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QT묵상
본문 행 2:14~21
강동우(25세)
오늘 본문은 오순절 날 다락방에서 기도하다가 성령받은 직후라는 시간상의 순서를 가지고 있다.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다. 방언을 받고, 하나님의 크심을 찬양하는 등 일순간에 여러 일들이 일어났다.
나는 다른 것 보다 가장 크게 와닿은 것은 말씀이 예수님과 연결이 된 부분이다. 베드로가 성령받은 무리에게 술취한 것 같다는 조롱에 담대하게 반박하는 내용이 있는데, 원래 그렇게 담대하지 않은 사람이 담대해진 것도 놀라운데, 말씀으로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다시 보니 굉장한 충격적인 장면임을 보게 된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냥 보고 따라다녔지만 예수님을 부인할 수 밖에 없던 제자들이 진짜 예수님의 제자들로써 전도생활을 하게 되는 기념비적인 순간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요즘 '성령세례'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교회에서 말씀을 나누다보면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렇게 크게 와닿는 말은 아니다. '나는 성령세례 받았었어. 온 교인이 다 보셨잖아.'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에 그냥 넘긴 순간이 참 많은 것 같다. 그냥 내가 하나님을 찾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 이런 것 마저도 썼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들게 만드는 단어였다.
그러나 요즘 성령세례라고 하면 참 기도하게 되는 부분은 '성령세례를 과연 왜 주시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분명하게 말하는 것 같다.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
나는 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사회생활에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등등 '나'를 위해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주시고, 좀 더 편하게 삶을 살도록 인도하신다고 스스로 생각했었다고 본다. 성령의 존재이유에는 관심이 없고 나에게 초점이 많이 가있는 상태였다고 고백한다. 나의 이익을 위해서 나의 목표의 조력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성령님은.
아 물론 나의 삶을 바꾸어 주시는 것은 맞다. 그런데 왜 바꾸어 주시는지에 대한 분명한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덮어놓은 나의 지금까지의 삶을 회개합니다. 말씀을 주시고, 성령을 주시는 이유는 분명하다. 성령대로 산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이고, 그것은 곧 예수님을 전하는 일인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이 필요하시면 나의 연약한 부분, 죄된 부분을 만지시고 고치시는 것 뿐이지, 나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성령님이 많이 슬퍼하실 것 같다.
주님 매번 성령님을 따라 가고 싶습니다고 고백한 것과 달리 저의 인생을 위해서 성령님을 이용하고자 했고, 성령님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저를 회개합니다. 성령님을 찾지 않고, 수단으로써 이용만 한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시지 않으시고 항상 저에게 말씀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말씀을 통하여, 양심을 통하여 계속해서 호소하시는 그 말씀을 이제는 듣기 원합니다. 성령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순종하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에 대해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지만 주님이 저를 구원하시고 성령님을 주신 이상 하나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매사 주님을 붙잡는 영혼 되기를 간절히 원하오니 주님 붙잡아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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