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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의 잔치 - 마 14:1-12

마태복음은 28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중간에 있는 내용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천국을 임하게 하셨지만 여전히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리고 오늘도 그러하다. 예수님을 모른채 주어진 대로 사는 삶이 만족스러운가? 아니면 예수님이 시작하신 천국의 외침을 듣고 지으신 원형을 배우며 그분의 치유를 경험하게 살겠는가?


세례요한은 주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선지자이다. 예수님보다 먼저 태어나서 율법과 선지자의 사명을 완수하고 먼저 떠난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외치던 세례 요한이 잡히자 예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선포하신다. 그리고 오늘 그 세례요한의 죽음과 예수님이 겹치며 불의한 세상에서 의를 선포한다.


세례요한은 헤롯의 생일잔치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가짜왕 헤롯, 가짜 유대인 헤롯은 자신의 정욕과 탐욕과 잔인함과 죽음으로 얼룩진 잔치를 벌인다.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거할 곳은 보암직하고 먹음직하다. 그러나 그 속을 보라!!

자신의 동생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차지한다. 사실 헤로디아는 다른 형제의 딸이기도 하다. 정욕으로 행하고는 지식적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

세례요한은 로마의 앞잡이인 헤롯은 왕이 아니며 진정한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 외친다. 게다가 레위기의 말씀을 기준으로 그의 불의를 만천하에 드러낸다. 그러자 회개하기는 커녕 세례요한을 죽이려 한다.

그러나 무리를 두려워하여 감옥에 가두어두었다.

헤로디아는 헤롯왕의 생일에 자신의 딸을 이용하여 세례 요한을 죽인다. 아마도 헤로디아는 헤롯의 거만한 말들을 알기에 자신의 딸이 헤롯을 기쁘게 하면 뭐든지 줄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약속이 아무리 잔인해도 자신의 체면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것도 알았다. 헤로디아의 딸은 세례요한의 목을 소반에 얹어달라고 한다. 그렇게 세례요한은 죽임을 당한다.

우리 자신이 우리 삶의 결과를 불러온다. 당연한 결과로서 드러난다. 정욕과 사치, 거만함은 세례 요한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세례요한은 아마도 예수님이 왕이 되셔서 구해주실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끝났다. 그리고 그의 시체는 예수님께로 보내진다. 아마도 주님은 "다 이루었다"고 세례 요한을 충성되게 보셨을 것이다. 나중에 예수님 자신도 유대인과 로마인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자신의 사명을 다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성령을 보내셔서 교회를 통해서 그것을 이어가게 하실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왕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감당하시려고 이곳에 오셨다. 죄를 사하심으로 사단의 결박과 사슬을 끊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 이것을 누가 깨닫겠는가?


예수님의 피 없이는 세상은 이와 같다.

정욕과 욕심에 이끌려 죽음으로 가는 것이다. 바로 사단의 목줄에 끌려다닐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단은 하나님께 우리를 참소하며 그 죄의 대가를 치르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셔서 그 대가를 죽음으로 감당하신다. 그러나 그는 다시 살아나셨다.

사단은 이건 반칙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권세는 그가 요구한대로 이 땅에서로 한정되어 있다.

주님은 우리에게 사단의 종의 자리에서 벗어나게 하심으로 구원을 이루셨다.

이미 끊어진 이 목줄을 따라 살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으로 자유함을 얻어 성령님의 도우심을 따라 살 것인가?

더 나아가 불의한 세상에 오셔서 천국을 임하게 하신 주님처럼, 세례 요한처럼 의를 선포하는 한 사람이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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