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에스겔 39장 11-20절
- 박정배

- 2일 전
- 4분 분량
나의 영광이 나타나는 날
본문: 에스겔 39장 11절 ~ 20절
여는 말
어제 우리는 곡의 군대가 하나님의 손에 완전히 무장 해제되고, 약탈하던 자가 도리어 약탈당하는 완벽한 역전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승리 이후의 두 장면을 보여 줍니다. 하나는 죽임당한 대군을 매장하여 땅을 정결케 하는 칠 개월의 작업(11~16절)이고, 다른 하나는 그 시체를 새와 들짐승에게 잔치로 내어 주시는 하나님의 승리의 만찬(17~20절)입니다. 죽음의 잔해를 치우는 정결의 수고와, 승리를 기념하는 잔치의 기쁨이 한 본문 안에 나란히 놓입니다. 오늘 새벽 이 두 장면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함께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1. 거룩한 백성은 죽음의 잔해까지 정결하게 합니다 (11~16절)
"그 땅 모든 백성이 그들을 매장하고 그로 말미암아 이름을 얻으리니 이는 나의 영광이 나타나는 날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9:13)
곡의 거대한 무덤이 될 골짜기에 이름이 붙습니다. "하몬곡", 곧 '곡의 무리'라는 뜻입니다. 죽임당한 군사의 수가 너무 많아서, 바다 동쪽 사람들이 통행하던 넓은 골짜기 전체가 매장지로 쓰이고, 그 길이 막힐 정도입니다(11절). 천하를 호령하던 제국의 군대가 거대한 공동묘지를 이루는 이 장면은, 하나님을 대적한 세상 권력의 허무함을 기념하는 비석이 됩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 매장 작업이 온 백성의 몫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일곱 달 동안에 그들을 매장하여 그 땅을 정결하게 할 것이라"(12절). 여기 '정결하게 하다'(타헤르)는 부정하게 된 사람이나 사물이 정해진 의식을 거쳐 다시 성소에 접근할 수 있는 거룩한 상태로 회복되는 것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매장되지 않은 시체는 땅을 심각하게 오염시키므로, 온 백성이 칠 개월 동안 뼈 하나까지 찾아내어 묻는 전면적인 정화 작업을 수행합니다.
그리고 13절이 이 수고에 놀라운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 땅 모든 백성이 그들을 매장하고 그로 말미암아 이름을 얻으리니 이는 나의 영광이 나타나는 날이니라." 시체를 치우는 궂은일,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을 그 수고가 도리어 백성에게 '이름'을 얻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날이 됩니다. 정결 작업이 일부 특별한 사역자들만의 일이 아니라 회복된 언약 공동체 전체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거룩한 성전(聖戰)의 연장선이기 때문입니다. 부정한 시체를 치우며 수고하는 이 헌신이 도리어 그들 자신에게 영광스럽고 명예로운 이름을 안겨 줍니다. 우리 삶에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드러나지 않는 수고들이 있습니다. 뒤에서 조용히 치우고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자리들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그런 자리가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자리요, 참된 이름을 얻는 자리입니다.
14절 이하는 이 정결 작업이 결코 대충 끝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칠 개월이 지나도 사람을 택하여 그 땅에 "늘"(타미드) 순행하며 남은 시체를 찾아 매장하게 하십니다. '타미드'는 성전 제의에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드리는 상번제나 항상 켜 두어야 하는 등불을 묘사하는 단어로, 중단 없이 지속되는 항구적 의무를 나타냅니다. 죽음의 오염을 제거하는 땅의 정결 작업이 상번제를 드리는 것과 동일한 규칙적 의무로 격상된 것입니다. 거룩함을 유지하는 일에는 치열한 일상의 대가가 필요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심의 큰 승리 이후에도, 우리 안에 남은 죄의 잔해와 옛사람의 흔적을 끊임없이 찾아 정리하는 일상의 정결함이 필요합니다.
2. 하나님이 친히 승리의 잔치를 베푸십니다 (17~20절)
"인자야 너는 각종 새와 들의 각종 짐승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모여 오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예비한 큰 잔치 곧 이스라엘 산 위에 예비한 잔치로 너희는 사방에서 모여 살을 먹으며 피를 마실지어다" (39:17)
이제 장면이 완전히 바뀝니다. 하나님은 각종 새와 들짐승을 향해 잔치에 초대하는 나팔을 부십니다. "이스라엘 산 위에 예비한 잔치"라는 표현은 하나님께 제사드린 후 그 기쁨을 함께 나누어 먹는 '화목제'를 떠올리게 합니다. 곡의 살육당한 군대가 오히려 하나님이 차리신 성대한 만찬의 재료가 됩니다. 18절은 그 잔치의 규모를 더욱 실감나게 묘사합니다. "너희가 용사의 살을 먹으며 세상 왕들의 피를 마시기를 바산의 살진 짐승 곧 숫양이나 어린양이나 염소나 수송아지를 먹듯 할지라."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위엄 있던 왕들과 용사들이, 마치 잔칫상에 오르는 살진 가축처럼 취급됩니다. 스스로 세상의 중심이라 자부하던 제국의 위세가 이보다 더 철저히 조롱당할 수 없습니다.
19~20절에서 그 잔치의 절정에 이릅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예비한 잔치의 기름을 너희가 배불리 먹으며 그 피를 취하도록 마시되." 여기 '취하도록'(레슈크론)은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할 정도로 만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골짜기가 피로 가득 차 짐승들마저 통제력을 잃을 정도로 만취하는 이 소름 끼치는 이미지는, 하나님을 대적한 무리가 치러야 할 끔찍한 대가를 적나라하게 서술합니다. 그리고 20절, "내 상에서 말과 기병과 용사와 모든 군사를 배부르게 먹을지니라." 하나님 자신이 이 잔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 본문 해설의 통찰처럼, 이 참혹한 심판 잔치는 역설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보여 줍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불의와 악을 물리치시고 참된 통치자로 재림하시는 그날, 우리는 그분의 승리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묵상 에세이의 물음처럼, 환난과 곤고함과 기근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며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까? 우리는 이 물음에 논리적으로 답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오늘 본문이 예언하는 잔혹한 심판의 잔치는 역설적으로 우리의 궁극적 승리를 보증합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 땅의 모든 불의와 악을 물리치시고 참된 통치자로 재림하시는 날, 우리는 그분의 승리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그 영광스러운 날을 소망하는 성도는 날마다 죄와 치열하게 싸우며 살아갑니다. 그 거룩한 싸움의 자리에서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하신 주님의 약속이 승리의 깃발을 드높일 것입니다.
맺는 말
거룩한 백성은 죽음의 잔해까지 정결하게 하는 수고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은 친히 승리의 큰 잔치를 베풀어 대적을 완전히 조롱거리로 만드십니다. 오늘 하루,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의 조용한 수고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자리임을 기억하고, 지금의 환난과 싸움이 결국 그분의 승리의 잔치로 끝날 것을 믿으며 담대히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찬양 (추천 2~3곡)
새찬송가 264장 〈정결하게 하는 샘이〉 — 오늘의 찬송. 정결하게 하는 샘이 내 앞에 있으니 성령께서 권고하심 죄 씻으라 하신다는 고백이, 죽음의 오염을 정결케 하시는 오늘 본문과 맞닿습니다.
정결한 맘 주시옵소서
새찬송가 246장 〈나 가나안 땅 귀한 성에〉 — 승리의 잔치와 영광의 나라를 향한 소망을 노래하며, 오늘 본문이 예언하는 궁극적 승리를 바라보게 합니다.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내 삶과 신앙생활 속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조용히 감당해야 할 정결의 수고, 곧 죄의 잔해를 치우는 일상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그 자리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자리임을 믿고 있습니까?
지금 내가 겪는 환난이나 싸움 가운데, 하나님이 예비하신 궁극적 승리의 잔치를 소망하며 살고 있습니까? 오늘 그 소망으로 힘을 얻어야 할 영역은 무엇입니까?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더빛교회 성도들이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서의 수고와 헌신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그 섬김에 참된 기쁨과 의미를 발견하게 하소서.
지금의 환난과 싸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예비하신 궁극적 승리의 잔치를 소망하며, 날마다 죄와 치열하게 싸우는 거룩한 성도가 되게 하소서.

시체를 치우는 일을 한다고 잠시 상상해 보았다. 처참한 광경을 마주하기가 두렵고 지독한 악취에 고통스러울 것 같다. 승리를 했다고 할지라도 들짐승들이 시체를 먹어치우는 모습 앞에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
오늘 본문에서는 승리의 기쁨도 잠시, 시체를 치우는 수고가 있어야 함을 보여준다.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 그 기간이 한달 두달, 7개월, 1년이 걸려도 기꺼이 수행한다.
구원받은 이후의 삶은 곧 잔혹한 승리의 심판 잔치에 초청된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본문을 기준으로 보니 하나님 자녀 된 자에게 허락된 잔치는 내가 막연히 생각하던 놀고 먹고 즐기는 잔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시체를 치우며 매일 죄의 결과를 마주하는 것, 그렇게 날마다 구역질나는 죄를(시체)치우며 죄를 미워하게 되고, 삶의 목표가 오직 정결(거룩)로 정해지는 삶, 이것이 주님이 허락하신 잔치인 것 같다.
그동안 주님의 잔치에 초청받았으나 잔치의 목적에서 벗어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