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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 역대상 19:8-19

7시간 전
8분 분량

앞뒤로 친 적진 앞에서

본문: 역대상 19장 8절 ~ 19절


여는 말

어제 우리는 호의가 모욕으로 돌아온 장면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나하스가 베푼 호의를 기억하고 그 아들 하눈에게 조문 사절을 보냈습니다. 돌아온 것은 의심과, 수염이 깎이고 옷이 잘린 사절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암몬은 자기가 다윗에게 밉게 한 줄 알면서도 화해 대신 은 천 달란트로 아람의 병거와 마병을 샀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오해가 불러온 전쟁의 현장입니다. 그리고 이 전쟁터에서 우리는 사람이 감당할 몫과 하나님께 맡겨야 할 몫이 무엇인지 보게 됩니다.

19장은 사무엘하 10장을 거의 그대로 옮겨 온 장입니다. 어제의 18장은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를 두 번이나 말했습니다. 그런데 19장은 두 번의 승리를 전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딱 한 번 부릅니다. 13절입니다. 그 한 번이 이 전쟁 전체를 결정합니다.


1. 앞뒤로 친 적진 (19:8~12)

"8 다윗이 듣고 요압과 용사의 온 무리를 보냈더니 9 암몬 자손은 나가서 성문 앞에 진을 치고 도우러 온 여러 왕은 따로 들에 있더라 10 요압이 앞뒤에 친 적진을 보고 이스라엘에서 뽑은 자 중에서 또 뽑아 아람 사람을 대하여 진을 치고 11 그 남은 무리는 그의 아우 아비새의 수하에 맡겨 암몬 자손을 대하여 진을 치게 하고 12 이르되 만일 아람 사람이 나보다 강하면 네가 나를 돕고 만일 암몬 자손이 너보다 강하면 내가 너를 도우리라" (대상 19:8~12)


암몬이 용병을 사는 과정은 길게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대응은 한 줄입니다. "요압과 용사의 온 무리를 보냈더니." 다윗은 도발 앞에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총동원령이 아니라 요압의 정규군으로 신속하게 대응했습니다. 성문 앞에는 암몬, 들에는 아람. 앞에도 적, 뒤에도 적. 요압과 그의 군대는 두 진영 사이에 갇혔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이런 날이 있습니다. 앞을 보아도 막혀 있고 뒤를 보아도 막혀 있는 날입니다.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고후 4:8)


"진을 치고"는 '차례대로 늘어놓다', '정돈하여 배열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동사는 전쟁터에서만 쓰지 않습니다. 번제물을 제단 위에 벌여 놓을 때, 진설병을 상 위에 차려 놓을 때도 이 말을 씁니다. 제단 위에 제물을 벌여 놓는 그 동사로, 요압은 전장에 군대를 벌여 세웁니다. 혼란의 한가운데서 질서를 세운 것입니다.

"또 뽑아"는 '가려서 뽑다', '택하다'입니다. 뽑힌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뽑았습니다. 요압은 손을 놓고 하늘만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가장 강한 적 아람에게는 최정예를 붙이고, 나머지는 동생 아비새에게 맡겨 암몬을 막게 했습니다.


그리고 12절입니다. "네가 나를 돕고 … 내가 너를 도우리라." 두 부대가 각자 싸우되 서로 고립되지 않게 한 것입니다. 이 "돕다"는 말이 18장의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와 같은 뿌리의 말입니다. 그리고 19절 끝에 아람이 다시는 암몬을 "돕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할 때도 같은 말이 나옵니다. 형제가 서로 돕는 곳에서 하나님이 이기게 하시고, 원수가 서로 돕는 줄은 끊어집니다.

"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료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전 4:9~10)

"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 6:2)

교회는 각 지체가 제 일을 할 때 자랍니다. 은사는 내 몫을 챙기는 데가 아니라 함께 사는 데 쓰라고 주신 것입니다.

느헤미야도 그랬습니다. 성벽을 쌓을 때 원수들의 위협 앞에서 그는 이렇게 했습니다.

"9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느 4:9)

기도하며, 파수꾼을 둡니다. 둘 중 하나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자기가 해야 할 몫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2.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19:13~15)

"13 너는 힘을 내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힘을 내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대상 19:13)


이 장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불리는 유일한 자리입니다. 19장의 심장입니다.

"힘을 내라"는 하자크, '강하라', '굳세어라'라는 명령입니다. 이어지는 "힘을 내자"는 니트하제카, '우리가 함께 힘을 내자'는 청유입니다. 명령하고 끝내지 않았습니다. "너는"으로 시작해서 "우리가"로 넘어갑니다. 장군이 혼자 굳세라고 하지 않고 함께 굳세어지자고 합니다.

그런데 요압은 이 다짐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곧바로 덧붙입니다.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그분의 눈에 좋으신 대로 행하실 것이다"입니다.


사람이 할 일 : 용기와 협력

하나님이 하실 일 : 선하신 뜻대로 결과를 이루심


이 둘이 한 호흡 안에 나란히 서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과 책임의 균형이 이 한 문장에 담겨 있습니다.

"힘을 내라, 강하라"는 말은 역대기에서 무거운 말입니다. 군사적 힘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헌신된 순종을 말할 때도 쓰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던 여호수아에게 주신 명령을 떠올리게 합니다.

"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수 1:9)

"강하라"는 명령에는 언제나 "내가 함께 하느니라"는 약속이 따라옵니다. 우리의 담대함은 우리 안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19장은 정치와 군사의 언어로만 흘러오고 하나님의 이름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위기의 순간에 이 싸움의 참된 의미가 드러납니다. 이것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한 싸움입니다. 돈으로 산 용병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의 싸움입니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하지만, 그의 참된 도움은 하나님이다!"

"31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나 이기는 것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 21:31)

"7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시 20:7)

암몬은 병거를 샀고, 요압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14 요압과 그 추종자가 싸우려고 아람 사람 앞에 나아가니 그들이 그 앞에서 도망하고 15 암몬 자손은 아람 사람이 도망함을 보고 그들도 요압의 아우 아비새 앞에서 도망하여 성읍으로 들어간지라 이에 요압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라" (대상 19:14~15)

응답은 즉각적이었습니다. 요압이 나아가자 은 천 달란트로 산 거대한 용병 부대가 싸워 보지도 못하고 도망칩니다. 그것을 본 암몬도 도망칩니다. 본문은 두 군대가 부딪힌 장면을 아예 기록하지 않습니다. "도망하다"가 세 번 반복될 뿐입니다. 그래서 12절에서 그렇게 단단히 약속했던 "서로 돕기"는 쓸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 14:14)

아말렉과 싸울 때를 기억하십시오. 전장에서는 여호수아가 칼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승패는 산 위에서 결정되었습니다. "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출 17:11)

여호수아의 칼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승패를 결정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다만 한 가지를 조심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믿음이 좋으면 반드시 이긴다"로 읽으면 안 됩니다. 이긴 싸움이 모두 신실함의 상이고 진 싸움이 모두 불신앙의 벌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선히 여기시는 대로"는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닙니다. 그 고백은 패배의 가능성까지 하나님 손에 맡기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승리주의가 아니라 신뢰입니다. 그리고 이 고백이 가장 온전하게 드려진 자리가 있습니다. 겟세마네입니다.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 26:39)

요압은 전쟁의 결과를 맡겼고,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맡김을 부활로 응답하셨습니다.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12~13)



3. 요단을 건넌 왕 (19:16~19)

"16 아람 사람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였음을 보고 사신을 보내 강 건너편에 있는 아람 사람을 불러내니 하닷에셀의 군대 사령관 소박이 그들을 거느린지라 17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전하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모으고 요단을 건너 아람 사람에게 이르러 그들을 향하여 진을 치니라 다윗이 아람 사람을 향하여 진을 치매 그들이 다윗과 맞서 싸우더니" (대상 19:16~17)


첫 승리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아람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유브라데강 건너편의 군대까지 억지로 불러냅니다. 스스로 자초한 패배 앞에서 그들이 택한 것은 회개나 화친이 아니라, 더 먼 곳의 더 많은 군대였습니다.


위기를 더 큰 힘으로 막으려는 사람이 있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담대히 나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 번째 싸움에서 그 차이가 더 선명해집니다. 이번에는 다윗이 직접 나섭니다. 온 이스라엘을 모으고 요단을 건넙니다. "건너"가 바야아보르입니다. 개역개정에서는 담담하게 읽히지만, 요단을 건넌다는 것은 안전한 본토를 등지고 적진을 향해 몸을 던진다는 뜻입니다. 왕이 백성의 맨 앞에 섭니다.

장군 요압이 "힘을 내자"고 말했고, 왕 다윗이 그 말을 몸으로 확증했습니다. 요단을 건너는 걸음으로.


성도 여러분, 우리의 왕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보다 앞서, 우리를 대신해 가장 깊은 강을 건너셨습니다. 죽음이라는 강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 강을 건너는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사 43:2)



"18 아람 사람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한지라 다윗이 아람 병거 칠천 대의 군사와 보병 사만 명을 죽이고 또 군대 지휘관 소박을 죽이매 19 하닷에셀의 부하들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였음을 보고 다윗과 더불어 화친하여 섬기고 그 후로는 아람 사람이 암몬 자손 돕기를 원하지 아니하였더라" (대상 19:18~19)


사람이 쌓아 올린 군세는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는 편을 이기지 못합니다. 강 건너에서 끌어온 대군도, 그들을 이끈 사령관 소박도,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라는 한 마디 앞에 무너졌습니다.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골 2:15)

요압의 승리와 다윗의 승리 사이에 아람의 증원군이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승리와 주님 다시 오실 날 사이에도 싸움은 있습니다. 원수는 아직 군대를 불러 모읍니다. 그러나 결과는 이미 정해졌습니다.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 16:33)

그리고 이 전쟁은 화친으로 끝납니다. '평화의 관계로 들어가다'는 뜻입니다. 대등한 두 나라의 우호 조약이 아닙니다. 무릎을 꿇고 다윗의 다스림 아래로 들어가는 평화입니다. 다윗은 원수를 무너뜨리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를 화평 안으로 품어 들였습니다.


어제 하맛 왕이 "평안"을 물으러 왔고, 오늘 아람이 "화친"으로 들어옵니다. 우리도 그렇게 들어왔습니다.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롬 5:10)

그리고 그 평화는 마침내 온 세상에 이릅니다.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 2:10~11)

오늘 우리 형편이 다윗 시대처럼 강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교회가 작아 보이고, 우리 힘이 초라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다윗보다 더 큰 왕이 계십니다.



맺는 말

본문을 다시 꿰어 봅시다. 앞뒤로 적진이 섰고, 요압은 뽑고 또 뽑아 진을 쳤고, 형제와 서로 돕기를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결과를 맡겼습니다. 적은 싸우기도 전에 도망했고, 다윗은 요단을 건너 원수의 동맹을 끊고 화친을 이루었습니다.

"전쟁에서 전략이나 전술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담대함은 승리를 확신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서 나옵니다."


오늘 묵상 에세이의 글입니다. 탄자니아 세렝게티의 톰슨가젤은 2미터 높이까지 뛰고 6미터를 한걸음에 뛴다고 합니다. 그런데 눈앞의 장애물은 뛰어넘지 못한다고 합니다. 착지할 곳이 보이지 않으면 뛰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착지할 곳이 보이지 않을 때 주저앉습니다.

"동서남북이 막혀 있는 것 같은 한계 상황에서도 기도하면, 하늘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40년 넘게 섬긴 한 간호선교사가 시골 진료소에서 환자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할머니, 저희가 할 일은 다 했어요.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에요. 그러니 매일 상처를 붙들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세요." 가진 돈 하나 없던 그를 들어 하나님은 그 땅에 병원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그가 고백합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 하신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붙들 말은 이것입니다.

첫째, 앞뒤로 막혔을 때 손 놓지 말고 진을 치십시오. 기도하며 파수꾼을 두는 것이 믿음입니다.

둘째, 등을 맡길 형제가 있어야 합니다. "네가 밀리면 내가 간다." 형제가 서로 돕는 곳에서 하나님이 이기게 하십니다.

셋째, 할 일을 다 하고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라고 고백하십시오. 그 길은 우리보다 앞서 강을 건너신 왕, 십자가로 이기신 그리스도께서 열어 두셨습니다.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 15:57)

오늘의 찬송이 새 93장 〈예수는 나의 힘이요〉입니다. "너는 힘을 내라"는 말씀 앞에서 우리의 힘은 우리 안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힘이십니다. 오늘 하루, 앞뒤로 막힌 자리에서 그 힘으로 일어서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찬양

새 93장 〈예수는 나의 힘이요〉 — 오늘의 찬송.

13절 "너는 힘을 내라 … 힘을 내자"의 그 힘이 어디서 오는지를 고백합니다. 예배 여는 찬송으로.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경배와 찬양) — "세상의 험한 풍파 몰아칠 때도 주님 나를 지켜 주시네"

10절, 앞뒤로 친 적진 앞에 선 사람의 노래입니다. 결단의 자리에서.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요압은 앞뒤로 둘러싸인 위기에서 손을 놓지 않고 진을 쳤고, 그 뒤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라고 고백했습니다. 지금 내 앞의 문제 앞에서 나는 손 놓고 낙심하는 쪽입니까, 홀로 무리하게 감당하는 쪽입니까?

오늘 내가 성실히 감당할 몫 한 가지와, 하나님께 맡겨 드릴 결과는 무엇입니까?



"만일 아람 사람이 나보다 강하면 네가 나를 돕고 … 내가 너를 도우리라."

지금 내가 등을 맡길 수 있는 믿음의 형제는 누구입니까?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더빛교회의 사랑방과 부서가 각자의 자리에 서 있되 서로 고립되지 않게 하시고, "내가 너를 도우리라"는 약속으로 연결되게 하소서. 앞뒤로 막힌 세상 속에서 함께 믿음의 싸움을 할 수 있는 진정한 믿음의 형제들 되게 하소서.


삶의 가장 큰 싸움은 매 순간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세상의 조언과 방법을 찾기에 급급했던 모습을 내려놓고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붙들게 하시며,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담대히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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