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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 역대상 22:2-19

11분 전
8분 분량

내가 이제 준비하리라

본문: 역대상 22장 2절 ~ 19절


여는 말

어제 우리는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서 있었습니다. 천사의 칼이 예루살렘을 향해 뻗어 있던 그 자리에서, 다윗은 값을 치르고 타작마당을 샀습니다. 제단을 쌓았을 때 하나님은 하늘에서 불을 내려 응답하셨습니다. 그 불 앞에서 다윗이 선언합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22:1).

심판이 멈춘 자리가 예배의 터가 되었습니다. 그 터는 오르난이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열면 이상한 장면이 이어집니다. 터를 받은 다윗이 그 위에 성전을 짓지 않습니다. 대신 돌을 다듬고, 철을 모으고, 백향목을 쌓고, 아들을 부르고, 지도자들을 불러 모읍니다.

오늘 본문은 짓지 못하는 사람의 준비입니다.


22장에는 "집을 건축하다"가 아홉 번, "준비하다"가 거듭 나옵니다. 흐름은 단순합니다. 일꾼과 재료(2~5절), 건축자 솔로몬(6~16절), 그리고 지도자들(17~19절). 역대기는 다윗을 성전 건축에서 밀려난 사람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하나님의 일을 완수하도록 준비하고 맡긴 사람으로 그립니다.



1. 내가 이제 준비하리라 (22:2~5)

"2 다윗이 명령하여 이스라엘 땅에 거류하는 이방 사람을 모으고 석수를 시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돌을 다듬게 하고 3 다윗이 또 문짝 못과 거멀못에 쓸 철을 많이 준비하고 또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은 놋을 준비하고 4 또 백향목을 무수히 준비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이 백향목을 다윗에게로 많이 수운하여 왔음이라 5 다윗이 이르되 내 아들 솔로몬은 어리고 미숙하고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할 성전은 극히 웅장하여 만국에 명성과 영광이 있게 하여야 할지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그것을 위하여 준비하리라 하고 다윗이 죽기 전에 많이 준비하였더라" (대상 22:2~5)


첫 일꾼이 이방 사람입니다. "석수"는 호체빔, 바위에서 돌을 떠내어 반듯하게 다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누군가 바위를 쪼개는 고된 수고 위에 세워집니다. 그런데 그 돌을 다듬는 손이 이방인의 손입니다. 시돈과 두로 사람이 백향목을 실어 옵니다. 예사롭지 않습니다.

"7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사 56:7)

시돈과 두로의 것이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집에 드리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양도 놀랍습니다. "많이",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무수히." 무게를 달 수 없다는 표현은 성경 전체에서 여기에만 나옵니다. 성전 준비는 최소한의 필요를 채우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스러운 집을 위해 넘치도록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5절. 다윗의 속생각입니다.

아들 : 어리고 미숙하다

성전 : 극히 웅장해야 한다

그러므로 : 내가 이제 준비하리라


"어리고 미숙하고"가 나아르 바라크입니다. '아직 여물지 않은 여린 소년'이라는 말입니다. 갓 돋은 새순 같은 아들과 만국에 이름을 떨칠 집. 그 간격을 다윗이 메웁니다. "다윗이 죽기 전에 많이 준비하였더라." 다윗은 죽음을 앉아서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일어나 준비했습니다.

"다윗은 성전 건축을 하지 말라는 하나님 뜻을 들었지만 실망하지 않고,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온 힘을 기울입니다. '준비' 또한 '건축' 못지않게 중요한 일입니다."


어제 우리는 이 타작마당이 모리아,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 위에 묶었던 그 산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그 산의 이름 하나를 더 붙듭니다.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창 22:14)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그 산 위에서 다윗이 "내가 준비하리라" 합니다. 그러나 다윗보다 먼저 준비하신 분이 계십니다. 그리고 천 년 뒤, 그 산 성벽 밖에서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어린양이 드려졌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보지 못할 집을 위해 돌을 다듬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늘 그렇게 살았습니다.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히 11:13)



2. 너는 짓지 못하리라 (22:6~10)

"6 다윗이 그의 아들 솔로몬을 불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부탁하여 7 다윗이 솔로몬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나 8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대상 22:6~8)


"마음이 있었으나." 17장의 그 소원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아들에게 자기를 배제하는 말씀을 한 글자도 빼지 않고 전합니다.

"흘렸고"는 '쏟아부었다'는 말입니다. "너는 너무 피를 많이 쏟았다." 피를 많이, 전쟁을 크게. 그 손으로는 안식과 평화의 집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다윗을 정죄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다윗은 "내 앞에서" 싸웠습니다. 승리를 약속하신 분도, 이기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지난 주일 들은 그 문장,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18:13). 그런데도 피가 흘려졌다는 사실은 남습니다.

질문은 '다윗이 왜 피를 흘렸는가'가 아니라, '전쟁의 사람이 왜 성전 건축자로 맞지 않는가'입니다. 성전은 전쟁의 논리로 세워지는 집이 아니라, 안식과 평화 속에 세워지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시키신 일을 충성스럽게 다 했는데, 바로 그 일의 성격 때문에 가장 원하던 것을 못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 다윗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준비했습니다.



"9 보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그는 온순한 사람이라 내가 그로 주변 모든 대적에게서 평온을 얻게 하리라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그의 생전에 평안과 안일함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10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지라 그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어 그 나라 왕위를 이스라엘 위에 굳게 세워 영원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니" (대상 22:9~10)


"온순한 사람"은 성품 이야기가 아닙니다. 원어로 메누하, '안식'입니다. 솔로몬은 '안식의 사람'입니다. 착해서 성전을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안식을 주신 시대의 사람이어서 지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름이 이어집니다.

솔로몬(셸로모) - 샬롬(평안) - 메누하(안식)

평화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 안식의 시대에 하나님의 집을 짓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안식을 주시는 자리입니다.

10절은 아버지와 아들의 언약입니다. 성전을 짓는 아들이 곧 영원한 나라의 언약을 잇는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나라는 둘이 아니라 하나이고, 그 둘 모두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위에 서 있습니다. 돌로 지은 집은 무너져도,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리라"는 언약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영원까지"라는 말이 솔로몬 너머를 가리킵니다.

"5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히 1:5)


이제 그리스도께로 갑니다. 피 흘린 손은 성전을 짓지 못합니다. 그런데 참 성전은 남의 피가 아니라 자기 피를 흘리신 분이 세우셨습니다.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 2:19, 21)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골 1:20)

다윗은 피를 흘리게 했기에 짓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피를 흘리셨기에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솔로몬보다 더 큰 안식의 사람이 오늘 우리를 부르십니다.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히 4:9)



3. 일어나 일하라 (22:11~19)

"11 이제 내 아들아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며 네가 형통하여 여호와께서 네게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며 12 여호와께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사 네게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게 하시기를 더욱 원하노라 13 그때에 네가 만일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든 규례와 법도를 삼가 행하면 형통하리니 강하고 담대하여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지어다" (대상 22:11~13)


다윗의 지시가 기도로 싸여 있습니다. "함께 계시기를 원하며", "더욱 원하노라." 성전은 하나님의 도움에 기대야만 완성된다는 것을 다윗은 알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는 덕담이 아닙니다. 사명의 보증입니다.

"강하고 담대하여"는 하자크 베에마츠.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가나안을 앞두고 하신 그 말씀입니다. 다윗은 제2의 모세처럼, 솔로몬은 제2의 여호수아처럼 섭니다. 5절의 '어리고 여린' 아들이 "강하고 담대하라"는 명령 앞에 세워집니다.

"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수 1:9)

형통의 조건은 실력이 아니라 "규례와 법도를 삼가 행함"입니다. 그런데 그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조차 "지혜와 총명"이 필요하고, 그것도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언제나 그 일을 감당할 수단이 함께 옵니다.



"14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와 은 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이 준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준비하였으나 너는 더할 것이며 15 또 장인이 네게 많이 있나니 곧 석수와 목수와 온갖 일에 익숙한 모든 사람이니라 16 금과 은과 놋과 철이 무수하니 너는 일어나 일하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 하니라" (대상 22:14~16)


한 달란트가 약 34킬로그램입니다. 셈이 되지 않는 숫자입니다. 그러나 이 숫자가 말하는 것은 성전의 사치가 아니라, 다윗이 헤아린 하나님의 가치입니다. 하나님은 이만큼 드려도 아깝지 않은 분이십니다.

그런데 "너는 더할 것이며." 이만큼 준비했는데 더할 것이 남았습니까. 남았습니다. 여호와의 집을 충분히 채우는 일은 사람의 능력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일어나 일하라." 먼저 일어나 일한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명령도 다시 임재로 감쌉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 다윗이 물려준 가장 큰 유산은 금과 은이 아니라 임마누엘의 약속이었습니다.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20)



"17 다윗이 또 이스라엘 모든 방백에게 명령하여 그의 아들 솔로몬을 도우라 하여 이르되 18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시느냐 사면으로 너희에게 평온함을 주지 아니하셨느냐 이 땅 주민을 내 손에 넘기사 이 땅으로 여호와와 그의 백성 앞에 복종하게 하셨나니 19 이제 너희는 마음과 뜻을 바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라 그리고 일어나서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하나님 성전의 기물을 가져다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에 들이게 하라 하였더라" (대상 22:17~19)


성전은 한 사람의 일이 아닙니다. 솔로몬에게 주신 임재와 안식이 이제 온 백성에게 확인됩니다. 다윗은 명령하기 전에 먼저 묻습니다. "함께 계시지 아니하시느냐? 평온함을 주지 아니하셨느냐?" 하나님의 집을 짓는 마음은 의무감이 아니라 감사에서 나와야 합니다.

"마음과 뜻을 바쳐서 구하라"를 직역하면 "구하는 일에 너희 마음과 너희 목숨을 내어놓으라"입니다. 성전은 재료와 기술로 짓는 건물이기 전에, 마음과 생명을 다해 예배드리는 자리입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은 눈에 보이지 않는 헌신 위에서만 하나님의 집이 됩니다.

그래서 "구하라"와 "일어나 건축하라"가 한 문장에 붙어 있습니다. 구하는 기도와 짓는 손은 둘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집의 목적은 언약궤를 들이는 것, 곧 하나님의 임재를 모시는 것입니다.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고전 3:11)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벧전 2:5)

다윗은 솔로몬을 통해 자기 죽음 너머로 다리를 놓았습니다. 앞선 세대가 준비하고 다음 세대가 짓습니다.

"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딤후 2:2)



맺는 말

본문을 다시 꿰어 봅시다. 다윗은 짓지 못할 집을 위해 준비했고, 하나님은 안식의 사람에게 그 집을 맡기셨고, 다윗은 아들과 지도자들에게 "일어나 일하라, 여호와께서 함께 계실지로다" 했습니다.

준비, 안식, 그리고 임재입니다.

"성전 건축은 단순히 건물을 세우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 뜻을 구하고, 그 뜻에 순종하기로 결단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그분이 주시는 형통을 삶으로 경험하는 일입니다."


본죽을 세운 김철호 대표는 여러 번 망했습니다. 1997년 IMF로 다시 파산한 뒤에는 낮에는 요리학원에서 청소하며 요리를 배우고, 저녁에는 호떡을 구워 팔았습니다. 그의 좌우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입니다. 왜 사업을 하느냐는 물음에 "선교하기 위해서" 답했고, 십의 칠조를 드리면 남는 것이 있느냐는 물음에 "하나님이 다 채워 주십니다!" 답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살지 않으면 다른 무엇인가를 위해 살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붙들 말은 이것입니다.

첫째, 보지 못할 집을 위해서도 준비합니다. 다윗은 죽기 전에 많이 준비했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내가 지금 다듬는 돌은 무엇입니까.

둘째, 하나님의 "아니라"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자기를 배제하는 말씀까지 아들에게 그대로 전했습니다. 내 손으로 다 이루지 않아도 됩니다. 참 성전은 자기 피를 흘리신 안식의 왕께서 세우셨습니다.

셋째, 일어나 일하되, 함께 계신 하나님과 함께 일합니다. 마음과 뜻을 바쳐 구하는 것이 곧 일어나 짓는 것입니다.

"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계 21:22)


오늘의 찬양

새 312장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 오늘의 찬송.

"주 찬양하고 기도하며 네 본분 힘써 다하라"가 16절 "너는 일어나 일하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와 겹칩니다. 예배 여는 찬송으로.




〈사명〉(이권희)

짓지 못할 집을 위해 준비하고, 다음 세대에게 "일어나 일하라" 맡긴 다윗처럼, 받은 사명의 길을 끝까지 걷겠다는 고백입니다. 결단의 자리에서.



새 600장 〈교회의 참된 터는〉

22:1의 터, 그리고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3:11). 다윗이 준비한 터 위에 솔로몬이 지었듯, 그리스도의 터 위에 교회가 세워집니다. 파송 찬송으로.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다윗은 자기가 보지 못할 성전을 위해 "죽기 전에 많이 준비하였더라."

다음 세대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도록, 지금 내가 준비해야 할 "돌과 철과 백향목"은 무엇입니까?



다윗은 "너는 짓지 못하리라"는 말씀 앞에서 원망하지 않고 준비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신 일인데도 내 손으로 이루려고 고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자리에서 내가 마음과 뜻을 바쳐 구할 것은 무엇입니까?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오늘 주일 예배 가운데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소서.

더빛교회가 다음 세대를 위해 넉넉히 준비하고, 지시보다 기도를 먼저 물려주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우리 자녀들이 강하고 담대하여 자기 시대의 성전을 세우는 일꾼으로 일어나게 하소서.



우리나라에 사는 이주민이 미등록자를 포함해 약 300만 명에 이릅니다.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영적·사회적 돌봄을 받게 하소서. 카메룬에서 330만 명 이상이 식량난을 겪으며 아이들의 영양실조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일용할 양식과 복음이 전해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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