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시는 능력의 왕 예수님
마태복음 4장 23절은 이렇게 시작하였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리고 9장 35절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완전히 같지 않은가?
4장에서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 받으시고 성령으로 시험을 받으시고 제자를 부르셨다.
그리고 선포하셨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17절)
그러나 우리는 천국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래서 온 갈릴리, 모든 마을에 다니시며 가르치시고 전파하시며 고치심으로 천국이 무엇인지 보여주셨다. 9명의 병자들을 고치시고 바다도 잠잠케 하시는 기적으로 보여주셨다.
이제 그 마지막 부분에 도달했다.
오늘 본문에는 두 맹인이 등장한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다. 그들은 제자가 되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이 물으신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주여 그러하오이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신다. 믿느냐? 믿음대로 되라!
오늘 무엇을 주님께 구하고 믿는가가 바로 우리의 미래다.
불가능한 것, 벗어날 수 없는 것들로부터 건지시는 것은 바로 주님이시요, 그분이 말씀이다.
모든 것이 어두운 지금 이 세상에서 주님께 구하며 그분이 하실 수 있음을 믿는다.
주님, 일하소서. 내 삶에, 이 더럽고 추악한 이 세상 속에서 구원하소서!
나에게는 답도 없고 길도 없으니 주님 밖에 없으니 일하실 줄 믿습니다!
귀신이 들리고 그래서 말도 못하는 사람을 데려온다.
그렇다. 우리도 데려오면 된다. 모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시는 주님께로.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본 적이 없는 일을 행하시는 우리 주님!! 찬양합니다.
기적 앞에서 갈라지는 사람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고 폄하한다.
유대 지도자는 하나님을 가르치고 전파하며 고치는 역할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해야 했던 일을 하시는 주님을 보고도 믿지 않는다.
바로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거절하고 핍박하는 무리와 예수님께 나아가 구하고 따르는 무리로 나뉜다.
그것이 이 땅을 사는 두 부류, 우리의 삶을 결정적으로 나누는 가장 중요한 결정이다.
살아계신 예수님은 오늘도 역사하신다. 그러나 그분의 능력과 역사를 믿지 않으면서도 믿는다고 말하며 주여 주여 할 수 있다. 바리새인의 믿음이다. 귀신 같은 믿음이다. 아니 귀신도 그분의 능력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그분의 능력과 역사가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없다.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길 기도한다. 그것을 방해하는 모든 사단의 역사가 무너지고 모든 생각과 감정을 굴복시켜 그분이 오셔서 일하시길 간절히 바란다.
우리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믿음을 통해 능력으로 나타나기를 기도한다.
우리의 예수님을 향한 고백이 진실하여 행함으로 드러나기를 기도한다.
우리의 성령님을 향한 기도가 이루어짐으로 찬양으로 넘쳐나기를 기도한다.
긍휼하신 예수님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예수님은 왜 이 땅에 오셨는가? 바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이다.
고생하고 있는 우리를, 노력해도 안 되어서 포기하고 무기력해진 우리를.
죄로 인해 망가진 우리 인생을, 사단의 종으로 전락한 우리의 모습을.
주님은 죄인인 우리를 미워하지 않으시고 죄를 미워하신다.
혼자서 애쓰고 힘쓰고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음을 아시고 불쌍히 여기신다.
우리의 목자가 되시려고 오셨다.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려고 오셨다.
죽음의 길, 죄의 길에 익숙한 우리에게 길이 되시고 생명이 되시려고 오셨다. 스스로 갈 수 없음을 불쌍히 여기시고 인도해주시려고 오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로 쉬게 하리라” (마11:28)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
제자 삼는 제자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주소서 하라”(37,38절)
더빛교회는 이제 5년이 되어간다. 그러나 그전에 안디옥교회가 있다. 15년간. 그리고 그 이전에 추수꾼선교회가 있다. 여러 교회의 집사님, 권사님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모인 선교회이다. 그리고 그 선교회를 세우신 심의화 목사님은 바로 위의 말씀을 받으셨다.
예수님이 지금도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보내주소서 하라.
더빛교회는 “예수님을 믿어요”하고는 예수님보다 세상을 따르는 것이 평신도의 삶이라는 통념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예배 참석과 십일조, 그리고 때때로 봉사하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엄청난 헌신이라는 값싼 은혜에 반대한다.
주님은 우리를 제자로 부르셨다. 그물을 던지고 가족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라 하신다.
그리고 이제 제자들에게 지금까지 하신 예수님의 사역들을 함께 하자고 하신다.
먼저 예수님을 믿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이제 추수밭으로 나가야 한다. 우리에게 모든 능력으로, 성령으로 함께 하셔서 추수할 일꾼이 되라 하신다. 주님의 눈으로 보니 추수할 것이 많다. 추수할 일꾼을 보내주소서!!
가르치고 전파하며 고치신 예수님을 따라서 우리도 가르치고 전파하며 고치는 사명을 감당하는 제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제자 삼는 제자를 제자 공동체로 세우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그래서 10장부터는 제자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바로 그들에게 권능을 주시고 내보내신다.
어떻게 사명을 이루어가는지 지도해주신다.
그렇다. 나를 부르신다. 제자로 따르게 하시고 제자를 삼는 방법을 가르쳐주신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하신 말씀대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1. 당신의 고통은 무엇입니까? 무엇 때문에 진이 다 빠져버렸습니까? 왜 포기했습니까?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께 다 말하세요. 그분은 혼내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고집하며 부정하며 버텨도 소용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안 됩니다. 도우시는 손을 붙잡으세요.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2. 제자 삼는 제자 되기 원하십니까?
돈이나 우상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시고 내가 벗어난 그 자리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영혼을 제자로 부르시는 통로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제자입니다. 제자 공동체. 우리의 자녀를 제자로 세우시기 원하시며 우리의 형제, 자매를 진정한 제자로 세우시기 원하십니다. 교회로 부르셔서 함께 세우며 추수하길 원하십니다.
주님은 당신에게 어느 밭으로 가라고 하십니까?
함께 기도합시다.
주님의 마음으로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저와 교회 되게 하소서.
만날 수 없는 이 때에도 주님의 손길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찾아가 주소서.
우리의 전 삶이 추수하는 밭이 되게 하사, 교육과 복지와 공동체로 주님을 전하게 하시고 온라인 밭으로 나가 추수하게 하소서.
추수할 것이 많은 이 때 우리의 자녀와 형제, 자매와 세상을 제자 삼는 우리 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