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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13 QT묵상_아야노

180313 말씀 묵상 2 (큐티 하면서)

오늘 큐티를 하면서 또 하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은 구절이 있었다. 고후 7: 7를 보면, 바울이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다" 라고 고백한다. 그런데 사실 상황만 보면 기뻐 할 만 한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고린도교회 안에서 디도가 전한 것 처럼 변화가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일부의 사람에 불과했고, 여전히 바울을 거부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바울이 디도에게 이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마게도냐에서 육체가 편하지 못하고, 환난을 당하였을 때 였다. 그렇게 따지면 여전히 안돼보이는 일이 훨씬 많아보이는데 왜 바울은 이렇게 기뻐 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두 가지인 것 같다. 첫 번째로 바울은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크게 붙잡았던 것 같다. 작은 수의 작은 변화일 수 있지만, 또 여전히 어려움은 많지만, 소원함을 주시고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을 굳게 믿었던 것 같다. 그래서 고린도교회에게 있던 작은 변화도 하나님이 계속 이끌고 가시는 증거 같이 보여 기뻐했을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로 바울이 그 작은 변화를 보고 기뻐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 일, 남의 일" 의 경계선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하나님은 고린도교회에게 일하기 시작하셨지만, 사실 바울 자신이 있는 상환은 여전히 환난중이었다. 그럼 왜 바울은 그럼에도 기뻐할 수 있었을까? 바울의 기쁨은 무엇을 향한 기쁨이었을까? 생각해봤을 때 바울의 기쁨은 나와 상관이 있어서 기쁘다. 라기 보단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보고, 교회를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시는 일들 보고 얻은 기쁨인 것 같다. 나는 여전히 "내가" 변하는게 하나님을 느끼는 일이고 "내가" 변하는 것 자체가 기쁨이지만, 바울은 각자가 변하는 것도 결국 하나님 나라를 위함이고, 그래서 우리의 기쁨의 이유는 나에게 변화가 있어서, 내가 은혜의 자리에 있어서가 아니라 이 모든 과정과 각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고 이루어져서 인 것 같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남의 일/ 나의 일" 이런 생각을 안가졌던 것 같다.

나도 어제 사실 엄마를 통해서 홍콩 아이들의 변화에 대해 듣게하셨다. 한 아이 한 아이 하나님이 간섭하고 계시다는 것을 들었을 때, 물론 기쁘고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거기서 나의 모습을 보니, 나는 여전히 실패하고, 잘 아되기 만 하는 것 같아서 앞으로 내가 이 아이들을 돕고, 또 함께 가야되는데 나는 여전히 이 지경이네... 라는 생각으로 이러고 있으면 안되겠다는 부담감은 있었지만, 그 아이들의 변화가 나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기 까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오늘의 바울을 보면서 다시 이 홍콩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아이들의 변화나 어른들의 변화를 나의 위로 힘으로 붙잡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바울의 상황처럼 눈에 보기에는 여전히 안되는 것들이 많아 보여도, 그 자리에서도 조금 씩 각자에게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위로와 소망을 가지고, 또 "나의 일, 나의 변화" 에 집착하지 말고 각자를 만들어 가시는 이유인 하나님 나라와 그 교회에게 더 눈을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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