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0. 26(목) 창35장 라헬의 죽음.
말씀의 요점은 아니었지만, 왠지 라헬의 죽음을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라헬은 분명 야곱에게 더 사랑받은 부인이었는데, 왜 죽는 순간 까지도 아들을 낳으면서 Ben-Oni(Son of my trouble)라고 할 수 밖에 없었을까. 레아는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한 라헬이 평생 결핍의 삶을 사는 것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런 질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두 여인과 그 시종에게서 난 아들의 이름을 비교하면 아래와 같다.
레아와 그 시녀
- Reu-ben (See, a son; 그가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다)
- Simeon (One who hears;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받지 못함을 들으셨다)
- Levi (attached;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 Judah (Praise;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 Gad (Good fortune; 복되도다)
- Asher (Happy;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 Issachar (Reward;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 Zebulun (Honor;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 (Dinah)
라헬과 그 시녀
- Dan (he has vindicated; 하나님이 나를 변호하셨다)
- Naphtali (my struggle;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 Joseph(may he add;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 Ben-Oni(Son of my trouble; 슬픔의 아들)
이름이 많이 대비가 된다. 결핍을 바라보는데서 벗어나 하나님을 바라보기로 선택했던 레아는, 유다 이후의 아들들의 이름에서 감사함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는 반면
라헬은 죽는 순간까지 결핍된 상황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은 나에게 아들을 주셔야 하는 분' 처럼 느껴진다. 마치 아버지의 재산에만 관심있는 탕자처럼.
사실 미모의 여성 라헬에게는 남편의 사랑이 있었다. 오죽 사랑했으면 창세기 48:7에서 말년의 이스라엘(야곱)이 과거를 회상하며 라헬이 죽은 것을 언급했을까. 시작부터 원치 않는 결혼으로 출발했던 레아의 입장에서는 많이 억울했을 것이다. 하나님도 레아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열어 주실 정도였으니, 여자로서 얼마나 비참했을까. 사실 상처라고 한다면 레아가 참 많이 받지 않았을까.
그러나 레아는 그 비참함으로 하나님을 찾는다. 부족한 남편의 사랑에 대한 갈증을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수로 채운다. 결핍을 통해 만난 하나님, 다른 방법으로 채워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고백이 있다.
레아의 삶과 라헬의 삶. 두 명 모두에게는 결핍과 동시에 하나님의 선물이 있었다. 결핍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고, 선물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레아의 삶과, 충분한 은혜에도 불구하고 계속 부족한 상황만을 바라보며 질투하며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없는 삶. 나는 어떤 자리에 설 것인가? 질문하게 된다.
(*이는 지극히 나 개인의 삶을 위한 질문인 것이, 하나님의 나라는 라헬의 불평과 상관없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라헬의 아들인 요셉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장자는 이어졌고, 그에게서는 두 지파가 나왔다. 라헬이 죽은 에브랏에서는 예수님이 탄생했다. 라헬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성실하게 일하셨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함으로 인하여 자신의 약속을 폐하지 않으신다.)
나는 사람의 인정과 칭찬에 갈증을 느낀다. 돈/섹스/권력 중에서 권력(명예)에 집착하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그것을 붙잡기를 본능적으로 원한다. 내가
인정받을 수 있는 공동체를 늘 찾아 다녔던 것 같다. 하나님 앞에서 목표와
기준을 세우기보다는 사람에게 한 마디 인정과 칭찬을 받을 정도만 하면 늘 빠르게 만족하곤 했다. 그러다보니 아무 것도 남지 않는 삶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창세기를 통해 이제 그 자리에서 떠나서 그 자리에 돌무더기를 쌓고 나의 갈르엣을 쌓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나 또한 은혜로 이런 옛 자아가 죽고 성령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고 있다. 야곱을 결핍 가운데 두시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훈련을 시키시는 하나님께서 오늘 나의 필요를 모두 채우지 않고 결핍 가운데 두실 때, 나도 레아처럼 그 자리에 두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찬송하고 감사하는 자리까지 가고 싶다.
믿음으로 사는 공동체 가운데 나를 허락하시고, 다음 세대를 세우는 중요한 자리에 돈까지 받으며 일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 십자가에 못박히셔서 나를 구원하시고 오늘 하루도 구원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새벽마다 말씀을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린다. 이 감사함으로, 민망함으로, 주님을 사랑함으로 오늘 눈앞에 놓인 작은 순종을 죽음을 불사하고 해 나갔던 과거의 위그노들과 청교도들처럼, 나도 오늘 하루를 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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