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역대상 23:1-32
메는 일에서 찬송하는 일로
본문: 역대상 23장 1절 ~ 32절
여는 말
어제 다윗은 "내가 이제 준비하리라" 했습니다. 돌을 다듬고, 철과 놋과 백향목을 쌓고, 아들에게 "일어나 일하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 했습니다.
오늘 23장에서 그 준비의 마지막 재료가 나옵니다. 사람입니다.
22장이 성전을 지을 사람을 준비했다면, 23장은 성전에서 섬길 사람을 준비합니다. 다윗의 마지막 준비는 건물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성전이 다 지어진 뒤에도, 다음 세대에도 예배가 계속되도록 그 기초를 놓았습니다.
23장부터 27장까지는 이름 목록입니다. 이번 주 새벽마다 우리는 레위인, 제사장, 찬양대, 문지기, 그리고 군대와 관리들의 명단을 차례로 읽게 됩니다. 2절은 방백, 제사장, 레위인 순으로 부르는데, 이어지는 장들은 거꾸로 레위인부터 다룹니다. 중심의 하나님에서 시작해 점점 바깥의 생활로 나아가는 순서입니다.
목록이 지루한 것은 그 이름이 남의 이름일 때입니다. 이 명단은 관료적인 조직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살아 있는 집을 세우기 위한 발판입니다.
1. 왕을 세운 날, 다윗은 사람을 모았다 (23:1~6)
"1 다윗이 나이가 많아 늙으매 아들 솔로몬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고 2 이스라엘 모든 방백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모았더라 3 레위 사람은 삼십 세 이상으로 계수하니 모든 남자의 수가 삼만 팔천 명인데 4 그중의 이만 사천 명은 여호와의 성전의 일을 보살피는 자요 육천 명은 관원과 재판관이요 5 사천 명은 문지기요 사천 명은 그가 여호와께 찬송을 드리기 위하여 만든 악기로 찬송하는 자들이라 6 다윗이 레위의 아들들을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에 따라 각 반으로 나누었더라" (대상 23:1~6)
"나이가 많아 늙으매"를 직역하면 "다윗이 늙고 날들이 가득 찼더라"입니다. 사바, '배부르다', '가득 차다'라는 말입니다. 나이가 많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해 주신 날들을 흡족하게 다 살아 냈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생을 마쳤습니다.
"8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창 25:8)
다윗의 생애에 죄와 눈물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 삶을 가득 채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날이 찬 왕이 마지막 기력을 쏟아 한 일은 자기 안락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음 세대의 예배를 위한 준비였습니다.
역대기는 열왕기에 나오는 아도니야의 반역도, 왕위를 둘러싼 다툼도 적지 않습니다. 한 줄입니다. "아들 솔로몬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고." 그리고 곧바로 2절. 왕을 세운 다음 다윗이 한 일은 궁궐을 짓는 것도, 군대를 늘리는 것도 아닌, 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새 왕이 왕좌에 앉았을 때 그 앞에 예배할 백성이 준비되어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17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눅 1:17)
그런데 또 인구조사입니다. 21장에서 인구조사는 재앙을 불렀습니다. 같은 다윗이 다시 사람을 셉니다. 차이는 목적입니다.
앞의 계수 : 사람의 힘을 자랑하려고
오늘의 계수 : 하나님을 예배할 사람을 세우려고
같은 '세는 일'이 군사력을 자랑하면 죄가 되고, 예배할 사람을 세우면 섬김이 됩니다.
삼만 팔천 명입니다. 모세 때 계수된 레위인보다 훨씬 많고, 숫자들이 모두 4와 6의 배수입니다. 정확한 인원을 보여 주기보다, 레위인 조직의 넉넉하고 온전한 규모를 그리는 숫자입니다.
"보살피는 자"는 레나체아흐, '앞장서서 이끌다', '총괄하다'라는 말입니다. 시편 머리말에서 노래를 이끄는 인도자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이기도 합니다. 2만 4천 명이 곁에서 시중드는 사람이 아니라, 성전 사역을 이끄는 사람으로 세워졌습니다. 다윗은 성전의 재료만 준비한 것이 아니라 성전 예배를 이끌어 갈 사람까지 미리 세워 두었습니다.
그리고 5절, "그가 여호와께 찬송을 드리기 위하여 만든 악기로." 왕이 악기를 만드는 일까지 마음을 썼습니다. 무려 4천 명이 오직 찬송을 위해 세워졌습니다.
문지기, 재판관, 성전 일을 이끄는 자, 찬송하는 자. 맡은 일은 달랐지만 모두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교회도 몇 사람의 눈에 띄는 섬김만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고전 12:4~6)
2. 구별된 아론, 기록된 이름들 (23:7~23)
"12 그핫의 아들들은 아므람과 이스할과 헤브론과 웃시엘 네 사람이라 13 아므람의 아들들은 아론과 모세이니 아론은 그 자손들과 함께 구별되어 몸을 성결하게 하여 영원토록 심히 거룩한 자가 되어 여호와 앞에 분향하고 섬기며 영원토록 그 이름으로 축복하게 되었느니라 14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아들들은 레위 지파 중에 기록되었으니" (대상 23:12~14)
이름 목록 한가운데 멈춤표가 있습니다. 아므람의 두 아들, 아론과 모세입니다.
"구별되어"는 바이바델.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실' 때 쓰인 말입니다. 거룩은 도덕적으로 남보다 낫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해 따로 떼어 둔다는 뜻입니다. 아론을 높이려는 구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이 아무렇게나 되어서는 안 될 만큼 거룩하고 두려운 일임을 온 회중에게 새기는 구별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줄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아들들은 레위 지파 중에 기록되었으니." 출애굽의 지도자, 율법을 받은 사람의 아들들이 평범한 레위인 명부에 적힙니다. 아무 특권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자리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물려받는 것이 아닙니다. 부르심으로 받는 것입니다.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나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 1:12~13)
아론은 구별되어 몸을 성결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구별되신 분은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자기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17:19)
목록 사이에 짧은 해설이 세 번 끼어듭니다.
"11 그 우두머리는 야핫이요 그다음은 시사며 여우스와 브리아는 아들이 많지 아니하므로 그들과 한 조상의 가문으로 계수되었더라" (대상 23:11)
"22 엘르아살이 아들이 없이 죽고 딸만 있더니 그의 형제 기스의 아들이 그에게 장가들었으며" (대상 23:22)
아들이 적은 여우스와 브리아는 합쳐서 한 가문으로 세웠습니다. 르하뱌의 아들들은 "심히 많았다"고 적었습니다(17절). 아들 없이 죽은 엘르아살의 집은 딸들을 통해 이름을 이었습니다. 이 목록은 죽은 사람들의 족보가 아니라, 실제로 성전에서 교대로 섬기기 위한 살아 있는 명부였습니다.
번성한 집도, 작아진 집도, 끊어질 뻔한 집도 명부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작은 세부는 언제나 중요합니다.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 43:1)
예배당을 지으며 '디지털 역사관'을 만든 교회가 있습니다. 역대 목사와 교회 연혁보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역사를 담고 싶었답니다. 이름을 검색하면 그 성도가 예배하고 섬기던 사진과 후손에게 남긴 이야기가 흘러나옵니다.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줄 가장 가치 있는 유산은 돈, 명예, 권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다. 우리가 예배드리고 주님께 헌신했던 모습을 기억하게 해야 한다." 오늘 묵상 에세이의 글입니다.
"예배가 최고의 영광과 기쁨이니, 성도는 세상 유산보다 예배자의 자리를 후대에 물려주어야 한다." - 피터 허시
3. 다시는 멜 필요가 없다 (23:24~32)
"24 이는 다 레위 자손이니 그 조상의 가문을 따라 계수된 이름이 기록되고 여호와의 성전에서 섬기는 일을 하는 이십 세 이상 된 우두머리들이라 25 다윗이 이르기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평강을 그의 백성에게 주시고 예루살렘에 영원히 거하시나니 26 레위 사람이 다시는 성막과 그 가운데에서 쓰는 모든 기구를 멜 필요가 없다 한지라 27 다윗의 유언대로 레위 자손이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되었으니" (대상 23:24~27)
이 장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이 평강을 주셨고, 예루살렘에 영원히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레위 사람은 다시는 성막을 멜 필요가 없습니다.
"멜"은 라세트, '들어 올리다', '어깨에 메어 나르다'라는 말입니다. 광야 40년 동안 레위인은 성막과 기구를 메고 다녔습니다. 이제 그 일이 끝납니다. 옮겨 다니시던 하나님이 아니라 한곳에 머물러 함께 계시는 하나님. 그 임재가 섬김의 성격을 바꿉니다.
메는 일이 끝나고, 찬송하는 일이 시작됩니다.
나이도 바뀝니다. 3절은 30세, 24절과 27절은 20세입니다. 무거운 성막을 메지 않아도 되니 더 젊은 사람들이 섬길 수 있게 되었고, 성전의 일은 오히려 더 많아졌습니다. 모세의 규정은 성막 시대의 권위 있는 전례였고, 다윗의 규정은 성전 시대에 맞게 세운 새 기준이었습니다. 모세를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새 시대에 맞게 순종한 것입니다.
레위인이 메던 성막보다 훨씬 무거운 짐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죄와 질고입니다. 그 짐을 그리스도께서 메셨습니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 53:4)
그분이 지셨기에, 우리는 메는 사람에서 찬송하는 사람이 됩니다.
"28 그 직분은 아론의 자손을 도와 여호와의 성전과 뜰과 골방에서 섬기고 또 모든 성물을 정결하게 하는 일 곧 하나님의 성전에서 섬기는 일과 29 또 진설병과 고운 가루의 소제물 곧 무교전병이나 과자를 굽는 것이나 반죽하는 것이나 또 모든 저울과 자를 맡고 30 아침과 저녁마다 서서 여호와께 감사하고 찬송하며 31 또 안식일과 초하루와 절기에 모든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가 명령하신 규례의 정한 수효대로 항상 여호와 앞에 드리며 32 또 회막의 직무와 성소의 직무와 그들의 형제 아론 자손의 직무를 지켜 여호와의 성전에서 수종 드는 것이더라" (대상 23:28~32)
멜 필요가 없다는 것은 할 일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뜰과 골방, 성물 정결, 진설병, 고운 가루, 굽고 반죽하는 일, 저울과 자. 광야에는 없던, 완전히 새로운 일들입니다. 광야의 직무는 끝났지만 예배자로서의 부르심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일들은 본당이 아니라 곁방과 뜰에서 했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일이 아니라 제물과 빵을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격하가 아닙니다. 왕과 제사장 다음으로 없어서는 안 될 자리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은 우열 없이 모두 존귀합니다. 레위 자손이 준비한 빵이 성소에 올리는 진설병이 되고, 성소에서 섬기는 이들의 일용할 양식이 됩니다. 세상 나라에서는 주연과 단역을 차별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 손에 귀하게 쓰임받는 주연입니다." 오늘 한절 묵상의 글입니다.
"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마 23:11)
그리고 30절, "아침과 저녁마다 서서 여호와께 감사하고 찬송하며."
"감사하고"는 레호도트,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인정하는 감사입니다. 그리고 "아침과 저녁마다." 날이 밝을 때와 저물 때마다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예배의 리듬입니다. 예배는 어쩌다 한 번 타오르는 감격이 아닙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자리를 지키는 성실함 위에 세워집니다.
"1 지존자여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이 좋으니이다 2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시 92:1~2)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사 43:21)
이 새벽에 이 자리에 나온 것이 바로 그 리듬입니다.
마지막 32절, "직무를 지켜." 미쉬메레트가 세 번 반복됩니다. '맡겨져 지키는 몫'이라는 말입니다. 그들의 일을 '노동'이라 부르지 않고 '지키는 것'이라 불렀습니다. 삯을 받고 하는 일감이 아니라, 하나님의 처소와 예배가 더럽혀지지 않도록 지키는 파수였습니다. 그 지킴이 온 백성의 예배를 떠받쳤습니다.
"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딤후 1:14)
맺는 말
본문을 다시 꿰어 봅시다. 왕을 세운 날 다윗은 사람을 모았고, 그 명단에 하나님은 구별된 자와 작아진 집의 이름까지 다 기록하셨고, 안식이 왔을 때 레위인은 메는 일에서 찬송하고 지키는 일로 옮겨 갔습니다.
시대와 환경에 따라 섬김의 자리와 방식은 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예배하고 공동체를 세우는 목적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붙들 말은 이것입니다.
첫째, 다음 세대에게 남길 가장 큰 것은 건물이 아니라 예배할 사람입니다. 다윗은 왕을 세운 날 레위인을 모았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명부의 작은 이름도 지우지 않으십니다. 모세의 아들도 특권 없이, 아들 없는 엘르아살도 잊히지 않고 기록되었습니다. 우리는 혈통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르심으로 그 명부에 적힙니다.
셋째, 짐을 대신 지신 주님 앞에서, 우리는 아침과 저녁마다 찬송하고 맡은 것을 지킵니다. 메는 일은 끝났어도 섬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계 22:3)
오늘의 찬양
새 326장 〈내 죄를 회개하고〉 — 오늘의 찬송.
너 어디 가든지
〈소원〉(한웅재)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곁방과 뜰에서 진설병을 굽고 저울과 자를 맡은 레위인처럼, 삶의 작은 자리에서 주님의 마음을 알고 그 길을 걷기 원하는 고백입니다.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다윗은 생의 마지막을 자기 안락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예배를 세우는 일로 채웠습니다.
내가 자녀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려는 것 가운데, "예배자의 자리"가 들어 있습니까?
레위인은 "다시는 멜 필요가 없다"는 말씀 앞에서 손을 놓지 않고 새 직무를 맡았습니다.
내가 지나치게 붙들고 있는 익숙한 역할은 무엇입니까? 지금 하나님이 맡기시는 새 몫은 무엇입니까?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더빛교회가 건물이나 행사보다 예배할 사람을 세우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눈에 띄지 않는 곁방과 뜰에서 섬기는 손길들이 귀히 여겨지게 하시고,
아침과 저녁마다 감사하고 찬송하는 예배의 리듬이 우리 가정마다 자리 잡게 하소서.
우리 인생이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 뜻을 이루는 데 충성스럽게 사용되게 하소서.
맡기신 사명을 분명히 깨달아 신실하게 감당하게 하시고,
지혜를 주셔서 믿음을 이어 갈 다음 세대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설 수 있도록 돕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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