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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구] 여호수아 1장 with 칼빈주석

제1장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1절. 여호와의 … 후에 … 여기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돌보시고 그들의 안전을 보장하시는 신실함을 본다. 여호수아가 새로운 지도자로 임명되고 언약이 갱신된 권한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됨을 나타내고 모세의 죽음으로 인해 백성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호수아는 이미 백성을 다스릴 지도자로 선택되었고, 직책을 부여받았을 뿐 아니라 영적 은사도 함께 받았다. 그러나 아무리 용맹하고 준비가 철저한 사람일지라도, 행동해야 할 시점이 되면 주저하거나 흔들리기 쉽기 때문에, 여호수아에게 즉시 원정을 준비하라는 권면은 결코 불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공식적으로 부름을 받은 것은, 사실 여호수아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가는 지도자를 따라갈 때, 백성에게 온전한 신뢰를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2절. 내 종 모세가 …… 여기서 두 가지 의미를 도출할 수 있다. 첫째,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모든 부담이 네게 맡겨졌다. 네가 후계자로 임명받은 자로서 그의 자리를 이어라.” 둘째, “모세가 죽었어도 멈추지 말고 계속 나아가라.” 나는 첫 번째 의미를 선호한다. 이는 후계자로서 모세가 남긴 직책을 정당하게 이어야 한다는 함의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세에게 붙여진 “종”이라는 칭호는 그의 백성 통치와 업적을 의미하며, 이는 실제 상황에 맞추어 이해되어야 한다. 여기서 언급되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모세가 죽음으로 인해 여호수아에게 넘어간 지도권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이로써 그의 종을 인정하시되, 모세를 칭찬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그 자리에 대신 선 여호수아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백성이 단순한 명령만으로 충분히 순종하지 않을 것을 고려하여, 하나님은 그들에게 요단강을 건너도록 명령하면서, 온 땅과 그들이 발을 디딘 모든 장소를 평화롭게 차지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왜냐하면 불신보다 우리를 나태하고 무용하게 만드는 것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공적인 결과를 약속하실 때, 그 신뢰가 모든 시도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덧붙여 말하자면, 이제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처음으로 새로운 희망을 주기 시작한다. 즉, 그들이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약속을 전하면서, 동시에 모세가 이전에 증언한 바를 상기시킨다. 그러므로 그는 모세에게 약속한 것들을 이제 드러내고 이루어야 할 때가 왔다고 말한다. 만약 어떤 이가, “모세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 아브라함에게 이미 같은 말이 전해졌으며,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영원한 언약에는 모세가 400년 후 들은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지라도, 내 대답은 이렇다.

여기서는 널리 알려지고 기념되었던 오래된 약속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며, 오히려 모세가 최근의 증인으로 등장한다. 만약 그가 죽음으로써 백성의 신뢰가 흔들릴 수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모든 말씀이 곧 이루어질 것임을 선언하셨다는 사실이 이를 바로잡아 주었다.


4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 백성이 즉시 온 땅을 차지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약속의 진리와 성취가 백성의 사악함으로 막힌 모든 장애물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는 내가 논증(Argument)에서 설명하였다. 요컨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땅의 주인으로 삼으심으로써 그분의 은혜라는 헤아릴 수 없는 보물을 펼치셨지만, 그렇다고 해서 백성의 잘못된 행위가 징계받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모세가 선포한 경고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했다. 즉, 멸망받도록 정해진 민족들이 파괴되지 않으면, 그들이 눈과 옆구리에 가시와 가시침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현실화되어야 했다. 하지만 약속은 결코 깨지거나 무효가 되지 않았다. 그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며 지연되었음에도, 장기간 미뤄진 완전한 소유를 통해, 하나님이 이미 정하신 명령의 신실함이 입증되었다.

백성은 정해진 경계를 제때 차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 때문이라도 그들은 완전히 추방당해야 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는 그들에게 편안히 거주할 수 있을 만큼의 영토를 허락하셨다. 그리고 정당한 징계로, 그들이 살려둔 나머지 민족이 그들에게 해로울 것이라 예고되었음에도 그들은 거짓과 거의 끊이지 않는 배신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자극할 때를 제외하고는 괴로움을 겪지 않았다.

한 마디로 그들은 형편이 형통할 때마다 방탕으로 빠져 돌이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선하심 덕분에 원수의 횡포에 눌리고 마치 무덤으로 내던져진 것처럼 보일 때조차, 그들은 죽음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뿐만 아니라 때때로 구원자가 나타나, 모든 희망과 달리 그들을 파멸에서 구원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대해’ 란 ‘지중해’를 뜻한다. 이곳에 반대되는 경계선은 헷(히타이트) 족속의 땅이다. 마찬가지로 레바논은 유브라데스와 반대되는 것으로 놓여있는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레바논이라는 말 속에는 다른 구절에서 엿볼 수 있듯이 광야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5절. 너의 평생에 … 없으리니 … 수많은 호전적 적들과 싸워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에, 여호수아에게 특별한 신뢰와 자신감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차지하리라는 약속은 늘 불확실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토록 많은 민족을 무너뜨리는 일이 얼마나 거대한 일인가! 약속에 대한 이러한 의문은 여기서 제거된다.

더욱이, 여호수아가 모세의 승리를 기억하도록 상기시킴으로써, 하나님께서 어떤 적대 세력이라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보여주셨음을 깨닫게 한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도움 속에서, 자신이 앞으로 맡게 될 전쟁의 결과를 미리 볼 수 있도록 명령받는다. 이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연속적으로 후계자에게까지 이어주심을 나타낸다.

이어지는 내용도 같은 의미지만, “내가 너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리라”라는 말씀으로 더욱 분명히 표현된다. 이 때문에 사도(히브리서 13:5)는 신자들을 탐욕에서 돌이키고 모든 근심과 과도한 두려움을 잠재우기 위해 이 말씀을 적용한다. 실제로, 근심에서 비롯된 불신은 우리 안에 극심한 혼란과 동요를 일으켜, 위험이 조금이라도 나타나면 우리는 몸과 마음을 괴롭히며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한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보호하시기에 충분하시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실제로, 하나님은 우리의 겁많음을 치유할 다른 방법을 제시하지 않으시지만, 그 대신 현재 주신 도움에 만족할 것을 상기시키신다.


6절. 마음을 강하게 하라… 여호수아에게는 끈기와 용기를 갖추라는 권면이 추가되고, 실제로 반복되어 더 깊게 생각하도록 말씀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약속이 다른 말로 제시되어, 여호수아가 자신에게 신적으로 맡겨진 직책을 수행함에 있어 주저하지 않고, 장애물과 맞서면서도 중도에 흔들리지 않도록 확신을 갖게 하는데, 이것은 처음부터 준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투쟁을 끝까지 견뎌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부단히 노력하게 하는 힘을 주지만, 불신은 겁과 노력을 중단함으로써 드러난다. 이 구절을 통해 우리는 단순한 약속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권면의 추가적인 자극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늘 민첩함으로 주목받던 여호수아조차 의무 수행을 촉구받았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느린 행동과 나태함 속에 있을 때에는 더욱 격려가 필요함이 분명하다.

또한, 여호수아에게 어떠한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굳은 의지로 끝까지 참고 견디는 태도가 한 번만 요구된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다양한 표현으로 반복되었다. 이는 그가 수많은 전투와 다양한 싸움에 참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강하고 무적의 용기를 가지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 두 수식어만으로도 하나님께서 중대한 사안에 대해 명령하심이 분명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곧바로 문장을 반복하고, 부사 “매우(very)”를 더해 강조하신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배워야 한다. 우리 능력이 미약하고, 사탄이 거칠게 공격하며, 가장 쉬운 길은 노력을 늦추는 것임을 생각할 때, 최선을 다하지 않고는 결코 어려운 일을 수행할 준비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시도나 산만한 노력으로 힘을 허비하듯, 진정한 용기와 견고함의 근원은 여호수아가 율법을 꾸준히 지키는 데 있다는 점에서 나온다. 즉, 신실한 순종을 통해서만 진정 무적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나태하게 지내는 것이, 무모한 용기로 돌진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율법을 지키는 데서만 힘을 갖기를 원하실 뿐만 아니라, 그 직무의 무거운 짐을 지면서도 담대하게 싸우도록 명령하신다. 그가 복잡한 문제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혼란스러워질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율법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안내하신다. 율법을 지침으로 삼으면 모든 일에 충분히 대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율법을 주인으로 삼으면, 모든 일을 신중하게 처리하라”고 말씀하시며,  שָׂכַל(샤칼)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단순히 신중함뿐 아니라 성공적인 행동을 뜻하는데, 무모함은 실패의 대가를 치르기 때문이다.

율법의 가르침에 온전히 순종할 때, 여호수아는 하나님 도움에 대한 희망을 확실히 갖게 된다. 위험에 직면해 두려움이 일어날 때,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승인을 받았다는 확신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단순히 하나님을 어떤 식으로든 순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므로, 여호수아는 겸손과 절제를 실천하여 단순한 순종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권면받는다.

많은 사람은 올바른 의도를 가지고 있음에도, 때로는 자신이 지나치게 현명하다고 생각하며, 부주의로 많은 것을 놓치거나 자신의 판단을 하나님의 명령과 혼동하기 쉽다. 이 때문에 율법에 담긴 “더하거나 빼지 말라”는 일반적 금지가 여호수아에게 특별히 강조된다. 개인이 삶의 계획을 세울 때 하나님께 복종해야 하듯, 백성을 다스리는 자라면 더욱 필요하다.

만약 위대한 인물조차 겸손이라는 제동이 필요했다면, 우리가 그에 못 미치는 사람이면서 더 큰 자유를 누리려 한다면 얼마나 무모한가! 더욱이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규칙을 정하심으로써, 명예가 높은 자도 백성 중 가장 낮은 자와 마찬가지로 율법을 준수해야 함을 알게 하신다.


8절. 이 율법책을 … 율법에 대한 끊임없는 묵상도 함께 명령되고 있다. 왜냐하면, 잠시라도 묵상이 중단되면 많은 오류가 쉽게 스며들고 기억력이 녹슬어, 연속적으로 연구를 중단한 사람들은 마치 무지한 초보자처럼 실무에 뛰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분의 종에게 매일 발전하며, 생애 내내 율법 공부를 멈추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이로써 이 공부를 경시하는 사람들은 참을 수 없는 오만으로 눈이 멀게 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율법을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고,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고 하셨는가? 일부 해석자는 여기서 ‘입’이 얼굴을 대표하는 신체 부위로 쓰였다고 보지만(대유법적 표현으로), 이는 설득력이 약하다. 나는 이 단어가 여호수아처럼 단순히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통치하에 둔 전체 백성을 위해 연구를 수행해야 하는 사람에게 특히 적합하게 쓰였다고 본다. 따라서 그는 율법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여, 맡은 직무에 따라 자신이 배운 것을 백성을 위해 전파하도록 명령받는다. 동시에 자신의 순종이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도록 명령받는다. 많은 사람은 말로만 율법을 언급하지만, 실제로는 율법을 잘 지키지 못한다. 따라서 가르치면서 동시에 자신의 삶과 인격을 율법에 맞게 살도록 두 가지가 모두 요구된다.

구절의 두 번째 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세속적 목표를 이루려는 자는 결국 실패하게 된다는 사실이 보여진다. 때로 시작이 형통해 보일지라도, 결과는 재앙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형통한 결과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되는데, 이는 성급하게 세운 계획이나 하나님을 경시하는 오만에는 정당하게 거부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자신의 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도록, 학문에 대한 부지런함과 순종에 대한 성실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구해야 한다.

구절 마지막에서, 단어가 애매하기 때문에 이미 언급했듯이 문장이 반복되거나 두 번째 약속이 추가된다. 나는 두 번째 약속이 추가된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약속된 성공 이후에도,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할 때만 능숙하고 규칙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이 적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배우는 신중함은 자신의 판단만으로 충분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오만과 대조된다.

9절.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히브리어에서는 단순한 긍정문을 종종 질문 형태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문법적 표현은 매우 자주 나타난다. 그러나 여기서는 질문이 강조된 형태로 나타나며, 이는 이전에 가르쳐진 내용을 확실히 증언하고, 주께서 자신의 권위를 분명히 드러내심으로써 종으로 하여금 염려와 망설임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함이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에게 명령하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반드시 네 곁에 있으리라.” 여기서 강조점을 주목하라. 이는 하나님의 명령에 반항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음을 뜻한다. 이 구절은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명령을 신뢰하고, 양심 속에서 그 확신을 충분히 느끼며 그가 인도하시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갈 때, 무엇보다 신뢰와 확신을 얻는 데 가장 효과적임을 보여준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10   이에 여호수아가 그 백성의 관리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1   진중에 두루 다니며 그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준비하라 사흘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차지하게 하시는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

12   여호수아가 또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말하여 이르되

13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며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하였나니 너희는 그 말을 기억하라

14   너희의 처자와 가축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땅에 머무르려니와 너희 모든 용사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돕되

15   여호와께서 너희를 안식하게 하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도 안식하며 그들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그 땅을 차지하기까지 하라 그리고 너희는 너희 소유지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해 돋는 곳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차지할지니라

16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17   우리는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당신에게 순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18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


10절. 이에 여호수아가……명령하여 …… 이 선언이 정탐꾼들이 파견된 후, 즉 그들이 돌아온 뒤에 이루어졌는지 여부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나는 단지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보고가 여호수아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 이후에야 그가 진을 옮기기로 결심했음을 확신한다. 적지에 발을 들이기 전에 여러 사항을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면서, 알지 못하는 길로 성급히 나아갔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부당한 성급함일 것이다. 시간 순서를 무시하고 이후에 누락된 내용을 삽입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2장은 일종의 삽입된 괄호로 보아야 하며, 여호수아가 마침내 백성들에게 그릇을 모으도록 명령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독자에게 보다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모든 필요 사항이 확인된 후, 그는 진군할 때가 되었음을 깨닫고 선언을 내리며, 백성들에게 원정 준비를 명령한다. 그는 사흘이 지난 후 요단을 건널 것임을 최대한 확신에 차서 선언하는데, 이는 성령의 감동 없이는 결코 감히 시도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도 여울을 시도하지 않았으며, 건널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없어 보였다. 다리나 배를 이용할 방법도 없었고, 적이 이를 막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따라서 남은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옮겨주시는 것이었다.

여호수아가 이 일을 기대한 것은 무작정이나 자기 힘으로가 아니라, 신적 계시에 따른 것이었다. 백성들의 신앙도 그들의 신속한 순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직면한 엄청난 어려움을 고려할 때, 만약 그들이 하나님께 염려를 맡기지 않았다면 이렇게 즉각적으로 순종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마음에 이러한 민첩함을 심어 주신 것도 약속의 성취를 지연시키는 모든 장애를 제거하기 위함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12절. 또 르우벤 지파와… 요단강을 넘어 그들에게 유산이 주어졌으나, 그 조건은 가나안의 여러 민족을 몰아내는 데 있어 형제들과 함께 군 복무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이제 그들에게 약속을 지켜 행동할 것, 즉 아내와 자녀, 소유물을 모두 남겨두고 요단강을 건너며, 형제들이 평화롭게 땅을 차지할 때까지 전쟁을 멈추지 말 것을 권면한다. 그는 이를 권장하기 위해 두 가지 논거를 사용한다. 하나는 권위에서, 다른 하나는 공정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먼저 모세가 내린 명령을 상기시키는데, 이는 누구도 그의 결정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세는 자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입을 통해 말씀하신 것임이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 동시에 여호수아는 직접적으로 단정하지 않고도, 그들이 약속한 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계약적 의무를 가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다음으로 그는 공정성의 동기를 들어 설득한다. 같은 유산을 나누어 받을 사람들이 형평성 없는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는 말한다. “너희 형제들이 위험을 감수하며, 적어도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 너희는 평화로운 정착지에서 모든 안락을 누리는 것은 매우 부조리하다.” 그가 그들에게 “형제들보다 먼저 나아가라”고 명령할 때, 이는 적과의 전투에서 먼저 맞서 싸라는 의미가 아니며, 어떤 위급한 상황에서도 자기 몫 이상의 부담을 지라는 뜻도 아니다. 그가 의도한 바는 민첩하게 움직이라는 권고일 뿐이며, 뒤처져 느리게 따라가는 것은 일종의 우유부단한 태도로 간주될 수 있었다.

따라서 “형제들보다 먼저 나아가라”는 표현은 전투에서 맨 앞에 서라는 뜻이 아니라, 자리를 지키며 준비된 열의를 보여주라는 의미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군은 네 개의 편성대로 정렬하여 동일한 순서로 전진했다. 또한 그들을 “전사”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나이가 많거나 체력이 약한 자는 공동체의 복지를 책임지는 집에 머물거나, 공적인 임무 수행이 어려울 경우 완전히 면제되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16절. 그들이 … 대답하여 가로되 … 그들은 단순히 따르는 데 그치지 않고, 자발적으로 인정하며 자신들이 지켜야 할 순종을 구체적으로 상세히 밝힌다. 우리의 의무는 마음에서 기쁘게 수행할 때 비로소 충실히 다한 것이 되며, 이는 바울이 표현한 바와 같다(고린도후서 9:7). 만약 그들이 자주 반항했던 모세에게 순종했다고 자랑하는 데 겸손함이 부족하다고 반박한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그들이 항상 열정적으로 따르지는 않았지만, 순종하려는 의지가 충분히 강했으며, 그 절제는 단지 용인될 만한 정도가 아니라, 그들의 조상들이 얼마나 교만하게 반역했는지, 그리고 신적으로 부과된 멍에를 얼마나 완고하게 벗어나려 했는지를 고려하면 최고의 칭찬을 받을 만하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꾸짖으신 반역적인 영혼들(시편 95:8~11)이 아니라, 징계의 본보기를 통해 억눌려 조용히 복종하는 법을 배운 사람들이다.

사실, 그들이 자신들의 미덕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호수아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그가 모세와 같은 위치에서 존중받아야 한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들의 신뢰의 기반은 동시에 나타난다. 즉,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도우시기를 바라는 마음과 기도이다. 그들은 새 지도자 아래서 전쟁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나타내는데, 이는 그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승리할 것이라는 능력과 희망을 지니고 있음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모세의 손을 통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놀랍게 그들을 도우셨는지를 경험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들이 실제로 이러한 확신을 느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이는 과거 하나님의 은혜를 회상하며 스스로 용기를 얻고, 여호수아를 모세의 후계자로 바라봄으로써 성공의 결과에 있어 그의 권위를 신뢰했기 때문이다.

“당신의 하나님”이라는 표현도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다. 이는 분명 계속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킨다. 표현의 형식 또한 믿음의 확신과 기도 사이의 중간적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그들은 마음속에 좋은 희망을 품고 있음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그 일의 어려움을 인식하여 기도에 의지한다. 이어서, 그들이 자발적으로 여호수아에게 끈기를 촉구할 때, 자신들도 그의 확신을 따라 따르고 모방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비록 여호수아가 용기의 본보기였고, 행동과 가르침으로 모두를 격려했지만, 그 자신도 다시 자극받아 자신의 민첩함이 백성을 고무하는 데 더욱 효과적이 되도록 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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