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에스겔 29:1-16
- 박정배

- 1일 전
- 3분 분량
갈대 지팡이가 아닌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본문: 에스겔 29장 1~16절
여는 말
두로와 시돈을 향한 심판 예언이 끝나고, 오늘부터 하나님의 시선은 남쪽의 강대국 애굽을 향합니다. 때는 "열째 해 열째 달 열두째 날"(1절), 곧 주전 587년 1월경으로,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포위되어 숨이 넘어가던 바로 그 시기입니다. 유다가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희망이 애굽이었기에, 하나님은 오늘 그 애굽의 실체를 벗기시며 우리가 정말 의지해야 할 분이 누구신지 묻고 계십니다.
1. 스스로 창조자라 말하는 교만을 하나님은 대적하십니다 (1~5절)
"애굽의 바로 왕이여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가운데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 (3절)
애굽은 나일강을 중심으로 거대한 제국을 이룬 나라였습니다. 해마다 범람하며 기름진 땅을 만들어 주는 나일강은 애굽의 생명줄이었고, 바로는 그 강을 가리켜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고 큰소리쳤습니다. 자신을 '나일강의 창조자'로 여긴 것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자의 자리에 앉는 것, 이것이 교만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바로를 강들 가운데 누운 '큰 악어'에 비유하십니다. 여기 '큰 악어'는 히브리어로 '탄님'인데, 바다나 강에 사는 거대한 괴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나일강의 악어처럼 자기 물속에서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최강자로 군림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그 위용은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하나님은 갈고리로 그 아가미를 꿰어 강에서 끌어내고, 들에 던져 들짐승과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4~5절). 당시 나일강에서 실제로 갈고리로 악어를 사냥하던 장면 그대로입니다. 물속의 왕도 뭍에 끌려 나오면 한낱 사냥감에 불과합니다. 내가 쌓은 것, 내가 이룬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도 작은 바로가 됩니다. 내 강처럼 보이는 모든 것이 사실은 하나님이 잠시 맡기신 은혜임을 고백하는 것, 거기서 겸손이 시작됩니다.
2. 갈대 지팡이를 의지하면 부러져 상처만 남습니다 (6~7절)
"애굽은 본래 이스라엘 족속에게 갈대 지팡이라 그들이 너를 손으로 잡은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어깨를 찢었고" (6~7절)
하나님은 애굽을 '갈대 지팡이'라 부르십니다. 나일강 가에 무성한 갈대는 겉보기에 곧고 그럴듯해서 지팡이로 삼고 싶어지지만, 체중을 싣는 순간 뚝 부러져 그 날카로운 단면이 손바닥을 뚫고 어깨를 찢어 놓습니다. 의지하지 않았으면 당하지 않았을 상처를, 의지했기 때문에 입는 것입니다. 이 표현은 이미 100여 년 전 앗수르의 랍사게가 히스기야에게 던진 조롱이기도 했습니다. "네가 의뢰하는 애굽은 상한 갈대 지팡이라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 손에 찔려 들어간다"(왕하 18:21). 그런데도 유다는 그 교훈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바벨론에 반기를 들며 애굽의 군사력을 믿었고, 그 결과 예루살렘은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우리에게도 저마다의 갈대 지팡이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비롯해, 통장 잔고, 인맥, 건강, 자녀, 지위 같은 것들입니다. 그것들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을 때 문제가 됩니다. 갈대는 갈대의 일을 할 뿐, 지팡이가 되어 줄 수는 없습니다. 성도는 세상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은 낮추심으로 참 의지처를 알게 하십니다 (8~16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의 의지가 되지 못할 것이요 …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16절)
하나님은 애굽 땅을 사십 년 동안 황무지로 만들고 애굽 사람들을 여러 나라에 흩으시겠다고 하십니다(10~12절). 그런데 놀랍게도 심판이 끝이 아닙니다. 사십 년 후에 그들을 다시 모아 고국 바드로스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13~14절). 다만 회복된 애굽은 다시는 나라들 위에 군림하지 못하는 '지극히 미약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15절). 왜 완전히 멸하지도, 예전처럼 높이지도 않으시는 걸까요? 16절이 그 이유를 밝힙니다. 애굽이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의 의지가 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애굽을 낮추시는 것은 애굽을 향한 분풀이가 아니라, 자기 백성이 다시는 헛것을 붙들지 않도록 아예 그 우상을 무력하게 만드시는 사랑의 조치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 삶에서 종종 무언가를 꺾으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내가 기대던 것이 무너질 때 우리는 아프지만, 그 자리에서 비로소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시구나"를 배웁니다. 에스겔서 전체에 후렴처럼 반복되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는 말씀이 이 단락에서도 세 번이나 울려 퍼집니다(6, 9, 16절). 세상의 모든 권세를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며, 그분만이 우리가 체중을 다 실어도 부러지지 않는 유일한 지팡이십니다.
맺는 말
오늘 본문은 세 가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첫째, 나일강을 내 것이라 말한 바로처럼 스스로 창조자 행세를 하는 교만을 하나님은 반드시 대적하십니다.
둘째, 애굽 같은 갈대 지팡이를 의지하면 부러져 어깨가 찢기는 상처만 남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가 기대던 것을 낮추심으로 참 의지처가 당신 한 분임을 알게 하십니다. 오늘 하루, 내 손이 무엇을 붙들고 있는지 살피고, 갈대가 아닌 반석 되신 하나님께로 손을 옮겨 잡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찬양 (추천)
새찬송가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생명의삶 오늘의 찬송) — "우리 주 예수뿐일세 … 주 나의 반석이시니", 갈대가 아닌 반석을 붙드는 오늘 본문의 고백 그대로입니다.
새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 세상 지팡이가 아닌 주님 안에서만 참 평안이 있음을 노래합니다.
찬양 「주만 바라볼지라」 — 애굽이 아닌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본문의 초청과 맞닿아 있습니다.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지금 내가 가장 의지하는 '갈대 지팡이'는 무엇입니까? 돈, 사람, 건강, 지위 중 하나님보다 앞서 붙들고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최근 하나님이 내 삶에서 꺾으시거나 흩으신 것이 있습니까?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계십니까?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더빛교회가 돈이나 사람 같은 갈대 지팡이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시고, 모든 사역의 성과 앞에서 "이 강은 내 것이라" 하지 않고 "주께서 하셨습니다" 고백하게 하소서.
세상의 힘에 기대다 부러져 상처 입은 영혼들이 우리 공동체 안에서 참 반석이신 예수님을 만나 회복되게 하소서.

주님 저를 인도하여 주세요. 주님께 저를 맡길 때, 그래서 무엇이든 말씀하여 주실 때 받아들이겠습니다. 주님이 나를 아시고, 주님이 내 정체성을 붙들고 계시기에. 저도 주님 안에서 발견된 바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 저를 어느때나 바라보고 계시지요? 저도 주님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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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리라. 내가 ~하였다.” 는 하나님의 문장이다. 그러나 애굽의 교만은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였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내가 하나님이 되어 하였다고 뒤집어 버렸다. 애굽은 필시 큰 강에 누운 큰 악어였다. 그런데 진정한 주권자되신 하나님은 못 보는 것이 교만한 자의 눈 먼 시선이다.
애굽의 주요 심판 원인은 이 교만이 전부는 아니다. 하나님이 진단하신 더 큰 문제는 애굽의 교만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이 하나님보다 애굽을 더 의지했다는 것이었다. 애굽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능력과 주권을 자랑할 때, 이스라엘은 이를 헛된 것으로…
우리가 하나님보다 다른걸 더 의지할 때, 그것이 갈대 지팡이와 같이 겉보기에는 의지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잡으면 부러져 상처를 남깁니다.
저에게 갈대 지팡이는 사람의 관심과 인정인 것 같습니다. 저는 뭘해도 인정받고자하는 욕구가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거나 내가 기대했던 만큼 인정받지 못하면 가던 길을 멈추고 뒤집거나 화를 냅니다. 사람의 인정과 관심이 동기가 되어 움직이기 때문에 제가 잘 못할 것 같거나 어려운 일은 쉽사리 시도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내 유익과 원함을 따라 선택하며 살아온 저에게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새로운 길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열어주신 길에 믿음으로 반응하기 위해서 제가 버려야할 갈대 지팡이는 인정받고 높아지고자하는 마음입니다. 이걸 버리지 않았기에 지금까지 계속 주저하며 왔음을 돌아봅니다. 이제 갈대 지팡이가 아닌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가고 싶습니다. 더이상 내가 드러나고 인정받는 자리와 일에만 나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말씀하시는 것에 마음을 드리며 함께 하기를 소원합니다. 저 개인의 유익에 의해서만 움직이고 살아온 저에게 공동체가 뭔지 깨닫게 하시고, 공동체안에 일하시는 주님을 붙잡고 함께 나아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바로의 거만한 마음이 바로 나의 마음이다.
교회 안에 반 평생 있었지만 구체적인 삶의 순간을 놓고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스스로 내 마음이 어떤지 볼 수 없을 만큼 내 마음이 너무 어둡고 어느새 너무 높아져있다는 것을 오늘 다시 보게 하신다.
어제 청년들과 인스타그램 마케팅 회의를 했다. 함께 회의하는 자리인데 거기에는 참여하지 않고 혼자서 찾아보는 모습에 대해 왜 그랬는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마음에 대해 돌아보니 인스타그램에 대해 잘 알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동희를 견제하는 마음이 있었고, 그것에 대한 수동적인 공격으로 함께 회의하는 것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혼자 알아보는 마음이 있었다.
남을 견제할만큼 잘하고 싶으면 혼자서 더 연구를 하면 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주도권은 쥐고 싶지만, 맡겨주신 분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지도 않는 정말 유치한…
바벨론 포로의 자리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그 자리에 갈 수밖에 없었는지 보게 하시는 본문이다. 바벨론으로부터 건져 줄 대상으로 애굽을 의지하였고 그것이 오히려 더 큰 멸망의 자리로 가게 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황무지로 만드시며 우리가 의지해야 할 유일한 대상은 하나님 여호와이심을 나타내신다. (16절) 이를 통해 다시는 애굽을 의지하지 못하게 끊으시며,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이키게 하신다.
나의 갈대 지팡이는 사람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나의 강력한 정욕과 원함을 채워줄 수 있는 이성이다. 인생의 많은 순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를 고민하기보다 당장 내가 의지하기 쉬운 사람을 선택해 왔다. 그리고 그 갈대 지팡이가 손을 찌르고 들어와 내 삶에 분명한 상처와 고통을 남겼다. 나의 영혼과 삶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헛된 대상이다. 늘 끝은 실패로 결론이 나며 하나님 외에는 내가 의지하고 돌아갈 곳이 없음을 보게 하신다. 포로된 고통 앞에서도 그 탈출구를 하나님 외의 것들에서 찾으려고 하는 교만, 그리고 불신앙.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애굽'이라는 대상을 오히려 황폐하게 하시며 심판하셔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신다는 점이 붙잡아진다. 내가 붙잡는 갈대 지팡이는 처절하게 실패하게 하시고 끊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며, 내 삶에 남은 실패의 흔적을 보며 결론 내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 같다. "네가 의지했던 것이 너의 인격에 무엇을 남겼는가. 헛된 것을 의지하는 삶에서 돌이키라. 내가 너의 창조주 하나님이다. 내가 너를 죄악과 고통에서 구원할 수 있다" 말씀하시는 것 같다.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고 사람으로 내 마음을 채우면서 어느 정도 그럴듯한, 그렇다고 최선을 다하지도 않는 삶을 살고 싶었다. 내 삶에 대한 조롱과 낙심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자포자기의 태도로 굳어졌다.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을 다른 사람의 실패를 보며 위안을 얻으려 했다. 또한 순간적이고 가벼운 관계와 정욕으로 내 자존감을 채우려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나의 삶의 동기와 기반을 드러내시며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쳐 내가 꾸려 보려고 했던 모든 시도들을 실패하게 하셨다. 이 28년의 방황을 끝내고 나의 자존감과 정체성은 오직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속에서만 충족될 수 있음을 결론 내리라고 하시는 것 같다.
겔 29:1~16 | 갈대 지팡이가 아닌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본문의 이해
하나님은 애굽을 두가지 비유를 통해 말씀하신다. 첫번째로 ‘강들 가운데 누운 큰 악어’의 비유이다. 애굽의 바로 왕은 나일강을 중심으로 거대한 제국을 이루었다고 한다. 바로 왕은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높이는 말을 한다. 이것은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자리에 서려고 하는 교만으로 시작된 마음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애굽이 강들 가운데 누운 큰 악어와 같다고 말씀하신다. 강들 가운데 있을때는 강해보이지만, 하나님은 애굽을 강들 가운데에서 끌어내어 들짐승과 공중의 새의 먹이로 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두번째로 갈대 ‘지팡이 비유’이다. 이스라엘이 의지하던 애굽은 갈대 지팡이와 같아서 겉으로는 의지할 수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그것을 의지할때 쉽게 부러지고 오히려 상처를 입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또, 하나님은 애굽을 심판하셔서 황폐한 황무지로 만들어 애굽 사람들을 각국 가운데로 흩으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