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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 역대상 16:23-36

11분 전
8분 분량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

본문: 역대상 16장 23절 ~ 36절


여는 말

어제 우리는 "옛 노래가 오늘의 명령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삽과 그의 형제가 부른 그 노래는 새로 지은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시편 105편 1절부터 15절까지였습니다. 그런데 그냥 베낀 것이 아니라 세 곳을 바꿨습니다. "아브라함"을 "이스라엘·야곱"으로, "그들이"를 "너희가"로, 그리고 "그가 기억하셨다"를 "너희는 기억하라"로.

옛 찬송이 오늘 회중을 향한 명령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어제 그 노래가 어디서 끊겼습니까. 시편 105편 15절, "나의 기름 부은 자에게 손을 대지 말며"에서 끊겼습니다. 요셉도, 애굽도, 출애굽도, 광야도, 정복도 다 잘라 냈습니다.

왜 잘랐을까요. 잘라 낸 자리에 무엇을 붙이려고 잘랐을까요.

오늘 본문이 그 답입니다. 23절부터 33절까지는 시편 96편입니다. 그리고 34절부터 36절까지는 시편 106편 1절과 47~48절입니다.


세 편의 시편을 잘라 이어 붙였습니다. 시편 105편 1~15절과 106편 1, 47~48절 사이에 시편 96편 전체를 끼운 합성 시입니다. 아니 2편을 붙여서 새로운 작곡자가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이어 붙인 자리에서 무엇이 터져 나오는지를 보겠습니다.


1. 만국의 모든 신은 헛것이나,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도다 (16:23~29)

"23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선포할지어다 24 그의 영광을 모든 민족 중에, 그의 기이한 행적을 만민 중에 선포할지어다" (대상 16:23~24)


성도 여러분, 어제까지 "이스라엘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대상이 바뀝니다. "온 땅이여."

23절의 "선포할지어다"가 히브리어 바쎄루(בַּשְּׂרוּ)입니다. '소식을 전하다'라는 뜻의 동사 바사르의 피엘 명령법 복수형인데, 이 동사는 주로 승리의 소식이나 국가적 중대사를 전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선지서에서는 의미가 확장되어, 시온을 향해 구원의 소식을 가져오는 전령의 아름다운 발걸음을 묘사하는 신학 용어로 쓰입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사 52:7)


다윗은 예루살렘 성소에서 드려지는 일상적인 제의를 전쟁의 승전보를 타전하는 긴박한 군대의 모습으로 바꿈으로써, 예배가 곧 하나님의 승리를 온 세상에 매일 갱신하여 공표하는 거룩한 전령의 직무임을 천명합니다.


성도 여러분, 예배는 전령의 일입니다.

예루살렘의 작은 장막 안에서 시작된 찬양의 진동이 어떻게 이스라엘의 국경을 넘어 이방 세계의 심장에까지 이르는지 역동적으로 보여 줍니다. 바쎄루는 추상적인 찬양을 넘어서, 하나님이 역사 속에 개입하신 구체적인 사건들을 하나하나 나열하여 선포하라는 명령입니다.



"25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26 만국의 모든 신은 헛것이나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도다" (대상 16:25~26)


26절의 "헛것"이 히브리어 엘릴림(אֱלִילִים)입니다. 명사 엘릴은 본질적으로 '비어 있음', '가치 없음' 혹은 실체가 없는 '허무함'을 의미합니다. 이 명사는 이방의 '신들'을 뜻하는 엘로힘과 발음이 유사하지만 의미는 반대인 언어유희를 보여 줍니다. 이방 민족들이 절대적으로 숭배하는 신들이 실제로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텅 빈 구조물에 불과함을 폭로합니다.

엘로힘과 엘릴림. 소리가 거의 같습니다. 신과 헛것이 소리가 거의 같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민족의 운명은 그 신의 운명과 동일시되었으므로, 이 본문은 제국 통치 아래 이스라엘의 무력감에 대한 직접적 도전이다."

성도 여러분, 이 노래를 읽던 사람들은 페르시아 제국 아래 살고 있었습니다. 제국이 강하다는 것은 곧 제국의 신이 강하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만국의 모든 신은 헛것이나."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시 115:4~5)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고전 8:4)



"27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으며 능력과 즐거움이 그의 처소에 있도다 28 여러 나라의 종족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대상 16:27~28)


여기서 또 한 번 원문이 바뀝니다. 시편 96편 6절은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의 성소에 있도다"입니다. 그런데 역대기는 "그의 처소에"로 바꿉니다. 다윗 시대에는 성전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문맥의 언어를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 — 궤의 "처소"는 이미 준비되었다(15:1, 3; 16:1)는 것입니다.


"29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제물을 들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대상 16:29)


성도 여러분, 이 한 절에 동사가 네 개 있습니다. 피조물이 창조주의 보좌 앞으로 다가가는 숨 막히는 모습을 네 개의 동사로 그리고 있습니다.

첫째, 하부(돌리라)는 하나님의 이름의 앞도적 무게(영광)를 인정하라!

둘째, 세우(들어 올리라)는 제물을 손에 들고 하나님께 바치라! 전적인 헌신!

셋째, 보우(들어오라)는 하나님의 얼굴 앞이라는 치명적인 공간으로 담대히 나아오라는 명령입니다.

넷째, 히쉬타하부(엎드려 절하라)는 절대 주권자 앞에서의 완전한 무장 해제(굴복)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못 박습니다. 예배자의 엎드림은 단순한 예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는 하나님의 거룩함 한복판에서, 생존을 갈구하며 피조물의 자리를 뼈아프게 재확인하는 자세입니다. 우리가 예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보다 정확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시편 96편 8절은 "그의 궁정에 들어갈지어다"인데 역대기는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입니다. "저자가 독자를 찬양으로 인도할 때, 궤가 선 장소는 그것이 대표하는 분의 임재보다 덜 중요했다."

장소보다 그분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2. 모든 나라 중에서는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 (16:30~33)


"30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아니하는도다" (대상 16:30)

30절의 "떨지어다"가 히브리어 힐루(חִילוּ)입니다. '경련하다', '몸부림치다', '고통 당하다'라는 뜻의 동사 훌의 칼 명령형입니다. 이 동사는 극심한 고통이나 외부 압력에 의해 신체가 뒤틀리며 경련하는 것을 뜻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여호와께서 출애굽과 광야 여정에서 신적 권능을 나타내실 때, 그것을 목도한 이방 민족들이 느끼는 공포와 마비를 묘사하는 데 주로 사용됩니다.

언약궤의 예루살렘 입성이 국지적인 종교 행사에 머물지 않고, 세상 전체의 지각을 요동치게 만드는 우주적 왕의 귀환으로 규정됩니다.


성도 여러분,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이 노래의 절정이 옵니다.

"31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모든 나라 중에서는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 할지로다 32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이 외치며 밭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은 즐거워할지로다" (대상 16:31~32)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

성도 여러분, 여기가 이 노래 전체의 표어입니다. "여호와는 왕이시다"


그런데 이 구절에 대단히 중요한 일이 하나 벌어졌습니다. 시편 96편에서는 이 말이 10절 첫머리에 있습니다.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않으리라 그가 만민을 공평하게 심판하시리라 할지로다." 그런데 역대기는 이 선언을 31절 끝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잘라 냈느냐입니다.

시편 96편 10절의 "그가 만민을 공평하게 심판하시리라"와 96편 13절 후반의 "그가 의로 세계를 심판하시며"가 삭제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석합니다. 만민에 대한 보편 심판은 이 문맥의 직접 관심이 아니다.

열방을 향해 외치는 소식에서 심판의 위협을 빼고, "왕이 계시다"는 소식만 남겼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하늘이 기뻐하고', '땅이 즐거워하는' 거대한 우주의 무대를 먼저 세웁니다. 그러고 나서 '이방 민족들 가운데' 간단명료한 진리가 선포됩니다. 단 두 단어로 된 아도나이 말라크는 절대 명제입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왕이 되셨다" 혹은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라는 뜻입니다. 이 구문은 미래에 도래할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현재의 시공간에 확정적으로 쐐기를 박은 역사적이고 사법적인 완료의 선언입니다.

미래형이 아니라 완료형입니다. 이미 왕이 되셨습니다.


"33 그리할 때에 숲속의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 주께서 땅을 심판하러 오실 것임이로다" (대상 16:33)

나무가 노래합니다. 32절의 "즐거워할지로다"는 히브리어 **야알로츠(יַעֲלֹץ)인데, '기뻐하다', '기뻐 날뛰다'라는 뜻으로, 내면의 벅찬 감정이 육체의 움직임으로 표출되어 뛰놀거나 격렬하게 기뻐하는 역동적인 동작을 의미합니다. 주로 전쟁에서 승리한 자가 발산하는 통제 불가능한 환희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무생물인 밭과 농경지를 마치 전투에서 승리한 군인처럼 생동감 넘치는 인격체로 의인화한 것입니다.


바다가 외치고 밭이 뛰고 나무가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크심을 하늘(31절), 온 땅(23절), 바다·밭·나무(32~33절), 열방의 족속(28절)으로 확장되며 모두 찬양에 동원됩니다.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사 55:12)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눅 19:40)


그리고 성도 여러분,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가 신약에서 어떻게 울립니까?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계 11:15)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빌 2:9~10)


3. 찬양이 간구로 끝나다 — "우리를 구원하여 모으소서" (16:34~36)


"34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대상 16:34)

여기서 세 번째 조각이 붙습니다. 시편 106편 1절입니다.

"인자하심"이 히브리어 **헤세드(חֶסֶד)**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고 변함없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 어구는 역대기의 빈번한 후렴(대하 5:13; 7:3; 20:21)으로, 구약 찬양의 중심 주제가 하나님의 사랑임을 보여 줍니다. "이 후렴이 구약 찬양과 예배의 심장에 놓여 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여기서 이 웅장한 노래가 어떻게 끝나는지를 보십시오.

"35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여 만국 가운데에서 건져 내시고 모으사 우리로 주의 거룩한 이름을 감사하며 주의 영광을 드높이게 하소서 할지어다" (대상 16:35)

찬양이 간구로 끝납니다.

성도 여러분, 이상하지 않습니까. 스물여덟 절을 "위대하시다, 통치하신다, 하늘이 기뻐한다"고 외쳐 놓고, 마지막에 와서 "우리를 구원해 주소서"라고 합니다.

원래 시편 106편 47절에는 없던 두 히브리어가 첨가되었습니다. "우리 구원의"와 "우리를 건지소서"입니다.

그러니까 이 노래를 엮은 사람이 마지막에 일부러 두 마디를 더 넣었습니다. "구원하여" 그리고 "건져 내시고."


34~36절은 노래하는 이들이 언약 관계를 자기 것으로 붙드는 개인적 외침입니다.

"여호와여, 당신은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과거에 행하시고 말씀하신 모든 것으로 찬양합니다. 이제 내 삶에도 행하시고 말씀하소서!"

성도 여러분, 감사한 사람만이 담대히 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한 절 묵상이 정확히 그 자리를 짚습니다.

"참된 예배는 감격을 넘어 기도로 이어집니다. 다윗은 언약궤 앞에서 감격하면서도 간절한 기도를 잊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격은 그의 마음과 시선을 공동체의 아픔과 현실로 향하게 합니다. 참된 예배를 경험한 사람은 은혜의 기쁨에만 머물지 않고, 그 감격을 기도의 책임으로 이어 갑니다."


35절은 평행 본문에 없는 "이르기를"을 추가함으로써 역대기 저자는 청중에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기 위해 그들을 위한 기도문을 긴 기도문 안에 제공한 것입니다.


"36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하매 모든 백성이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양하였더라" (대상 16:36)

여기서도 원문이 바뀌었습니다. 시편 106편 48절은 "모든 백성들아 아멘 할지어다" — 명령형입니다. 그런데 역대기는 "모든 백성이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양하였더라" — 진술입니다.

성도 여러분, 명령이 응답이 되었습니다. "아멘 하라"가 "아멘 하였더라"가 되었습니다.

주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노래하라는 명령은 여전히 그의 백성 사이에 울린다. 그리고 그의 백성은 여전히 "아멘" 하며 주를 찬양한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여 모으소서"라는 이 기도가 어디서 응답됩니까.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요 11:51~52)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계 5:9)

"모으소서"라는 이 기도는 십자가에서 응답되었습니다.


맺는 말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다시 꿰어 봅시다.

헛것들 앞에서 "여호와께서 하늘을 지으셨다"고 선포했고, 온 우주가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고 외쳤고, 그 찬양이 "우리를 구원하여 모으소서"라는 기도로 닫혔고, 모든 백성이 아멘 했습니다.


선포 — 통치 — 간구 — 아멘


"하나님의 구원을 온 세상에 선포해야 합니다(23~29절). 온 땅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 앞에서 기뻐해야 합니다(30~33절). 하나님의 영원한 인자하심을 찬양해야 합니다(34~36절)."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기를 꺼리지는 않습니까? 구원의 기쁨을 간직한 성도는 그 기쁨을 반드시 나누어야 합니다.


찬양의 근거는 현재의 상황이 아니라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성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찬양할 수 있는 이유가 상황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그분이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생명의 삶 묵상 에세이가 이런 이야기를 전합니다.

일본의 '히키코모리'처럼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고든 맥도날드는 친밀함을 '영혼의 연료'라 불렀습니다. 아무리 물질이 풍족해도 관계의 결핍을 겪는 영혼은 정신적 기아 상태에 빠지기 쉽습니다. 인간을 향한 진정한 치유는 온 우주를 만드신 창조주의 주권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분의 주권을 고백할 때 우리는 비로소 고립과 단절의 어둠을 뚫고 나올 생명력을 얻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를 회복시키는 힘은 하나님의 영원한 인자하심, 곧 '헤세드'라 불리는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흩어진 백성을 다시 불러 모으고, 척박한 삶의 현장에서도 새로운 공동체를 세워 가는 동력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 35절의 "모으사"가 바로 그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붙들 말은 이것입니다.

첫째, 예배는 전령의 직무입니다. 바쎄루 — 승전보를 타전하듯 선포하라는 명령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양은 우리 안에서 끝나는 소리가 아니라 국경을 넘어가는 소식입니다.

둘째,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는 미래형이 아니라 완료형입니다. 아도나이 말라크 — 이미 왕이 되셨습니다. 뉴스가 아무리 시끄러워도, 세상 어느 자리에도 그분의 통치 바깥은 없습니다.

셋째, 찬양이 간구로 끝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이 위대한 노래의 마지막 말이 "구원하소서"입니다. 감사한 사람만이 담대히 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구원하여 모으소서"라고 올려 드려야 할 이름이 누구입니까.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그 왕은 보좌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즉위하셨습니다.


오늘의 찬양

1. 새찬송가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 오늘의 찬송.


2. 복음 들고 - 그의 구원을 날마다 선포하는 즐겁고 신나는 발걸음


3. 영광을 돌리세 -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1. 26절은 "만국의 모든 신은 헛것이나"라고 선언합니다. 엘로힘과 엘릴림은 소리가 거의 같습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있는 것, 없으면 불안해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그것을 "헛것"이라고 이름 붙여 하나님 앞에 내려놓겠습니까?


2. 이 위대한 찬양의 마지막 말은 "우리를 구원하여 … 모으소서"입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 "모아 주소서"라고 올려 드려야 할 이름은 누구입니까? 오늘 그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시겠습니까?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1. 더빛교회의 예배가 우리 안에서만 울리는 소리가 아니라 바쎄루, 곧 세상을 향해 승전보를 타전하는 전령의 직무가 되게 하시고, 우리 성도들이 자기 자리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담대히 말하게 하소서.


2. 우리의 찬양이 감격에서 멈추지 않고 기도로 이어지게 하시고, 흩어져 있는 우리 교우들과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구원하여 건져 내시고 모으사" 함께 아멘 하는 자리에 서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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