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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 아모스 1:1-8

20시간 전
5분 분량

사자처럼 부르짖으시는 하나님

본문: 아모스 1장 1절 ~ 8절


여는 말

어제 우리는 빌레몬서를 마쳤습니다. 바울은 도망친 종 오네시모의 빚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고 했습니다. 종이었던 사람이 사랑받는 형제가 되었습니다.


오늘부터 아모스서를 읽습니다.

분위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따뜻한 편지 대신 사자의 부르짖음으로 시작합니다.

아모스는 남쪽 유다 드고아의 목자였습니다. 뽕나무를 가꾸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북쪽 이스라엘로 보내셨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잘살았습니다. 나라는 부유했고 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속은 병들어 있었습니다. 우상이 가득했고 불의가 넘쳤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까지 크게 말씀하실까요? 오늘 새벽, 그 마음을 따라가 봅니다.



1. 목자의 귀에 들린 사자의 소리 (1~2절)

"1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 2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소리를 내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마르고 갈멜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암 1:1~2)


하나님은 이름난 사람을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양 치던 목자를 부르셨습니다. 말씀의 힘은 전하는 사람의 이름에 있지 않습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1절은 "지진 전 이년"이라고 적습니다. 아모스가 말씀을 전하고 두 해 뒤에 정말 큰 지진이 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2절에서 하나님은 부르짖으십니다. 사자의 부르짖음 같은 소리입니다. 그 소리에 목장이 마르고, 푸르던 갈멜산 꼭대기까지 마릅니다. 땅이 슬퍼하며 시드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잠잠하지 않으십니다. 풍요 속에서 하나님을 잊은 백성을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이 부르짖음은 끝내자는 소리가 아닙니다. 돌아오라는 소리입니다.

"10 그들은 사자처럼 소리를 내시는 여호와를 따를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내시면 자손들이 서쪽에서부터 떨며 오되" (호 11:10)

사자처럼 부르짖으시는 그 소리가 흩어진 자녀를 다시 불러 모읍니다. 두려운 음성은 동시에 부르시는 음성입니다.

"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히 3:15)

문제는 소리가 작아서가 아닙니다. 마음이 굳어서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 90:12)

지혜로운 사람은 오늘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들을 수 있을 때 듣고, 돌이킬 수 있을 때 돌이킵니다.

말씀을 듣고 죄에서 돌이키는 일은 어떤 문제보다 먼저 풀어야 할 일입니다. - 옥한흠

그렇습니다. 삶이 넉넉할 때 하나님의 음성은 더 잘 들리지 않습니다.



2. 철 타작기 아래의 신음 (3~5절)

"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다메섹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박하였음이라 4 내가 하사엘의 집에 불을 보내리니 벤하닷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5 내가 다메섹의 빗장을 꺾으며 아웬 골짜기에서 그 주민들을 끊으며 벧에덴에서 규 잡은 자를 끊으리니 아람 백성이 사로잡혀 기르에 이르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암 1:3~5)


다메섹은 아람의 수도입니다. 아람은 이스라엘 동북쪽의 강한 나라였습니다.

그들의 죄는 무엇입니까. 길르앗 사람들을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짓밟았습니다. 곡식을 바수듯 사람을 바쉈습니다.

"서너 가지 죄"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 둘이 아닙니다. 쌓이고 또 쌓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동안 보고 계셨습니다. 참고 계셨습니다.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9)

심판이 늦는 것은 하나님이 모르셔서가 아닙니다. 돌아올 시간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끝나면 하나님은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하십니다.

불이 궁궐들을 사릅니다. 성벽 바깥만이 아닙니다. 가장 안전하다고 믿던 안쪽 건물까지 탑니다. 권력을 붙들고 있던 "규 잡은 자"도 끊어집니다.

실제로 아람은 약 30년 뒤 앗수르에게 무너졌습니다. 백성은 기르로 끌려갔습니다. 말씀 그대로였습니다.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7)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짓밟고 아무 일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심은 대로 거두는 날이 옵니다.

다메섹은 율법을 받은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앞에서 책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주인이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들어 주지 않던 길르앗의 신음을 듣고 계셨습니다.



3. 사람을 팔아넘긴 성읍 (6~8절)

"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가사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모든 사로잡은 자를 끌어 에돔에 넘겼음이라 7 내가 가사성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 8 내가 또 아스돗에서 그 주민들과 아스글론에서 규를 잡은 자를 끊고 또 손을 돌이켜 에그론을 치리니 블레셋의 남아 있는 자가 멸망하리라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암 1:6~8)


가사는 블레셋의 큰 도시입니다. 길이 모이고 장사가 오가는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로잡은 사람들을 에돔에 넘겼습니다. 팔아넘긴 것입니다. "모든"이라는 말이 무겁습니다. 몇 사람이 아니라 마을 전체를 남김없이 끌고 갔습니다.

사람이 돈이 되었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사라지고 숫자만 남았습니다.

8절에서 하나님은 "손을 돌이켜" 에그론을 치십니다. 아스돗과 아스글론에 이어 그 손이 블레셋 끝까지 미칩니다. 사람을 이익의 수단으로 삼은 죄를 하나님은 끝까지 따라가십니다.

"6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창 9:6)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짓밟는 것은 하나님을 짓밟는 일이 됩니다.

"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잠 14:31)


하나님은 약한 사람이 당하는 아픔을 자기 아픔으로 받으십니다.

이 말씀은 먼 나라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도 사람을 내 일에 필요한 도구로 대할 때가 있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곁의 사람을 무심하게 지나칠 때가 있습니다.

묵상 에세이의 글입니다.

우리 안의 자기중심은 아주 깊어서 예배하는 자리에서도 살아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사람의 가르침으로 없앨 수 없고, 십자가 앞에 가져가야 한다고 합니다. - A. W. 토저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 6:8)

정의는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귀히 여기시는 사람을 나도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1912년, 결코 가라앉지 않는다던 타이타닉호는 거듭된 빙산 경고를 무시하고 달리다 침몰했습니다. 경고를 듣지 않은 배의 끝은 비극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는 우리를 살리시려고 미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메섹, 가사, 그다음은 누구일까요. 이 심판의 말씀은 한 바퀴를 돌아 결국 이스라엘에게 이릅니다. 남의 죄에 고개를 끄덕이던 사람이 자기 차례 앞에 서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나는 누구의 자리에 서 있습니까.



맺는 말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은 풍요 속에 잠든 백성을 향해 사자처럼 부르짖으십니다.

하나님은 짓밟힌 사람의 신음을 듣고, 쌓인 죄를 반드시 다루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물건처럼 파는 죄를 결코 가볍게 보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시온에서 부르짖으신 그 사자가 마침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계 5:5)

요한이 돌아보니 그 사자는 죽임당한 어린양이었습니다. 심판의 사자가 우리를 위해 죽는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 2:24)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하신 그 심판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십자가 위 예수님께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았습니다.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 25:40)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사람을 자기 자신이라고 하십니다. 사람을 귀히 여기는 것이 곧 주님을 섬기는 길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음성 앞에 마음을 엽시다.

내 안에 쌓아 둔 죄를 미루지 말고 십자가 앞에 내려놓읍시다.

내 곁의 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합시다.



오늘의 찬양

새 276장 〈아버지여 이 죄인을〉 — 오늘의 찬송.

사자처럼 부르짖으시는 음성은 돌아오라는 부르심입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탕자의 고백입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삶이 넉넉하고 익숙해진 자리에서 나는 여전히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있습니까?

내가 내 유익을 위해 도구처럼 대하거나 무심하게 지나친 사람은 누구입니까?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더빛교회가 하나님의 음성 앞에 마음이 굳지 않게 하소서.

짓밟힌 사람의 신음을 들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약한 이웃을 귀히 여기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삶이 풍요로워진 만큼 믿음도 견고해졌는지 돌아보게 하소서.

드러나지 않게 쌓여 온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을 의식하며 늘 거룩함을 따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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