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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03 QT묵상 (고전 14:1~2)_이찬우

2018.02.03 묵상노트

고린도전서 14:1~2

본문 1절에서는 '사랑을 추구하며'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영어로는 'Follow the way of love'라고 되어있다. 이것은 우리의 목표가 사랑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이 된다. 교회를 세우고, 공동체를 섬기는 것에 있어서 사랑은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바울은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말씀하신다. 예언을 하라는 말을 처음 한글로 읽었을때는 흔히 생각하는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영어 성경을 읽어보니 'prediction'이 아닌 'prophecy'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좀 더 궁금증이 생겨서 찾아보니, 본문에서 말하는 '예언'은 헬라어로는 '프로페테이아'라는 단어를 쓰고, 이것은 성령의 감동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깨달아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 혹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선포되는 하나님의 메세지라는 의미라고 한다.

앞서 고린도전서 13장을 다시 읽어보니 2절에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라고 되어있다. 또 14장 3절에는 예언은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라고 한다. 본문 마지막 절에서 이런 영적인 것들을 사모해야 하는 이유는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 즉 말씀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의 뜻을 깨닫고자 사모해야 한다. 그것이 나의 머리로가 아닌, 이해 측면에서가 아닌, 성령의 감동으로 알게되는 것이고, 더 나아가 그것을 전하고, 가르치며, 교회를 세우는데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본문 7~11절 까지는 그것을 전할때 어떻게 전해야 하는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는데,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에게 아무리 좋은 내용의 설교를 해도, 사용되는 단어들이 고상하고 어려운 단어들이면 그것이 유익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어떠한 쉬운 내용과 단어를 쓰라는 단편적인 의미보다는, 듣는 사람의 영적 상태, 믿음의 분량, 상황등을 고려하여 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거 같다.

본문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깨닫게 되기를 소망한다. 지금은 말씀을 읽어도 내가 머리로 이해되고, 지식의 수준에서 깨닫게 되는 경우가 더 많지만,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을 더욱 깨닫는 일들이 많아지길 기도한다. 이것을 구할때 나의 동기를 살필 수 있어야 하는 거 같다. 믿음이 약한 자들을 가르치고, 돕는 일들을 통해 내가 능력이 있어 보이고, 나를 드러내고자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의 유익을 완전히 배제하고 다른 사람의 유익만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것은,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의 첫 구절부터 사랑을 추구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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