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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 아가 8:1-14

28분 전
8분 분량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본문: 아가 8장 1절 ~ 14절



여는 말

어제 우리는 7장에서 신부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소리를 들었고,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으며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아 7:10)라는 고백에 이르렀습니다. 함께 들로 나가자던 초대가 오늘 마지막 장으로 이어집니다.

오늘은 아가서의 마지막 날입니다. 지난 여드레를 돌아봅니다.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라는 고백으로 노래가 열렸고, 겨울이 지나고 "일어나서 함께 가자"는 부름이 있었습니다. 밤에 사랑하는 이를 찾아 헤매는 날이 있었고,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라는 선언이 있었습니다. 문 앞에서 엇갈리고 다시 찾는 아픔을 지나,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라는 고백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오늘, 노래는 사랑이 무엇인지 단 한 번 멈추어 서서 말하는 자리에 다다릅니다.


생명의 삶은 오늘 본문에 "사랑의 열망, 사랑의 완성"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아가는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동사는 이 책에서 첫 장과 오늘 본문에만 나옵니다. 책의 처음과 끝이 만나는 아침, 이 사랑의 노래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함께 보겠습니다.



1.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올라오다 (8:1~5)

"1 네가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은 오라비 같았더라면 내가 밖에서 너를 만날 때에 입을 맞추어도 나를 업신여길 자가 없었을 것이라 2 내가 너를 이끌어 내 어머니 집에 들이고 네게서 교훈을 받았으리라 나는 향기로운 술 곧 석류즙으로 네게 마시게 하겠고 3 너는 왼팔로는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손으로는 나를 안았으리라 4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며 깨우지 말지니라 5 그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 너로 말미암아 네 어머니가 고생한 곳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에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아 8:1~5)


여인이 이상한 소원을 말합니다. "네가 내 오라비 같았더라면." 당시 남녀가 공공연히 애정을 표하는 것은 손가락질 받을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누이 사이라면 밖에서 입을 맞추어도 흉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라는 제약 속에서도 사랑을 온전히 표현하고 싶은 갈망입니다. 이어지는 2절에는 "이끌고, 들이고, 마시게 하겠고" — 내가 하겠다는 말이 연달아 쏟아집니다. 열정이 차오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4절, 아가에 세 번 나오는 후렴이 마지막으로 울립니다. "내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며 깨우지 말지니라." 앞의 두 번과 달리 맹세의 말이 빠지고 더 짧아졌습니다. 짧아진 만큼 더 강하고 긴급한 경고입니다. 사랑에는 때가 있습니다.


5절에서 장면이 바뀝니다. "그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 3장에도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때 광야에서 올라온 것은 솔로몬의 화려한 가마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장의 답은 다릅니다. 가마도, 호위대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기대어 올라오는 한 여인입니다. '의지하고'로 옮긴 말은 구약에 여기 한 번만 나오는데, 누군가에게 몸을 기대어 지탱한다는 뜻입니다. 광야는 홀로 건너는 곳이 아니라 기대어 올라오는 곳입니다.


그리고 여인이 말합니다. "사과나무 아래에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깨웠노라'는 후렴의 "깨우지 말라"와 같은 동사입니다. 억지로 깨우지 말라고 세 번 당부하던 노래가, 마침내 때가 되어 "내가 너를 깨웠노라"고 선언합니다. 서두르지 않고 무르익기를 기다린 사랑이 합당한 자리에서 깨어난 것입니다. 그 자리가 어디입니까. 어머니가 산고를 겪으며 그를 낳은 곳, 생명이 태어난 사과나무 아래입니다. 사랑은 생명이 시작되는 것만큼 근원적이고 자연스러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다린 사랑은 깨어납니다. 그리고 깨어난 사랑은 광야에서도 기대어 올라갑니다.



2. 도장 같이, 여호와의 불같이 (8:6~7)

"6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7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아 8:6~7)


아가 전체의 심장입니다. 주일 새벽에 미리 한 번 들었던 이 말씀을, 오늘은 제자리에서 듣습니다.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고대의 도장은 신분과 소유를 새긴 인장이었습니다. 목에 걸거나 반지로 끼어 늘 몸에서 떼지 않던 가장 귀한 소지품이었습니다. 여인은 그 도장처럼 자기를 새겨 달라고 청합니다. 마음은 사람의 내면이고, 팔은 행동입니다. 마음과 팔을 합치면 전인, 사람의 전부입니다. 사랑은 일부가 아니라 전부에 새겨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장은 떼어 낸 뒤에도 자국이 남습니다.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떨어져도 지워지지 않는 연합입니다.

그런데 이 간구를 듣고 성경을 아는 우리는 압니다. 먼저 새기신 분이 계십니다.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사 49:15~16)


이어서 그 이유가 선포됩니다.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스올은 무덤, 죽은 자들의 세계입니다. 아무도 벗어나 돌아올 수 없는 절대의 힘입니다. 사랑이 바로 그만큼 강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질투'는 시기심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를 지키려는 배타적 신실함의 열정입니다. '잔인하며'도 원뜻은 "놓아주지 않는다"에 가깝습니다. 참사랑은 다른 것이 끼어드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한번 붙들면 물러서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이런 질투가 정당한 관계는 단 둘뿐입니다. 하나님과 그 백성, 그리고 부부입니다. 이 둘만이 배타적인 언약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신 4:24)


그리고 놀라운 한마디가 나옵니다.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사랑의 언어로 가득한 아가에는 하나님이 한 번도 직접 등장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 끝에 하나님의 이름 '야'가 들어 있습니다. '가장 맹렬한 불길'이라는 표현인지 정말 '여호와의 불꽃'인지 학자들의 논의가 있지만,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아가가 사랑을 가장 높이 노래하는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의 이름 한 조각이 불꽃처럼 튀어 오릅니다. 사람의 사랑이 이토록 강할 수 있는 것은 그 불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불붙는 사랑입니다.

"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호 11:8)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성경에서 '많은 물'은 혼돈의 세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모든 것이 몰려와도 이 불은 꺼지지 않습니다.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사 43:2)

그런데 정직하게 묻습니다. 사랑이 정말 죽음 같이 강합니까. 장례식장에 서 본 사람은 압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만 보면 죽음이 사랑보다 강해 보입니다. 이 선언은 허세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가 대답합니다. 죽음은 무서운 원수이지만 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힘일 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죽음의 끝을 이미 선언하셨습니다.

"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사 25:8)

이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잠시 후 맺는 말에서 보겠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식어 갈 때 기억하십시오. 꺼지지 않는 불은 내 안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 불의 원천이신 하나님께 다시 나아가는 것이 사랑을 지키는 길입니다.



3. 내게 속한 내 포도원 — 너는 빨리 달리라 (8:8~14)

"8 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는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 그가 청혼을 받는 날에는 우리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까 9 그가 성벽이라면 우리는 은 망대를 그 위에 세울 것이요 그가 문이라면 우리는 백향목 판자로 두르리라 10 나는 성벽이요 내 유방은 망대 같으니 그러므로 나는 그가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 같구나 11 솔로몬이 바알하몬에 포도원이 있어 지키는 자들에게 맡겨 두고 그들로 각기 그 열매로 말미암아 은 천을 바치게 하였구나 12 솔로몬 너는 천을 얻겠고 열매를 지키는 자도 이백을 얻으려니와 내게 속한 내 포도원은 내 앞에 있구나 13 너 동산에 거주하는 자야 친구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내가 듣게 하려무나 14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 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라" (아 8:8~14)


7절 끝은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사려는 시도 자체가 사랑의 본질을 모독하기에 멸시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 선언 바로 뒤에, 사랑을 사고팔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줄지어 나옵니다.

먼저 오빠들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작은 누이." 그들에게 누이는 지키고 관리할 소유입니다. 성벽이라면 은 망대를 세우고, 문이라면 백향목 판자로 막겠다고 합니다. 다음은 솔로몬입니다. 바알하몬의 거대한 포도원을 관리인들에게 맡기고 각기 은 천을 바치게 합니다. 아가에서 포도원은 여인 자신을 가리키는 은유로 쓰여 왔습니다. 은으로 관리되는 포도원은 사랑이 아니라 소유의 그림입니다.


여인이 대답합니다. "나는 성벽이요." 나는 지켜져야 할 어린아이가 아니라 스스로 서서 사랑을 지켜 온 성숙한 사람이라는 선언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 같구나." 이 '화평'은 다툼 없음만이 아니라 결핍 없이 온전히 채워진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녀는 성숙하고 당당해져서, 사랑하는 자에게 평안을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2절입니다. "내게 속한 내 포도원은 내 앞에 있구나." 왕이여, 당신의 은 천은 당신이 가지십시오. 내 포도원은 값으로 사고팔 수 없고, 온전히 나에게 속하여,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스스로 내어 줄 것입니다. 첫 장에서 이 여인은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하고 탄식했습니다. 그 여인이 마지막 장에서 "내 포도원은 내 앞에 있구나"라고 말합니다. 책의 처음과 끝이 만나며, 탄식이 회복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랑은 빼앗는 것도 사들이는 것도 아닙니다. 내어 줌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그렇습니다. 값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값없이 부르십니다.

"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사 55:1)


이제 마지막 두 절입니다. 남자가 청합니다. "친구들이 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내가 듣게 하려무나." 2장에서도 그는 "네 소리를 듣게 하라" 했습니다. 그리고 여인이 화답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 위에 있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라." 2장 17절의 노루와 사슴이 다시 달려옵니다. 노래 전체가 하나의 큰 원을 이루며 닫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아가는 완성된 포옹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빨리 달리라"는 부름으로, 열린 채 끝납니다. 노래는 끝나도 사랑은 계속 달리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사랑은 도달해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서로를 부르며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은 사랑의 실패가 아니라 사랑의 방향입니다.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13)



맺는 말

본문을, 그리고 여드레의 노래 전체를 꿰어 봅시다.

첫째, 사랑은 광야에서 기대어 올라오는 것입니다. 때를 기다려 깨어나고, 사랑하는 이를 의지하여 거친 들을 건넙니다.

둘째, 사랑은 도장 같이 전부에 새겨지는 것입니다. 죽음 같이 강하고, 많은 물도 끄지 못하며, 그 불은 여호와께로부터 옵니다.

셋째, 사랑은 온 가산으로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소유하거나 거래하지 않고, 스스로 내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노래가 그린 사랑은 한 분 안에서 사실이 되었습니다.

사랑이 정말 죽음 같이 강한가. 그 질문에 하나님은 말이 아니라 사건으로 대답하셨습니다. 십자가입니다. 목요일 새벽에 함께 들었던 그 말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 하신 그 사랑입니다.

죽음같이 강한 사랑의 불꽃이 인류를 위해 횃불처럼 타오른 자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그 불이 홍수조차 끌 수 없는 영원한 생명임을 증명한 사건이 부활입니다. 사랑은 죽음을 통과했고, 죽음을 이겼습니다.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한 것이 아니라, 죽음보다 강한 것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사랑은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랑을 사신 것이 아니라 값을 치르셨습니다.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

그 사랑 앞에 우리의 응답도 거래가 아닙니다. 보화를 발견한 사람처럼, 기뻐하며 전부를 내어 놓는 것입니다.

"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마 13:44)

그러므로 이 사랑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5)

주일 새벽에 함께 들었던 그 말씀 그대로, 사망도 생명도 다른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아가는 신부의 "빨리 달리라"로 끝납니다. 그리고 성경 전체도 신부의 같은 기도로 끝납니다. 아가서는 성경의 마지막 기도를 미리 배우는 책이었습니다.

"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 22:20)

그 기도는 체념이 아닙니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 반드시 오신다는 확신 속의 그리움입니다. 여드레 동안 부른 사랑의 노래를, 오늘부터는 우리의 삶으로 부르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을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팔에 두십시오.



오늘의 찬양

새 90장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 오늘의 찬송.

"그 풍성한 참사랑을 뉘 능히 끊을쏘냐." 나를 알기 전에 먼저 사랑하신 주님, 끊을 수 없는 그 사랑이 오늘 본문 7절의 대답입니다. 예배 여는 찬송으로.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고린도전서 13장의 가사 그대로, 죽음 같이 강하고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않는 사랑의 본성을 노래합니다. 말씀 묵상 후에.



새 563장 〈예수 사랑하심은〉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도장 같이 새겨진 사랑, 손바닥에 나를 새기신 그 사랑의 확증을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고백하는 찬송입니다. 결단의 자리에서.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여인은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팔에 두라"고 청했습니다. 마음은 내면이고 팔은 행동입니다.

주님의 이름이 내 마음에는 새겨져 있는데, 내 팔 — 시간과 돈과 손길 — 에는 새겨져 있지 않은 영역은 어디입니까?



사랑은 온 가산으로도 살 수 없고, 스스로 내어 주는 것입니다.

나는 사랑을 조건과 거래로 바꾸려 한 적이 없습니까?

아가의 마지막 기도 "빨리 달리라"처럼, 나는 주님을 그리워하며 기다리고 있습니까?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더빛교회가 죽음 같이 강한 사랑, 많은 물도 끄지 못하는 그 사랑에 뿌리내려, 서로에게 자기를 내어 주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그 어떤 것도 주님의 사랑에서 저희를 끊을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언약을 기억하며 신실하게 믿음을 지켜 나가게 하소서.

교회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갈망하는 성숙한 신부로 준비되도록 서로를 세워 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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