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18/03/05 QT묵상 (고후 3:1~11)_강동우

180305 새벽 고후 3:1-11

바울은 왜 사도직을 변호했을까? 도저히 말씀을 소화할 수 없어서 기도하다가 나온 질문이었다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하는데 사도를 인정해달라고 주장하는 얘기는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율법과 새 언약을 이야기 하면서 바울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사도'라는 위치가 아닌 '하나님의 일하심'이 아닐까 싶다. 고린도 교회가 사도직을 인정하던지 인정하지 않던지 바울 개인적으로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지만 사도직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생기는 하나님의 일하심(예를 들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새겨진 복음 [그리스도의 편지로써])을 보지 못하게 한다면 사도직을 변호해야 한다고 바울은 생각하지 않았을까?? 바울 자신에게 있어서 사도라는 직분은 하나님을 향해 간 한걸음일 뿐이지 않았을까? 그런 인식 속에서는 하나님을 위해서 이 변호는 정말 필요했을 것 같다

어제 광야에 대해 이야기가 나와서 나의 위치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광야 한가운데에서 앞으로 가기에는 확신이 없고 뒤로 돌아가기에는 한숨만 나와 그냥 가만히 있는 모습이 오버랩 된다. 가기 싫어서 멈추었기에 처음에는 좀 편한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표류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디로 가야하지? 어느 시점에 놓쳤는지 알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적어도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에 무작정 나온 새벽기도인데 이런 본문이 나오니 참으로 당황스럽다. 나의 영적 눈과 귀가 그 만큼 많이 닫혔다는 이야기겠다 싶어 먼저 열어 달라 기도했다. 그 때 나온 질문이 '바울은 왜 사도직을 변호했을까?'였다.

바울의 초점은 하나님을 향한 발걸음으로부터 나온 사도라는 하나의 직분 나의 초점은 어느 위치, 자리를 지키거나 버티기 위해 하나님을 사용한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정리가 잘 되지는 않는다. 나의 휴학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자 시작하였지만 어느 순간(2017년초) 하니님의 일하심 보다는 내가 하는 행동, 일, 위치 이런 것들이 중요해졌다. 결국 하나님보다는 내 힘이 들어가 단순히 버티기에 들어갔고, 수양회가 끝나고 뛰쳐 나갔다. 그리고 몇 개월간 난 눌러앉았고, 눌러앉아있다.

나에겐 필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닌 회개의 영인 것 같다. 눌러 앉았을 때 결국 보이는 것은 광활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광야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하나님 다시 보여주셔서 나의 갈길을 알려주세요. 엎드립니다.

조회수 12회댓글 0개

コメント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