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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 아모스 1:9-15

38분 전
5분 분량

형제를 기억하지 않을 때

본문: 아모스 1장 9절 ~ 15절



여는 말

어제 우리는 아모스서를 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으셨습니다. 다메섹과 가사가 심판을 받았습니다.

오늘도 같은 말씀이 이어집니다.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이번에는 두로, 에돔, 암몬입니다.

그런데 오늘 세 나라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이스라엘과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두로는 약속으로 맺은 형제였습니다.

에돔은 피를 나눈 형제였습니다.

암몬은 롯의 후손, 친척이었습니다.

가까운 사이에서 일어난 죄입니다. 그래서 더 아픕니다.

오늘 새벽, 하나님이 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지 따라가 봅니다.



1. 잊어버린 형제의 약속 (9~10절)

"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두로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그 형제의 계약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로잡은 자를 에돔에 넘겼음이라 10 내가 두로성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 (암 1:9~10)


두로는 바닷가의 큰 무역 도시였습니다. 배와 상인과 돈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두로와 이스라엘은 다윗과 솔로몬 때부터 가까웠습니다. 두로 왕은 솔로몬을 "내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두로가 한 일은 무엇입니까. 사람을 붙잡아 에돔에 넘겼습니다. 팔았습니다.

형제라고 부르던 사이입니다. 그런데 이익 앞에서 그 약속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물건처럼 넘겼습니다. 장사가 잘되는 도시였습니다. 무엇이든 팔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사람까지 팔았습니다.

"17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 (잠 17:17)

형제는 위급할 때 곁에 서라고 주신 사람입니다. 두로는 그 위급한 때에 형제를 팔았습니다.

하나님은 나라 사이의 약속도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약속 아래 짓밟힌 한 사람 한 사람의 고통을 보십니다.

"3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잠 3:3)

약속은 종이에 쓰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마음에 새겨 두어야 손해 보는 날에도 지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유익할 때는 관계를 귀히 여깁니다. 상황이 바뀌면 약속을 가볍게 여깁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쓸모가 사라진 뒤에도 지키는 약속을 보십니다.



2. 맹수처럼 찢는 분노 (11~12절)

"1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에돔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가 칼로 그의 형제를 쫓아가며 긍휼을 버리며 항상 맹렬히 화를 내며 분을 끝없이 품었음이라 12 내가 데만에 불을 보내리니 보스라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암 1:11~12)


에돔은 에서의 후손입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의 후손입니다. 두 나라는 쌍둥이 형제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에돔은 "칼로 그의 형제를 쫓아가며" 살았습니다.

"긍휼을 버리며." 이 말은 그냥 내려놓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부수어 못 쓰게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그것도 남의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던 긍휼을 부수었습니다.

"맹렬히 화를 내며." 맹수가 먹이를 물어 찢는 모습입니다. 에돔이 화를 낸 것이 아닙니다. 분노가 에돔을 끌고 다니며 형제를 찢었습니다.


처음에는 서운함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내려놓지 않고 품었습니다. 품은 분노가 자라서 칼이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첫 형제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 4:7)

하나님은 가인에게 분노를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가인은 다스리지 않았습니다. 분노는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형제를 삼켰습니다.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엡 4:26)

화가 나는 것은 막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품는 것은 내가 정합니다. 에돔의 죄는 화가 아니라 "끝없이 품은" 분노였습니다.

"15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히 12:15~16)

신약도 에서를 기억합니다. 쓴 뿌리는 나 혼자 괴롭고 끝나지 않습니다. 곁에 있는 많은 사람을 함께 더럽힙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에서 세상을 떠난 유대인 여성 에티 힐레숨의 일기가 있습니다. 자기에게 소리를 지른 장교를 보고 화 대신 연민을 느꼈다고 적었습니다. 사람의 분노는 참사랑을 만나지 못해서 생긴다는 그녀의 고백이 많은 사람을 고쳤습니다.

피를 나눈 형제는 가장 가까운 이웃입니다. 그래서 가장 깊이 미워할 수도 있습니다.

내 안에서 아직 꺼지지 않은 분노는 누구를 향하고 있습니까.



3. 땅 한 뼘과 바꾼 생명 (13~15절)

"1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암몬 자손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자기 지경을 넓히고자 하여 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음이니라 14 내가 랍바성에 불을 놓아 그 궁궐들을 사르되 전쟁의 날에 외침과 회오리바람의 날에 폭풍으로 할 것이며 15 그들의 왕은 그 지도자들과 함께 사로잡혀 가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암 1:13~15)


암몬은 롯의 후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암몬의 땅을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땅은 하나님이 암몬에게 주신 몫이었습니다.

그러나 암몬은 받은 몫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지경을 넓히고자" 했습니다.

지경은 땅과 땅을 나누는 경계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경계는 함부로 옮길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28 네 선조가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잠 22:28)

경계를 옮기는 것은 이웃의 밭을 빼앗는 일입니다. 암몬은 그 경계를 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약한 생명을 짓밟았습니다.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음이니라."

소리 낼 수 없는 생명입니다. 아직 이름도 없는 아이입니다. 암몬에게는 땅 한 뼘이 그 생명보다 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그렇지 않습니다.

"13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시 139:13)

모태 속 아이를 지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암몬이 짓밟은 것은 하나님이 손수 빚고 계시던 생명이었습니다.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약 4:1)

전쟁은 국경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더 갖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14절에서 하나님은 다른 나라에는 불을 "보내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암몬에게는 "불을 놓아"라고 하십니다. 바로 곁에서 붙이시는 불입니다. 함성과 폭풍이 함께 몰아칩니다.

그리고 15절. 땅을 넓히려던 왕이 지도자들과 함께 포로로 끌려갑니다. 남의 생명을 짓밟아 넓히려던 자리가 결국 자기 것까지 잃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묵상 에세이의 글입니다.

자기를 위해서만 사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믿는 것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심판에는 기준이 있고, 그 기준은 이웃을 섬기며 살았느냐라고 합니다. - 조정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강한 자의 욕심보다 약한 자의 생명을 더 귀히 보십니다.



맺는 말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두로는 형제의 약속을 잊었습니다.

에돔은 긍휼을 부수고 분노를 품었습니다.

암몬은 땅을 넓히려 약한 생명을 짓밟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이 말씀은 남의 나라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약속을 잊는 마음, 분노를 품는 마음, 더 갖고 싶은 마음이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그 우리에게 다른 길을 걸으신 분이 계십니다.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히 2:11)

두로는 형제를 팔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같은 사람을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눅 10:33~34)

에돔은 긍휼을 부수고 칼로 쫓아갔습니다. 예수님이 들려주신 이 사람은 가까이 가서 상처를 싸맸습니다. 이것이 쓰러진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빌 2:6~7)

암몬은 자기 지경을 넓히려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비우셨습니다. 넓히는 길이 아니라 내려오는 길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마 18:14)

하나님 눈에 하찮은 사람은 없습니다. 한 사람도 잃지 않으시려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나 행한 것 죄뿐인 사람이 긍휼을 입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도 긍휼로 삽니다.

오늘 잊고 있던 약속 하나를 기억합시다.

해가 지기 전에 품은 분노를 주님께 내려놓읍시다.

내 유익 때문에 밀려난 작은 이웃 한 사람을 돌아봅시다.



오늘의 찬양

새 274장 〈나 행한 것 죄뿐이니〉 — 오늘의 찬송.

두로와 에돔과 암몬을 향한 말씀 앞에서 우리도 다르지 않음을 고백하고, 긍휼을 입은 자로 다시 섭니다.



〈주의 도를 알리소서〉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나에게 유익이 사라진 뒤에도

지켜야 할 약속과 관계는 무엇입니까?

해가 지도록 품고 있는 분노가 있습니까?

그 분노는 지금 어떤 관계를 찢고 있습니까?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더빛교회가 형제의 약속을 가볍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분노를 품지 않고 주님께 내려놓으며,

소리 없는 약한 생명을 귀히 여기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죄로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가 긍휼을 입었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욕심과 이기심을 버리고

주님의 눈으로 약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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