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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산다는 것

오늘은 벌써 10월의 마지막에 서 있습니다. 지난 30년의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갔는지 또 아직도 현실은 여전하고 꿈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그대로인 내 모습을 봅니다.

믿음을 가지면 무언가 확실히 빠르게 바뀔 것 같은 기대감을 가지가다도 다시 현실 속에서 무너지고 현실은 그대로인 것 같아 절망적이기도 하죠. 이러한 때에 스가랴서는 나를 벗어나 하나님을 보는 믿음이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회복되지 않은 예루살렘, 그러나 또 다시 일하시는 주님으로 인한 기대 속에서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뒤돌아보게 하십니다. 어떻게 은혜로 여기까지 왔는지 말입니다.

지난 주 우리는 라요온대회를 통하여 주님이 우리 가운데 하신 일을 보았습니다. 여전히 어리석고 여전히 연약하지만 하나님이 어떤 비전으로 우리에게 꿈을 꾸게 하셨고 또 어떻게 이루게 하셨는지 그리고 여러 나의 실패 속에서도 끝까지 꿈꾸게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실현가능한지를 제일 먼저 보자고 시작한 심사, 그러나 오히려 그 속에서 하나님의 감동으로 하나되었습니다. 그 길고 긴 시간이 짧게 느껴진 것은 어쩌면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각 사람의 연약함과 비현실성은 우리의 한계였지만 그럼에도 꿈꿀 수 있음에 감사하며 그 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주님 안에서 기뻐하였습니다. 우리가 각자 어떤 자리에 있었는지 생각하면 더욱 그러합니다.


주님을 처음 만나면 나를 어떤 죄의 자리에서 건지셨는지 감격하며 첫사랑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내 기대와 능력에 대한 막연한 확신이 무너지고 처절한 현실 속에서 더 큰 감격을 가지게 됩니다. 내가 이러함에도 여전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되면 더 이상 나를 위해 살 수 없는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살게 됩니다.

내가 어떤 죄인이었는지가 아니라 내가 여전히 어떤 불가능한 자리에 있는지가 더욱 은혜의 포인트가 되어갑니다. 우리는 살면서 더욱 나의 죄인됨, 곧 불가능함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여전히 함께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깊이 알아가게 됩니다.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더욱 엄격한 잣대로 판단하는 나의 가소로운 의가 오히려 이 가운데 계시는 주님을 확실히 보게 합니다. 그리고 결국 주님이 불가능한 나와 함께 하시듯 내가 보기에 불가능한 사람들 속에서 그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보면서 감격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나의 눈으로 보고 사랑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눈으로 보아야만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눈으로 나를 볼 때 나의 죄인됨은 오히려 은혜를 크게 느끼게 합니다.


답답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결국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 때문이요, 그 주님이 안타깝게 여기는 우리 옆의 사람들, 곧 교회입니다. 그 눈으로 나를 보니 내가 한 것은 다 내 계획과 능력으로 하다가 실패한 것 뿐이요,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오직 주님의 은혜 때문임을 보게 됩니다.

나의 사는 것은 다 주님의 은혜라!!


주님은 우리에게 주님의 계획을 보여주십니다. 각 사람에게 조금씩 나누어 맡기신 비전을... 퍼즐과 같이 맞추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그 큰 그림을. 그리고 우리는 라요온대회를 통해서 그 그림의 일부를 보는 듯 했습니다. 꾸준히 순종함으로 이것을 해 오던 사람들, 이제 세상의 지혜로 그것을 도우려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꿈꾸고 자라나는 다음 세대들. 여전히 나뉘어 있으나 만약 함께라면 맞출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나를 버리고 함께 한다면...


교회가 세상의 유일한 소망이 되는 이유는 나를 버리지 않으면 하나될 수 없기 때문이요. 나를 버리는 일이 주님 밖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요, 교회가 아니면 함께 할 사람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교회는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것이 목표입니다. 나를 주장하고 내 뜻대로 하는 곳이 아니라 나는 죽고 다른 사람의 자리에 내려가서 그들을 함께 일으키는 곳이 교회입니다.

서로 짐을 지라!! 서로의 연약함만 보면 불평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연약함에도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일하시고자 하시는 주님을 보면 그 사람을 받게 됩니다. 그럴 때 주님이 우리를 통해 일하실 것입니다.

때로는 교회가 힘듭니다. 사람들이 힘듭니다. 그것은 그만큼 내가 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님께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다시 그 주님 안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주님 안에서 그 주님의 뜻대로 온전히 순종하는 훈련을 시작해야 합니다.


나의 죄인됨을 주장하는 것을 멈추는 것과 나를 온전히 드리는 훈련은 완전히 다릅니다. 보통은 멈추는 훈련에서 끝납니다. 그러나 다시 성령으로 가는 훈련이 되지 않을 때 우리 믿음은 삶이 될 수 없습니다. 멈춰진 걸음을 가게 하는 것은 매우 힘듭니다. 다시 내 힘으로 가서는 다시 멈추어야 하는 때가 옵니다. 그래서 성령충만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령의 강력한 능력이 아니고서는 선한 일에 힘을 낼 수 없습니다. 남을 위해 하는 일을 하나도 할 수 없는 것이 나의 현실입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이제는 성령의 능력으로 내가 아니라 주님의 뜻에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돈을 위해서는, 사람의 인정을 위해서는 움직여집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서는 움직여지지 않는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으로만 가능합니다. 내 힘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우리는 교회로 한번도 꿈을 꾸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시작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단순히 아이디어를 제출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내 힘과 능력으로 하지 말고 성령이 능력 없는 우리 가운데서 일하시도록 내어드리는 우리의 걸음이 되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제 새일을 행하시는 주님을 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것이 나의 사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만나고 함께 하는 여러분을 주님 안에서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온전히 주님 안에서 보고 듣고 움직이는 제가 되도록 기도해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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