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역대상 26:1-19
문 앞에 선 큰 용사
본문: 역대상 26장 1절 ~ 19절
여는 말
어제는 노래하는 사람들의 날이었습니다.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 이백팔십팔 명이 수금과 비파와 제금으로 신령한 노래를 했습니다. 큰 자나 작은 자나, 스승이나 제자나 구별 없이 제비를 뽑아 스물네 반열로 섬겼습니다.
오늘은 그 노래가 울리는 성전의 문 앞으로 갑니다. 안에서는 노래가 울리고, 밖에서는 누군가 문을 지킵니다.
24장의 제사장, 25장의 노래하는 자, 그리고 26장의 문지기. 같은 "반열"이라는 말로 이어집니다. 이 조직은 관료적 통제가 아니라, 살아 있는 하나님의 집을 세우기 위한 비계입니다.
오늘은 누가 그 문 앞에 섰는지를 봅니다.
1. 반역자의 자손이 문 앞에 서다 (26:1~3, 9~11)
"1 고라 사람들의 문지기 반들은 이러하니라 아삽의 가문 중 고레의 아들 므셀레먀라 2 므셀레먀의 아들들인 맏아들 스가랴와 둘째 여디야엘과 셋째 스바댜와 넷째 야드니엘과 3 다섯째 엘람과 여섯째 여호하난과 일곱째 엘여호에내이며" (대상 26:1~3)
첫 단어가 "고라"입니다. 고라가 누구입니까. 광야에서 다단과 아비람, 회중 대표 이백오십 명과 함께 당을 지어 모세와 아론을 대적했던 사람입니다. 땅이 입을 벌려 그를 삼켰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한 줄을 남겨 둡니다.
"10 땅이 그 입을 벌려서 그 무리와 고라를 삼키매 그들이 죽었고 당시에 불이 이백오십 명을 삼켜 징표가 되게 하였으나 11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아니하였더라" (민 26:10~11)
그 살아남은 아들의 집안에서 므셀레먀가 나왔습니다.
"문지기"는 쇼아림, '문'을 뜻하는 샤아르에서 온 말입니다. 문을 지키는 일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경계를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성전의 거룩함이 지켜지느냐 무너지느냐가 그 문턱에서 판가름 났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거룩함의 한계를 깨닫게 하는 것, 그것이 문지기의 본질이었습니다.
거룩의 경계를 넘으려다 심판받은 사람의 자손이, 이제 그 경계를 지키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라는 레위인의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제사장의 자리까지 탐냈습니다. 그런데 그 자손은 성소 안이 아니라 문 앞의 자리를 받았고,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 문지기 명단 자체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은혜의 열매입니다.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롬 5:20)
죄가 더한 집안에서, 은혜가 문지기를 길러 냈습니다!
"10 므라리 자손 중 호사에게도 아들들이 있으니 그의 장자는 시므리라 시므리는 본래 맏아들이 아니나 그의 아버지가 장자로 삼았고 11 둘째는 힐기야요 셋째는 드발리야요 넷째는 스가랴이니 호사의 아들들과 형제들이 열세 명이더라" (대상 26:10~11)
장자라고 해 놓고 곧바로 맏아들이 아니라고 합니다. 원문에는 서로 다른 두 낱말이 쓰였습니다. "장자"는 로쉬, '머리', 곧 세워진 지위입니다. "맏아들"은 베코르, 실제로 먼저 난 아들입니다. "시므리는 우두머리다. 맏아들이 아니었으나 그의 아버지가 그를 우두머리로 세웠다."
르우벤은 맏아들이었으나 장자의 자리를 잃었습니다. 시므리는 맏아들이 아니었으나 그 자리에 섰습니다. 태어난 순서가 그 사람의 자리를 최종적으로 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앞자리는 태생으로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신실함으로 감당하는 소임입니다. 먼저 났다는 자랑도, 나중 났다는 위축도, 하나님의 택하심 앞에서는 힘을 잃습니다.
"9 또 므셀레먀의 아들과 형제 열여덟 명은 능력이 있는 자라" (대상 26:9)
반역자의 자손도, 맏아들이 아닌 사람도 문 앞에 섰습니다. 문지기 명단은 자격의 명단이 아니라 은혜의 명단입니다.
2. 하나님이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셨음이라 (26:4~8)
"4 오벧에돔의 아들들은 맏아들 스마야와 둘째 여호사밧과 셋째 요아와 넷째 사갈과 다섯째 느다넬과 5 여섯째 암미엘과 일곱째 잇사갈과 여덟째 브울래대이니 이는 하나님이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셨음이라 6 그의 아들 스마야도 두어 아들을 낳았으니 그들의 조상의 가문을 다스리는 자요 큰 용사라 7 스마야의 아들들은 오드니와 르바엘과 오벳과 엘사밧이며 엘사밧의 형제 엘리후와 스마갸는 능력이 있는 자이니 8 이는 다 오벧에돔의 자손이라 그들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형제들은 다 능력이 있어 그 직무를 잘하는 자이니 오벧에돔에게서 난 자가 육십이 명이며" (대상 26:4~8)
오벧에돔. 이 시리즈에서 여러 번 만난 이름입니다. 웃사가 죽은 뒤 궤를 석 달 모신 집, 궤 앞에서 문을 지키고 수금을 타던 사람, 육십팔 명의 문지기. 오늘은 그 이야기의 결산서입니다.
"14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의 가족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대상 13:14)
므셀레먀와 므셀레먀 사이에 오벧에돔이 끼어 있습니다. 그 한가운데 놓인 문장이 "이는 하나님이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셨음이라"입니다. 요약 문장의 길이도 오벧에돔이 가장 깁니다. 기자는 길이로도 말합니다.
복이 이름이 되었습니다. 사갈은 '삯', '보상'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사밧은 '여호와가 주셨다', 느다넬은 '하나님이 주셨다'입니다. 석 달 동안 궤를 모신 집이, 아들들의 이름마다 "하나님이 주셨다"를 새겼습니다.
그런데 숫자 하나가 눈에 걸립니다. 16장에서는 육십팔 명이었는데 오늘은 육십이 명입니다. 두 세대가 지나며 여섯이 줄었습니다. 기자는 그 숫자를 감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세대마다 자동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꾸미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복을 주셨음이라"고 적습니다.
복은 숫자가 계속 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두 세대가 지나도 여전히 하나님의 문 앞에 서 있는 것, 그것이 오벧에돔 집의 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신실함을 기억하십니다." 오늘 생명의 삶 한 절 묵상의 글입니다.
"10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히 6:10)
오늘 본문에 같은 말이 거듭 나옵니다. "큰 용사", "능력이 있는 자", "능력이 있어 그 직무를 잘하는 자." 원어로 기보레 하일, '힘과 역량을 갖춘 사람'입니다. 룻기에서 보아스를 "유력한 자"라 부를 때 쓴 말입니다.
문지기를 군사에 빗댄 것이 아닙니다. 맡은 일을 끝까지 감당하는 역량과 흔들리지 않는 충성심을 말합니다. 실제로 문지기는 성전을 침범하는 자를 막고, 예배 질서를 지키고, 기물과 창고를 지켰습니다. 그 큰 문을 열고 닫는 데도 힘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자리는 '큰 용사'의 헌신을 요구합니다.
그 힘은 어디서 옵니까.
"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딤후 2:1)
오벧에돔 집의 능력은 궤를 모신 은혜에서 나왔습니다. 우리의 능력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에서 나옵니다. 내 힘으로 문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지킵니다.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벧전 4:11)
3. 동서남북, 각 문을 지키기 위하여 (26:12~19)
"12 이상은 다 문지기의 반장으로서 그 형제처럼 직임을 얻어 여호와의 성전에서 섬기는 자들이라 13 각 문을 지키기 위하여 그의 조상의 가문을 따라 대소를 막론하고 다 제비 뽑혔으니" (대상 26:12~13)
"섬기는"은 샤라트, 종의 노동이 아니라 왕이나 제사장 곁에서 받드는 격식 있는 봉사입니다. "그 형제처럼"은 "그들의 형제와 나란히"입니다. 문지기는 노래하는 자보다 낮은 자리가 아닙니다. 똑같은 반열에서 똑같이 존귀한 섬김을 드립니다.
예배 공동체가 자기 정체를 바로 알 때, 거룩한 일과 세속의 일의 구별이 사라집니다. 평범한 일이든 전문적인 일이든, 모든 일이 하나님의 눈에 가치가 있습니다.
제비 이야기는 어제 했습니다. 하나만 덧붙입니다. 14절에 제비가 세 번 나오는데 동사가 다 다릅니다. 제비가 "떨어졌다", 그들이 제비를 "던졌다", 그의 제비가 "나왔다." 던지는 것은 사람이지만, 어디로 떨어지고 어디로 나오는지는 사람의 손을 벗어납니다.
"14 셀레먀는 동쪽을 뽑았고 그의 아들 스가랴는 명철한 모사라 모사를 위하여 제비 뽑으니 북쪽을 뽑았고 15 오벧에돔은 남쪽을 뽑았고 그의 아들들은 곳간에 뽑혔으며 16 숩빔과 호사는 서쪽을 뽑아 큰길로 통한 살래겟 문 곁에 있어 서로 대하여 파수하였으니 17 동쪽 문에 레위 사람이 여섯이요 북쪽 문에 매일 네 사람이요 남쪽 문에 매일 네 사람이요 곳간에는 둘씩이며 18 서쪽 뜰에 있는 큰길에 네 사람 그리고 뜰에 두 사람이라 19 고라와 므라리 자손의 문지기의 직책은 이러하였더라" (대상 26:14~19)
문지기 스가랴는 "명철한 모사"였습니다. 왕을 보좌하며 곁에서 지혜로운 말을 해 주는 사람입니다. 누구를 들이고 누구를 막을지, 언제 어느 문을 여닫을지 분별하는 데는 깊은 지혜가 필요했습니다.
오벧에돔의 집 : 큰 용사, 힘
스가랴 : 명철한 모사, 지혜
하나님의 집을 지키는 일에는 힘만이 아니라 명철도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힘과 명철이 한 분 안에서 온전히 만납니다.
"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사 11:2)
이제 네 문을 하나씩 봅니다.
동문 : 셀레먀, 왕의 문이라 불릴 만큼 중요하고 출입이 가장 많은 곳
북문 : 스가랴, 번제단과 가까워 제사와 밀접한 곳
남문 : 오벧에돔, 그의 아들들은 곳간까지
서문 : 숩빔과 호사, 그리고 살래겟 문
동문은 성막 입구의 방향이었습니다. 에스겔이 본 환상에서 여호와의 영광이 돌아온 문도 동문이었습니다.
"1 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에 이르니 곧 동쪽을 향한 문이라 2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 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 … 4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가고" (겔 43:1~2, 4)
그런데 서쪽 살래겟 문은 다릅니다. "살래겟문은 제사 후 남은 재와 찌꺼기를 성전 밖으로 내보내는 문으로, 겉으로 보기에는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자리입니다." 오늘 생명의 삶 본문 해설의 글입니다. 율법은 그 재를 어디로 가져가라고 했습니까.
"11 그 옷을 벗고 다른 옷을 입고 그 재를 진영 바깥 정결한 곳으로 가져갈 것이요" (레 6:11)
이제 그리스도께로 갑니다. 가장 영광스러운 문은 동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구원은 동문이 아니라, 재를 내보내던 쪽, 성문 밖에서 이루어졌습니다.
"11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13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히 13:11~13)
가장 눈에 띄지 않는 문 밖에서 가장 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니 살래겟 문 곁에 선 사람은 결코 낮은 사람이 아닙니다.
동쪽 여섯, 북쪽 넷, 남쪽 넷, 곳간 둘씩, 서쪽 큰길 넷, 뜰 둘. 날마다 스무 명 남짓이 성전을 빙 둘러섰습니다. 옛적 광야에서 레위인이 성막을 둘러쌌듯이, 그 후손이 성전을 둘러쌌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자기 자리를 비우면 성전의 질서에 빈틈이 생겼습니다. 공동체의 예배는 눈에 띄는 사람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자기 몫을 다하는 사람들로 유지됩니다.
문지기의 이름도 대부분 다른 곳에 다시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이름을 한 사람씩 적으셨습니다.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 6:3~4)
맺는 말
본문을 다시 꿰어 봅시다. 반역자의 자손이 문 앞에 섰고, 석 달의 복이 두 세대의 문지기가 되었고, 동서남북 모든 문이 "그 형제처럼" 존귀한 섬김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오늘 이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나는 예배하고 섬기는 자리를 하나님 곁에 머무는 복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아니면 부담스러운 의무로만 여기고 있습니까.
신종우 전도사는 한국에서 직업 군인이었습니다. 미국의 한 교회에서 두 주간 예배를 드린 뒤 '하나님이 정말 사랑하시는 교회'라는 감동이 떠나지 않아, 안정된 공무원 생활을 내려놓고 휴직한 채 그 교회로 왔습니다. 그는 찬양 사역자로 살겠다고 서원했지만, 교회에는 이미 찬양 사역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사찰 집사가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자, 그는 기쁨으로 교회 관리를 맡았습니다. 지금은 전도사로서 찬양과 교구와 시설 관리를 함께 감당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어떤 자리에서 어떤 직분으로 섬기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헌신하는 이를 찾으신다." 묵상 에세이의 글입니다.
온 마음 다해 하나님 명령을 따르는 충성은 우리가 그분께 받은 은사를 강화하고 더욱 풍성하게 한다. - 찰스 피니
오늘 우리가 붙들 말은 이것입니다.
첫째, 문지기 명단은 은혜의 명단입니다. 반역자의 자손도, 맏아들이 아닌 사람도, 하나님이 세우시면 문 앞에 섭니다.
둘째, 복은 숫자가 아니라 자리입니다. 육십팔이 육십이가 되어도, 오벧에돔의 집은 여전히 하나님의 문 앞에 있었습니다.
셋째, 모든 문이 그 형제처럼 존귀합니다. 주님은 가장 낮은 문 밖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계 3:7~8)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 작은 능력으로 자리를 지킨 사람을 아십니다. 그리고 그 앞에 열린 문을 두십니다.
오늘의 찬송이 새 321장 〈날 대속하신 예수께〉입니다. "주 십자가에 달리사 날 자유하게 했으니 내 몸과 맘을 주 위해 다 쓰게 하소서." 성문 밖에서 나를 대속하신 주님께, 오늘 내가 선 문 앞에서 몸과 마음을 드립시다. 오늘 하루 각자의 문 앞에서 큰 용사로 서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찬양
새 321장 〈날 대속하신 예수께〉 — 오늘의 찬송.
"내 생명 모두 드리니 늘 진실하게 하소서"가 대를 이어 진실하게 문을 지킨 오벧에돔의 집과 겹칩니다. 예배 여는 찬송으로.
〈낮은 자의 하나님〉(유상렬)
재를 내보내던 가장 낮은 살래겟 문 곁에서도 "그 형제처럼" 섬긴 문지기, 그리고 그 문 밖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오신 주님을 바라보는 고백입니다. 결단의 자리에서.
새 341장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도 곤욕 당했으니 나도 곤욕 당하리." 성문 밖에서 고난받으신 주님께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는 부름(히 13:13)에 응답하는 찬송입니다. 파송 찬송으로.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고라의 자손도, 맏아들이 아닌 시므리도 하나님이 세우시자 문 앞에 섰습니다.
내 과거나 배경 때문에 "나는 자격이 없다"며 물러서 있는 섬김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동문도 살래겟 문도 "그 형제처럼" 존귀한 섬김이었습니다.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서 눈에 띄지 않아 가볍게 여겨 온 나의 "문"은 무엇입니까?
오늘 그 자리를 어떻게 지키겠습니까?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더빛교회가 섬김의 자리에 서열을 매기지 않고, 앞에 서는 사람과 문 곁에 서는 사람을 그 형제처럼 존귀하게 여기게 하소서. 과거와 배경 때문에 물러서 있는 지체들을 주께서 불러 세우시고, 오벧에돔의 집처럼 대를 이어 주님의 문 앞에 서는 가정들이 일어나게 하소서.
우리의 믿음도 능력도 낱낱이 아시는 하나님께 삶을 드립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자리가 최선의 사역지임을 인정하는 신실한 일꾼으로 서게 하소서.
오늘 우리의 충성된 섬김이 가정과 교회에 풍성한 복으로 이어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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