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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12 QT 묵상 (고전 6:14~7:1) _ Ayano Karasawa

3/12 QT 묵상 (고전 6:14~7:1)

Ayano Karasawa(21세)


오늘 말씀을 보면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우리 믿는 자는 믿지 않는 자와 조화 될 수 없고, 상관 할 수 없다, 일치 될 수 가 없다고 한다. 이 모든 말들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을 따르는 자와 세상을 따르는 자는 "공존할 수 없다"는 뜻인 것 같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는 바울의 말씀과 달리 매일 살면서 두 "나" 의 공존을 느끼고 있다. 하나님을 따르고 싶은 나와 그러지 않는 나. 이 두 마음이 계속 계속 내 속에서 싸운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공존할 수 없다" 라는 했다. 그럼 왜 나는 두 마음의 갈등을 느끼는지, 그리고 바울이 "공존할 수 없다" 라고 한 것이 무슨 뜻인지 생각해보았다.

고후 6:14을 보면 바울이 믿는 자를 빛으로, 안 믿는 자들을 어둠으로 비유하면서 그 두 개는 사귈 수 없다고 한다. 이 비유를 보면서 조금 바울이 말한 공존할 수 없다는 뜻을 알게 되었다. 어둠 깜깜한 곳에 한 줄기 빛이 비추면 그 곳에는 온전한 어둠은 사라진다. 또 반대로 빛 가운데 조금한 그림자가 들어와도 완벽한 빛의 상태는 깨져버린다. 그래서 이와 같이 우리가 느끼는 두 마음도 하나를 택하는 순간, 그 또 하나는 사라지게 되는 것 같다. 우리는 아직 온전한 모습은 아니라서 두 가지 모순된 마음을 가질 수 는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히 두 마음을 품을 수 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선택과 결단을 매 사 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선택을 내린 즉시 빛과 어둠처럼 선택하지 않는 한 쪽은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공존 할 수 없다' 고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는 것은 (불순종을 한다는 것은) "실수" 정도가 아니라 내 속에 있는 빛을 사라지게 만든 큰 일이라는 것을 보아 무서웠고 경각심을 받았다.

그러나 또 동시에 감사한 것은 우리가 빛을 택할 수 있게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고후 6:16을 보면 우리는 이미 하나님이 살아 계신 성전이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고 행하신다고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매 사의 선택 앞에 하나님께 마음을 올려드리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안에 거하고 행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빛을 택할 수 있게 되고, 그 빛이 우리의 어둠을 몰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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