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시편 113편
- 박정배

- 3일 전
- 3분 분량
높은 곳에 계시나 낮은 곳을 살피시는 하나님
본문: 시편 113:1~9
■ 여는 말
시편 113편부터 118편까지는 '할렐 시편'이라 불리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월절 식탁에서 불렀던 찬양입니다. 113~114편은 식사 전에, 115~118편은 식사 후에 불렀으니, 예수님도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이 노래를 부르셨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이 찬양의 첫 곡을 열며,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 왜 가장 낮은 곳을 살피시는지를 묵상하려 합니다.
■ 1. 모든 시간, 모든 곳에서 부를 이름 (1~3절)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3절)
시편은 "할렐루야"라는 외침으로 문을 엽니다. 이 말은 히브리어로 '찬양하라'는 뜻의 '할렐루'와 여호와의 이름을 줄인 '야'가 합쳐진 것으로, 말 그대로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명령입니다. 그 명령을 받는 사람은 '여호와의 종들', 곧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입니다. 찬양은 은사가 있는 사람의 특기가 아니라 주님께 속한 모든 종의 본분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찬양의 대상은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성경에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 존재의 정체성과 본질 전체를 담는 말이니,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그분 자체를 높이는 일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 찬양의 범위를 두 방향으로 활짝 펼칩니다. 시간적으로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공간적으로는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찬양하기에 어울리지 않는 순간도, 어울리지 않는 장소도 없다는 뜻입니다. 주일 예배당 안에서만이 아니라 목요일 새벽의 골방에서도, 형편이 좋을 때만이 아니라 마른 입술로 겨우 하루를 여는 날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찬양은 내 기분의 표현이기 이전에, 변하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마땅한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 2. 누가 여호와와 같은가 (4~6절)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5~6절)
그렇다면 하나님이 모든 시간과 모든 장소에서 찬양받으셔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편 기자는 그 답을 하나님의 '높으심'과 '낮추심'이라는 두 단어에 담습니다. 여호와는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고 그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으신 분입니다. 세상의 어떤 제국도, 어떤 권력자도 그분 아래에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다음입니다. 6절의 "스스로 낮추사"는 '낮다'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샤팔'에서 온 표현인데,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원하여 몸을 굽히시는 모습을 그립니다. 높은 보좌에 앉으신 분이 스스로 허리를 숙여 하늘과 땅을 살피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이치는 정반대입니다. 사람은 높아질수록 아래를 보지 않습니다. 지위가 올라갈수록 만나는 사람의 수준도 올라가고, 낮은 곳의 신음은 점점 들리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높아지심과 낮추심이 함께 가는 분입니다. 그리고 이 낮추심이 어디까지 내려가는지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봅니다.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낮아지셨다는 빌립보서 2장의 고백은, 시편 113편이 노래한 하나님의 성품이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사건입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라는 질문에 우리는 답할 수 있습니다.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가장 높으면서 가장 낮아지시는 분은 우리 주님뿐입니다.
■ 3. 먼지 더미에서 존귀한 자리로 (7~9절)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세워 지도자들 곧 그의 백성의 지도자들과 함께 세우시며" (7~8절)
하나님의 낮추심은 구경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살피시는 하나님은 반드시 일으키시는 하나님입니다.
먼지 더미와 거름 더미는 고대 사회에서 마을 바깥에 쓰레기와 오물을 버리던 곳으로,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밀려나던 자리였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자리에서 사람을 일으켜 지도자들, 곧 존귀한 자들과 함께 앉히십니다. 이 구절은 아이를 낳지 못해 멸시받던 한나가 사무엘을 품에 안고 드린 기도와 거의 같은 표현입니다(사무엘상 2:8). 그래서 9절이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도다"로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당시 여인에게 불임은 가장 깊은 수치의 자리였는데, 하나님은 사라를, 한나를, 엘리사벳을 바로 그 자리에서 일으키셨습니다.
이것이 출애굽의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애굽의 진흙 구덩이에서 탄식하던 노예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신 분이 우리 하나님입니다. 마리아도 이 노래를 이어받아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다"고 찬양했습니다(누가복음 1:52~53). 그러니 지금 먼지 더미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고 느끼는 분이 있다면, 오늘 본문은 분명히 말합니다. 그 자리는 하나님의 눈길이 닿지 않는 자리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즐겨 찾아오셔서 일으키시는 자리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시편은 시작했던 그 말로 다시 끝납니다. 할렐루야.
■ 맺는 말
오늘 우리는 세 걸음을 걸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모든 시간, 모든 장소에서 찬양받기에 합당합니다.
그 이유는 그분이 가장 높은 곳에 계시면서도 스스로 낮추어 낮은 곳을 살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살피심은 먼지 더미에 있는 사람을 존귀한 자리로 일으키시는 실제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오늘 하루, 낮은 곳으로 기꺼이 내려오시는 주님을 찬양하며, 우리도 누군가의 낮은 자리를 살피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의 찬양 (추천)
1. 새찬송가 19장 「찬송하는 소리 있어」
2. 해 뜨는 데부터 해 지는 데까지
■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1. 세상은 스스로를 높여서 자기를 자랑하지만 가장 높으신 하나님은 스스로 낮추셔서 천지를 살피십니다. 나는 스스로를 높이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까?
2. 내 주변에서 '먼지 더미'에 앉아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스스로 낮추시는 하나님을 닮아 이번 주에 그에게 몸을 굽혀 다가갈 구체적인 방법 하나는 무엇입니까?
■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1. 더빛교회가 높아지기를 구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스스로 낮추어 지역의 낮은 자리와 소외된 이웃을 살피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2. 성도 각자의 예배가 주일에 갇히지 않고, 이제부터 영원까지,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삶의 모든 자리에서 주의 이름을 찬양하는 예배로 이어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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