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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 역대상 26:20-32

6시간 전
8분 분량

곳간에서 요단 건너편까지

본문: 역대상 26장 20절 ~ 32절


여는 말

어제는 문 앞에 섰습니다. 반역자 고라의 자손이, 석 달 동안 궤를 모신 오벧에돔의 집이, 맏아들이 아닌 시므리가 동서남북 각 문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어제 본문 15절에 한 줄이 지나갔습니다. "오벧에돔은 남쪽을 뽑았고 그의 아들들은 곳간에 뽑혔으며."

오늘은 그 곳간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다시 성전 밖으로, 요단강 건너편까지 나갑니다. 오늘 생명의 삶이 붙인 제목이 「삶의 모든 영역이 사명의 자리입니다」입니다.

성전 안의 곳간에서, 성전 밖의 재판석으로, 그리고 요단 서편과 동편 전역으로. 본문은 점점 넓어집니다. 하나님이 계신 중심에서 출발해 세상 한복판으로 나아가는 순서입니다. 역대기는 성전과 나라를 별개의 영역으로 나누지 않습니다. 예배의 질서가 공동체 전체의 질서와 정의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문 앞에서 문 안으로, 그리고 문 밖으로. 오늘은 세 자리를 봅니다.



1. 하나님의 전 곳간과 성물 곳간 (26:20~25)

"20 레위 사람 중에 아히야는 하나님의 전 곳간과 성물 곳간을 맡았으며 21 라단의 자손은 곧 라단에게 속한 게르손 사람의 자손이니 게르손 사람 라단에게 속한 가문의 우두머리는 여히엘리라 22 여히엘리의 아들들은 스담과 그의 아우 요엘이니 여호와의 성전 곳간을 맡았고 23 아므람 자손과 이스할 자손과 헤브론 자손과 웃시엘 자손 중에 24 모세의 아들 게르솜의 자손 스브엘은 곳간을 맡았고 25 그의 형제 곧 엘리에셀에게서 난 자는 그의 아들 르하뱌와 그의 아들 여사야와 그의 아들 요람과 그의 아들 시그리와 그의 아들 슬로못이라" (대상 26:20~25)


곳간이 둘입니다. 백성이 드린 예물과 헌금은 '하나님의 전 곳간'에, 전쟁에서 얻은 것 가운데 하나님께 구별한 것은 '성물 곳간'에 따로 보관했습니다. 하나는 성전의 일상 운영을 위한 곳간이고, 하나는 특별히 구별해 드린 것을 간직하는 곳간입니다.

"곳간"은 오차르, '쌓아 두다', '간직하다'에서 온 말입니다. 값진 것을 간직해 두는 보물 창고입니다. 성전 곳간은 물품을 쌓아 두는 창고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진 보화를 보관하는 거룩한 보고였습니다.


그런데 24절이 눈에 걸립니다. "모세의 아들 게르솜의 자손 스브엘은 곳간을 맡았고." 여기 "맡았고"는 나기드입니다. '지도자', '통치자'라는 무게 있는 말입니다. 사무엘이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 부어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세울 때 쓴 바로 그 단어입니다. 곳간을 관리하는 일이 하찮은 잡무가 아니라, 나기드라 불릴 만한 중책이었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그 자리를 맡은 사람은 모세의 손자였습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의 이름을 이은 사람이, 전면에 나서는 대신 성전 뒤편의 곳간 열쇠를 쥐었습니다. 이름은 모세의 이름인데, 자리는 곳간입니다. 하나님은 드러나는 자리만이 아니라 감추어진 자리에도 나기드를 세우십니다.

곳간에는 금과 은과 보석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일은 결코 가벼운 직무가 아닙니다. 눈에 띄는 자리는 아니지만, 신뢰와 정직이 요구되는 자리입니다. 재고를 세고, 장부를 맞추고, 문을 지켰습니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 4:2)

곳간지기는 교회를 살릴 수도,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열두 제자 중에도 곳간지기가 있었습니다.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요 12:6)

같은 "맡은 자"였습니다. 슬로못은 성물을 지켰고, 유다는 돈궤를 훔쳤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연보를 다룰 때 이렇게 조심했습니다.

"20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21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고후 8:20~21)

곳간지기는 남의 보물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보물의 주인께서 자기 곳간을 비우셨습니다.

"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8:9)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가장 큰 보물은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골 2:3)

그러니 곳간을 맡은 우리가 붙들 말씀은 하나입니다.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마 6:20)

하나님 앞에서 내가 정직하게 감당해야 할 곳간은 무엇입니까.



2. 사무엘부터 요압까지, 한 곳간에 (26:26~28)

"26 이 슬로못과 그의 형제는 성물의 모든 곳간을 맡았으니 곧 다윗왕과 가문의 우두머리와 천부장과 백부장과 군대의 모든 지휘관이 구별하여 드린 성물이라 27 그들이 싸울 때에 노략하여 얻은 물건 중에서 구별하여 드려 여호와의 성전을 개수한 일과 28 선견자 사무엘과 기스의 아들 사울과 넬의 아들 아브넬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무엇이든지 구별하여 드린 성물은 다 슬로못과 그의 형제의 지휘를 받았더라" (대상 26:26~28)


"노략하여 얻은 물건"은 하샬랄, 전쟁에서 빼앗은 전리품입니다. 폭력과 다툼의 산물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께 드려지자 예배를 떠받치는 성물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은혜의 문법이 있습니다. 사람의 손에서는 다툼의 열매였던 것이, 하나님의 집에 이르러서는 예배의 도구가 됩니다.

다윗 혼자 드린 것이 아닙니다. 가문의 우두머리와 천부장과 백부장과 군대의 모든 지휘관이 함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28절은 그 범위를 다윗 이전까지 넓힙니다. 선견자 사무엘, 사울, 아브넬, 요압.

이 네 사람을 한 줄에 놓고 보십시오.

사무엘 : 사울에게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다고 전한 선지자

사울 : 다윗을 죽이려고 쫓던 왕

아브넬 : 사울 집을 위해 다윗과 싸운 군사령관

요압 : 그 아브넬을 죽인 다윗의 군사령관

진영도 위치도 다르고, 서로 칼을 겨누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린 성물은 한 곳간에 함께 간직되었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다툼은 지나가도, 하나님께 드려진 것은 남아 그분의 집을 섬깁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이름은 갈라져 있어도, 하나님께 드린 것은 한 곳간에 모입니다.

사울의 이름이 특별합니다. 이 시리즈 첫머리 10장에서 우리는 길보아에 쓰러진 사울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역대기에서 사울의 이름이 마지막으로 나오는 자리가 바로 오늘 이 구절입니다. 다윗과 대비되던 실패한 왕이, 마지막 자리에서는 성전 예배를 위해 성물을 드린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성물 곳간은 이스라엘의 전쟁과 지도자들의 헌신과 과거의 유산이 여호와께 돌아가는 기억의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은혜를 누릴 수는 없었습니다.


27절도 봅니다. "여호와의 성전을 개수한 일." 개수는 고쳐서 수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전은 아직 지어지지도 않았습니다. 다윗의 모든 것이 아직 없는 그 집을 향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군사들이 목숨을 걸고 얻은 전리품, 사무엘과 사울이 드린 성물이 다음 세대의 성전을 위한 자원이 되었습니다. 곳간을 맡은 레위인은 앞선 세대가 드린 것을 거룩하게 지켜 다음 세대에 넘겨주었습니다.

"하나님 백성은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립니다." 오늘 생명의 삶 한 절 묵상의 글입니다. 그 곳간은 단순한 창고가 아니라, 하나님이 승리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증거물들이 쌓인 곳이었습니다.

전쟁의 전리품이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가는 이 그림은, 한 분의 승리에서 완성됩니다.

"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엡 4:8)

다윗은 이긴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리스도는 이기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이기신 그분의 전리품이 오늘 교회에 주신 은사입니다. 그 은사로 주님은 지금도 교회를 세우십니다.



3. 성전 밖에서, 여호와의 일과 왕의 일 (26:29~32)

"29 이스할 자손 중에 그나냐와 그의 아들들은 성전 밖에서 이스라엘의 일을 다스리는 관원과 재판관이 되었고 30 헤브론 자손 중에 하사뱌와 그의 동족 용사 천칠백 명은 요단 서쪽에서 이스라엘을 주관하여 여호와의 모든 일과 왕을 섬기는 직임을 맡았으며 31 헤브론 자손 중에서는 여리야가 그의 족보와 종족대로 헤브론 자손의 우두머리가 되었더라 다윗이 왕위에 있은 지 사십 년에 길르앗 야셀에서 그들 중에 구하여 큰 용사를 얻었으니 32 그의 형제 중 이천칠백 명이 다 용사요 가문의 우두머리라 다윗왕이 그들로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를 주관하여 하나님의 모든 일과 왕의 일을 다스리게 하였더라" (대상 26:29~32)


"성전 밖에서." 하히초나, '바깥'이라는 말입니다. 모든 레위인이 성전 안에서만 섬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나냐와 그의 아들들은 성전 밖에서 관원과 재판관이 되었습니다. 23장에서 다윗이 레위인 육천 명을 관원과 재판관으로 세웠다고 했는데, 오늘 그 선언이 이렇게 이루어집니다.

레위인 재판관은 율법이 이미 그려 둔 그림이었습니다.

"18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각 성에서 네 지파를 따라 재판장들과 지도자들을 둘 것이요 그들은 공의로 백성을 재판할 것이니라" (신 16:18)

성전 안에서 제물과 찬송으로 섬기는 일이나, 성전 밖에서 재판과 행정으로 섬기는 일이나 모두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성소 안의 예배와 성소 밖의 정의가 하나로 이어져야 합니다. 레위인은 성전과 왕 사이의 간격을 잇는 사람들이었습니다.


30절을 천천히 읽습니다. "여호와의 모든 일과 왕을 섬기는 직임." 여호와의 일과 왕의 일이 접속사 하나, '그리고'로 묶여 있습니다. 두 영역으로 갈라지지 않고 한 직임 안에 함께 있습니다. 세속의 업무와 거룩한 업무 사이에 높은 담이 서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서는 맡겨진 자리에서 정직하게 일하는 것 자체가 예배가 됩니다.

32절은 같은 말을 다른 낱말로 한 번 더 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일과 왕의 일." 23장부터 이어진 다윗의 방대한 조직이 여기서 마무리됩니다. 제사장, 레위인, 노래하는 자, 문지기, 곳간지기, 성전 밖 관원. 이 모든 조직이 향한 목적은 결국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과 왕의 일을 함께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질서는 요단강을 건너갑니다. 길르앗 야셀은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요단 동쪽입니다. 중앙에서 떨어져 소홀해지기 쉬운 땅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곳에서 사람을 "구하여" 찾아냈고, 이천칠백 명을 세웠습니다. 성전 안의 예배 질서가 요단 건너편 백성의 일상까지 닿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왕위에 있은 지 사십 년." 다윗의 마지막 해입니다. 생애의 마지막에 다윗이 한 일이 이것입니다. 역대기는 다윗을 전쟁의 영웅이기 이전에 예배의 설계자로 그립니다.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하나님을 섬기는 온전한 질서였습니다.

하나님의 일과 왕의 일. 예수님 앞에도 이 둘을 갈라놓으려는 질문이 왔습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냐. 주님은 데나리온을 보이라 하시고, 그 위에 새겨진 형상을 물으셨습니다.

"21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마 22:21)

동전에는 가이사의 형상이 찍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이 찍힌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자신입니다. 세금을 내는 그 손도, 그 일터도, 그 하루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레위인이 왕의 일을 하면서 여호와의 일을 했듯이,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일을 하면서 주님을 섬깁니다.

"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골 3:23~24)


IMF 외환 위기 때 영국의 한 요양원에서 간병 보조원으로 일한 분이 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이들의 식사와 배설을 돕는 일이었습니다. 말도 서툴고, 환자들의 짜증을 받아 주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이 골로새서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무료해하는 이들을 위해 하루 삼십 분씩 피아노를 치며 찬양을 불러 주었고, 그들이 좋아하자 서툴지만 클라리넷도 불었습니다. 생각을 바꾸니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특정한 직업'이 아닌 '일'로 부르셨다. 그 일은 다른 이를 섬기기 위한 것이다. 내 일을 통해 누군가가 도움을 받으면, 그 일은 하나님의 일이 된다." 묵상 에세이의 글입니다.


회식 자리가 부담스러웠던 한 그리스도인 회사원은 대리운전 봉사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동료들과 사이다를 마시며 즐겁게 어울리고, 끝나면 서너 명씩 자기 차에 태워 일일이 집에 데려다주었습니다. 일 년쯤 지나자 직원들이 이 세상에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그에게 임한 은혜가 특별했고, 그 은혜는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배당 안의 예배가 예배당 밖에서도 같은 사건이 되어야 합니다.



맺는 말

본문을 다시 꿰어 봅시다. 모세의 손자가 곳간을 지켰고, 서로 칼을 겨누던 사람들의 성물이 한 곳간에 모였고, 성전 밖 요단 건너편까지 여호와의 일과 왕의 일이 하나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면 오늘 두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드려진 것과 공동체에 맡겨진 것을 정직하고 책임 있게 관리하고 있습니까. 주일에 드린 예배가 월요일에 일을 처리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 이어지고 있습니까.


사명자가 되는 것은 자아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순종을 성취하는 것이다. - 무명



오늘 우리가 붙들 말은 이것입니다.

첫째, 감추어진 자리에도 하나님은 나기드를 세우십니다. 곳간을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

둘째, 하나님께 드려진 것은 남습니다. 다툼은 지나가도, 드려진 것은 한 곳간에서 다음 세대의 예배를 섬깁니다.

셋째, 여호와의 일과 왕의 일은 하나입니다. 예배당 안의 고백이 요단 건너편의 일상까지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 곳간의 끝은 어디입니까. 다윗의 곳간에 이스라엘 모든 지도자의 성물이 모였듯이, 마지막 날 새 예루살렘에는 온 세상의 것이 모입니다.

"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계 21:26)

곳간에서 센 은과 금, 법정에서 내린 판결, 요단 건너편의 행정, 요양원에서 부른 찬양. 주께 하듯 드린 모든 일이 그날 어린 양의 성으로 들어갑니다.



오늘의 찬송이 새 323장 〈부름받아 나선 이 몸〉입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다른 곳에 다시 나오지 않는 스담과 요엘, 그나냐와 하사뱌의 이름처럼, 오늘 우리도 곳간에서, 일터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께 하듯 섬깁시다. 오늘 하루 각자의 자리가 예배의 자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찬양

새 323장 〈부름받아 나선 이 몸〉 — 오늘의 찬송.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곳간과 성전 밖에서 이름 없이 섬긴 레위인들의 고백입니다. 예배 여는 찬송으로.



〈하나님의 부르심〉

"내가 이 자리에 선 것도 주의 부르심이라." 곳간이든 재판석이든 요단 건너편이든, 내가 선 자리가 사명의 자리라는 고백입니다. 결단의 자리에서.




새 50장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네." 사무엘부터 요압까지 "무엇이든지 구별하여 드린" 성물의 고백입니다. 파송 찬송으로.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모세의 손자 스브엘은 드러나는 자리 대신 곳간을 지키는 나기드로 섰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느슨하게 관리해 온 나의 "곳간"은 무엇입니까? 오늘 주 앞에서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정직하기 위해 무엇을 바로잡겠습니까?


레위인은 성전 밖에서도 여호와의 일과 왕의 일을 함께 맡았습니다.

주일의 예배와 월요일의 일터가 갈라져 있다고 느끼는 지점은 어디입니까?

오늘 내 일을 "주께 하듯" 하기 위해 바꿀 한 가지 태도는 무엇입니까?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더빛교회의 재정과 살림을 맡은 이들이 유다가 아니라 슬로못이 되게 하소서.

드려진 헌금과 맡겨진 자원을 투명하고 정직하게 관리하여, 앞선 세대가 드린 것을 다음 세대의 예배로 거룩하게 전하게 하소서. 서로 다른 자리와 생각을 가진 지체들의 헌신이 한 곳간에 모여 하나님의 집을 섬기게 하소서.



성전을 짓고 싶은 소망이 좌절되어도 성전 건축을 위해 세심히 사람들을 세운 다윗의 마음을 새깁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는 교회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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