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마지막 주일 설교
- 박정배

- 2025년 12월 27일
- 6분 분량
다시 새롭게 하소서
본문: 여호수아 24:14-28
도입: 수고하지 않은 은혜의 땅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5년의 마지막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한 해의 마침표를 찍는 이 시간, 우리는 여호수아 21장 45절의 고백으로 시작하고자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올 한 해를 돌아보십시오. 우리 삶에 선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보이지 않습니까? 건강을 지켜주셨고, 가정을 보호하셨으며, 교회 공동체를 세워주셨습니다.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오늘 본문 24장 13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가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들을 너희에게 주었으며 너희가 그 가운데에 거주하며 너희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열매를 먹는다 하셨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하는 성읍, 그들이 먹는 포도원의 열매는 그들의 공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오늘 누리는 이 신앙의 유산은 어디서 왔습니까? 우리 부모 세대가, 우리보다 먼저 신앙의 길을 걸었던 선배들이 눈물로 기도하며 세운 교회 아닙니까? 우리가 자유롭게 예배드릴 수 있는 이 복음의 자유는 순교자들의 피 값으로 지켜진 것 아닙니까?
우리는 올 한 해 '내가 수고하지 않은 땅'과 '내가 건설하지 않은 성읍' 같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질문이 있습니다. 이 풍요의 정점에서, 이 은혜의 절정에서, 우리는 누구를 바라보고 있습니까? 은혜를 주신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은혜 자체에 도취되어 있습니까?
본론 1: '섬김'의 우선순위를 정립하라 (수 24:14-15)
오늘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시면 한 단어가 계속 반복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섬기다', '섬기라', '섬기겠노라'... 14절부터 24절까지 '섬기다'라는 단어가 무려 일곱 번이나 등장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계신 것입니다. "너희는 누구를 섬기고 있느냐?"
예배는 단순히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나와서 찬양하고 기도하는 종교적 의식이 아닙니다. 예배는 '누구의 통치를 받을 것인가', '누구를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실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선택의 갈림길을 제시합니다.
첫째,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과거의 습관, 전통, 관습입니다. "우리 집안은 원래 이래", "우리는 늘 이렇게 살아왔어"라는 타성입니다.
둘째, 아모리 족속의 신들. 이것은 무엇입니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가치관, 문화, 트렌드입니다. 성공, 돈, 명예, 인정받고 싶은 욕망... 이것들이 오늘날 우리가 섬기는 아모리의 신들입니다.
여호수아는 말합니다. "중립 지대는 없다. 너희는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한 해를 돌아보십시오. 내 시간의 가장 큰 부분은 무엇을 '섬기는' 데 사용되었습니까? 내 마음의 보좌에 실제로 앉아 계신 분은 누구입니까? 주일 아침에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고백하지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누구를 섬기며 살았습니까?
그리고 여호수아는 자신의 결단을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이 고백이 2026년을 향한 우리 가정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오직 우리 가정은 여호와를 섬기겠습니다." 이것이 우리 부부의 고백, 우리 자녀들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 불편한 진실이 있습니다. 우리의 열심 있는 고백에도 불구하고...
본론 2: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직면하라 (수 24:19-20)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도전에 응답합니다. 16-18절을 보면 그들은 감동적인 신앙고백을 합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을 결단코 하지 아니하오리니..."
그런데 19절, 여호수아의 반응을 보십시오.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무슨 말입니까? 백성들이 그렇게 열심히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겠습니다!"라고 다짐하는데, 지도자가 찬물을 끼얹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질투하시는 하나님'. 이 표현이 우리에게 어떻게 들립니까? 혹시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은 좋아하지만, 질투하시는 하나님은 부담스러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질투는 인간의 질투와 다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의 관계를 그만큼 소중하게 여기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적당히 타협하는 사랑이 아니라, 전적인 헌신을 요구하시는 사랑으로 사랑하십니다.
결혼한 부부를 생각해보십시오. 만약 남편이 아내에게 "당신도 사랑하고, 다른 여자도 좀 사랑하면 안 될까?"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결혼은 파탄날 것입니다. 왜입니까? 사랑은 배타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일에는 하나님을 섬기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세상을 섬기는 이중생활을 원치 않으십니다.
20절을 보십시오.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이 말씀이 엄중합니다. 하나님을 버리는 것은 단순히 종교를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근원을 버리는 것이고, 그 결과는 재앙입니다.
질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가볍게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마태복음 10장 32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들 앞에서 주를 시인하는 삶.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바로 서는 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소망이 없는 것입니까? 여호수아의 말대로 우리는 하나님을 능히 섬기지 못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능히 못하지만,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능히 하십니다. 로마서 8장 3-4절은 말합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이는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빌립보서 2장 13절도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우리의 결단은 우리 힘으로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오만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겠다는 믿음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백이 진실한지 시험하십니다. 어떻게 시험하십니까?
본론 3: 결단을 증명하는 '구체적인 행동' (수 24:23-26)
백성들은 21절과 24절에서 다시 한번 고백합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리이다."
세 번이나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겠습니다"라고 다짐합니다. 얼마나 열심 있는 고백입니까?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의 고백은 열심히 있으나, 구체적인 회개의 행동은 보이지 않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치워 버리고 너희의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
"치워 버리라." 이것이 핵심입니다.
창세기 35장을 기억하십니까?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기 전에 무엇을 했습니까? 그는 자기 집안사람들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말했습니다.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이 자기들의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들의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야곱은 우상들을 '땅에 묻었습니다'. 진정한 새롭게 함은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내 삶의 우상을 땅에 묻는 행동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24장의 백성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우리가 섬기겠습니다"라고 세 번이나 말하지만, 우상을 버렸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말과 삶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14절의 질문이 오늘 우리에게도 향합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삶에 어떤 우상들이 남아 있습니까?
물질주의의 우상: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라고 고백하지만, 실제로는 돈을 더 의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한 달 수입이 줄어들 것 같으면 불안해하고, 저축 통장 잔고가 줄어들면 잠을 못 이룹니다. 그러면서 기도 시간, 예배 시간은 쉽게 희생시킵니다.
성공 지상주의의 우상: "성공해야 한다", "인정받아야 한다",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강박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일과 가정의 균형을 잃고, 주일도 일 때문에 자주 빠지며, 자녀들과의 시간도 희생시킵니다.
관계의 우상화: 자녀를, 배우자를, 혹은 내 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녀의 성공이 하나님의 뜻보다 더 중요해지고, 자녀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주일 예배도 쉽게 포기합니다.
디지털 중독: 스마트폰, SNS, 유튜브... 말씀 읽을 시간은 없다고 하면서 스마트폰은 하루에 몇 시간씩 들여다봅니다. 기도할 시간은 없다고 하면서 SNS는 수시로 확인합니다.
이것들이 현대판 '아모리 족속의 신들'입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가 거기 여호와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세우고."
여호수아는 큰 돌을 가져다가 증거를 삼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증거의 돌'은 무엇입니까? 2026년을 향한 우리의 구체적인 순종의 실천은 무엇입니까?
말씀 생활의 회복: 2026년 매일 아침을 말씀과 시작하십시오. 큐티를 통해서 하루의 삶이 말씀과 연결될 뿐 아니라 성경통독을 통해서 말씀 중심의 가치관을 정립합시다.
가정 예배의 시작: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가족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시간을 갖겠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예배의 형태나 모습보다 꾸준히 가족과 함께 말씀 앞에서 나누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매주 구체적인 시간을 정하십시오.
물질의 우선순위 재정립: 매주 주일헌금으로, 매달 십일조로 먼저 하나님께 드립시다. 하나님의 것을 먼저 드리는 것이 신앙의 우선순위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증거입니다.
시간의 주권 회복: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절반으로 줄이고, 그 시간에 기도하고 성경 읽겠다는 결단. 스마트폰 앱 사용 시간을 제한하는 기능을 활용하십시오.
섬김의 실천: 교회 내 한 가지 봉사를 감당하겠다는 결단. 찬양대든, 주일학교 교사든, 구역 봉사든, 내 은사와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구체적인 헌신을 하십시오.
이런 구체적인 행동 없이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라는 고백은 공허합니다.
결론: 2026년을 향한 새로운 언약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은 세겜에서 언약을 새롭게 함으로써 가나안 정복 세대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다음 세대를 준비했습니다.
여호수아 21장 45절을 다시 기억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하나님은 신실하셨습니다. 2025년 한 해도, 그 이전 모든 해에도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약속은 하나도 어긋남이 없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2026년에도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도, 우리가 실패할 때도, 우리가 넘어질 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우리의 불순종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는 그분을 더욱 전심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2025년의 끝자락에서 우리 마음에 할례를 행합시다. 우리 안에 남겨진 '아이성 사건' 같은 죄의 잔재들을 청산합시다.
아이성에서의 패배를 기억하십니까? 큰 성읍 여리고는 무너뜨렸지만, 작은 성읍 아이에서 이스라엘은 패배했습니다. 왜입니까? 진영 가운데 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간의 숨겨진 탐욕이 전체 공동체를 패배로 이끌었습니다.
우리 삶에 숨겨진 아간의 탐욕은 없습니까? 아무도 모르는, 하나님만 아시는 그 죄악은 없습니까?
오늘, 그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고백하십시오. 버리십시오. 땅에 묻으십시오.
그리고 개인적 결단뿐 아니라, 공동체로서 함께 나아갑시다.
우리 교회가 2026년에 어떤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말씀으로 새로워지는 공동체: 설교와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교회
예배로 회복되는 공동체: 형식적인 종교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는 예배가 드려지는 교회
사랑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 세대와 세대가, 직분과 직분이, 구역과 구역이 서로 사랑하며 섬기는 교회
복음으로 나아가는 공동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잃어버린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교회
이것이 2026년을 향한 우리의 비전입니다.
이제 함께 기도하며 결단합시다.
"하나님, 우리를 다시 새롭게 하소서.
말뿐인 예배자가 아니라, 내 삶의 우상을 묻고 오직 주만 따르는 진정한 예배자가 되게 하소서.
2025년 한 해 동안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수고하지 않은 땅에 거하게 하시고, 우리가 심지 않은 포도원의 열매를 먹게 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 2026년을 향해 나아갑니다.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소서. 우리의 가정을 축복하소서. 우리 교회를 부흥시켜 주소서.
우리는 연약하지만, 주님은 강하십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주님은 충분하십니다. 우리는 실패할 수 있지만, 주님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요, 우리의 결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26년,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다시 새롭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분의 신실하심이 새해에도 우리와 함께할 것입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