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오늘의 묵상 - 아가 5:1-16

11분 전
8분 분량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

본문: 아가 5장 1절 ~ 16절



여는 말

어제 우리는 아가 4장에서 신랑의 긴 노래를 들었습니다. 신랑은 신부를 "나의 누이, 나의 신부"라 부르며 그 아름다움을 하나하나 노래했고, 그녀를 잠근 동산, 봉한 샘이라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첫 절은 그 노래의 매듭입니다. 신랑이 동산에 들어왔고, 몰약과 꿀과 포도주와 우유를 누립니다. 그리고 합창이 울립니다. "먹으라, 많이 마시라." 두 사람의 사랑이 완성되는 순간을 공동체가 함께 축하하는 소리입니다. 신랑과 신부의 사랑은 공동체가 함께 기뻐하고 축복하는 자리에서 온전해집니다.

생명의 삶은 오늘 본문에 "영적 성숙함으로 이끄는 사랑의 위기"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잔치 바로 다음 장면이 위기라는 말입니다. 2절부터 장면이 뒤집힙니다. 기쁘고 친밀한 연합으로 끝난 노래 바로 뒤에, 고립과 어긋남으로 시작하는 노래가 옵니다. 3장의 첫 번째 밤처럼 여인이 연인을 찾아 헤매는데, 이번에는 아픔이 한층 깊습니다. 이 노래는 꿈처럼 흘러갑니다. 그러니 "왜 문을 안 열었나, 왜 그는 기다리지 않았나" 하고 사건 보도를 따지듯 읽으면 길을 잃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엇갈림과 그리움을 꿈의 언어로 그린 노래입니다.

오늘은 수요일 새벽입니다. 은혜의 잔치 다음에 찾아온 어긋남의 밤을 함께 걸어 보겠습니다.



1. 문 두드리는 소리, 머뭇거리는 마음 (5:1~5)

"1 내 누이, 내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우유를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 2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3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4 내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움직여서 5 일어나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떨어지는구나" (아 5:1~5)


밤입니다. 여인이 말합니다.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몸은 쉬고 있어도 마음은 사랑하는 이를 향해 깨어 있습니다. 성경에도 이런 밤이 있습니다.

"9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사 26:9)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두드리다'로 옮긴 말은 구약에 매우 드문 단어인데, 손끝으로 노크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고 간절하게 두드리는 것입니다. 야곱이 가축을 지나치게 '몰면' 죽는다고 할 때 쓰인 말입니다. 문을 사이에 두고 선 사람의 조급하고 뜨거운 마음이 이 한 단어에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부르는 소리.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네 겹의 애칭입니다. 원문에서는 이 호칭이 모두 '나의'로 끝나며 울립니다. 나의 것, 나의 사람, 내게 완전한 사람. 어제 4장의 긴 찬미 전체가 "나의 완전한 자야"라는 한마디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그는 밤이슬에 머리가 흠뻑 젖도록 문 밖에 서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밤이슬은 기드온의 양털을 적실 만큼 짙습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으려고 불편한 조건을 무릅쓴 것입니다.

그런데 여인의 대답이 뜻밖입니다.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거절이 아닙니다. 미룸입니다. 잠자리에 들었으니 다시 옷을 입기 귀찮고, 발을 씻었으니 다시 더럽히기 싫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자 비로소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이 움직입니다. 일어나 문을 엽니다. 손에서, 손가락에서 몰약이 문빗장에 뚝뚝 떨어집니다. 어제 "잠근 동산"이라 불리던 그 문이 지금 그녀의 손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여기 있지 않습니까. 주님이 부르시는 소리는 간절한데, 우리의 대답은 대개 거창한 반역이 아닙니다. "지금은 피곤하니까. 이것만 끝내고. 나중에." 너무 사소해서 부끄러운 핑계들입니다. 새벽의 자리, 말씀의 자리, 화해의 자리로 부르시는 음성 앞에서 우리는 옷과 발을 핑계합니다.

시편 기자는 다르게 고백합니다.

"60 주의 계명들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시 119:60)

사랑의 응답은 미루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이 움직였을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2. 그는 벌써 물러갔네 (5:6~8)

"6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는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노라 7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겉옷을 벗겨 가졌도다 8 예루살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아 5:6~8)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벌써 물러갔습니다. '물러갔네'로 옮긴 말은 붙잡을 틈도 없이 홀연 자취를 감춘 모습입니다. 원문에서는 5절의 '흐르는' 몰약과 6절의 '물러갔네'가 같은 동사입니다. 몰약이 손에서 흘러내리는 바로 그 순간, 그는 지나가 버렸습니다. 향기만 남고 사람은 없습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존재가 텅 비는 탄식입니다. 그의 목소리에 온 존재가 쏟아져 나갔는데, 정작 그는 없습니다. 사랑의 어긋남은 단순한 실수의 아쉬움이 아니라 텅 비는 상실로 그려집니다. 두드림은 그렇게 급박했는데 사라짐은 순식간입니다. 사랑은 붙잡으려는 순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그는 왜 떠났을까요. 본문은 말해 주지 않습니다. 그녀의 머뭇거림 때문이라고 추론할 수도 있지만, 본문은 누구의 잘못인지 판결하지 않습니다. 그이만 아는 이유로 그는 떠났습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의 부재를 모두 내 잘못으로만 해석할 일도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입니다. 그가 떠났어도 그녀의 사랑은 줄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인은 밤거리로 나가 찾습니다. 찾아도 못 만나고 불러도 응답이 없습니다. 3장의 밤에는 순찰꾼들이 아무 말 없이 지나갔는데, 이번에는 그녀를 쳐서 상하게 하고 겉옷마저 벗겨 갑니다. '상하게 하였고'는 실제로 살을 찢는 상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얇은 너울 같은 겉옷을 빼앗겼다는 것은 존엄이 짓밟혔다는 뜻입니다. 사랑을 찾는 길은 언제나 순탄하지 않으며, 때로 오해와 상처와 수치를 통과해야 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녀의 이 무모한 밤길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8절. 매 맞고 빼앗긴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들어 보십시오.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2장에서 들었던 그 말이 다시 나옵니다. 그런데 결이 다릅니다. 그때는 그가 곁에 있어서, 그 사랑이 벅차서 났던 병이었습니다. 지금은 그가 없어서, 그리워서 앓는 병입니다. 사랑의 강렬함은 그 대상이 떠났다고 변하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에도 이런 밤이 있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계절, 예배해도 메마른 계절. 분명히 은혜의 잔치를 누렸는데 바로 다음 날 하나님이 멀어진 것 같은 공허가 밀려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현존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재도 압니다. 버림받은 것 같은 밤의 기도가 시편에 있습니다.

"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시 22:1~2)


묵상 에세이의 글입니다. 아브라함은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받은 뒤 무려 십삼 년 동안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비전 다음에 찾아온 어둠의 시간. 그런데 그 침묵의 기간은 훈련의 기간이었습니다. "우리의 확신은 하나님의 축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철저하게 훈련받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실재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둠 속에서 실재이신 하나님을 더욱 분명하게 바라보며 의지합니다.

그리고 여인은 그 밤을 혼자 걷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 딸들에게 부탁합니다. 내 아픔을, 내 그리움을 말합니다. 응답 없는 계절을 숨기지 않고 공동체 앞에 내어놓는 것입니다.



3.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로다 (5:9~16)

"9 여자들 가운데에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하는가 10 내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많은 사람 가운데에 뛰어나구나 11 머리는 순금 같고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 같이 검구나 12 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은데 우유로 씻은 듯하고 아름답게도 박혔구나 13 뺨은 향기로운 꽃밭 같고 향기로운 풀 언덕과도 같고 입술은 백합화 같고 몰약의 즙이 뚝뚝 떨어지는구나 14 손은 황옥을 물린 황금 노리개 같고 몸은 아로새긴 상아에 청옥을 입힌 듯하구나 15 다리는 순금 받침에 세운 화반석 기둥 같고 생김새는 레바논 같으며 백향목처럼 보기 좋고 16 입은 심히 달콤하니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예루살렘 딸들아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로다" (아 5:9~16)


딸들이 묻습니다.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쉽게 말하면 이런 질문입니다. 그 사람이 뭐가 그리 특별한데? 두 번 반복되는 질문은 그만큼 절실한 궁금증입니다. 이 물음이 마중물이 되어, 여인의 입에서 아가에서 유일하게 여자가 남자를 노래하는 찬미가 쏟아집니다.

그는 희고도 붉습니다. 창백한 흰빛이 아니라 태양처럼 환히 빛나고 광채가 나는 모습에, 건강한 혈색이 더해진 것입니다. 다윗을 두고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다"고 했던 그 미적 감각입니다(삼상 16:12). 머리는 순금, 머리털은 까마귀처럼 검은 젊음, 눈은 우유로 씻은 듯 맑고, 뺨은 향기로운 꽃밭, 입술에서는 몰약이 떨어집니다. 5절에서 그녀의 손가락에서 떨어지던 그 몰약이 이제 그의 입술에서 떨어집니다. 손은 황금, 몸은 상아, 다리는 순금 받침에 세운 화반석 기둥, 그 모습은 레바논의 백향목 같습니다.

흥미로운 것이 있습니다. 기둥, 받침, 순금, 백향목. 이 낱말들은 성막과 성전을 지을 때 쓰이던 말들입니다. 지극히 귀한 두 대상이 비슷한 말로 묘사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그리는 그녀의 말이 거룩한 것을 그리는 말에 닿아 있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실물보다 큰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시선은 사랑의 시선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이 노래를 부르는 지금, 그는 그녀 곁에 없습니다. 부재하는 사람을 이토록 찬란하게 그리는 것입니다. 그리움이 찬미가 되었습니다. 매 맞고 겉옷을 빼앗긴 그 밤에도 사랑은 식지 않았고, 오히려 사랑하는 이의 모든 것을 되새기게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고백. "입은 심히 달콤하니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사랑스럽다'로 옮긴 말은 십계명의 "탐내지 말라"에 쓰인 동사에서 나온 말입니다. 간절히 갖고 싶은 것, 보배로운 것. 그 전체가 온통 사모할 보배라는 최고의 찬사입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이 겹쳐 들립니다.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시 73:25~26)


그리고 끝맺는 말이 뜻밖에 잔잔합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로다." 연인이면서 친구입니다. '친구'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할 때의 그 '이웃'과 같은 말입니다. 열정만으로는 사랑의 오랜 시간을 지탱하지 못합니다. 결혼 생활을 끝까지 지탱하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이 내 친구"라는 고백입니다.

"24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잠 18:24)


이 노래를 주님과 나 사이에 비추어 봅시다. 세상은 오늘도 교회에게 묻습니다. "너희가 믿는 그분이 남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리 문장이 아니라, 내가 아는 그분을 그리는 살아 있는 말입니다. 성도는 사랑하는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사람들에게 증언할 수 있어야 합니다.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벧전 3:15)

나는 주님을 묘사할 나의 말을 가지고 있습니까. 내일 본문에서 보겠지만, 이 증언을 들은 딸들은 "우리가 너와 함께 찾으리라" 하고 나섭니다. 한 사람의 사모하는 고백이 곁의 사람들을 움직입니다.



맺는 말

본문을 다시 꿰어 봅시다. 동산의 잔치 바로 다음 밤, 문 두드리는 소리와 사소한 핑계로 미룬 응답. 문을 열었을 때 그는 벌써 물러갔고, 찾아도 못 만나고 매 맞고 겉옷을 빼앗긴 밤. 그래도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말하는 사랑. 그리고 "그가 남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 앞에 쏟아 놓은 증언,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로다."

문, 밤, 그리고 증언입니다.


오늘 우리가 붙들 말은 이것입니다.

첫째, 주님은 오늘도 문을 두드리십니다. 사소한 핑계로 미루는 사이 만남의 때가 지나갑니다.

둘째, 부재의 밤도 사랑의 한 계절입니다. 그 밤에 사랑은 오히려 깊어지고, 그 밤은 공동체와 함께 걷는 것입니다.

셋째, 사랑은 증언합니다. 묻는 세상 앞에서, 내가 아는 그분을 말합니다.


이슬에 젖은 채 문 밖에 서서 두드리던 그 사람의 모습은, 성경의 거의 마지막 장에 다시 나타납니다. 미지근해진 라오디게아 교회, 곧 이미 주님께 속한 신부가 정작 그분을 문 밖에 세워 두고 있을 때, 주님은 떠나지 않으시고 두드리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신자의 냉담 속에서도 그리스도께서는 여전히 문을 두드리십니다. 그리고 이 밤의 이야기는 십자가에서 뒤집혀 완성됩니다. 아가에서는 신랑을 찾아 나선 신부가 맞고 상하고 겉옷을 빼앗겼습니다. 복음에서는 신부를 찾아오신 신랑이 맞고 상하고 옷을 빼앗기셨습니다(요 19:23~24). 그리고 우리가 응답 없는 밤에 외치는 시편 22편의 그 기도를, 주님이 십자가에서 먼저 끝까지 외치셨습니다(마 27:46). 우리가 겪는 하나님의 부재를 주님이 먼저 다 겪으신 것입니다.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 53:5)


참사랑은 인간의 사랑이든 하나님의 사랑이든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사랑하는 이를 쫓습니다. 그 사랑이 마침내 데려가는 잔치가 있습니다. 월요일 새벽에 함께 바라본 어린 양의 혼인 잔치, 어긋남도 부재도 없는 그 자리입니다.

"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계 19:9)

오늘의 찬송이 새 88장 〈내 진정 사모하는〉입니다. 주님을 "친구가 되시는 구주 예수님"으로 사모하는 찬송입니다. 생명의 삶 지면에는 이런 가사가 함께 실렸습니다. "너는 부유해도 가난해도 너를 사랑하여 구원했으니 너는 내 것이라." 우리가 "그 전체가 사랑스럽습니다" 고백하기 전에, 주님이 먼저 우리를 "너는 내 것이라" 부르셨습니다. 이 새벽, 문을 두드리시는 그 음성에 미루지 말고 응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찬양

새 88장 〈내 진정 사모하는〉 — 오늘의 찬송.

16절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로다". 주님을 친구 되시는 구주로 사모하는 찬송입니다. 예배 여는 찬송으로.



〈주만 바라볼지라〉

찾아도 못 만나고 응답이 없는 밤에도(6~8절) 시선을 주님께 두는 노래입니다. 어둠의 시간을 지나는 훈련과 함께. 결단의 자리에서.




새 85장 〈구주를 생각만 해도〉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부재 중에도 사랑하는 이를 그리며 노래하는 10~16절의 마음입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솔로몬이 밤에 문을 두드리며 부를 때, 술람미 여인은 왜 즉시 응답하지 않았습니까?

주님과의 사귐을 위해 내가 포기할 안락함은 무엇입니까?



술람미 여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어떻게 묘사했습니까?

내가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예수님의 아름다움은 무엇입니까?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주님이 문 밖에서 두드리실 때 사소한 핑계로 미루지 않고 곧 일어나 문을 열게 하소서.

응답 없는 밤을 지나는 성도들이 그 밤에도 사랑을 멈추지 않게 하시고, 더빛교회가 누구든 아픔을 들고 올 수 있는 '울 곳'이 되게 하소서.



주님, 제 마음의 문을 주님이 두드리실 때 즉시 응답하길 원합니다.

친밀한 교제 가운데 주님의 존귀하심과 아름다우심을 더 깊이 깨달아 찬양하고 만방에 선포하게 하소서.

위기가 찾아올 때에도 주님이 베푸신 놀라운 사랑을 기억하고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게 하소서.

댓글


Contact Us.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흥덕4로 61  |  office@thevit.org  |  Tel: 031-272-7822 ㅣ FAX: 031-217-7822

  • White Facebook Icon
  • White YouTube Icon
  • White SoundCloud Icon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