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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29 QT묵상_김기업

1. 적용과 결단

오늘 새벽 예배 말씀 속에서 오히려 속 시원한 답을 얻은 것 같다. 답은 나에게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답이 나에게 있다라는 삶은 가인과 같이 벽을 치고 성을 세우는 일일 것이다. 그게 답이라는 착각 속에서 나에게만 집중하고 다른 모든 것을 제한하고 차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 족보의 조상인 셋의 아들 에노스는 ‘연약함’을 뜻한다. 연약함이 아니고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이유가 없다. 연약한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세만으로 가인이나 라멕의 족보가 아니라 예수님의 보혈의 족보 안에 거하게 된다.

결국 성을 쌓는 이유는 나의 죄를 고수하고 지키기 위해서이고 연약함을 깨닫는 것은 나는 하나님 아니면 답이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주님만 바라보고자 하는 삶이다.

오늘 이 새벽본문이 새생명 5-3과와 연결된다고 생각한 점은 ‘연단’이라는 포인트이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서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통해 인간과 생명의 언약을 맺으셨다. 그리고 인간은 동산 중앙에 있는 그 나무를 날마다 보며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이 생명의 언약을 통해서 자신과 관계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보다 인간을 더 사랑할 자가 없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사는 것이 우리에겐 가장 큰 즐거움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이 사랑으로 먹지 말라한 그것을 도리어 먹어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먹을 줄 아시면서도 선악과를 주신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인가?

(신명기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우리가 오직 하나님 의존적, 제한적 존재임을 인식하도록 하기 원하신다. 왜냐하면 우리는 답을 알지 못하고 가지고 있지 않고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창조 때의 첫 언약을 어기고 사망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멸망치 않게 하시려고 독생자를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의 새 언약을 세워주셨다. 즉, 우리는 새 언약을 받은 자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다 깨닫지 못해서 가인과 같이 에덴 동쪽 놋 땅, 방황의 땅에서, 끊임없이 나에게서 답을 구하고자 한다.

그러나 새언약을 받은 우리는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과 성령’을 통해 광야 생활과 같이 미리 연단 받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축복인가? 세상에 나가 구르고 깨지고 망가지기 전에 말씀으로 미리 연단받는다는 것이.

대학부 친구들과 오늘 이 토스트를 만들어가면서 막연한 나의 죄에 대한 집중이나 원래도 나에게 집중된 인간인 내가 더욱 나에게 꽂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주님만 바라는 훈련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아직 그 연단이라는 단계도 밟아보지 않았지만 밟는다해도 감사할 따름이다. 미리 연단받도록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이 자리를 만드시고 두신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 때문에로 시작하고 주님 때문에 갈 수 있는 오직 그 이유에서 이 모든 것을 해보고 싶다.

 만약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면 무엇을 위해서 하는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오히려 전자에 대한 결론보다도 더 내기 쉽지 않다. 내가 원하는 게 진짜 뭘까를 붙잡고 생각하다보면 오히려 더 나에게만 집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결국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게 된다.

사실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는 중요한 질문이 아니다. 딱히 답해야 할 질문도 아니다. 왜냐하면 느낌 속에서, 감정 속에서 원하고 있을 뿐 실체 없는 원함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히려 이것에 집중해야 한다. 무엇을 하든지 주님 때문에, 주님만 바라는 삶을 사는 것.

2. 질문

예전부터 창세기의 원역사에 대한 중요성을 자주 들으면서 역사 연구에 대한 중요성을 익히 들었다. 그런데 창세기의 원역사, 원복음을 보면 결국 인간의 죄로 인한 타락과 죄성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이 부분에서 나는 오히려 역사를 공부하면서 중요한 학문이지만 한편으로는 더 공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결국 죄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이 듭니다. 역사를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비록 인류의 역사가 죄의 역사이지만 그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계획과 뜻들을 발견하는 것 때문입니까? 아니면 죄의 역사를 통해서 인간이 뼛 속까지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도구로서 쓰임받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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