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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5 사랑과 미움, 그리고 용서_이민우

180305(월) 제목: 사랑과 미움, 그리고 용서

#1.요즘 성경속에서 용서, 용납이란 단어를 자주 보게된다. 그런데 '용'자가 겹친다. 혹시 같은 한자일까? '용'은 무슨 의미인가?

용서(容恕) 용(容) : 얼굴 용. 얼굴모양. 용모. 몸가짐 서(恕) : 용서할 서. 어질다. 인자하다. 동정하다. '용서'의 뜻 :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줌.

용납(容納) 용(容) : 역시나! 용서와 용납의 '용'자는 같은글자였다! 납(納) : 들일 납. 거두어들이다. 수확하다. 받아들이다. '용납'의 뜻 : 너그러운 마음으로 남의 말이나 행동을 받아들임.

최근에 듣게된 또다른 단어, 포용.

포용(包容) 포(包) : 쌀 포. 싸다. 감싸다. 용납하다. 용(容) : 세상에! 여기의 '용'자도 같은거네! '포용'의 뜻 : 남을 너그럽게 감싸 주거나 받아들임. '감싸줌' '덮어줌'

'용(容)'자.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용서. 용납. 포용. 다 같은 '얼굴 용'자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바, '감싸다', '덮어주다'와 같은 의미들은 다 나머지 글자들에 담겨있다. 그리고 '얼굴 용'자가 더해져있다.

누구의 얼굴인가? 하나님의 얼굴. 예수님의 얼굴. 그 사람의 얼굴. 그 영혼의 얼굴. 그 영혼. 그 영혼 안에 있는 예수님을 보고 용서,용납,포용하라는 것이구나! 라고 짐작하게 되었다.

감싸다? 덮어주다? 우리가 성경에서 자주 들어 익히 알고있는 표현이다. 무엇으로 감싸고, 덮는가? 예수의 피로. 누가 감싸고 덮어주시는가? 하나님이. 누구에게? 죄인인 나에게. 무엇을? 나의 죄를.

얼굴을 보고 용서하고, 얼굴을 봐야 용납할 수 있다는 것처럼 보인다. 미움에서 사랑으로 어떻게 넘어가는가? 용서해야 넘어갈 수 있다. 기도하게된다. '주님, 저도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하게 해주세요. 그런데 주님의 얼굴을 봐야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내가 용서받은 자인지를 진짜 깨달아야 나도 남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요즘들어 '사랑'과 '미움'에 대해서 알아가고 있다. 사실, '미움'은, 내가 원래부터 갖고 있던, 나의 본성과도 같은 것이었고, '사랑'은 요즘에 만나게되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 사랑을 나는 받고 있으며, 이제는 이 미움의 문제를 해결하고도 남을 만큼의 사랑을 하나님께 더 받기를 소원하는 요즘이다. 바로 성령께서 내게 만나게 해주셔야 하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자, 십자가 사랑이다. 그 피의 사랑이다. 주님, 그 피의 사랑에 감격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합니다. 내 영혼도 그 예수님의 피의 사랑에 감격할 수 있다!

#2. '나'를 벗어나 더 넓은 '이 세대'의 관점으로 보게된 사랑과 미움.

여기까지 생각하니 갑자기 사고의 범위가 넓어진다. 문득 어제, 오랜만에 다시 보았던 이정훈 교수님과 데이비드 차 선교사님의 영상이 기억났다. 그때는 깨닫지 못했는데, 지금보니 두 분이 공통적으로 말씀하시는게 있었다. 어쩜 같은 말을 하실까?

데이비드차 선교사님은 3.1절 구국기도회를 앞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전 광화문 촛불집회 등은 '미움'과 '분노'의 영이 그 동기다. 그 사단의 영이다. '미움'과 '분노'를 '사랑'으로 덮자! 고 하셨고 그래서 3.1절 기도회로 간다고 하셨다.

이정훈 교수님도 말씀하셨다. 저들의 동기가 '미움'과 '분노'이기 때문에 결코 '사랑'이신 예수님, 그 진리를 가진 우리를 이길 수 없다! 고 하셨다.

정오기도회때, 3.1절 전날인 수요일 정오기도회 때, 강승희 집사님의 인도로 이 나라를 위한 중보기도를 한 적이 있다. 사실 이때에는 기도가 잘 되지않았다. 이 시대, 이 나라의 죄가 먼저 나의 죄임을 고백하고, 회개하고 자복하는 심령으로 먼저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을때, 그래서 우리나라의 교회들이 먼저 회개해야 한다고 하셨을때, 나는 '먼저 나의 죄임을 고백하고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 잘 연결이 안되어 기도가 잘 안되었다.

그치만 지금은 연결이 된다. '아! 미움과 분노의 영이구나'. '미움의 영. 내 안에도 있구나!' 본성과도 같은, 지극히 나의 것. '나'라고 생각해 왔던 미움. 그치만 사랑도 있구나! 하나님의 사랑. 용서라는 것도 있구나! 이것은 나 개인의 문제 뿐 아니라, 이 시대의 문제이구나! 사랑 vs. 미움. 그래서 촛불집회로 나온 것이구나! 알게되었다.

남은 사순절, 아는데서만 그치지 않고 그 사랑을 만나길 소망한다.

조회수 37회댓글 1개

1 comentario


Miembro desconocido
26 mar 2019

김기업

개인적인 형의 붙잡음에서부터 이 나라로까지 확장되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점에 대해서 깊이 공감하고 저도 더 붙잡게됩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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