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에스겔 48장 23-35절
- 박정배

- 18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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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삼마
본문: 에스겔 48장 23절 ~ 35절
여는 말
오늘로 에스겔서가 끝납니다. 지난 두 달 동안 우리는 긴 여정을 걸어왔습니다. 파수꾼의 나팔에서 시작해(33장), 마른 뼈가 살아나고(37장), 곡의 전쟁을 지나(38~39장), 새 성전을 측량하고(40~42장), 영광이 돌아오는 것을 보았으며(43장),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강을 따라(47장)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에스겔서 마지막 절에서 하나님은 그 성읍에 새 이름을 지어 주십니다.
"여호와 삼마."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 이 한마디가 에스겔서 마흔여덟 장의 결론이자, 성경 전체의 결론입니다. 오늘 새벽, 이 이름을 마음에 새기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의 임재를 중심으로 새롭게 배치됩니다 (23~29절)
"그 나머지 지파는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베냐민의 몫이니라" (48:23)
거룩한 구역을 기준으로 남쪽 땅이 분배됩니다. 베냐민, 시므온, 잇사갈, 스불론, 갓 지파가 차례로 몫을 받습니다. 이 지파들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위치의 땅을 갖게 됩니다.
흥미로운 배치가 있습니다. 거룩한 구역을 중심으로 먼 곳에는 야곱의 첩 빌하와 실바 자손의 땅이, 가까운 곳에는 본처 레아와 라헬 자손의 땅이 위치합니다(48:1~7, 23~29). 회복될 땅의 분배는 단순한 지리적 분배가 아니라, 성소가 있는 거룩한 구역 곧 하나님의 임재를 중심으로 새로운 질서에 따라 재배치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복의 본질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임재를 기준으로 다시 정렬됩니다.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관계도, 우선순위도, 시간과 물질의 사용도 — 하나님이 중심에 계실 때 비로소 제자리를 찾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2. 열두 문이 열린 성읍 (30~34절)
"그 성읍의 출입구는 이러하니라 북쪽의 너비는 사천오백 척이라 그 성읍의 문들은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을 따를 것인데 북쪽으로 문이 셋이라 하나는 르우벤 문이요 하나는 유다 문이요 하나는 레위 문이며" (48:30~31)
거룩한 구역 안에 있는 성읍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성읍은 너비와 길이가 약 2.4킬로미터인 정사각형이고, 성벽 사면에 문이 세 개씩 모두 열두 개 있습니다. 북쪽은 르우벤·유다·레위 문, 동쪽은 요셉·베냐민·단 문, 남쪽은 시므온·잇사갈·스불론 문, 서쪽은 갓·아셀·납달리 문입니다.
열두 지파의 이름이 문마다 새겨져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이 성읍은 하나님 백성 전체가 출입하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어느 한 지파의 성읍이 아니라 모두의 성읍입니다. 어느 방향에서 오든 자기 이름이 적힌 문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을 요한이 그대로 이어받습니다.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계 21:12). 그리고 그 성의 문은 결코 닫히지 않습니다.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계 21:25).
3. 그 성읍의 이름은 여호와 삼마 (35절)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48:35)
에스겔서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하나님은 그 성읍에 이름을 지어 주십니다. '여호와 삼마'. 히브리어로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이 얼마나 놀라운지 생각해 보십시오. 에스겔서의 앞부분에서 우리가 본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 동쪽 산으로 올라가시던 장면이었습니다(11:23). 그때 예루살렘의 이름은 사실상 '이가봇', 곧 "영광이 떠났다"였습니다(삼상 4:22). 그런데 이제 그 도성의 이름이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로 바뀝니다.
에스겔이 전하는 회복의 핵심은 건물도, 땅도, 제도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회복의 완성은 새로운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은 우리에게서 성취되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3). 여호와 삼마가 임마누엘로 오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그리고 주님은 떠나시며 약속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마침내 요한이 본 마지막 환상에서 이 이름이 완성됩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계 21:3~4).
오늘 묵상 에세이가 전하는 이야기가 마음에 남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수많은 유대인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비극의 현장에서 사람들은 물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그런데 전쟁이 끝난 후, 수용소 벽면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묵상하게 하는 글귀가 발견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성경적인 역사관이 담긴 고백을 한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확히 계획하신 시간, 카이로스의 때에 심판과 회복을 이루십니다. 내 지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맺는 말
에스겔서는 "여호와 삼마"로 끝납니다. 하나님이 거기에 계십니다. 이것이 마흔여덟 장의 결론입니다.
떠나셨던 영광이 돌아오셨고, 다시는 얼굴을 가리지 않으시겠다 하셨고, 마침내 그 도성의 이름이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가 되었습니다. 불완전한 세상 가운데 완전한 나라에 대한 소망을 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답게 죄를 멀리하고 성결함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그리고 남은 인생 동안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과 동행하며,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시겠다는 그 약속을 굳게 붙들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찬양
새찬송가 246장 〈나 가나안 땅 귀한 성에〉 — 오늘의 찬송. 하나님이 계신 영원한 성을 향한 소망을 노래합니다.
〈임마누엘〉 — 여호와 삼마가 임마누엘로 오신 성취를 고백하는 곡입니다.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에스겔서의 결론은 제도나 건물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였습니다. 지금 내 삶에서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는 사실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자리는 어디입니까?
두 달 동안 에스겔서를 함께 읽었습니다. 가장 마음에 남은 말씀 한 구절은 무엇이며, 그 말씀이 내 삶에서 실제로 무엇을 바꾸었습니까?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더빛교회가 '여호와 삼마', 하나님이 거기 계시는 공동체가 되게 하시고, 우리가 모이는 모든 자리에 주님의 임재가 충만하게 하소서.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혼란의 시대에도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믿게 하시고, 완전한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오늘을 기쁘게 살아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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