결과 자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 안에서 내 능력과 경험을 앞세우지 않도록 훈련받는 것입니다.


2. 왕의 형도 한 지파를 (27:16~22)

"16 이스라엘 지파를 관할하는 자는 이러하니라 르우벤 사람의 지도자는 시그리의 아들 엘리에셀이요 시므온 사람의 지도자는 마아가의 아들 스바댜요 17 레위 사람의 지도자는 그무엘의 아들 하사뱌요 아론 자손의 지도자는 사독이요 18 유다의 지도자는 다윗의 형 엘리후요 잇사갈의 지도자는 미가엘의 아들 오므리요 19 스불론의 지도자는 오바댜의 아들 이스마야요 납달리의 지도자는 아스리엘의 아들 여레못이요 20 에브라임 자손의 지도자는 아사시야의 아들 호세아요 므낫세 반 지파의 지도자는 브다야의 아들 요엘이요 21 길르앗에 있는 므낫세 반 지파의 지도자는 스가랴의 아들 잇도요 베냐민의 지도자는 아브넬의 아들 야아시엘이요 22 단은 여로함의 아들 아사렐이니 이들은 이스라엘 지파의 지휘관이었더라" (대상 27:16~22)


"지파"가 쉐베트입니다. 본래 '막대기', '지팡이'라는 말입니다. 한 지파는 한 지팡이 아래 모인 무리입니다. 목자의 지팡이 아래 한 떼의 양이 모이듯, 한 지도자 아래 한 지파가 모입니다. 다윗이 각 지파에 지도자를 세운 것은, 온 이스라엘이 지팡이 없이 흩어진 무리가 아니라 목자 아래 세워진 공동체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지팡이 없는 무리가 어떤 모습인지 예수님이 보셨습니다.

"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마 9:36)


그런데 이 명단은 반듯한 열둘이 아닙니다. 갓과 아셀이 빠졌고, 레위와 아론이 따로 서고, 므낫세는 요단 서편과 길르앗으로 나뉘었습니다. 숫자를 맞추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한 질서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17절의 사독은 아버지 이름도 없이 "사독"이라고만 불립니다. 헤브론에서 다윗이 왕으로 세워질 때 젊은 용사로 자기 집안 지휘관들을 이끌고 나왔던 사람, 법궤를 메었던 사람입니다. 이름만으로 충분한 사람이 아론 자손을 맡았습니다. 그도 질서 안의 한 자리였습니다.

18절에서 눈이 멈춥니다. "유다의 지도자는 다윗의 형 엘리후요." 왕의 형입니다. 왕의 가족이라고 조직 바깥에 따로 서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지파 지도자들과 나란히 한 지파를 맡았습니다.

왕의 혈육이라는 신분이 질서를 벗어날 구실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스림은 특권을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책임을 지는 자리입니다. 이만 사천의 무리부터 삼십 용사의 우두머리, 그리고 왕의 형까지. 가장 낮은 자부터 왕의 혈육까지 온 이스라엘이 한 질서 안에서 저마다 자리를 지킵니다.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

그리고 지팡이 아래 모인 모든 무리 위에 큰 목자가 계십니다.

"20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히 13:20)

직분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입니다. 누구의 형제, 누구의 자녀라는 이름이 질서 밖에 설 구실이 되지 않습니다.


3. 하늘의 별같이 (27:23~24)

"23 이스라엘 사람의 이십 세 이하의 수효는 다윗이 조사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사람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음이라 24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조사하기를 시작하고 끝내지도 못해서 그 일로 말미암아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한지라 그 수효를 다윗왕의 역대 지략에 기록하지 아니하였더라" (대상 27:23~24)


이 장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는 곳은 여기 한 곳뿐입니다. 그리고 목록 사이에 끼어 있는 유일한 설명입니다.

"이십 세 이하"는 직역하면 "이십 세부터 그리고 아래로"입니다. 성경의 인구조사 표현은 언제나 위를 향합니다. "이십 세 이상", 곧 "이십 세부터 그리고 위로"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방향을 뒤집어 "아래는 세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유가 이어집니다.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리라."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창 15:5)


23절 : 약속을 따라 세지 않았다

24절 : 세려다가 진노를 불렀기 때문이다


"진노"는 케체프, 타오르듯 터지는 분노입니다. 숫자에서 안심을 찾으려 할 때, 그 숫자가 도리어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합니다. 그래서 그 수는 왕의 기록에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공식 기록의 빈칸입니다. 그 빈칸 뒤에 하나님의 주권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번영의 진짜 저자는 다윗의 행정이 아니라 여호와 자신이셨습니다.

우리가 세지 못하는 그 별을 세시는 분이 계십니다.

"4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시 147:4)

이스라엘은 세지 못했고, 하나님은 이미 다 세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숫자를 붙들지 않고 약속을 붙듭니다. 앞의 반열 명단에는 "이만 사천"이 열세 번 나오지만, 지파 명단에는 숫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름만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숫자가 아니라 이름으로 아십니다.

"10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11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시 147:10~11)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고전 3:6~7)

우리도 공동체의 크기와 자원의 양으로 하나님의 일이 가능한지 가늠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많으면 할 수 있고, 부족하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숫자를 파악하고 계획을 세우는 일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공동체의 힘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별 같은 후손의 약속은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히 11:12)

그리고 그 약속은 십자가와 빈 무덤을 지나 마지막 날 어린 양 앞에서 완성됩니다. 다윗의 조직표도 셀 수 없었던 백성, 요한도 셀 수 없었던 무리입니다.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계 7:9)



맺는 말

본문을 다시 꿰어 봅시다. 열두 반열은 달마다 들어가며 나와 왕을 섬겼고, 왕의 형까지 한 지파를 맡아 질서 안에 섰고, 그 모든 조직표 한가운데에 세지 않은 수가 남았습니다.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리라."

자리, 책임, 그리고 약속입니다.

묵상 에세이의 글입니다. "마음의 하나 됨이 구성원 간의 인격적 유대를 의미한다면, 영적 하나 됨은 구성원 각자가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지체들이 모두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갈 때 진정한 하나 됨의 기쁨을 누리며 천국을 경험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붙들 말은 이것입니다.

첫째, 맡겨진 달에 들어가고, 맡겨진 달에 나옵니다. 브나야 같은 용사도 셋째 달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섬김은 경쟁이 아니라 교대입니다.

둘째, 직분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입니다. 왕의 형도 한 지파를 맡아 섰습니다. 그리고 왕의 아들은 섬기러 오셨습니다.

셋째, 숫자가 아니라 약속으로 삽니다. 별을 세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세어서 안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의 찬송이 새 459장 〈누가 주를 따라〉입니다. "누가 주를 따라 섬기려는가." 맡겨진 자리에서 주를 따라 섬기겠다고 대답하며, 내일 주일 예배의 자리로 나아갑시다. 숫자가 아니라 약속을 붙드는 하루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찬양

새 459장 〈누가 주를 따라〉 — 오늘의 찬송.

"누가 주를 따라 섬기려는가"가 1절 "왕을 섬기는" 반열의 질문입니다. 예배 여는 찬송으로.


〈내 이름 아시죠〉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 하나님(시 147:4). 숫자가 아니라 이름으로 나를 아시는 주님께 드리는 고백입니다. 결단의 자리에서.



새 353장 〈십자가 군병 되어서〉

달마다 소집된 반열의 병사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2:3)는 부름에 응답합니다. 파송 찬송으로.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열두 반열은 달마다 들어가며 나왔고, 큰 용사 브나야도 셋째 달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나는 공동체에서 맡은 역할을 하나님이 맡기신 자리로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내 힘과 경력을 앞세워 질서 밖에 서려 한 적은 없습니까?


다윗은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리라"는 약속 때문에 세지 않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을 판단할 때 사람의 수와 자원을 먼저 봅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먼저 신뢰합니까?

내가 내려놓아야 할 인간적 계산은 무엇입니까?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더빛교회가 몇 사람의 헌신에 기대는 교회가 아니라, 맡겨진 때와 자리에서 교대로 함께 섬기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직분과 이름이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 되게 하시고, 섬기러 오신 주님을 닮게 하소서.

출석과 숫자로 안심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별을 세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게 하소서.


저희를 하나님 나라의 군사로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질서와 체계가 잡힌 견고한 공동체를 세워 갈 수 있도록 저희에게 필요한 지혜와 능력을 더해 주소서.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해서는 안 될 일을 삼가고 반드시 감당해야 할 책임은 다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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