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역대상 21:18-22:1
칼이 칼집에 들어간 자리
본문: 역대상 21장 18절 ~ 22장 1절
여는 말
어제 우리는 하늘과 땅 사이에 칼을 든 천사를 보았습니다. 갓이 세 가지 벌을 전했을 때, 다윗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21:13) 하고 하나님의 손을 택했습니다. 칠만 명이 쓰러졌고,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할 때 하나님은 "족하다" 하셨습니다. 다윗은 굵은 베를 입고 엎드려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시고" 하며 양 무리를 위해 중보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한 가지가 남아 있습니다. 천사의 손에 들린 칼이 아직 칼집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빼든 칼(16절)로 시작된 이야기가 칼집에 꽂힌 칼(27절)로 끝나는 자리입니다. 그 사이에 순종이 있고, 값을 치른 제단이 있고, 하늘에서 내린 불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윗이 선언합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요."
이 장의 중심은 다윗의 죄도, 심판도 아닙니다.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성전은 그 은혜의 영원한 증인이 됩니다.
1. 천사가 멈춘 곳에 제단을 쌓으라 (21:18~21)
"18 여호와의 천사가 갓에게 명령하여 다윗에게 이르시기를 다윗은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19 이에 갓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른 말씀대로 다윗이 올라가니라" (대상 21:18~19)
심판을 멈추신 하나님이 이제 제단을 명하십니다.
사무엘하는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라고만 적었습니다. 역대기는 "여호와의 천사가 갓에게 명령하여"라고 씁니다. 이것이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19절, 다윗은 그 말씀대로 곧장 올라갑니다.
다윗의 회개는 말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를 치소서"라는 기도 다음에 그는 타작마당으로 올라갔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재앙을 멈추었고, 그 긍휼은 회개한 사람을 예배의 자리로 이끕니다.
"속죄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말씀으로 주어지고, 제사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제단의 자리는 다윗이 고른 곳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칼을 멈추신 곳, 천사가 서 있던 바로 그곳입니다. 내가 있던 그 실패의 자리가 은혜의 자리가 되고 예배의 자리로 변합니다.
"20 그때에 오르난이 밀을 타작하다가 돌이켜 천사를 보고 오르난이 네 명의 아들과 함께 숨었더니 21 다윗이 오르난에게 나아가매 오르난이 내다보다가 다윗을 보고 타작마당에서 나와 얼굴을 땅에 대고 다윗에게 절하매" (대상 21:20~21)
오르난은 여부스 사람입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기 전부터 그 땅에 살던 가나안 족속입니다. 그는 왕도 제사장도 아니었습니다. 아들들과 함께 추수한 밀을 떨던 평범한 농부였습니다.
밀을 타작하다가 천사를 봅니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입니다. 사사기의 기드온도 밀을 타작하다가 여호와의 사자를 만났습니다. 기드온도 두려워했고, 기다렸고, 예물을 내놓았고, 하늘의 불이 그 제물을 살랐고, 그 자리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역대기는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그렇게 그립니다. 단순히 땅을 사고파는 현장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타나신 거룩한 자리입니다.
밀을 떨던 일터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됩니다. 우리의 부엌과 일터와 출근길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칼을 멈추시는 곳이면 어디든 제단이 섭니다. 내가 있는 그 자리가 하나님이 임하시는 곳이 됩니다.
2. 값없이는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21:22~25)
"22 다윗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이 타작하는 곳을 내게 넘기라 너는 상당한 값으로 내게 넘기라 내가 여호와를 위하여 여기 한 제단을 쌓으리니 그리하면 전염병이 백성 중에서 그치리라 하니 23 오르난이 다윗에게 말하되 왕은 취하소서 내 주 왕께서 좋게 여기시는 대로 행하소서 보소서 내가 이것들을 드리나이다 소들은 번제물로, 곡식 떠는 기계는 화목으로, 밀은 소제물로 삼으시기 위하여 다 드리나이다 하는지라" (대상 21:22~23)
"상당한 값으로"를 직역하면 '가득 찬 돈으로'입니다. 적당한 값이 아니라 온전한 값입니다. 왕은 얼마든지 백성의 호의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처음부터 가득 찬 값을 내놓습니다. 예배의 자리는 거저 얻는 것이 아님을, 이 한 단어가 처음부터 못 박습니다.
이 표현은 구약에서 단 한 곳에 더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사라를 장사하려고 막벨라 굴을 살 때입니다. 아브라함도 거저 받지 않고 온전한 값을 치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약속의 땅에서 처음 소유한 한 조각이었습니다. 이제 다윗이 그 믿음의 걸음을 이어 성전의 터를 삽니다.
오르난의 대답도 아름답습니다. "내가 드리니 취하소서"가 아니라 "취하소서. 내가 드립니다"의 순서입니다. 자기 소유보다 왕의 뜻을 앞세웁니다. 소도, 곡식 떠는 기계도, 밀도 다 내놓습니다. 여기 "화목"은 화목제가 아니라 태울 나무, 땔감입니다. 제사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거절합니다.
"24 다윗왕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반드시 상당한 값으로 사리라 내가 여호와께 드리려고 네 물건을 빼앗지 아니하겠고 값없이는 번제를 드리지도 아니하리라 하니라 25 그리하여 다윗은 그 터 값으로 금 육백 세겔을 달아 오르난에게 주고" (대상 21:24~25)
"반드시 사리라"는 "내가 기어이, 반드시 사겠다"는 단호한 뜻을 나타냅니다.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요. 이것은 회개의 제사였기 때문입니다. 자기 죄 때문에 칠만 명이 쓰러졌습니다. 그 앞에서 남의 것을 얻어 하나님께 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자기 죄의 결과를 남의 희생으로 대신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사무엘하는 은 오십 세겔이라고 적었습니다. 역대기는 금 육백 세겔입니다. 제단 자리와 성전 터 전체의 차이였는지, 정확한 이유는 본문이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값싸게, 손쉬운 방식으로 드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죄에 대해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전가하려 하지 말고 진실한 회개를 해야 한다." - 데이비드 A.시맨즈
다윗이 치른 금 육백 세겔은 회개의 값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칼을 영원히 칼집에 넣는 값은 다윗이 치를 수 없었습니다. 그 값은 금이나 은으로 치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벧전 1:18~19)
우리가 값없이 받은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값을 온전히 치르시고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드림은 값을 치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먼저 값으로 사신 분께 드리는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20)
3.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요 (21:26~22:1)
"26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27 여호와께서 천사를 명령하시매 그가 칼을 칼집에 꽂았더라" (대상 21:26~27)
"응답하시고"가 바야아네후, '그에게 대답하셨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이 아니라 불로 대답하셨습니다. 심판의 천사가 칼을 겨누던 바로 그 자리에, 진노의 불이 아니라 받으심의 불이 내렸습니다. 이 불은 처음이 아닙니다.
"24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 (레 9:24)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왕상 18:38)
그리고 훗날 바로 이 자리에 세워질 성전에서도 같은 불이 내립니다.
"1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 (대하 7:1)
성막의 첫 제단, 갈멜산의 제단, 오르난의 타작마당, 솔로몬의 성전. 하나님은 같은 불로 "내가 받았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27절. "그가 칼을 칼집에 꽂았더라." 직역하면 "그가 자기 칼을 그 칼집으로 도로 넣었다"입니다.
예배가 드려지고 받아들여지자 겨누어졌던 칼이 거두어졌습니다. 칼집으로 돌아간 칼이 말없이 증언합니다. 심판을 멈추는 길은 속죄의 제사라는 것입니다.
이 장면은 신약에서 다시 울립니다. 겟세마네에서 베드로가 칼을 빼어 들었을 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11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요 18:11)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는 제물이 드려지자 천사가 칼을 칼집에 꽂았습니다. 겟세마네에서는 주님이 베드로의 칼을 칼집에 꽂게 하시고, 그 잔을 마시러, 심판의 칼을 몸으로 받으러 가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탄의 충동도, 천사의 심판의 칼도 완전히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 9:12)
"28 이때에 다윗이 여호와께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응답하심을 보고 거기서 제사를 드렸으니 29 옛적에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여호와의 성막과 번제단이 그때에 기브온 산당에 있었으나 30 다윗이 여호와의 천사의 칼을 두려워하여 감히 그 앞에 가서 하나님께 묻지 못하더라" (대상 21:28~30)
원래 제사를 드리려면 기브온의 성막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갈 수 없었습니다. "두려워하여", 단순히 무서운 것이 아니라 온몸이 얼어붙을 만큼 질겁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두려움이 다윗을 새 예배의 자리로 이끌었습니다. 옛 제단에 갈 수조차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응답하신 그 자리가 새 제단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위에서 이 터를 택하셨고, 다윗은 아래에서 다른 데로 갈 수 없었습니다. 은혜는 그 둘이 만나는 곳에서 집이 됩니다.
"1 다윗이 이르되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요 이는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라 하였더라" (대상 22:1)
"바로 여기가 여호와 하나님의 집이다." 이 짧은 선언이 어두운 이야기의 도착점입니다. 사무엘하에는 이 선언이 없습니다. 역대기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자리를 하나님의 집으로 못 박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22장, 성전을 준비하는 긴 이야기가 이 한 절을 딛고 시작됩니다.
"집은 하나님의 것이고, 제단은 백성을 위한 것이다."
이 터에는 이름이 하나 더 있습니다.
"1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대하 3:1)
모리아. 아브라함이 이삭을 묶었던 그 산입니다.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창 22:14)
아브라함의 칼이 멈춘 산, 천사의 칼이 멈춘 타작마당. 그리고 천 년 뒤 그 언덕의 북쪽 끝에서, 마침내 칼이 하나님의 아들 위에 떨어졌습니다. "갈보리 언덕은 성벽 밖, 성전 터 밖에 있었지만, 그 일대는 모두 모리아였다." 두 번은 예표였고, 세 번째는 성취였습니다.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 2:19~21)
성전은 다윗의 죄가 예루살렘을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간 바로 그 자리에 섰습니다. 무엇보다 용서의 장소였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잘한 사람들의 자리가 아니라, 칼이 멈춘 자리, 용서받은 죄인들의 자리에 세워집니다.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 2:21~22)
맺는 말
본문을 다시 꿰어 봅시다. 천사가 멈춘 곳에 제단을 쌓으라 하셨고, 다윗은 값없이는 드리지 않겠다며 온전한 값을 치렀고, 하나님은 불로 응답하시고 칼을 칼집에 꽂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선언했습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요."
생명의 삶 묵상 에세이의 글입니다.
"회복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회개가 선행되어야 한다. 회개란 가던 길에서 돌이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맺습니다. "하나님의 '돌아오라.'라는 음성이 들릴 때, 변명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즉시 돌이켜야 한다."
오늘 우리가 붙들 말은 이것입니다.
첫째, 회개는 말에서 끝나지 않고 예배로 갑니다. 다윗은 "나를 치소서"라는 기도 다음에 타작마당으로 올라갔습니다.
둘째, 값없는 번제는 없습니다. 내 죄의 결과를 남에게 떠넘기지 않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값싸게 드리지 않는 것이 회개한 사람의 예배입니다.
셋째, 칼을 영원히 칼집에 넣은 값은 그리스도께서 치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심판이 멈춘 그 자리가 우리의 예배당입니다.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일 4:10)
그리고 마지막 날, 성전은 더 이상 건물이 아닙니다.
"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계 21:22)
오늘의 찬양
새 298장 〈속죄하신 구세주를〉 — 오늘의 찬송.
27절, 제물이 드려지고 칼이 칼집에 들어간 자리에서 속죄하신 주님을 찬송합니다. 예배 여는 찬송으로.
〈나는 예배자입니다〉
22:1, 칼 앞에 떨던 다윗이 그 자리에서 예배자로 섰듯이, 용서받은 자리에서 예배자로 서는 고백입니다. 결단의 자리에서.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다윗은 "나를 치소서"라는 기도에서 멈추지 않고 곧장 타작마당으로 올라가 제단을 쌓았습니다.
내가 입술로만 회개하고 아직 순종의 자리로 올라가지 않은 일은 무엇입니까?
다윗은 "값없이는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내 예배와 헌신 가운데 손쉽고 값싸게 드리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치르신 값 앞에서, 내일 주일 예배를 어떻게 준비하겠습니까?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내일 주일 예배가 값없이 드리는 번제가 아니라 회개와 헌신으로 드리는 온전한 예배가 되게 하소서.
더빛교회가 심판이 멈춘 자리에 세워진 용서의 집으로 서게 하소서.
회개하는 자를 예배의 자리로 이끄시고 다시 만나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을 외면하지 않게 하소서.
징계를 거두시고 친히 임하신 우리 삶에 말씀의 단을 쌓아,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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