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여행을 시작하면서 기도제목은 한 가지였다.
"주님, 저는 알지 못합니다. 주님이 보여주세요."
왜 또 미국까지 가야하는지, 아니 나는 지금 어디에 왜 여기에 서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할 지 몰랐다.
나중에 고은정 선교사님도 갈 바를 알지 못한다는 나의 고백이 오히려 은혜가 되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러나 나는 은혜를 끼치기 위함이 아니라 진짜 모르는 것 밖에 없음을 절절히 느끼고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미디어팀을 왜 계속해야 하는 지 잘 몰라서 물었다. 생각으로는 이래서 저래서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었지만 마음으로 확신이 들지 않았다. 뉴저지교회는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리고 더 나아가 목사님이 시작하신 일들의 큰 그림을 알고 싶었다.
어떤 집사님의 계속된 질문, "왜 공동체인가?"에 대해 더 알기 원했다.
그래서 걸음을 뗄 때마다 목사님은 왜 그렇게 말씀하셨고 왜 그렇게 생각하셨는 지 물으며 걸었다.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목사님을 생각했다. 목사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무엇을 보셨을까?
그러고보니 가는 곳마다 목사님이 하셨던 말씀이 기억나고 만나는 사람마다 목사님은 무엇을 그 사람에게서 보았을까 보게 하셨고 또 가는 곳마다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이 기억났다.
너무나 많은 것을 보고 듣게 하셨기에 지금도 다 생각날지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놓고 싶었다. 그래서 두서없이 적어본다.
맨 처음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김현일 선교사님을 만났다. 계속되는 대화들로 때로는 조용히 있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목사님은 그 대화들 속에서 무엇을 기도하고 계셨을까 질문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마지막날에서야 답을 찾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의 만남을 통해서 주님은 각자에게 보여주시고 말씀하시고 계셨다.
뉴저지교회를 세우려는 내 계획과는 달리 오히려 문제가 드러나고 관계의 어려움이 발생했다. 그래서 과연 이 교회가 계속 될 수 있을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드는 시간도 있었다.
배서현, 조예림, 그리고 지금 김가은까지 뉴저지교회는 한 청년과 선교사님 가정으로 이루어져있었다.
그 관계 안에서 각자의 한계 속에서 때로는 문제만 남은 것 같기도 했다.
덮어놓은 문제가 드러나자 모두가 갈등하게 되었고 눈물이 계속 흐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도 여전히 일하고 계심을 보게 되었고 각자 안에 깊이 숨겨진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붙잡힌 바 된 그것으로 오늘도 뉴저지교회가 있음을 보게 되었다.
그렇다. 우리는 결국 문제투성이들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우리를 모아 하나되게 하시며 그 과정에서 자신을 보게 하시며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결론내게 하신다. 적어도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 앞에 서기만 하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내신다.
한 청년은 끊임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그러나 교회가 있기에 아주 떠날 수는 없었고 타협한 그 자리에서 고통 속에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덮어놓고 있었기에 스스로도 느낄 수는 없었다. 많은 대화 속에서 이미 있던 그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하자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지금의 그 아픔이 사실은 그 가정 안에 있는 깊은 수렁에서 건지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결과였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덮어놓고 살기를 소원하며 괜찮아 하며 세상의 화려함과 바꾸어 살고 있다.
그 청년은 하나님을 만난 엄청난 감격 속에서도 무력한 아버지의 모습을 원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정 안에서 감격은 사라지고 종이 되어버려 주님을 소원하는 두 자녀가 아버지를 원망하다가 결국에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리에 있게 함을 보았다. 그리고 그도 포기한 채, 타협한 채 그저 회사만 다니고 있다. 내가 싸우지 않는 그 영적 전쟁은 자녀에게 고통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모든 연약함에도 다시 일어서야 한다.
이러한 청년의 모습을 보며 선교사님은 답답하셨던 것 같다. 왜 믿음이 현실 속에서 능력으로 드러나지 않는가? 심하게 말하면 더빛 청년들은 왜 이렇게 무기력한가 말씀하고 싶으셨는지도 모른다.
주님은 놀랍게도 선교사님 가정을 한국에 보내신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아닌 그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한국에서 보여주시기 원하신다. 주영이와 주은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하고 있으나 한 가정의 믿음보다 한 교회의 큰 믿음을 보게 하실 것으로 믿어진다.
주영이가 자폐가 아니라 발달장애라는 사실을 체감하였다. 재경이와는 다른 모습을 보게 하셨다.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놀라운 사랑,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의 나라"를 듣고 부르며 기뻐하는 모습도 보게 하셨다. 이제는 주영이가 스스로를 이길 수 있는 걸음으로 한국 체류기간동안 도울 수 있도록 기도한다.
주은이가 얼마나 놀라운 재능으로 바이올린과 태권도, 학업에서 뛰어난지도 보게 되었다. 전문인 선교사가 되겠다고 결단하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관계 안에서 위로를 받는 시간이 되는 한국여행이 되기를 기도한다.
마지막날 공항으로 떠나기 전에 선교사님 부부를 따로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목사님은 어떻게 왜 떠나시게 되었는지 지금까지 묻지 못하시던 질문을 제게 물어오셨다. 그순간 나 또한 피하고만 있던 질문 앞에 다시 서게 되었다. 함께 눈물을 흘리며 지난 5월에 오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나누게 되었다. 목사님의 소천은 우리 모두가 외면하고 있는 현실 중 하나이지 않은가?
슬퍼하지도 못한 채 열심히 교회를 세우려던 나의 마음은 무너졌다. 내 힘으로, 노력으로, 열심으로 하려던 것을 놓고 보니 주님은 선교사님 부부를 나의 형님으로 남겨두셨음을 보게 하셨다.
만약 지난 미국여행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이번에 가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하나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일단 잘 모르고 대화도 별로 한 적이 없었는데 이제 두번의 만남을 가졌을 뿐이더라.
들음을 통해 믿음이 생겨나듯 만남을 통해 관계가 시작된다.
그렇게도 열심히 카톡선교를 하시던 목사님이 생각난다. 김현일 선교사님과 뉴저지 교회, 그리고 해외교회들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밤을 새워서라도 카톡과 전화, 기도로 세워가시던 목사님.
주님은 교회의 주인되시지만 나는 그 주님의 심부름꾼으로 해야할 일이 있다.
선교사님은 마지막 시간에 또한 이번 선교여행을 통해서 회개케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선교사님께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이야기해주셨다. "이게 네 것이냐 내 것이다"라고.
그리고는 이스라엘을 떠나 막막한 미국 땅에 왔을 때 어떻게 목사님을 만나고 어떻게 에하드운동을 통해서 주님이 주신 유대인 선교사로 서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내가 한 것이라고 착각함으로 무기력해졌는지 말씀해주셨다. 회개할 때 어떻게 새롭게 힘을 주셨는지 나누어주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주님이 우리 교회에 명령하신 북한선교와 이슬람선교, 그리고 이스라엘선교를 각각 최광목사님과 정마태선교사님, 그리고 김현일 선교사님을 통해서 이루어가고 계시는 지 보게 되었다. 이 엄청난 주님의 뜻을 위해 이 교회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을 인도하시는 주님을 강력하게 보게 되었다.
이번 여름 선교사님 가정이 오시면 우리는 더욱 이스라엘과 유대인에 대해 깊이 공부하고 기도하는 시간도 허락하실 것에 감사드린다. 메시아닉 쥬의 찬양들을 함께 나누고 절기와 유대인선교에 대해서 가르쳐주시기를 부탁드렸다.
마지막에 선교사님께 기도를 부탁드렸다. 얼마나 힘있고 성령충만한 기도였는지 모른다. 녹음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이다. 하나됨으로 인해서 얼마나 우리는 주님의 임재를 느끼게 되는 지 모른다.
서로 다른 성향과 배경, 생각과 행동들 속에서도 눈을 뜨고 그 속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집중하면 각자를 몸된 교회로 부르신 주님의 뜻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이 2주간의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서로 다름에 집중하지만 결국에는 하나되게 하신 주님 안에서 하나되는 것이다.
주님은 뉴저지교회를 세우셨고 여러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또한 다시 유지하시고 이끌어 가시고 계시다.
나의 능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순종의 걸음과 하나됨을 힘써 지키는 그것으로 주님이 일하시도록 하는 피스메이커의 역할을 기대하신다. 모든 것을 숨기고 덮어놓은 거짓 평화가 아니라 우리의 모든 연약함이 드러날 수록 주님의 일하심이 커지는 그런 평화, 주님이 그 평화가 되게 하시는 걸음이었다.
이번 여행에 유일하게 다시 만난 분은 박성훈 선교사님이었다. 다시 부르더호프에 가게 된 것이다.
지난번에 만나고 서울에서 만난 선교사님과 사모님 모두 너무나 반갑고 기뻤다. 다소 무서우셨던 사모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던지...
박성훈 선교사님은 현재 영월에 있는 부르더호프에 오기를 기도하고 계신다. 1년간 한국에 있으면서 공동체를 세우고 싶어하셨다. 여름에는 한국에 계실지도 모른다면서.
북한선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최광선교사님과 Again1907 집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이빌립 목사님과 북한기독교총연맹 목사님들이 며칠전 뉴저지에 방문하셨다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하나님이 선교사님을 북한선교를 위해서 보내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오시면 함께 만나자고 말씀드렸다.
지난번 보았던 곳들을 다시 보면서 더 구체적으로 공동체에 대해 꿈꾸게 되었다. 우리는 공동체를 생각하면 바로 돈의 문제로 보이고 그래서 사업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러나 그곳은 모든 것이 삶이었다. 초를 만들어서 지역사회와 함께 펀딩을 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고 있었다. 도자기를 만들어서 학교후원금으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여전히 본질보다 모양에 집중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우리는 먼저 어떤 삶을 살지를 고민해야 한다. 지금까지 살던 삶의 모습 속에서가 아니라 주님이 바라시는 모습의 삶을 질문해야 한다. 우리의 직업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기 이전에 다른 사람을 돕는 수단임을 다시 붙잡아야 한다. 돈이 전부인 세상에선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즉, 성령충만이 없이는 그릴 수 없는 것이 공동체이다.
우리의 공동체 세우는 것에 대해 무척 관심이 많으시고 돕기를 원하시는 선교사님은 각종 아이디어를 제공해주셨다. 이 부분은 김현일 선교사님도 마찬가지라 음식점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두 분은 젤라토, 모찌 도너츠, 햄버거, 이탈리안 샌드위치, 독일 맥주와 소세지 등을 끊임없이 알려주시고 또 먹어보게 하셨다.
결국에는 근처에 있는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라는 세계 최고의 요리학교까지 방문하게 되었다. 이야기는 대학으로 이어져 다음세대가 진정 필요한 것은 인문학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근처 대학들도 지나가면서 보게 되었다.
여름 이전에 주님의 깃발 부대가 방문하면 더 많은 곳들을 소개시켜 주시겠다는 박성훈 선교사님은 매우 신나보이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난번 독일대표의 한국방문으로 가구와 장애인기구 사업이 한국에 경쟁력이 있다는 결론이 났다는 사실과 만약 가능하다면 우리 공동체와 함께 했으면 하시는 소원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필요한 인원은 약 150명 정도라는 이야기까지... 물론 사모님은 공동체내 사업을 다른 공동체와는 할 수 없다는 현실적 제한도 알려주셨지만 얼마나 박성훈 선교사님께 우리가 인상깊었는지 알게 되었다. 너무나 활력이 넘치는 우리 교회의 모습이 좋았다고...
마지막으로 모든 일정이 끝날 즈음 산책에 나섰다. 목사님과 함께 걷던 그길, 열심히도 걸으시던 그 길이었다.
찬우와 함께 그 길을 걸으면서 어떻게 찬우가 교회에 남게 되었는지 듣게 되었다. 한때 모든 것이 부담스러워 서울로 이사가서 예배만 참석하던 때의 이야기였다. 목사님은 서울에 있는 찬우에게 이런저런 소소한 일들을 주셨다. 녹취, 자료 정리 등등. 그거라도 해야겠다며 듣던 설교 중에 은혜를 받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돌아보면 자신을 붙잡아주시기 위해서, 끈을 남겨 놓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고.
그날은 유난히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일보다 관계이다"라고 매번 제게 이야기하실 때 나는 목표를 이루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아서 서운하기까지 했다.그리고 아마 목사님이 계셨더라면 찬우에게 그 일은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을 것이다. 그 일은 완성되지 못했다. 그러나 찬우가 남았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함께 하고 있다.
목사님은 하나님의 큰 뜻을 알고 계셨다. 그 자리에 서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다 알고 계셨지만 힘으로 밀어붙치지 않으셨다. 기다리셨다. 나에게 대해서도 그렇다.
2006년 안디옥비전에도 그런 말씀을 하신다. 누군가 목회를 책임져준다면 주님이 주신 비전을 이루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셨더라. 그게 나였다. 그러나 나는 끈질지게 그리고 강력하게 그 자리에 서기를 거부했다. 나의 연약함을 무기로 말이다. 짐지기 싫었고 힘들기 싫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이 더 힘들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홀로 그 자리에 서서 할말이 없다.
왜 너희는 안 돕냐고 외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그 자리에 서서 또 다른 영혼들, 소원을 가진 그들을 받아주고 기다려주는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주님이 내게 주신 자리를 이제는 피할 수도 없게 되었다. 여전히 연약한 채로.
오늘도 속초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많은 후회와 아쉬움이 엄습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나는 지금 이 현실을 직면하고 믿음으로 일어서든지 아니면 여기까지 이루어진 것까지 포기하든지 둘 중 하나 밖에 없다. 뒤로 물러나 침륜에 빠질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오늘도 하나님은 친절히 보여주시며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우시며 필요한 모든 도움을 이른비와 늦은 비로 채워주신다. 나의 힘과 노력이 아니라 주님이 보여주시는 만큼만 가면 된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다."
이 찬양을 그렇게도 좋아하시던 목사님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된다.
무조건 가야지 힘줘서 가려했던 나. 멈춰서면 힘이 빠지던 나. 둘 사이만 왔다갔다 하던 나.
주님을 온전히 보지 못해서였다. 주님 내 눈을 열어 주를 보게 하소서!
여러분도 회개도 사역도 순종도 먼저 주님을 보고 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보면 절대 가야 할 때 갈 수도 멈춰야 할 때 멈출 수도 없습니다.
나를 두신 그 자리에서 눈물로 씨를 뿌리며 주님을 따라 가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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