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아모스 2:1-8
마침내 이스라엘
본문: 아모스 2장 1절 ~ 8절
여는 말
어제 우리는 두로와 에돔과 암몬을 향한 심판을 들었습니다. 형제의 계약을 잊고, 긍휼을 버리고, 땅을 넓히려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가른 나라들이었습니다.
오늘 아모스는 한 나라를 더 부릅니다. 모압입니다.
그리고 방향을 돌립니다. 유다를 부릅니다. 마침내 이스라엘을 부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처음에 고개를 끄덕였을 것입니다. "그래, 저 나라들은 벌을 받아야지." 남의 죄를 들을 때는 마음이 편합니다.
그런데 원이 점점 좁혀 옵니다. 이웃 나라에서 형제 나라로, 형제 나라에서 바로 나에게로.
오늘 새벽, 말씀이 내 이름을 부르는 자리에 함께 섭니다.
1. 죽은 자의 뼈까지 (1~3절)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모압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가 에돔 왕의 뼈를 불살라 재를 만들었음이라 2 내가 모압에 불을 보내리니 그리욧 궁궐들을 사르리라 모압이 요란함과 외침과 나팔 소리 중에서 죽을 것이라 3 내가 그중에서 재판장을 멸하며 지도자들을 그와 함께 죽이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암 2:1~3)
모압의 죄는 에돔 왕의 뼈를 불살라 재로 만든 일입니다.
모압은 롯의 후손이고 에돔은 에서의 후손입니다. 서로 친척입니다. 그런데 무덤을 파헤쳐 뼈를 태웠습니다.
그 시대에 무덤을 훼손하는 것은 죽은 사람을 모욕하는 일이었습니다. 뼈는 사람이 이 땅에 남기는 마지막 흔적입니다. 그 뼈를 태워 벽에 바르는 횟가루처럼 만들었습니다. 한 사람이 남긴 마지막 자리까지 지워 버린 것입니다.
눈여겨볼 것이 있습니다. 에돔 왕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긴 사람도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모욕한 죄를 그냥 넘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모든 사람이 그분의 손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27)
사람의 존엄은 국적이나 신앙에서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에서 옵니다. 그래서 원수의 뼈 하나도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약 3:9)
같은 입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사람을 깎아내립니다.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그를 지으신 분을 함부로 대하는 것입니다.
2절에서 모압은 "요란함과 외침과 나팔 소리 중에서" 죽습니다. 전쟁터의 소리입니다. 3절에서는 재판장과 지도자들이 함께 쓰러집니다. 다른 사람의 이름을 지운 나라가 자기 이름을 잃습니다.
미움은 죽은 사람에게까지 따라갈 때가 있습니다. 떠난 사람을 두고도 깎아내립니다.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의 이름을 가볍게 다룹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보지 않는 무덤 속까지 보고 계십니다.
2. 버린 말씀, 따라간 거짓 (4~5절)
"4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유다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그의 조상들이 따라가던 거짓 것에 미혹되었음이라 5 내가 유다에 불을 보내리니 예루살렘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암 2:4~5)
이제 유다입니다. 똑같은 첫마디로 시작합니다.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아모스는 유다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기 고향이라고 봐주지 않습니다.
유다의 죄는 앞의 나라들과 결이 다릅니다. 이웃 나라들은 사람을 잔인하게 대했습니다. 유다는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했습니다. 말씀을 업신여겼습니다.
율법을 받은 백성입니다.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입니다. 그러나 그 특권이 그들을 지켜 주지 못합니다. 많이 받은 사람에게 더 많이 물으십니다.
"그의 조상들이 따라가던 거짓 것에 미혹되었음이라." 거짓 것은 우상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따른 것입니다.
유다가 버린 것은 말씀이고, 따라간 것은 거짓말이었습니다. 말씀을 버린 자리는 비어 있지 않습니다. 거짓이 들어와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그 거짓이 사람을 길 밖으로 끌고 나갑니다.
"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렘 2:13)
생수의 근원을 버린 사람은 목마름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웅덩이를 팝니다. 그러나 그 웅덩이는 물을 담지 못합니다.
유다 사람들도 이웃 나라들의 심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남을 판단하던 그 기준이 이제 나를 향합니다.
"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롬 2:1)
남을 판단할 줄 안다는 것은 무엇이 옳은지 안다는 뜻입니다. 알면서 같은 길을 걷는다면 더 핑계할 수 없습니다.
묵상 에세이의 글입니다.
하늘에 "하나님의 녹음기"가 있다면, 심판 날 "몰랐어요" 하는 우리 앞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남을 판단하던 말들을 틀어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남을 판단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기준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 이인호
"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약 1:22)
듣고 아는 것으로 끝나면 스스로 속습니다. 말씀은 지킬 때 우리를 지킵니다.
5절에서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궁궐들도 불사르시겠다고 하십니다. 짧고 단호한 한마디입니다. 실제로 유다는 그로부터 170년쯤 뒤 바벨론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가졌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따른다는 것이 우리를 살립니다.
3. 신 한 켤레에 팔린 사람 (6~8절)
"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 7 힘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8 모든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그들의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 (암 2:6~8)
마침내 이스라엘입니다. 듣던 사람들의 표정이 굳었을 것입니다. 이방 나라들과 똑같은 첫마디입니다. 같은 저울 위에 올려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죄가 줄줄이 이어집니다.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 재판에서 옳다고 판결받아야 할 사람이 돈 때문에 집니다. 신 한 켤레 값에 사람이 넘어갑니다.
"힘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가난한 사람의 머리를 흙바닥에 짓누르는 모습입니다. 사람을 발밑의 흙처럼 여겼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힘없는 여인이 노리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라고 하십니다.
8절은 더 아픕니다. 가난한 사람의 겉옷은 밤에 덮는 이불이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담보로 잡은 겉옷을 해 지기 전에 돌려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돌려주지 않은 그 옷을 제단 옆에 깔고 누웠습니다. 벌금으로 빼앗은 포도주를 신전에서 마셨습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장소입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제단과 불의가 한자리에 있었습니다.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사 1:13)
하나님은 예배를 싫어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악과 섞인 예배를 견디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한절 묵상의 글입니다.
탐욕은 사람을 수단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이스라엘도 한때 애굽의 종이었습니다. 은혜로 건짐 받은 사람들이 이제 약한 사람을 짓밟는 자리에 섰습니다. 받은 은혜를 잊은 열심은 위선이 됩니다.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일 4:20)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곁에 있는 사람을 대하는 손끝에서 드러납니다.
"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 6:6)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은 더 큰 제물이 아닙니다. 사람을 향한 인애,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배당에서 드린 예배는 예배당 문을 나선 뒤의 삶에서 증명됩니다.
내가 누군가를 신 한 켤레 값으로 대한 적은 없습니까.
맺는 말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은 무덤 속 뼈 하나까지 보고 계십니다.
말씀을 버린 자리에는 거짓이 들어옵니다.
예배와 삶이 갈라진 신앙을 하나님은 견디지 못하십니다.
남의 죄에 고개를 끄덕이던 이스라엘이 마침내 자기 이름을 들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우리 이름도 부릅니다. 누구도 이 심판 밖에 서 있지 않습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3~24)
모두가 죄인이라는 말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바로 다음 절에 은혜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은을 받고 의인을 팔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의로우신 한 분이 은에 팔리셨습니다.
"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마 26:15)
신 한 켤레에 팔린 가난한 자의 자리에 예수님이 서셨습니다. 짓밟힌 자리, 겉옷까지 빼앗긴 자리로 내려가셨습니다.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7)
하나님의 녹음기가 다 틀어지는 날에도, 그 자리에 앉으신 재판장은 우리를 위해 값을 치르신 구주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오늘도 가장 약한 사람 곁에 서 계십니다.
"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마 9:36)
예수님은 지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그 눈길이 오늘 우리가 가져야 할 눈길입니다. 그래서 예배와 삶은 갈라질 수 없습니다.
오늘 남의 죄 앞에서 끄덕이던 고개를 내 죄 앞에서 숙입시다.
말씀을 듣는 데서 멈추지 말고 한 가지라도 지킵시다.
내 곁의 가장 약한 사람을 예수님 대하듯 대합시다.
오늘의 찬양
새 423장 〈먹보다도 더 검은〉 — 오늘의 찬송.
율법을 멸시하고 약한 자를 짓밟은 죄(4, 7절)도 씻을 길은 주님의 보혈뿐입니다.
〈내가 주인 삼은〉
"조상들이 따라가던 거짓 것"(4절)처럼 내가 주인 삼아 따르던 것들을 내려놓고 주님만 따르겠다는 고백입니다.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남의 잘못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 이름이 불릴 때는 귀를 닫고 있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나에게 "신 한 켤레"처럼 가볍게 여겨지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오늘 그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중하는 작은 행동은 무엇입니까?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더빛교회가 말씀을 가진 것에 머물지 않고 말씀을 따르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드리는 예배가 약한 이웃을 대하는 손길로 이어지게 하소서.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지금 여기서 듣게 하소서.
우리의 걸음이 죄로 향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삶이 주님의 이름을 가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고 속히 돌이키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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