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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 역대상 24:1-31

5시간 전
7분 분량

차등 없이, 차례대로

본문: 역대상 24장 1절 ~ 31절


여는 말

어제 우리는 다윗이 늙어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고, 레위인을 계수해 성전 일과 관리와 문지기와 찬양으로 나누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섬김의 문을 스무 살까지 넓혔고, 그들이 아침과 저녁마다 서서 여호와께 감사하고 찬송하게 했습니다.

오늘은 그 레위 지파 한가운데, 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차례입니다. 아론 자손 제사장들입니다.

솔직히 새벽에 읽기 쉬운 본문은 아닙니다. 여호야립, 여다야, 하림, 스오림… 스물네 개의 이름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 목록 속에 두 단어가 박혀 있습니다. "제비"(5, 31절)와 "규례"(19절). 그리고 목록의 첫 줄에는 죽음이, 여덟째 반열에는 천 년 뒤 복음의 첫 장면이 숨어 있습니다.

24장은 제사장이 무엇을 하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섬김을 위해 어떻게 조직되었는가만 말합니다. 역대기는 단순한 명단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예배가 공정하고 질서 있는 조직 위에서 이어져야 함을 보여 줍니다.



1. 남은 두 아들 (24:1~2)

"1 아론 자손의 계열들이 이러하니라 아론의 아들들은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이라 2 나답과 아비후가 그들의 아버지보다 먼저 죽고 그들에게 아들이 없으므로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였더라" (대상 24:1~2)


첫 줄이 죽음입니다. "먼저 죽고, 아들이 없으므로."

역대기는 그 이유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다 압니다.

"1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2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레 10:1~2)

역대기는 그 죄를 지우고 "아버지보다 먼저 죽고"라고만 씁니다. 감춘 것이 아닙니다. 초점을 옮긴 것입니다. 초점은 제사장 가문의 실패가 아니라, 비극이 있었음에도 직분이 보존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나답과 아비후의 심판에 드러난 진노를 넘어,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보존하셔서 그들을 통해 제사장직을 세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라!"

스물네 반열의 모든 제사장은 이 "남은 두 아들"의 자손입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직은 처음부터 심판을 통과한 은혜 위에 서 있었습니다.


옛 제사장들은 죽었습니다. 아버지보다 먼저 죽기도 했고, 아들 없이 끝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계열이 필요했고 반열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통과해 살아나신 대제사장이 계십니다.

"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히 7:24~25)

오늘 우리가 맡은 직분도 남은 자의 자리입니다. 나보다 나은 사람이 넘어진 자리에, 나는 능력이 아니라 보존하시는 은혜로 서 있습니다. 섬기는 사람은 자기가 은혜로운 임명의 수혜자라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의 찬송 첫 줄이 이것입니다. "나의 죄를 정케 하사 주의 일꾼 삼으신." 정결케 하신 은혜가 먼저이고, 일꾼은 그다음입니다.



2. 제비 뽑아 피차에 차등이 없이 (24:3~6, 31)

"3 다윗이 엘르아살의 자손 사독과 이다말의 자손 아히멜렉과 더불어 그들을 나누어 각각 그 섬기는 직무를 맡겼는데 4 엘르아살의 자손 중에 우두머리가 이다말의 자손보다 많으므로 나눈 것이 이러하니 엘르아살 자손의 우두머리가 열여섯 명이요 이다말 자손은 그 조상들의 가문을 따라 여덟 명이라 5 이에 제비 뽑아 피차에 차등이 없이 나누었으니 이는 성전의 일을 다스리는 자와 하나님의 일을 다스리는 자가 엘르아살의 자손 중에도 있고 이다말의 자손 중에도 있음이라 6 레위 사람 느다넬의 아들 서기관 스마야가 왕과 방백과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과 및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우두머리 앞에서 그 이름을 기록하여 엘르아살의 자손 중에서 한 집을 뽑고 이다말의 자손 중에서 한 집을 뽑았으니" (대상 24:3~6)


1절의 "계열들"은 마할로케트, '나누어 맡긴 몫'이라는 말입니다. 혈통의 갈래처럼 들리지만 방점은 나눔에 있습니다. 같은 뿌리에서 '분깃'을 뜻하는 헬레크가 나왔습니다. 제사장에게는 땅의 분깃이 없었습니다. 땅에서 몫을 받지 못한 이들이 성전 섬김에서 몫을 나누어 받습니다.

"20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의 땅에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 (민 18:20)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시 16:5~6)

하나님이 분깃이신 사람은 어떤 몫이 돌아와도 아름답다고 고백합니다.

3절의 "직무"는 페쿠다, '맡겨진 소임'입니다. 자리를 다투어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소임을 받아 그 자리를 지키는 것. 자리를 탐하는 마음이 아니라 소임을 받드는 마음이 하나님의 집을 떠받치는 기둥입니다.


엘르아살 자손이 열여섯, 이다말 자손이 여덟. 두 배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큰 가문에 먼저 고를 권리를 주지 않았습니다. 제비를 뽑았습니다. 차등이 없습니다.

"제비"는 고랄, 본래 제비를 뽑을 때 쓰던 작은 돌입니다. 그 뜻이 넓어져 제비로 정해진 몫, 사람에게 돌아온 분깃까지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이 고랄로 약속의 땅을 나누었습니다. 제비를 던진다는 것은 그 결정을 하나님께 온전히 넘겨 드린다는 뜻입니다.

"33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 16:33)

"제사장직은 능력이 아니라 대표성에 기초했고, 더 큰 엘르아살 가문조차 아무 이익을 얻지 못했다!"

"엘르아살 자손의 수가 이다말 자손의 수보다 두 배 많았지만, 다윗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제비 뽑아 직무를 공정하게 나눕니다. 이는 사람의 판단이나 세력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 뜻에 따라 결정했음을 의미합니다." 오늘 생명의 삶 본문 해설의 글입니다.

6절 "한 집을 뽑았으니"는 원어로 아후즈, '붙잡혔다'는 수동형입니다. 누가 붙잡았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그 집을 골라낸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 뻗어 온 손에 붙잡힌 것입니다. 직분은 내가 움켜쥔 것이 아니라 내가 붙잡힌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왕과 방백과 족장들 앞에서, 서기관의 기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밀실이 아니라 회중 앞이었습니다.



"31 이 여러 사람도 다윗왕과 사독과 아히멜렉과 제사장과 레위 우두머리 앞에서 그들의 형제 아론 자손처럼 제비 뽑혔으니 장자의 가문과 막내 동생의 가문이 다름이 없더라" (대상 24:31)


레위인도 똑같았습니다. "그들의 형제 아론 자손처럼." 레위인은 제사장의 아랫사람이 아니라 동역자로 대우받았습니다. 장자의 가문과 막내 동생의 가문이 다름이 없었습니다. 크고 작은 자가 똑같이 제비 앞에 서는 것, 그것이 큰 겸손입니다.

가문의 크기나 능력이나 영향력을 보고 맡긴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결정을 하나님 뜻에 맡기고 그 결과를 받아들였습니다. 교회도 다르지 않습니다. 오래 다닌 가정, 목소리가 큰 사람, 헌신이 눈에 띄는 사람에게 자리가 먼저 돌아가는 공동체는 결국 사람의 공동체가 됩니다. 제비 앞에 함께 서는 겸손이 하나님의 공동체를 지킵니다.

"직분은 세상적인 조건으로 얻는 특권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섬김의 자리임을 기억할 때 공동체가 건강하게 세워집니다." 오늘 생명의 삶 한 절 묵상의 글입니다.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롬 12:3)

"누가 크냐"를 다투던 제자들에게 주님은 24장의 정신으로 대답하셨습니다.

"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막 9:35)

직무를 나누는 기준은 가문의 서열도, 사람의 힘도 아니었습니다. 예배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바흐는 교회를 위해 쓴 악보 끝에 S.D.G.라고 적었습니다. 솔리 데오 글로리아, 오직 하나님께 영광. 예배와 섬김은 사람의 재능이나 지위를 드러내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자리입니다. 그러니 내 일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소홀히 여길 것도, 앞선 자리와 비교하며 낙심할 것도 없습니다.



3. 그 반열의 차례대로 (24:7~19)

"7 첫째로 제비 뽑힌 자는 여호야립이요 둘째는 여다야요 8 셋째는 하림이요 넷째는 스오림이요 9 다섯째는 말기야요 여섯째는 미야민이요 10 일곱째는 학고스요 여덟째는 아비야요 11 아홉째는 예수아요 열째는 스가냐요 12 열한째는 엘리아십이요 열두째는 야김이요 13 열셋째는 훕바요 열넷째는 예세브압이요 14 열다섯째는 빌가요 열여섯째는 임멜이요 15 열일곱째는 헤실이요 열여덟째는 합비세스요 16 열아홉째는 브다히야요 스무째는 여헤스겔이요 17 스물한째는 야긴이요 스물두째는 가물이요 18 스물셋째는 들라야요 스물넷째는 마아시야라 19 이와 같은 직무에 따라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그의 아버지 아론을 도왔으니 이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하신 규례더라" (대상 24:7~19)


7절을 직역하면 "첫째 제비가 여호야립에게 나왔다"입니다. 문장의 주어는 사람이 아니라 제비입니다. 그리고 스물네 이름 전체가 "나왔다"는 동사 하나에 매달려 있습니다. 누가 첫째가 되었는가보다, 누가 정하셨는가가 중요합니다. 순서는 서열이 아닙니다.

스물네 반열은 한 주씩, 일 년에 두 번 돌아가며 섬겼습니다. 모든 제사장이 섬기되 늘 섬기지는 않는 질서입니다. 내 차례가 오면 들어가고, 차례가 끝나면 다음 반열에게 넘겨줍니다.

일곱째 학고스를 보십시오. 포로에서 돌아올 때 족보를 찾지 못해 제사장 직분에서 밀려났던 가문입니다(스 2:61~62). 그런데 그 후손이 성벽 공사에서 두 몫을 감당했고, 이제 이 반열에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불확실한 시작에도 불구하고 학고스 가문은 자리를 회복했습니다. 목록은 죽은 이름이 아니라 은혜의 이력서입니다.


19절은 이 모든 질서의 근거를 밝힙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하신 규례더라." 다윗은 반열을 나누었지만 직무의 내용을 자기가 정하지 않았습니다. "규례"는 미쉬파트, '정해진 몫', '마땅히 돌아갈 바'라는 뜻도 있습니다. 각 반열이 제 차례에 성전에 들어가는 것은 정해진 몫을 따르는 일입니다. 제비의 결정이 여호와께 있고, 제사장은 그 규례를 따라 성전에 들어갑니다.



이제 여덟째 반열 아비야입니다. 천 년이 흘렀습니다.

"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눅 1:5)

"8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9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눅 1:8~9)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비를 뽑아." 다윗이 세운 반열과 제비가 천 년 뒤에도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일 년에 두 주 돌아오는 차례, 그 안에서 다시 뽑는 분향의 제비. 그 평범한 순번의 한 날에 천사가 왔습니다.

"13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눅 1:13)

복음의 첫 장면은 왕궁이 아니라, 제 차례를 지키던 한 늙은 제사장의 분향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요한이 길을 예비한 분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를 제사장이 되게 하셨습니다.

"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계 1:6)

이제 우리 모두에게 차례가 돌아왔습니다. 오늘이 우리의 반열이고, 이 새벽이 우리의 분향입니다.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벧전 4:10)



맺는 말

본문을 다시 꿰어 봅시다. 제사장직은 심판을 통과한 은혜 위에 섰고, 그 직무는 제비로 차등 없이 나뉘었으며, 각 반열은 여호와께서 명하신 규례를 따라 차례대로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남은 자, 제비, 그리고 차례입니다.


오늘 우리가 붙들 말은 이것입니다.

첫째, 직분은 남은 자의 자리입니다. 정결케 하신 은혜가 먼저이고, 일꾼은 그다음입니다. 영원한 대제사장이 지금도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둘째, 직분은 붙잡힌 몫입니다. 내가 골라 움켜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 붙잡아 주신 자리입니다. 큰 자리를 탐할 것도, 작은 자리에 낙심할 것도 없습니다.

셋째, 직분은 차례를 따라 섬기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평범한 차례 속에서 구원의 역사를 여셨습니다. 오늘 내 차례를 신실하게 지키는 것이 예배입니다.


중대한 선택 앞에서 가장 먼저 살펴야 할 것은 "내가 말씀의 원칙과 질서 안에서 행하고 있는가"이다. - 리처드 햄


오늘의 찬양

새 320장 〈나의 죄를 정케 하사〉 — 오늘의 찬송.

"나의 죄를 정케 하사 주의 일꾼 삼으신"은 심판 뒤에 남은 자로 세워진 제사장직(24:1~2)과, 후렴 "언제든지 주 뜻대로 사용하여 주소서"는 제비에 직무를 맡긴 5절과 겹칩니다. 예배 여는 찬송으로.


〈나의 모습 나의 소유〉

장자의 가문과 막내 동생의 가문이 다름이 없이(31절) 함께 제비 앞에 섰듯, 크든 작든 내게 돌아온 몫과 내 모습 그대로를 주님 앞에 드리는 고백입니다. 결단의 자리에서.


새 216장 〈성자의 귀한 몸〉

"지금도 날 위해 간구하심." 죽음으로 끊기던 반열 대신, 영원한 대제사장께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히 7:25). 4절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로 제사장의 자리에 서는 파송 찬송으로.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엘르아살과 이다말은 형들이 심판받은 자리에 남은 자로 섰습니다.

지금 내가 맡은 직분과 자리를 내 능력의 결과로 여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의 죄를 정케 하사 주의 일꾼 삼으신" 은혜의 결과로 받고 있습니까?


제비는 큰 가문에도 작은 가문에도 차등이 없었습니다.

나는 앞선 자리와 비교하며 낙심하거나, 내 경력과 지위를 앞세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내게 돌아온 "차례"는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신실하게 지키겠습니까?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더빛교회의 모든 직분자와 사랑방장이 자기 자리를 쟁취한 특권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받은 섬김의 몫으로 여기게 하소서. 함께 교회를 세우고 함께 짐을 지되 기쁨과 자원함으로, 감사함으로 직무를 나누고 사람을 대할 때 친분이나 영향력이 아니라 공정한 기준과 절차를 따르게 하시고, 모두 주님 앞에서 겸손한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우리 삶과 가정과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 말씀과 깊이 닿아 거룩하게 변화되게 하소서.

사람의 판단이나 세상의 기준을 합리적이라고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 뜻을 절대 원칙으로 삼게 하소서.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순복하며, 공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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