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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 시편 114편

임재가 만드는 기적

본문: 시편 114:1~8


■ 여는 말

시편 114편은 어제 묵상한 113편에 이어지는 '할렐 시편'으로, 유월절 식탁에서 식사 전에 부르던 두 번째 노래입니다. 짧은 여덟 절 안에 출애굽부터 가나안 입성까지의 대서사가 압축되어 있는데, 놀랍게도 그 모든 기적의 이유를 시인은 단 하나로 요약합니다. 하나님이 거기 계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새벽, 우리 삶의 기적도 결국 '어디서 사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사느냐'에 달려 있음을 묵상하려 합니다.


■ 1. 노예의 집에서 하나님의 처소로 (1~2절)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2절)


시편 114편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언어가 다른 민족에게서" 나오던 장면으로 문을 엽니다. 언어가 다르다는 말은 단순한 외국어의 불편함이 아니라, 알아들을 수 없는 명령 아래서 매를 맞으며 살아야 했던 압제와 소외의 세월 전체를 담은 표현입니다. 그런데 그 노예들이 애굽을 나오자 놀라운 신분 변화가 일어납니다. 유다가 여호와의 '성소'가 된 것입니다. 여기 '성소'는 히브리어로 '코데쉬', 곧 '거룩한 것, 거룩한 처소'라는 뜻입니다. 벽돌 굽던 노예 집단이 하나님이 친히 거하시는 거룩한 집이 되었다는 선언입니다. 성전이 세워지기도 전인데 백성 자체가 성소라 불리는 것이지요.


이어지는 '영토'라는 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이는 땅덩어리가 아니라 '통치'를 뜻하는 말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 자체를 가리킵니다. 시내산 언약을 통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이 왕으로 다스리시는 나라가 되었습니다(출 19:5~6). 이것이 출애굽의 진짜 목적입니다. 단지 고통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시고 다스리시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신약은 이 말씀을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우리가 구원받은 이유도 똑같습니다. 문제에서 벗어나는 데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이 머무시는 처소가 되는 것입니다.


■ 2. 임재 앞에서 요동하는 세상 (3~6절)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찌함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찌함인가" (5절)


시인은 이제 자연을 향해 시선을 돌립니다. 바다가 보고 도망하고, 요단이 물러가고, 산들이 숫양처럼, 작은 산들이 어린양처럼 뛰놀았다고 노래합니다. 출애굽 첫머리의 홍해 사건(출 14장)과 사십 년 뒤 가나안 입성의 요단강 사건(수 3장), 그리고 시내산이 연기 가운데 진동하던 장면(출 19:18)이 한 폭의 그림처럼 겹쳐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시인의 화법입니다. 그는 설명하지 않고 조롱하듯 묻습니다.

"바다야, 왜 도망쳤니? 산들아, 왜 그렇게 뛰었니?"

세상에서 가장 요지부동인 것들,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바다와 아무도 움직일 수 없는 산이 왜 그리 허둥댔느냐는 것입니다.


답은 뻔한데도 시인은 일부러 다음 절까지 답을 미룹니다. 하나님이 지나가셨기 때문입니다. 바다가 갈라진 것은 이스라엘이 강해서가 아니고, 요단이 멈춘 것은 여호수아의 전략이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함께 그 길을 동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생명의삶 해설이 짚어 주듯,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사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사느냐'입니다. 우리 앞의 바다 같은 문제, 산 같은 장벽이 클수록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내가 이걸 어떻게 넘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이 길을 지나가고 계신가?"입니다. 임재가 있는 곳에서는 가장 견고한 장애물도 몸을 피합니다.


■ 3. 떨리는 땅, 터지는 샘물 (7~8절)

"땅이여 너는 주 앞 곧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 그가 반석을 쳐서 못물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 (7~8절)


시의 마지막에서 시인은 온 땅을 향해 명령합니다. "주 앞에서 떨지어다." 여기 '떨다'로 쓰인 히브리어 '훌'은 해산하는 여인이 몸을 비틀듯 요동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단순한 공포의 벌벌 떪이 아니라, 새 생명이 나오기 직전의 진통 같은 떨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경외는 우리를 얼어붙게 하는 두려움이 아니라, 우리 안에 새로운 것이 태어나게 하는 거룩한 떨림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떨림의 대상이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점이 은혜입니다. 야곱이 누구입니까. 속이고 도망 다니던 연약한 사람입니다. 온 땅을 떨게 하시는 그 크신 하나님이, 야곱 같은 사람과 자기 이름을 묶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시의 마지막 그림은 심판이 아니라 샘물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반석을 쳐서 못물이 되게 하시고, 차돌 같은 바위에서 샘물이 터지게 하신 분입니다(출 17장, 민 20장). 여기 '못물'은 논에 물을 대는 데 쓸 만큼 넉넉한 물을 가리킵니다. 목만 축이는 정도가 아니라 농사를 지을 만한 풍성함입니다. 가장 마르고 단단한 곳에서 가장 풍성한 물을 내시는 것, 그것이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바울은 그 반석이 곧 그리스도였다고 말합니다(고전 10:4). 우리 인생의 가장 단단하고 메마른 자리, 도무지 물이 나올 것 같지 않은 그 차돌 같은 자리가 주님이 임재하시면 샘물의 자리가 됩니다.


■ 맺는 말

오늘 시편은 짧지만 우리 신앙의 뼈대를 다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노예였던 우리를 당신이 거하시는 성소, 당신이 다스리시는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함께 지나가시면 바다도 도망하고 산도 물러납니다. 그리고 그분 앞에서의 거룩한 떨림은 차돌 같은 인생에서 샘물이 터지는 은혜로 이어집니다. 오늘 하루, 어디로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를 붙들고 걸어갑시다.


■ 오늘의 찬양 (추천)

1. 새 446장 '주 음성 외에는' — 오늘의 찬송. 바다도 산도 아닌 오직 주님의 임재와 음성만이 우리의 참 기쁨임을 고백하는 찬송입니다.


2. 새 494장 '만세 반석 열리니' — 반석에서 샘물을 내신 8절의 하나님, 우리를 위해 열리신 반석 되신 그리스도를 노래합니다.



3. '나의 맘 받으소서'(주님의 처소 삼으소서) — 생명의삶이 함께 제시한 경배와 찬양 곡으로, 유다가 여호와의 성소가 되었듯 내 마음을 주님의 처소로 드리는 1~2절의 기도입니다.



■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1. 나는 지금 '어디에서 사느냐'(형편, 조건)에 집착하느라 '누구와 함께 사느냐'(하나님의 임재)를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하나님의 동행을 의식하며 내디딜 첫걸음은 무엇입니까?


2. 내 인생에서 차돌처럼 단단하고 메마르게 느껴지는 자리는 어디입니까? 그 자리에 샘물을 내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 드릴 구체적인 기도는 무엇입니까?



■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1. 더빛교회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영토'가 되게 하소서. 주님의 마음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걸음이 모여서 반석이 열리는 주님의 몸된 교회 되게 하소서.


2. 성도들 각자의 삶에 놓인 바다 같은 문제와 산 같은 장벽 앞에서, 함께 지나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가장 메마른 자리에서 샘물이 터지는 여름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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