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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공의를 이 땅에서 실천하는, 쩨다카


저는 지난 주일설교 박목사님 말씀에서, 나그네를 대접하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 나라의 수치로 여겨 밤중에라도 친구의 집을 두드리는 사람(눅11:5~8)의 이야기가 참 인상 깊었습니다. 오늘 나의 삶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날마다 문을 두드리는 간청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구나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또 몇 년 전에 유대인 교육에 관한 한 영상을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 식탁에 모이면 자연스럽게 쩨다카 박스에 동전을 넣는 모습, 가난한 신랑 신부를 위해 결혼식을 대신 주최하고 필요한 모든 물품을 무상으로 지원하며, 부족한 재정은 길가로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선을 받는 유대인 사회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저들은 남을 돕고 물질을 나누는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일 수 있었을까?’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가난한 이웃과 유대인 공동체를 위해 자선 기부하는 것을 그들은 ‘쩨다카(Tzedakah)’라고 부릅니다. 이는 물질만 아니라, 식료품이나 의류, 기타 필요한 물품을 나누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시간을 자원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쩨다카란 ‘쩨덱(Tzedek)’이라는 단어에서 나왔는데 이는 ‘정의’라는 뜻입니다. 정작 히브리어에는 ‘자선’이라는 단어가 없다고 하니, 그런 면에서 ‘쩨다카’는 엄밀히 ‘자선’(Charity)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자선은 내가 원하는 만큼 원하는 대상에게 한하여 기부하는 것에 반해, 쩨다카란 유대인이라면 반드시 감당해야 하는 ‘의무적 자선’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어떤 랍비는 이것을 ‘신성한 세금’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또 쩨다카는 유대인들에게는 613가지 명령 중의 하나이며, 어떤 랍비는 나머지 612가지를 합친 것보다 이 한 가지가 더 우선된다고 할 만큼,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여기에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는 ‘티쿤올람’이라는 유대인들의 생각 때문인데요, 티쿤올람이란 ‘세상을 고친다’는 의미로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 하셨으나 아직 미완성이라 하나님의 협력자인 인간이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을 개선시켜 나가며 잘못된 질서를 올바르게 회복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는 통로가 바로 자신들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유대인들의 생각인 것입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책임감과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회복해 나간다는 사명감으로 ‘쩨다카’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전세계 유대인 공동체는 2000년이 넘는 고난의 세월 가운데에도 그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남아, 어느 곳에서든지 유대 기금을 조성하여 그들의 신앙을 다음 세대에게 전수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해 말에 학교와 유치원에서도 북한선교헌금을 위한 쩨다카 활동을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직접 만들고 붙인 쩨다카 박스를 집으로 가져가,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신발정리, 설겆이, 분리수거 등의 일들을 통해 받은 용돈으로 헌금하게 한 것이지요. 감사하게도 아이들이 쩨다카를 하기 위해 집안 일을 함께 돕고 노동의 가치도 깨닫는 기회가 되어 기뻤습니다.


저는 쩨다카가 우리 자녀들이 자기 사랑, 자기 중심이 아니라 공동체와 하나님 나라를 깨닫고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 지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내 삶으로 주님 앞에 드리는 통로가 되길 기대합니다.


또한 쩨다카는 기본적으로 가난한 이웃을 돕기 위한 것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이웃인 아내, 자녀, 부모 순으로 우선순위가 매기고 있습니다. 이는 가난한 자, 이웃을 돕는데 앞서, 먼저 내 가족, 아내와 자녀, 부모에 대한 책임을 잊지 말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쩨다카의 삶이란, 단순히 이웃과 공동체를 돌보는 것만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도록 적극적으로 힘써 돕는 삶의 형태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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