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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땅에서 승리하려면 (수 5:13-15)

여호수아 4-7장의 내용을 새벽마다 한 장씩 읽으면서 각 부분에 대해 참 깨닫게 되는 놀라운 진리들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틀로서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을 만들고 AI의 도움으로 초안을 작성했습니다. 주일에는 큰 맥락보다는 디테일을 묵상하며 보완하려고 합니다.


서론 : 가나안은 천국이 아니라 '영적 전쟁터'이다


"요단강 건너편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우리 다 만나리..." 이 찬양을 부르며 많은 분들이 가나안을 죽어서 가는 천국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자세히 보면 가나안에는 여전히 전쟁이 있고, 죄의 유혹이 있고, 실패와 회개가 있습니다. 가나안은 천국의 완성이 아니라 천국의 시작입니다. 즉, 가나안은 구원받은 성도가 이 땅에서 살아내야 할 영적 현실입니다. 홍해를 건너 애굽에서 해방된 것이 칭의(稱義)라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성화(聖化)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우리는 날마다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4-7장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영적 승리 비결을 제시합니다.

  1. 구원의 확신과 기념(4장)

  2. 거룩함의 회복과 재헌신(5장)

  3. 믿음의 절대적 순종(6장)

  4. 숨겨진 죄와 공동체의 실패(7장)


1. 구원의 확신과 기념 (여호수아 4장)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면, 미래의 승리는 없다"


본문의 배경

여호수아 3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기적적으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강물에 발을 담그자 강물이 멈추었고, 온 백성이 마른 땅을 밟고 건넜습니다. 이제 4장에서 하나님은 특별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이스라엘 자손들 중에서 열두 사람을 택하여...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너희의 유숙할 그곳에 그것들을 세우라" (여호수아 4:2-3)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돌들이 너희 중에 기념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물어 이르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여호수아 4:6-7)

신학적 의미: 세례와 구원의 확신

물을 통과한다는 것은 옛 자아의 죽음과 새 생명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6장 3-4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걸음이요, 우리의 삶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바로 그 시작입니다. 홍해를 건너 세상을 떠나 광야에서 준비시키시고 이제 우리의 걸음마다 하나님이 주인되시는 개인의 삶만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개인과 가정, 교회의 시작입니다.

요단강을 건넌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연합(Union with Christ)의 체험입니다.


기념의 힘: 왜 우리는 기억해야 하는가?

그런데 하나님은 왜 돌 열두 개를 세우라고 하셨을까요?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기억은 믿음의 연료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8장 2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또 시편 103편 2절은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권면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실패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십자가의 은혜가 무엇인지 잊어버리면 금방 넘어집니다.


2. 거룩함의 회복과 재헌신 (여호수아 5장)

"전쟁보다 중요한 것은 성결이다"


전략회의가 아닌 예배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 앞에 첫 번째 목표물이 나타납니다.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제 곧바로 전쟁 준비에 들어가야 합니다. 정탐꾼을 보내고, 전략을 짜고, 무기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전혀 다른 명령을 내리십니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여호수아 5:2)

할례는 매우 고통스러운 의식입니다. 게다가 성인 남자 40만 명이 할례를 받으면 최소 며칠간 전투 불능 상태가 됩니다. 만약 이때 여리고나 다른 가나안 족속이 공격하면 어떻게 됩니까? 전멸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개의치 않으십니다. 전쟁보다 성결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할례의 의미: 애굽의 수치를 굴러가게 함

하나님은 할례를 행한 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여호수아 5:9)

'길갈(Gilgal)'은 히브리어로 '굴러가다(roll away)'는 뜻입니다. 할례를 통해 애굽의 수치가 굴러갔다는 것입니다.


애굽의 수치란 무엇입니까?

  • 노예 시절의 습관과 사고방식

  • 세상의 우상과 가치관

  • 불신앙과 원망의 DNA

이것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에 아직도 남아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해방되었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애굽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 뿌리를 잘라내라고 명령하십니다.


신약적으로 말하면 이것이 성화(Sanctification), 즉 거룩하게 구별되는 과정입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은 이렇게 명령합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유월절: 다시 복음으로 돌아감

할례에 이어 두 번째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열나흗날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여호수아 5:10)

유월절은 무엇입니까? 애굽에서 나올 때,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구원받은 그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예표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쟁 직전에 다시 한번 복음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힘이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오직 어린 양의 피 때문임을 다시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5장 7절은 말합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신을 벗으라: 주권의 항복

5장 마지막 부분에서 또 하나의 놀라운 사건이 벌어집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가까이 갔을 때, 칼을 빼어 든 사람을 만납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이르되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여호수아 5:13-15)

이 장면은 모세가 불붙는 떨기나무 앞에서 신을 벗었던 장면(출애굽기 3:5)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왜 신을 벗어야 합니까? 신은 발을 보호하고, 길을 가기 위한 도구입니다. 즉, '내가 내 힘으로 가겠다'는 자기 주권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다. 네 방법, 네 힘, 네 계획을 내려놓아라. 내가 군대 장관이다. 내가 싸우겠다."

이것이 진정한 성화입니다. 성화는 내가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화는 하나님의 주권에 온전히 항복(Surrender)하는 것입니다.


3. 믿음의 순종과 승리 (여호수아 6장)

"승리는 내 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불가능한 미션

이제 드디어 여리고성 전투가 시작됩니다. 여리고는 당시 가나안에서 가장 견고한 요새 도시였습니다.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여리고성은 이중 성벽 구조로, 외벽은 약 2미터 두께, 내벽은 약 4미터 두께였습니다. 높이는 약 9미터에 달했습니다. 광야에서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공성 장비도 없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불가능한 전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전략은 더욱 황당합니다.

"너는 모든 군사와 함께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라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여호수아 6:3-5)

하루에 한 바퀴, 엿새 동안. 마지막 날에는 일곱 바퀴. 그리고 나팔을 불고 외치면 성벽이 무너진다?


이해할 수 없는 순종의 훈련

여기서 중요한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여호수아 6:10)

6일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침묵해야 했습니다.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그저 성을 돌기만 했습니다.

여리고 성 위에서 가나안 사람들이 비웃었을 것입니다. "저것 봐라! 저 바보들이 성 주위를 빙빙 돌고 있어! 무기도 없이 무얼 할 수 있겠어?"

이스라엘 군사들 중에도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게 무슨 전략입니까? 차라리 공격하게 해 주십시오!"

하지만 하나님은 침묵을 명령하셨습니다. 왜일까요?

이것은 인간의 이성이 아닌 철저한 순종을 훈련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해가 되면 순종하겠습니다"가 아니라, "이해가 안 되어도 말씀이시니 순종하겠습니다"를 배우는 과정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0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예배가 곧 전쟁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스라엘이 성을 돌 때의 대형입니다.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가고 후군은 궤 뒤에 행하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하더라" (여호수아 6:9)

맨 앞에 군대, 그 다음에 나팔 부는 제사장들, 그 중심에 언약궤, 그리고 뒤에 후군.

이것은 전쟁 대형이 아니라 예배 행렬입니다. 이스라엘은 싸우러 간 것이 아니라 예배하러 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진리를 발견합니다. 예배가 곧 전쟁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신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 14절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역대하 20장에서 여호사밧 왕이 큰 연합군의 공격을 받았을 때, 하나님은 놀라운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군대 앞에 찬양대를 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찬양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이 복병을 두어 적군을 물리치셨습니다.

일곱째 날의 외침

드디어 일곱째 날입니다.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이에 백성은 외치고 나팔수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여호수아 6:16, 20)

6일 동안의 침묵 후, 백성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누가 무너뜨린 것입니까? 이스라엘이 무너뜨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무너뜨리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승리입니다. 믿음은 내가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하실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승리

신약의 관점에서 볼 때, 여리고 성벽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 죄와 사망의 권세

  • 사탄의 요새

  • 우리를 가두고 있는 모든 저주와 속박

그리고 이 성벽을 무너뜨린 것은 무엇입니까? 십자가입니다!

골로새서 2장 14-15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외치셨을 때, 여리고 성벽보다 더 견고했던 죄와 사망의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4. 숨겨진 죄와 공동체의 실패 (여호수아 7장)

"작은 죄 하나가 공동체 전체를 멈추게 한다"


예상치 못한 패배

여리고의 대승리 후, 이스라엘은 기세등등했을 것입니다. 다음 목표는 아이성이었습니다. 아이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정탐꾼들이 돌아와서 보고합니다.

"그들이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모든 백성을 보낼 것이 없겠사오니 이삼천 명만 보내어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하므로" (여호수아 7:3)

자신감이 넘칩니다. "모든 백성을 동원할 필요도 없습니다. 2-3천 명이면 충분합니다." 여호수아는 이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충격적입니다.

"아이 사람이 그들을 쳐서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따라가며 내려가는 비탈에서 삼십육 명쯤 죽인지라 그러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여호수아 7:5)

36명의 전사자. 숫자로는 많지 않지만, 충격은 엄청났습니다. 난공불락 여리고를 무너뜨린 이스라엘이 작은 아이성에서 패배한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충격을 받아 옷을 찢고 여호와의 궤 앞에 엎드립니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여호수아 7:7)

숨겨진 죄의 발견

하나님이 대답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나니 곧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고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기구 가운데에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대적을 능히 당하지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자기들도 온전히 바친 것이 됨이라" (여호수아 7:11-12)

원인은 누군가가 '온전히 바친 물건(헤렘)'을 취한 것이었습니다. 여호수아 6장 17-18절에서 하나님은 분명히 명령하셨습니다. 여리고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니, 아무것도 취하지 말라고.

제비뽑기를 통해 범인이 드러납니다. 유다 지파 아간이었습니다.

"아간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참으로 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이러이러하게 행하였나이다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되는 금 막대기 하나를 보고 탐내어 가졌나이다" (여호수아 7:20-21)

아간은 "보고, 탐내어, 가졌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창세기 3장 하와의 범죄 과정과 똑같습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창세기 3:6)

죄의 패턴은 언제나 같습니다: 보고 → 탐내고 → 행동하고 → 숨긴다.


한 사람의 죄, 공동체 전체의 위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신학적 진리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나니" (여호수아 7:1)

"아간이 범죄했다"가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범죄했다"고 말합니다. 한 사람의 죄가 공동체 전체의 죄로 간주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내 죄는 나만의 문제야. 남에게 피해 안 주면 되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6절은 말합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하느니라."


아간 한 사람의 숨겨진 죄 때문에:

  • 36명이 전사했습니다

  • 전체 이스라엘이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 가나안 정복이 중단되었습니다

  •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졌습니다


성공 뒤의 영적 위기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타이밍입니다. 아간의 죄는 언제 일어났습니까? 여리고 대승리 직후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경고를 줍니다.


우리는 큰 은혜를 받은 직후 가장 넘어지기 쉽습니다.

  • 부흥회에서 은혜받은 직후

  • 기도응답을 받은 직후

  • 직분을 받은 직후

  • 사업이 성공한 직후

왜 그럴까요? 교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만큼 했어. 이 정도는 괜찮겠지." 경계가 느슨해집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은 경고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철저한 회개와 정결

하나님은 아간과 그의 가족, 그리고 그가 취한 모든 물건을 아골 골짜기에서 돌로 쳤습니다. 이것은 매우 가혹해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죄의 심각성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죄는 결코 가볍게 다뤄질 수 없습니다.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행전 5장의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보십시오. 그들은 땅을 팔고 일부만 드리면서 전부 드린 것처럼 속였습니다. 베드로가 책망하자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엄하게 다루셨을까요?

초대교회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그때 죄를 가볍게 여겼다면, 교회는 타락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사랑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암세포를 제거하지 않으면 온몸이 죽습니다. 죄를 제거해야 공동체가 삽니다.


그리스도의 대속과 우리의 회개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안에도 아간의 죄성이 있습니다. 우리도 보고, 탐내고, 범죄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의 핵심을 봅니다.

아간은 자기 죄 때문에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돌림을 당하셨습니다. 아간이 당해야 할 심판을, 우리가 당해야 할 저주를 예수님이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은 선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철저한 회개입니다. 내 안에 숨겨둔 아간의 외투와 금덩이를 주님 앞에 드러내고 고백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은 약속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결론: 아골 골짜기를 소망의 문으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여호수아 4장부터 7장까지, 구원의 여정을 함께 걸어왔습니다.

[은혜의 기억(4장) → 거룩한 구별(5장) → 순종의 승리(6장) → 죄의 직면과 해결(7장)]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구원의 사이클입니다. 우리는 여리고에서 승리할 수도 있고, 아이성에서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넘어졌을 때 어떻게 하느냐입니다.


아골 골짜기의 의미

'아골(Achor)'은 히브리어로 '고통, 재앙, 환란'을 뜻합니다. 아간이 돌에 맞아 죽은 곳, 이스라엘이 실패를 경험한 곳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하나님은 나중에 선지자 호세아를 통해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를 소망의 문으로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호세아 2:15)

아골 골짜기가 소망의 문이 된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의 실패가 끝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가 마지막이 아닙니다. 회개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은 그 고통의 장소를 소망의 문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진정한 여호수아

여호수아(예슈아)와 예수(예슈아)는 히브리어로 같은 이름입니다. 둘 다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구약의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했다면, 신약의 예수님은 우리를 진정한 안식의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히브리서 4장 8-9절은 말합니다.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여호수아가 건넌 요단강을 예수님도 건너셨습니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입니다.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했듯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단번에 끊어내셨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벽을 무너뜨렸듯이, 예수님은 죄와 사망의 성벽을 무너뜨리셨습니다.

여호수아가 아간의 죄를 심판했듯이,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대신 심판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진정한 여호수아이십니다!


구원은 과정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은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칭의(justification)는 순간이지만, 성화(sanctification)는 평생의 과정입니다. 그리고 영화(glorification)는 주님 다시 오실 때 완성될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6절은 약속합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우리는 아직 완벽하지 않습니다. 때로 여리고를 이기기도 하고, 때로 아이에서 넘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방향성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주님께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넘어질 때마다 회개하고 일어서고 있습니까?

로마서 8장 1절은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최후의 초대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께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구원의 여정 중 어디에 서 있습니까?

  1. 길갈의 돌 앞에 서 있습니까? 당신은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만약 확신이 없다면, 오늘 다시 십자가 앞으로 나오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2. 할례와 신발을 벗는 자리에 서 있습니까? 당신은 세상의 습관을 끊어내고, 하나님께 주권을 내어드렸습니까? 만약 아직도 당신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면, 오늘 무릎 꿇고 항복하십시오.

  3. 여리고 성벽 앞에 서 있습니까? 당신 앞에 불가능해 보이는 장벽이 있습니까? 계산을 멈추고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이 싸우실 것입니다.

  4. 아골 골짜기에 서 있습니까? 당신 안에 숨겨진 죄가 있습니까? 오늘 고백하고 돌이키십시오. 그 고통의 골짜기가 소망의 문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 권면

구원은 흠 없는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거룩을 향해 나아가는 방향성입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완벽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승리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에서 이미 승리하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7절의 고백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제 일어나십시오.

길갈의 돌을 기억하고, 신을 벗고, 여리고를 향해 나아가고, 아골 골짜기를 소망의 문으로 통과하십시오.

약속의 땅을 향한 거룩한 여정이 오늘도 계속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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