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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11 QT묵상 (사 43:1~13)_김기업

  • 2018년 4월 11일
  • 4분 분량

180411 새벽예배 묵상노트 이사야 43:1~13

부활절 이후로 여러가지 고민들이 많아졌다. 부활절까지 내 안에 꾹꾹 눌러놓고 부활절에만 집중했다가 끝남과 동시에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버렸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들을 만나면 나를 부러워했다. 하고싶은 일을 찾았고 그걸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친구들을 보면서 자괴감에 빠졌다.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자신이 뭘 하고싶은지 몰라서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일반적인 취업 준비를 열심히 하고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하고싶은 일을 찾았다고 하지만 도대체 어떤 준비를 하고있는가? 저 친구들보다도 아무것도 안하면서 가만히 있지는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더빛기독학교 학생들에게 주어진 근신기간과 결단서에 대한 이야기가 곧 나에게 주신 상황이라고 생각되었다. '나는 왜 더빛기독학교에 있기 원하는가? 그러면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결단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기도를 하며 계속 질문을 하다보니 '왜'에 대한 고민은 너무 분명했다. 이 마음은 내가 가질 수 있었던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작은 소원함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라는 게 분명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했을 때 너무 막연해졌다. '뭘 어떻게 하지? 무슨 준비를 해야하지? 교육대학원을 가야하나?'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도 '더빛기독학교는 말씀 중심의 학교잖아. 그런데 내가 배운 건 세상에 대한 역사인데 이걸로 뭘 하겠어? 이게 필요한 게 아니잖아. 말씀이 중요하지'라고 생각하면서 교육대학원에 대한 고민도 '학교가 필요하다면 가는 거고, 아니면 안 가'라고 결론내렸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을 중고등부교사회의에서 나누다가 임지훈간사님으로부터 '너는 아직 너에 대한 결론이 안나서 교육대학원을 가는 이유도 너고, 안가는 이유도 너다'라고 말씀하셨다. 멘붕이 왔다. '무슨 소리지? 나는 분명히 학교가 필요하다면 가려고 마음먹었는데 절대 나 때문에 가려고 하는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인정이 되지 않았다. 이게 인정이 안되서 오늘까지 요 며칠을 계속 고민했다. 그러다가 오늘 큐티를 하다 생각난 것이 그때 은정쌤이 하신 말씀이었다. '기업아, 미리 물어보지 그랬어. 학교가 뭐가 필요한지. 뭘 같이 할 수 있을지 미리 물어봤다면 같이 고민해볼 수 있었을텐데.'라고 하셨다. 여기서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큐티중 동우가 나에게 물어보았다. '형, 학교가 필요한 게 무엇일까요?' 생각해보니 나는 전혀 모르겠다. 학교가 필요한 게 뭔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면 학교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교육대학원을 가네, 마네했던 나의 고민은 도대체 무슨 고민이었지? 말은 학교 때문이라고 했지만 '내가 학교에서 어떻게 할지가 더 중요했던 건 아닌가?' '여전히 내가 이 안에서 무슨 역할을 할 것인가?' '내가 학교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지?'라고 생각하며 여전히 나 중심적인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번도 학교가 필요한 게 무엇인지, 그 필요를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것이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전부였다. 그제서야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였다. "너희 못 듣는 자들아 들으라 너희 맹인들아 밝히 보라"(사42:18) 어제 이 말씀을 보았을 때는 '맞아요. 저 못들어요. 저 못봐요. 근데 어떡하라고요?'라는 마음만 계속 들었다. 그런데 오늘 다시 이 말씀을 보니 '귀머거리, 맹인'의 상태가 진짜 지금 나의 상태임을 조금씩 인정하게 되었다.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도다 그들이 그의 길로 다니기를 원하지 아니하며 그의 교훈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사42:24) 내가 하나님께 범죄하였다. 내가 하나님의 길로 다니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 '주님 어찌합니까'

오늘 말씀에서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사43:10) 하나님은 나를 증인으로, 종으로 부르셔서 내가 그분을 알고 믿고 그 분이 하나님인 줄을 깨닫게 하려고 부르셨다. 나를 내 길을 닦는 주인된 자로 부른 것이 아니라 "종"으로 부르셨다. 지금 나에게 있어 '학교가 필요한 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라는 것과 같다. 이 말씀으로 하나님이 나를 지난 1년간 인도하신 것을 금새 까먹고 또다시 나의 나라와 나의 의를 구하려 한 나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내 안에 여전히 하나님 아닌 나의 것들로 채우려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의 중심을 다시 하나님께 돌립니다.

나의 맹점 1. "너는 다르냐?" 임지훈 간사님의 말씀을 듣고나서 멘붕이 온 이후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전히 나밖에 없고, 나를 위한 삶을 살기 원한다고?' 이 고민과 함께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 모습을 돌아보니 누군가를 향해 긍휼한 마음을 가질 순 있지만 나 스스로가 똑같이 긍휼히 여김을 받아야하는 자임을 모른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이 세상의 답은 정말 예수님과 십자가밖에 없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보게 되면서도 나도 그 세상과 하나되어 살아가는 한 사람의 죄인임을 알지 못한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돌아보면 정말 하나님의 나라인 것을 알지만 오늘날 그 마음을 잃어버린 이유에 대해서 내가 세상과 똑같은 논리에 빠져 놓쳤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먼저 회개하지 않는다.

이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은 나에게 계속 말씀하시는 것 같다. "너는 다르냐?"라는 말씀이었다. "너는 그러면 하겠는냐?"라는 말씀을 하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에게 '너는 뭐가 다르냐 너도 똑같지 않느냐'라고 묻고 계신다. "네, 주님 저도 똑같습니다. 나 때문입니다. 제가 먼저 회개하겠습니다."

2. '왜' vs '어떻게' 나의 가장 큰 맹점이다. 지훈이형한테 '너가 아직 너에 대해서 결론이 나지 않아서 그래'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이 '왜 학교를 하기 원하는지'에 대한 결론이 아직 '너의 수준'이어서 그렇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면 나에게 드는 생각은 '내가 "왜"에 대한 결론이 부족하구나. 아니, 나 심지어 "왜"에 대한 결론이 없는건가?!'라고 생각을 다 뒤집어버린다.

여기서 경미누나가 자주하는 비유가 떠오른다. '숙제 안하면 3대 때릴거야'라는 말이 '3대 때리겠다'는 말이 아니라 '숙제하라'는 말인 것처럼 뜻을 오해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지훈이형이 하신 말씀이 '너가 '왜'에 대한 결론이 없으니까 잘못했어. 혼나야돼'라고 하시는게 아니라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할지 고민해보라'는 뜻인 것이다.

사실은 또 하나의 오해가 바로 "왜"에 대한 결론이 끝장나야 "어떻게"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다고 단계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둘은 동전의 앞, 뒷면처럼 같이 가는 것이다. 단계적으로 생각하면 절대 갈 수 없을 뿐더러 나처럼 계속 스트레스만 받게 된다. 몸만 축나게 된다. 내가 그렇다. 이제 나에게 적용하면 이렇다. 하나님이 주신 학교에 대한 작은 소원함을 가지고 학교가 필요한 걸 선생님들에게 묻고 듣고 답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한가지를 붙잡고 최선을 다해 해보는 것이 바로 이 둘에 대한 답인 것 같다. 왜와 어떻게는 이렇게 서로 핑퐁핑퐁을 거치면서 점점 소명이라는 한 곳을 향해 모이는 과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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