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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6 QT묵상_김기업

170706 새벽예배 + 창세기 통독(1~3장)

1. 적용 아침 큐티에서 내가 가장 듣기 힘들어하는 이야기 두 가지를 털어놓았다.

‘네가 얼마나 죄인인지 몰라서 그래’, ‘너 아직 애기야(신앙적으로)’

나는 ‘결론나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이 말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왜냐하면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 알아야 하나님으로만 더 결론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창세기 말씀을 듣고보니 이 이야기가 뭔가 아쉽다.

창세기 2장 말씀에서 보니 하나님은 우리를 안식에서부터 시작하는 존재로 지으셨다. 일곱째날 완전하신 하나님이 모든 창조를 마치시고 안식하셨다. 그리고 인간은 흙으로 지어져 안식에서부터 시작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을 것을 알고 있고 죄를 범한다는 사실을 이미 관념적으로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원역사, 즉 안식에서부터 시작한 완전한 존재라는 것에서부터 사고를 시작하는 것이 어렵다. 오히려 죄를 범할 것이라는 것에서부터 관념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그렇다보니 시작부터 완전 달랐다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결론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내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알아야’라는 질문 말이다. 내가 하는 말이 이해하기 쉬울지 모르겠다. 나도 잘 정리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하여튼 그렇다보니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발동이 걸리기에는 역부족이다. 한마디로 그 질문만으로 진짜 죄를 알아가기에는 참 힘이 빠지는 문제이다.

이런 이야기로 나눔을 하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얼마나 죄인인가, 내가 얼마나 애기인가?’라는 질문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뜬구름잡는 이야기인가… 머리로는 이 질문이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는 이야기이고 뜬구름잡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지만 금새 까먹고는 말씀을 들으면 바로 이 생각부터 드는게 요즘 나의 모습인 것 같다.

그러면서 내 지금의 모습을 보면 정작 구체적인 상황 속에는 절대 뛰어들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휴학 1학기를 돌아보면 시작은 이러했다. 가장 큰 휴학의 계기는 더빛기독학교에서 보조교사로 섬겨보면서 이 일이 나에게 얼마나 잘 맞는가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심지어 교회의 배려와 용납으로 자리까지 만들어지면서 휴학을 결정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시작하면서는 포부도 넘쳤고 잘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금새 학교에서 마음이 많이 떠나게 되었다. 이유는 이런저런 부탁을 받아 열심히 하다가 금새 ‘내가 땜빵하러 여기 온건가’라는 생각이 처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목사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내가 아이들의 테필린을 봐줄 지언정 정작 하나님의 전에 와서 하나님과 말씀에 전혀 관심이 없는 내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상황에서 김경민 전도사님과의 이야기를 통해 말씀을 듣는 자리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오전에는 말씀 듣는 시간을 가지도록 허락해주셨다. 여기까지는 긍정적인 해결방안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말씀을 들으면서 이게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과정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도움이 많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토스트도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은 1학기를 돌아보면서 토스트는 하나님 앞에서 잘하는 거 같고 설명도 할 수 있으나 학교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다. 오전에 말씀을 듣는다는 것을 방패삼아 그 이외의 모든 시간도 내 맘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된다. 여기서부터 넘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말씀 듣는 것은 구체적으로 이야기가 되고 진행된 것이지만 그 이외의 토스트나 토마토쥬스나 그런 것들은 구체적인 내용없이 학교와 상관없이 내 맘대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다 똑같은 하나님인데 여기에서는 잘 나아가고 여기서는 넘어지고 하는 것이 잘 맞지 않다고 생각이 된다.

지금 내 모습을 보면 어물쩡어물쩡 내가 잘하는 것 뒤에 숨어 어떤 말도 듣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 현실을 사는 것 같이 보이나 전혀 현실을 살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학교 선생님들도 내가 학교에서 마음이 떠났다는 것을 다들 느끼신다.

정말로 나는 정작 구체적인 상황 속에는 절대 뛰어들지 않는 것 같다. 머리로는 현실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서도 또한 빨리 결론내고 싶어하기 때문에 ‘죄’에 대한 큰 문제를 계속 내 안에 상기시키며 빨리 결론나기를 주문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이상, 생각 속에서 빠르게 결론을 낼 수 있는가? 아니, 없다. 현실을 살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붙잡기란, 죄를 묵상하기란 더욱 어렵다.

완전한 안식 속에서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이번 휴학 기간 동안 내가 죄를 더 깨달아야 한다고, 아직 너무 부족한 것 같아 답답하다고 하기에는 이미 하나님이 허락하신 상황에서 충분히 하나님을 알아가고 나의 죄성을 깨달아갈만한 현실을 허락하셨고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정작 현실을 살지 않은 것은 나였고 뭔가 더 깨달아야 할 거 같다고 생각만 하는 것도 나였다.

2. 질문 위에 쓴 내용이 이해가 되실진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이해가 되셨다면 이것이 정말 사실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저는 정말 현실 밖에서 생각하고 있고 현실 밖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진짜로 하나님은 짧은 시간이지만 하나님을 알만한 충분한 상황들을 제게 주셨고 그것에 제가 정직하게 반응하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기만 하면 그것이 전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거기서 뭘 더 제가 죄인임을 더 알아야하고 이해해야 하고 생각하는 것은 빠른 결론을 좋아하는 제 비현실적인 방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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