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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 아가 3:1-11

22시간 전
7분 분량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노라

본문: 아가 3장 1절 ~ 11절



여는 말

어제 우리는 겨울이 지나고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일어나서 함께 가자"는 부름을 들었습니다.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로 보시는 눈, 내 위에 펄럭이는 사랑의 깃발, 그리고 작은 여우를 잡으며 지키는 고백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그런데 사랑의 길은 언제나 봄 햇살만은 아닙니다. 오늘 3장은 밤으로 시작합니다.

생명의 삶은 오늘 본문에 "사랑에 대한 갈망, 사랑의 결실"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본문은 두 개의 장면입니다. 앞은 한밤중에 사랑하는 이를 잃고 찾아 헤매는 여인의 이야기, 뒤는 광야에서 올라오는 화려한 혼례 행렬입니다. 밤의 갈망이 혼인날의 기쁨으로 결실하는 흐름이 한 장 안에 담겨 있습니다.

한 주간이 시작되는 월요일 새벽입니다. 주일에 들은 "일어나서 함께 가자"는 부름에 응답해 일어난 우리가, 오늘은 밤에도 찾기를 멈추지 않는 사랑을 배웁니다. 어제처럼 먼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 노래로 듣고, 그 사랑에 비친 하나님의 사랑을 보겠습니다.



1. 밤에,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 (3:1~3)

"1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노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 2 이에 내가 일어나서 성 안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거리에서나 큰 길에서나 찾으리라 하고 찾으나 만나지 못하였노라 3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를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하고" (아 3:1~3)


"내가 밤에 침상에서." 원문의 '밤'은 복수형입니다. 하룻밤이 아닙니다. 밤마다, 밤새도록 찾아 헤맨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짧은 단락에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라는 말이 네 번, 각 절마다 한 번씩 되풀이됩니다. 여기 '마음'으로 옮긴 말은 영혼, 생명을 뜻하는 말입니다. 내 영혼과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자. 살고자 하는 욕망만큼 강렬한 갈망입니다. "그는 그녀의 욕망으로 이름 붙여졌다"는 말 그대로입니다.

여인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일어나 성 안을 돌아다니며 거리와 큰 길에서 찾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여인이 보호자 없이 한밤중에 거리를 누비는 것은 통념에 어긋날 뿐 아니라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5장에서는 순찰꾼들이 이 여인을 때리고 겉옷을 벗기기까지 합니다. 그 위험을 무릅쓰고 나선 것입니다. 사랑의 절실함이고, 능동성입니다. 사랑은 침상에 누워 기다리기만 하지 않습니다. 일어나서, 나가서, 찾습니다.

그런데 찾아도 찾아내지 못합니다. 개역개정에는 '찾다'가 거듭 나오지만 원문에는 두 동사가 겹쳐 있습니다. 두루 찾아다니다, 그리고 발견하다. 찾아다녔으나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입니다. 순찰하는 자들을 만나 묻습니다.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 그들은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성 안의 모든 소식을 알아야 할 사람들이 할 말이 없습니다. 대답이 없는 것이 대답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밤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신앙의 여정에도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는 영적 어두움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고, 말씀을 읽어도 마음이 메마르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시인도 그 밤을 알았습니다.

"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시 63:1)

밤의 성읍에서 순찰꾼을 만난 여인처럼, 시인은 파수꾼보다 더 간절히 아침을 기다렸습니다.

"5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6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시 130:5~6)

그 밤에 우리는 쉽게 포기하거나 익숙한 삶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러나 찾는 걸음을 멈추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찾는 자에게 자신을 약속하셨습니다.

"29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 (신 4:29)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렘 29:13)

그리고 본문의 작은 신호 하나. 1절과 2절은 "찾아내지 못하였노라", "만나지 못하였노라"로 끝나지만, 3절에는 그 말이 없습니다. 만남은 이미 코앞에 와 있습니다.



2. 붙잡고 놓지 아니하였노라 (3:4~5)

"4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머니 집으로, 나를 잉태한 이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 5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아 3:4~5)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순찰꾼을 만났을 때 합리적인 선택은 그들의 보호를 받아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더 나아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만납니다.

"그를 붙잡고 … 놓지 아니하였노라." 원문은 정반대 뜻의 두 동사를 겹쳐 놓았습니다. 꽉 붙잡다, 그리고 놓다에 부정어를 붙여, 꽉 붙잡고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새긴 것입니다. 밤새 찾아 헤맨 간절함이 이제 그를 붙드는 강렬함으로 바뀌었습니다.

여기 '놓다'로 옮긴 말은 우리가 잘 아는 약속에 쓰인 바로 그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여호수아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6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신 31:6)

너를 놓지 아니하리라. 충성과 신실의 언어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붙잡는 손보다 먼저, 우리를 놓지 않으시는 손이 있습니다.


그리고 5절, 어제 본 그 후렴이 다시 나옵니다.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라. 가장 뜨거운 포옹 직후에 이 경고가 놓인 것이 놀랍습니다. 여인의 적극성은 사랑의 때를 거스르는 조급함이 아니라, 그 때를 온전히 존중하는 성숙한 갈망이라는 뜻입니다. 간절히 찾되, 서두르지 않습니다. 갈망과 절제가 한 사람 안에 함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붙잡는 사람은 사실 먼저 붙잡힌 사람입니다.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 3:12)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오늘도 우리는 그 손을 붙들고 놓지 않는 하루를 삽니다.



3.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3:6~11)

"6 몰약과 유향과 상인의 여러 가지 향품으로 향내 풍기며 연기 기둥처럼 거친 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인가 7 볼지어다 솔로몬의 가마라 이스라엘 용사 중 육십 명이 둘러쌌는데 8 다 칼을 잡고 싸움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밤의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각기 허리에 칼을 찼느니라 9 솔로몬왕이 레바논 나무로 자기의 가마를 만들었는데 10 그 기둥은 은이요 바닥은 금이요 자리는 자색 깔개라 그 안에는 예루살렘 딸들의 사랑이 엮어져 있구나 11 시온의 딸들아 나와서 솔로몬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의 어머니가 씌운 왕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 (아 3:6~11)


장면이 급전환됩니다. 광야 저편에서 연기 기둥이 올라옵니다. 몰약과 유향을 태우는 향연이 대추야자나무처럼 곧게 솟아올라 멀리서도 한눈에 보입니다. 눈에 보이기 전에 향기로 먼저 알려지는 행렬입니다. 성경을 아는 우리는 광야의 기둥에서 또 하나의 기둥을 떠올립니다.

"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출 13:21~22)

광야를 지나는 백성과 함께하시던 임재의 기둥입니다. 혼례 행렬은 그렇게 장엄하게 다가옵니다.

둘러선 용사가 육십 명입니다. 다윗을 지키던 용사의 두 배입니다. 밤의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각기 허리에 칼을 찼습니다. 여기서 1절과 8절을 겹쳐 보십시오. 같은 '밤'입니다.

1절의 밤 : 여인이 홀로 울며 헤매던 연약한 밤

8절의 밤 : 육십 용사가 호위하는 혼인 행렬의 밤


혼자 밤거리를 헤매던 그 사랑이, 이제 왕의 호위 속에 있습니다. 사랑의 갈망이 혼인이라는 언약 안에 자리 잡을 때, 사랑은 보호받습니다.

가마를 보십시오. 레바논 나무, 은 기둥, 금 바닥, 자색 자리. 성전과 왕궁에나 쓰이는 최상의 재료들입니다. 그런데 노래의 눈길이 머무는 곳은 따로 있습니다. "그 안에는 예루살렘 딸들의 사랑이 엮어져 있구나." 이 가마의 참된 값어치는 겉을 두른 은과 금이 아니라 그 속을 가득 메운 사랑에 있습니다. 겉이 아무리 금과 은으로 빛난들, 속이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빈 가마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예루살렘 딸들이 함께 엮어 넣었습니다. 사랑은 두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지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도, 교회도 그렇습니다. 겉을 꾸미는 데는 마음을 쏟으면서 속을 사랑으로 채우는 일에는 소홀할 때가 많습니다. 기둥이 은이어도 속이 비면 빈 가마입니다.


그리고 11절, 이 장의 정점입니다. "시온의 딸들아 나와서 솔로몬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의 어머니가 씌운 왕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 4절에서 여인은 사랑하는 이를 자기 어머니의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11절에서는 신랑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왕관을 씌웁니다. 두 어머니가 한 장의 앞과 뒤를 받치고 있습니다. 사랑은 두 사람에게서 시작되지만, 그것을 낳고 기르고 축복한 세대의 품 안에서 열매 맺습니다.

'혼인'이라는 말은 구약성경에서 오직 여기에만 나옵니다.

'기쁨'이라는 말도 아가 전체에서 여기 한 번뿐입니다. 아가는 마음의 기쁨을 결혼의 헌신에 직접 연결합니다. 그리고 온 공동체를 불러냅니다. 나와서 보라. 사랑이 언약으로 열매 맺는 날의 기쁨은 온 마을이 함께 축하할 만큼 큰 것입니다.

묵상 에세이의 글입니다. "결혼은 인간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이디어입니다. 결혼이 하나님 앞에서 맺은 언약임을 깨닫지 못하면, 결혼은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혼을 언약으로 세우신 하나님은, 신랑의 그 기쁨으로 자기 백성을 기뻐하십니다.

"5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사 62:5)



맺는 말

본문을 다시 꿰어 봅시다. 밤마다 침상에서, 성 안 거리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던 여인. 지나치자마자 만나 붙잡고 놓지 아니한 사랑. 그리고 광야에서 올라와 혼인날의 기쁨으로 결실한 사랑입니다.


오늘 우리가 붙들 말은 이것입니다.

첫째, 사랑은 밤에도 찾습니다. 임재가 느껴지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찾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 것이 사랑입니다.

둘째, 사랑은 붙잡고 놓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붙잡기 전에, 우리를 결코 놓지 않으시는 분이 계십니다.

셋째, 사랑은 혼인날의 기쁨으로 완성됩니다. 갈망은 언약 안에서 결실합니다.


이 노래는 한 분을 향해 흘러갑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 7:7)

밤에 사랑하는 이를 찾아 나선 여인의 모습은 복음서의 한 새벽과 겹칩니다. 어두울 때 무덤을 찾아간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그녀도 찾았으나 찾지 못했고, 천사들에게 물었고, 마침내 만났습니다.

"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요 20:15~16)

여인은 사랑하는 이를 자기 어머니의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방향을 바꾸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우리 집에 붙들어 두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를 아버지의 집으로 데려가십니다.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2~3)

그리고 "나와서 왕을 보라"는 초대는 성경에서 한 번 더 울립니다. 그날 그 왕의 머리에 있던 것은 금관이 아니라 가시관이었습니다.

"5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요 19:5)

참된 왕의 혼인날은 십자가에서 신부를 사신 날입니다. 그리고 그 혼인의 완성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계 19:7)


그날을 기다리며 우리는 거룩한 믿음의 행진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밤에도 찾고, 붙잡고, 그 소망 가운데 삽니다. 오늘 하루, 임재가 멀게 느껴져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만남은 코앞에 와 있습니다.

오늘의 찬송 〈예수 사랑합니다〉가 이 본문의 기도입니다. "온 마음 다하여 오직 주님 한 분만 간절히 더 원합니다." 밤마다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던 여인의 갈망을, 오늘 새벽 주님께 올려 드립시다. 이 한 주간, 주님을 더 원하는 갈망이 우리를 이끌어 가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찬양

〈예수 사랑합니다〉 — 오늘의 찬송.

"온 마음 다하여 오직 주님 한 분만 간절히 더 원합니다." 마음으로, 영혼을 다해 사랑하는 자를 찾던 1절의 갈망 그대로의 고백입니다. 새벽을 여는 찬송으로.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그를 붙잡고 놓지 아니하였노라."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한 분을 붙드는 결단의 노래입니다. 결단의 자리에서.



새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8절의 "밤의 두려움"이 주님의 호위 안에서 사라집니다. 두려움이 변하여 기도가 되고 한숨이 변하여 노래가 되는 은혜를 구하며. 기도의 자리에서.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은 밤이 내게도 있습니다.

그때 나는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섭니까, 아니면 수동적으로 안주하거나 익숙한 삶으로 돌아갑니까?

지금 내가 멈추지 말아야 할 '찾는 걸음'은 무엇입니까?



솔로몬의 가마는 겉은 은과 금, 속은 사랑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나의 가정과 섬김은 겉모양과 속 중 어느 쪽에 마음을 쏟고 있습니까?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소망하며,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더빛교회가 영적 어둠의 밤에도 주님 찾기를 멈추지 않게 하소서.

만난 주님을 끝까지 붙들고, 속을 사랑으로 채우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주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고 혼자라고 느껴질 때도 주님을 간절히 찾게 하소서.

주님이 다가오시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의 풍성한 교제 가운데로 담대히 나아가게 하소서.

신랑이신 주님이 다시 오실 영광의 날을 준비하는 거룩한 신부로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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