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7. 29(토)
그동안 많은 생각이 스쳐가서 그것을 붙잡기 위해 글을 쓰고 싶었는데, 도저히 짬이 나지 않아 글을 쓰지 못했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틈바구니에서도 어떻게든 글을 썼다면 또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만 있다면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2주 동안의 설교에 연속으로 영화 '밀양'이 언급되어서 보았는데, 두 가지 내용이 와 닿았다.
1. 죄가 관영하는 세상
- 밀양은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마음이 솔직하게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죄 이다.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 마음이라는 말씀처럼, 각 인물을 움직이는 마음의 동기는 각자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아니다.
모든 것을 잃기 전 그녀 마음 속에서 삶의 이유는 곧 아들이었다. 또한 서울에서의 문화에 익숙해져 관계 속에서 경제적인 부요함을 드러내어 관계 속에서 높아지고자 했던 신애의 마음이 있었다. 이것이 그녀의 행동의 동기였다.
웅변학원 원장은 돈을 향한 욕심에 눈이 멀었다. 남편조차 없는 한 엄마의 아들을 납치해 살해하기까지 돈을 원했다.
신애를 도와주는 김사장은, 서른 여덟의 노총각이다. 그는 신애를 원한다. 신애에게 나름의 최선으로 잘 해주려 하지만, 그것이 꼭 좋아 보이지만은 않는 것은, 그 마음 속에 있는 정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요즘 영화는 이것을 아름답게 포장하곤 하지만, 밀양에서는 굉장히 솔직한 인물의 심리가 드러나는 데다가 배우의 뛰어난 외모로 포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이런 마음들이 그대로 보이는 것 같다.
신애의 아들 준은... 뭐 그 나이의 응석받이 아들들처럼, 더구나 자신에게 목숨을 건 어머니의 존재 덕분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하려고 하는 왕같이 높아진 마음이 느껴진다.
이 외에도 옷가게를 하는 아주머니, 신애의 유혹에 넘어가 불륜을 저지르려는 장로님 등 모든 인물들의 죄된 마음이 날실과 씨실처럼 만나 현실을 직조해 나간다. 선한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죄로 가득한 현실이 너무나도 잘 드러난다.
그 중에서 한 줄기 희망이 있다면, 신애의 아픔을 충분히 공감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일서의 '사랑은 두려움을 이기느니라'라는 말씀처럼 복음을 전하는 약국 아주머니일 것이다. 신애의 삶에 안식을 가져다 준 것은, 그녀의 폭발하는 감정을 온전히 받아줄 수 있었던 존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뿐이었다. 신애의 모든 외도와 하나님을 의지적으로 벗어나려는 시도까지도 보시고 그때그때 개입하신 것도 하나님이셨다. 신애는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벗어나려 하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까지 하나님을 인식하며 한 행동으로 인해 신애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경험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이 영화가 보여주는 세상 속에서의 유일한 희망이다.
2. 연극을 멈추고 하나님 앞에 서자.
그러나 그 하나님 앞에서, 말씀 속에서, 예수님께 온전히 접붙힘 받기 전에 신애는 연극을 시작한다..
자신이 연기하는 줄 몰랐을 수도 있다. 우리는 정직하지 못해서 자신이 받은 은혜를 부인하기도 하며, 자신이 바뀐 것보다 더 많이 자신이 바뀌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신애가 살인범을 용서하기로 결심한 것은 진정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을 알기 전 신애에게는 존재할 수 없는 가능성이다. 그러나 진짜로 이 마음에 순종하기 위해 찾아갔던 살인범 앞에서 신애가 느꼈던 것은 순종할 수 없는 자신이었다. 이 때,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는 순종할 수 없는 자신을 볼 수 있어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루 속의 작은 한 마디에도 분노하는 내 주제에 신애의 상상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하여 왈가왈부 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당장 미쳐버릴 수 밖에 없는 그녀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부인해버리고야 마는 그녀가 참 안타까웠다.
연극을 그칠 수 있었다면. 연극이 나인 줄로 속지 않았더라면. 수많은 사단의 전략에도 불구하고 살인범을 용서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그 모든것을 놓치고 사단에게 생각을 내어주게 되는 것이 참 슬펐다. 그러나 이게 또 현실이기도 하다.
밀양 설교를 들은 후, '영적 가면을 벗어라'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이제 가까스로 서론을 읽었다. 지금까지 읽은 내용 중에서는 아래와 같은 구절이 가장 인상깊었다.
"외적으로 꾸미는 영성은 진정한 영성이 아니다. 주님은 우리가 타락한 죄성으로 야기된 고통을 깊이 괴로워하고, 모든 갈등을 정직하게 직면하며, 혼란 가운데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신다. 이러한 사람은 두려워하기도 하고 혼란으로 인해 당황하기도 하지만, 깊이 사랑할 줄 안다. (...) 이 땅에서 완전한 만족을 추구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사람만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완전한 기쁨을 갈망하는 대신 하나님 아버지를 깊이 신뢰하는 법을 배울 때, 끊임없는 고통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는 자유를 배우게 된다."
자꾸만 하나님의 뜻을 그때그때 다른 형상으로 바꿔서 손쉽게 내적 만족과 감정적 충족을 얻으려고 하는 나에게서 벗어나, 죄로 가득찬 나의 내면과 세상을 모두 직면하고 예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싶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할 때, 진정한 만족과 기쁨이 있을 줄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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