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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27 QT묵상_김승호

2017. 7. 27(목)

어제는 LboT에 다녀왔다. 말씀에 동의하는 것과 그대로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새삼 느꼈다.

내가 틀렸다는 것을 듣고, 내가 틀렸다는 것을 생각 속에서 인정하는 것과 나를 바꿔 나가는것은 또 얼마나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만 내가 만들어내는 평안을 누리려 하는 내가 있다. 상황을 왜곡하거나 생각을 멈추거나(=혼수상태), 혹은 내가 하는 일에 점수를 많이 주어서 스스로 "이 정도면 괜찮다."라는 거짓 평안을 만들어내려 한다. 끊임없이 안주하려고 하고, 이 평안을 깨려는 모든 시도들에 대해 마음 속에서 불끈하고 솟아나는 분노가 있다.

하태규 목사님이 청소년들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청소년들은 절전모드나 수면모드를 방해하는 모든 선생님은 나쁜 선생님, 그것에 동의하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 이라고 이야기 한 것에서 생각을 연장시켜 보니, 그 모습이 내 모습이었다.

최근 초등부 여름성경학교 때는 정말 마음을 다 해서 주께 하듯 하려고 했다. 가까스로 그 며칠은 깨어서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미비한 부분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다행히 무사히 지나가게도 해 주셔서 감사했다.

왜 초등부 여름성경학교는 그럴 수 있었을까? 라고 생각해 보았다. 여름성경학교 직전에 사건이 있었다. 책임에 대해 매우 좁게 생각했던 나의 생각 때문에 내가 마땅히 했어야 하는 일을 해 놓고도 한 집사님을 원망했다. 내가 일을 해 주었고, 집사님이 내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경민누나 정현이형과 대화하며 이 거짓된 상태가 깨어졌고, 내가 생각했던 책임이 얼마나 좁았는지 알게 되었다. 여름성경학교를 이런 나의 거짓 평안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나의 평안이 아닌 하나님께 최선을 다해 보려고 하니 원망은 없었고 하나님께 감사함만 남았던 좋은 기회였다.

오늘 본문에서는 데라가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려 했지만, 하란에서 죽는다. 왜 가나안으로 가려 했는지는 나와있지 않아서 알 수 없다. 그러나 오늘 말씀처럼 땅이 재산의 전부였던 그 시대에 자신의 땅을 모두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생명과 인생을 건 모험이었을 것이다. 한 술 더 떠서,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어딘지도 알려주지 않고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하신다. 이 약속을(혹은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신뢰하기가 참 어려워서 자꾸만 모양으로, 혹은 내 내면에 거짓을 만들어 머무르려 한다.

나는 빨리 적응해 버린다. 가난에도,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생활에도, 내면의 괴로움에도, 교회 생활에도 타성에 젖는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마음과 생각과 행동이 새롭게 되려는 노력에 게으르다.

하태규 목사님이나 방기정 집사님처럼 하나님 안에서 '진짜 사는 것' 처럼 살고 싶다. 말씀과 기도라는 답은 사실 주어져 있는데, 답이 너무 빨리 주어져서 그런지 자꾸만 그 답이 답으로서가 아니라 강박으로서 다가올만큼 마음속에 가난함이 없다. 가난하지 못하게 자꾸 익숙해져 버린다. 이러면 다른 사람이 나를 깨 주어야 한다.

스스로 만든 평안에서 벗어나 말씀 속에서 깨지고, 말씀 속에서 구르고, 하나님 안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도전하며 살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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