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에스겔 38장 14-23절
- 박정배

- 9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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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이끌어다가
본문: 에스겔 38장 14절 ~ 23절
여는 말
지난주 우리는 마른 뼈가 살아나고(37장), 두 막대기가 하나 되며, 다윗의 자손 아래 영원한 화평의 언약이 세워지는 회복의 절정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회복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38장이 열리자마자 사방에서 곡의 연합군이 몰려옵니다. 겨우 일어섰는데 다시 어려운 일이 몰려오는 것입니다. 회복의 기쁨도 잠깐, 또 다른 위협 앞에 무릎이 꺾일 것 같은 자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시고 친히 나서십니다. 오늘 본문은 나를 대신해 싸우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여 줍니다. "내가 너를 이끌어다가"(16절) — 원수의 침공조차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이 놀라운 선언을 오늘 새벽 함께 붙들기를 원합니다.
1. 침공의 기세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14~16절)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치러 오면 이는 내가 너로 말미암아 이방 사람의 눈앞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그들이 다 나를 알게 하려 함이라" (38:16)
14절에서 하나님은 곡에게 묻습니다.
"내 백성 이스라엘이 평안히 거주하는 날에 네가 어찌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은 이제 화평의 언약 아래 안전하게 삽니다(34:25~29). 그런데 바로 그 평안한 때를 노려 북쪽 끝에서 많은 백성, 말을 탄 큰 무리와 능한 군대가 구름처럼 땅을 덮으며 몰려옵니다(15~16절). 인간의 눈으로 보면 완벽한 침략의 순간입니다. 곡은 성벽 없이 평안히 거하는 백성을 손쉬운 먹잇감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16절 후반부가 완전히 다른 그림을 보여 줍니다. "내가 너를 이끌어다가 내 땅을 치게 하리니." 곡이 스스로 침공을 결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님이 그를 이끌어 오신 것입니다. 여기 '이끌다'(베하비오티카)는 히필 사역형입니다. 단순히 '데려오다'가 아니라 '내가 너로 오게 한다'는 뜻으로, 침략자의 자발적 의지 아래 감춰진 외부의 주권적 통제를 나타냅니다. 최고 통수권자를 자처하는 자가 사실은 보이지 않는 레일 위를 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목적이 분명합니다. "이는 …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그들이 다 나를 알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강대한 세력을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자리에 세워 두심으로써, 그 백성이 진정으로 얼마나 안전한지를 온 세상 앞에서 입증하려 하십니다. 성벽 없는 마을에 사는 백성의 안전은 성벽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입니다. 우리 삶에도 애써 일어섰는데 또 다른 위협이 몰려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위협이 다가오는 순서와 방향과 시점조차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합니다.
롬 8:31의 정확한 반명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대적하시면 누가 우리를 위하리요"(38:3) — 뒤집어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능히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2. 오래된 예언이 오늘 성취됩니다 (17절)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옛적에 내 종 이스라엘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한 사람이 네가 아니냐 그들이 그 때에 여러 해 동안 예언하기를 내가 너를 이끌어다가 그들을 치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38:17)
17절은 히브리어 원문 그대로 읽으면 "네가 그 사람이냐?"라는 질문입니다. 사무엘하 7장에서 하나님이 다윗에게 "네가 나를 위하여 집을 건축하겠느냐" 물으시며 부정적 대답을 기대하셨던 것처럼, 이 질문도 부정적 답을 전제합니다. 요점은 곡이 하나님께 신적으로 위임받은 심판의 대행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곡 자신은 스스로 위대한 정복자라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실상 그는 오래전부터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 경고되어 온 하나님과 백성의 철저한 원수일 뿐입니다. 그의 침공은 갑작스럽고 우발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예언자들이 경고해 온 그 종말론적 심판이 마침내 성취되는 순간입니다. 곡에게는 새로운 침략의 역사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이미 하나님의 각본 안에 기록된 사건일 뿐입니다.
우리 삶에도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묻습니다. "하나님, 왜 이런 고난이 찾아온 거죠?"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고난의 시간도 목적 없이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요셉은 형들 때문에 극심한 고난의 세월을 보냈지만, 하나님은 그 과정을 통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시는 목적을 이루셨습니다(창 50:20). 하나님은 가장 절망적인 시각까지도 당신의 목적 안에서 주관하고 계십니다. 지금 내 앞에 몰려오는 어려움이 아무리 압도적이어도, 그것은 하나님의 각본 밖에서 일어난 사고가 아닙니다.
3. 하나님이 친히 전쟁에 개입하십니다 (18~23절)
"그 날에 곡이 이스라엘 땅을 치러 오면 내 노여움이 내 얼굴에 나타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질투와 맹렬한 노여움으로 말하였거니와 그 날에 큰 지진이 이스라엘 땅에 일어나서" (38:18~19)
이제 하나님이 친히 전쟁에 뛰어드십니다. 노여움이 폭발합니다. 여기 '노여움'(하마)은 체온이 급격히 상승하고 거친 숨을 내쉬는 짐승의 생리적 '열기'가 원형이 되는 단어로, 언약이 파기되거나 거룩한 처소가 침범당하는 상황에서 발산되는 압도적인 신적 진노를 표현할 때 씁니다. 곡의 침공이 이스라엘 영토를 밟는 순간 폭발하는 진노입니다. 그리고 19절, '지진'(라아쉬)은 창조 세계가 신현 앞에서 물리적으로 반응하며 요동치는 현상을 묘사할 때 쓰이는 단어입니다. 곡의 거대한 군사력이 일순간에 무력화되고 창조계의 질서를 뒤흔드는 우주적 철거 작업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정교한 진영을 갖춘 대군도 대지 자체가 흔들리는 이 근원적 진동 앞에서는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이어지는 20~22절은 심판의 전면적 규모를 보여 줍니다.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지면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떨고, 산이 무너지고 절벽이 떨어지고 성벽이 땅에 무너집니다(20절). 그리고 하나님은 곡의 모든 산에서 칼을 부르시니 "각 사람이 칼로 그 형제를 칠 것이며"(21절), 전염병과 피와 폭우와 큰 우박과 불과 유황이 쏟아집니다(22절).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연합군이 스스로를 파괴하는 자중지란에 빠지는 것입니다. 제국의 군사력이 신적 소환령 앞에서 상호 살육의 혼돈으로 해체되고, 인간의 무력이 스스로를 파괴하는 도구로 사용됩니다. 큰 우박(엘가비쉬)이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오직 이 본문에만 등장하는데, 파괴적 무게를 지닌 낙하물, 하늘에서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심판의 이미지로 예비된 단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23절이 이 모든 것의 목적을 선언합니다. "이같이 내가 여러 나라의 눈에 내 위대함과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나를 알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원문에는 하나님 스스로를 주어로 하는 세 개의 1인칭 동사가 연이어 나옵니다. 내가 스스로를 크게 하리라, 내가 스스로를 거룩하게 하리라, 내가 나를 알리리라. 오직 하나님 스스로, 어떤 외부 존재의 도움도 없이 당신의 존엄과 거룩하심을 세우시고 입증하시고 증명하십니다. 이 자기 증명의 무대는 "많은 나라들의 눈앞"입니다. 열방은 심판의 대상인 동시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지닌 우주적 위엄을 목격해야 하는 관객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대적의 악한 계략을 다 아시고, 우리 대신 싸워 주십니다. 혼자 감당하기에 너무 무거운 짐, 사방이 막혀 버린 것 같은 현실, 버텨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상황 앞에 서 계십니까. 바로 그 자리에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우리를 대신해 내 대적과 싸워 주십니다.
맺는 말
침공의 기세도, 예언의 성취도, 전쟁의 승패도 모두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겨우 일어섰는데 다시 몰려오는 어려운 일들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 무장하고 스스로 싸우려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너는 스스로 예비하되 너와 네게 모인 무리들이 다 스스로 예비하고"(7절)라는 명령처럼 곡은 준비했지만, 결국 그가 준비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도구가 되었을 뿐입니다. 오늘 하루, 내 앞의 위협과 전쟁 같은 상황을 나 홀로 짊어지지 말고, 나를 대신해 싸우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이 믿음으로 담대히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찬양 (추천 2~3곡)
새찬송가 325장 〈예수가 함께 계시니〉 — 오늘의 찬송. 이 세상 사는 동안 주가 함께 계시니 시험도 겁날 게 없다는 고백이, 나를 대신해 싸우시는 하나님을 그대로 노래합니다.
새찬송가 383장 〈눈을 들어 산을 보니〉 — "나의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 지으신 여호와께로다"(시 121편) — 위협 앞에서 도움의 근원을 바라보게 하는 찬송입니다.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겨우 일어섰는데 또 다른 어려움이 몰려오는 것 같은 자리가 지금 내 삶에 있습니까? 그 위협의 시점과 규모조차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어떤 위로가 됩니까?
나는 어려움 앞에서 스스로 무장하고 홀로 싸우려 애써 왔습니까, 아니면 나를 대신해 싸우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있습니까? 오늘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겨야 할 싸움은 무엇입니까?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더빛교회 성도들이 크고 작은 위협 앞에서 성벽이나 자기 힘이 아니라 나를 대신해 싸우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담대한 믿음을 갖게 하소서.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시간을 지나는 성도들에게, 그 고난조차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 안에 있음을 깨닫고 낙심하지 않는 은혜를 부어 주소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교회의 걸음에 성령 안에서 평안케 하시고 곡의 침공에도 믿음으로 하나되어 나가는 교회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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