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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제목] 칼을 칼집에 꽂으라

고난 주간 큐티를 통해 본 베드로의 모습에서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체포하고자 찾아온 무리들을 보고 위협을 느낀 베드로는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귀를 떨어뜨렸습니다. 예수님을 지켜야 한다는 충성심으로 호기롭게 행했지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 칼을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데 바로 옆에 있으나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베드로는 자신의 힘으로 이 상황을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를 위해 사는 것이 내 힘으로는 불가능 하나 끊임없이 나에게 익숙한 방법으로, 내 열정으로 해내려고 하거나 혹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이루어 지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말씀은 나의 칼로는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고 하십니다. 내 힘, 능력, 지식, 사람의 인정, 이런 것들로는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미련한 칼은 이제 칼집에 꽂고 엎드려 겸손히 주님의 뜻을 구합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우리가 가진 칼이 무엇인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먼저 칼은 곧 힘!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주님을 사랑하는 내 진심을 너무 높이 산 나머지 다른 사람의 귀를 자르기 까지 앞장 서서 나서기는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휘두르는 칼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하는지 혹은 이 칼이 주님과 상관 없다는 것을 자신만 모른다는 것이죠. 나는 이렇게 주님을 위해서 하고 있어 라는 만족감이 커서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혹은 옆에 사람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조차 힘들 때가 많습니다.

힘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은 주로 자기 자신이 기준이기 때문에 쉽게 사람들을 비판합니다. 문제는 이 화살이 자신에게는 향해 있지 않기 때문에 자가당착에 빠지기 쉽습니다. 늘 다른 사람을 향한 화살을 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그 사람을 피하고 싶어하지만 나는 옳은 일을 하고 있고 뭐든 잘한다는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되지요.

또 어떤 사람은 누구의 말에도 움직이지 않는 방어, 즉 버티는 데 자신의 힘을 다 쓰기도 합니다. 의미 있는 저항이 아니라 무조건 듣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는 힘이기에 꽤 큰 저항의 힘이 들지요. 그러나 나 자신을 바꾸고 싶지 않은 이 마음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키며 먹고 자는 본능적인 일에만 관심을 돌리게 합니다.


그러나 힘의 칼을 칼집에 꽂아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 방식대로 하려는 이 본능적인 힘을 먼저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것에서 내 자신의 가치를 찾지 말고 내가 주님의 통치를 받게 되는 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화가 나는 바로 그 순간 엎드려 사람들이 내게 하는 충고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진짜 변할 수 있습니다. 남을 비판하기 보다 내 기준대로 나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정직하게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방향 없이 무조건 거절하는 이 저항감이 나를 절대로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먼저는 내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고백하는 진짜 노력이 필요합니다. 겉으로만 수긍한다고 해서 내면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두번째 칼은 사람들의 인정의 칼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해 주는 것에 목숨을 걸고 칼을 휘두르는 모습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실제 나 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보여지고 싶어하고 끊임 없이 사람의 칭찬과 주목을 구하게 되지요.

내가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사람이 내게 해줬으면 하는 대로 남에게 하고 칭찬을 기다리지만 기대보다 못미치는 경우 오히려 화를 내게 됩니다.

혹은 열심히 해서 목표를 이루는 유능한 사람이 되어 인정을 받고 싶어 합니다. 주변 상황에 대한 관심과 내 마음에 대한 통찰보다는 능력있는 사람으로 자기 가치를 높이고 싶어합니다. 문제는 유능한 사람이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 내 능력을 과장하다 보니 나중에는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알 수 없게 되죠.

또한 내 안에서만 답을 찾으려는 모습도 있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들여지고 싶은 마음이 커서 나의 부족함에만 집중하고 사람들이 나를 싫어한다는 거짓에 빠져 쉽게 우울해 지곤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오면 쉽게 털어낼 수 없을 만큼 자기 내면에 민감한 사람들은 일생을 자기 안에 갇혀 세상을 향한 두려움에 휩싸이곤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한 칼은 오히려 우리 자신을 상하게 하지요.

다른 사람들보다 좀 괜찮은 것 같으면 만족하고 아니라고 생각할 때는 위축되는 이 널뛰기를 멈추고 지금 내 앞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기 위해 홀로 주님 앞에 서야 합니다. 각자의 골방에 들어가 사람의 시선이 아닌 주님의 따뜻한 눈빛과 음성을 듣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제서야 우리의 산만한 생각과 불안한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부족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직 그 사랑만이 우리를 만족하게 합니다. 그렇게 사랑에 목말라 하면서도 그 사랑을 주님이 아닌 사람에게서 찾는 우리의 이 칼을 이제는 칼집에 꽂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지식의 칼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늘 불안하기에 쉽게 공포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 불안을 지식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마치 내가 다 알면 이 모든 문제를 미리 해결할 수 있는 사람처럼 생각에만 몰두합니다. 그러나 행동은 더디기에 생각으로만 모든 일을 그치고 자신의 세계에만 머무르고 싶어 하지요.

때로는 내가 아는 좁은 지식안에서 만든 편협한 프레임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답을 정해놓은 생각은 오히려 우리 자신을 답이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 불안감을 증폭시키게 됩니다. 문제의 원인을 해결할 수 없는 타인에게 돌려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부정적인 생각에 갇히게 할 수도 있지요.

또 어떤 때는 불안과 공포를 회피하기 위해 즐거움을 찾아 갑니다. 인생의 어려움을 외면하기 위해 끊임 없이 세상의 것들로 내 정서를 취하게 하며 즐기고 방탕한 삶을 살게 합니다. 이러한 현실 도피는 삶에서 오히려 더 큰 고통을 초래합니다. 작은 어려움을 피하려다 더 큰 고통을 몰고 오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러나 지식의 칼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길은 오직 주님께만 있습니다.

생각이 아닌 우리 삶에서 주어지는 기회에 한 걸음 순종을 통해 예수님과 가까워 질 수 있습니다. 내가 이해되냐 아니냐에 믿음의 뿌리를 두기보다 직접 몸을 드려서 순종하는 데서 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내가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생각으로 스스로를 정죄하게 보다 그 자리가 바로 다시 주님께 나아가야 할 새로운 시작의 기회임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은 실패한 그 자리에서 또 우리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이지요.



저 또한 베드로처럼 주님이 나같이 보잘것 없는 사람을 구원하셨다는 기적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삶을 용기있게 구했습니다. “이제는 주님 위해 살리라. 다시는 주님 만나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 마음은 어느새 “잘 해야 돼” 라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당연히 할 수 없는 사람이 나인데 잘 하려고만 하다 보니 모든 것이 부담스럽고 무겁기만 했습니다. 주님을 실망시키지 않고 기쁘시게 하는 딸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한 고백이 얼마나 불가능한 생각이었는지 그 때는 다 알지도 못했어요.


그러나 베드로의 모습 속에서 주님은 제게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너는 못해. 너는 실패해. 너는 할 수 없어. 그러니 네 칼을 칼집에 꽂으라. 이제는 내가 할게!”


각자의 칼을 이제 칼집에 꽂으며 내 힘으로는 절대로 따라갈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주님 앞에 엎드려 철저히 그 분의 인도하심을 받으라고 새 길을 내어주시는 것 같습니다.

내 노력으로 이루려는 모든 시도를 내어 놓고 나는 할 수 없는 사람임을 온전히 인정합니다.

미련해 보이는 한 걸음 순종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5 comentários


김경민
김경민
07 de abr. de 2021

가장 중요한 건 오늘 우리가 주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은 반드시 일하실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소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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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희
강승희
08 de abr. de 2021
Respondendo a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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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숙
정재숙
06 de abr. de 2021

제가 살며 쓰는 방법과 삶의 태도가 제 칼이라고 생각하니 새롭게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 힘을 어찌 덜 써볼까 혹은 어떻게 해볼까가 아닌 칼집에 꽂으라 말씀하시는 것을 오늘 붙잡습니다!! 주님만 일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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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희
강승희
03 de abr. de 2021

주님 맞습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답시고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교만한 마음이거나

그러다 실패하고 부족한 나를 볼때마다 드는 모순과 자괴감속에 낙심하거나

둘 사이를 널뛰기하며 평생 살아온것 같습니다

주님 이제 주님앞에서 쉬길 원해요

내가 하던 모든 시도는 멈추고

이제 죽길 원합니다.

내가 주님과 함께 이미 죽은자임을 믿고

이제 주님따라 살고 싶습니다.

주님 저를 붙들어 주세요 인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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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
김승호
01 de abr. de 2021

영혼은 잠자고 있으면서 표면적인 행위로서 '예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할 때 베드로가 칼을 꺼내 말고의 귀를 잘랐던 힘의 칼을 사용하게 되는 듯 합니다. 그 얕은 중심을 예수님은 안타까지 여기시고, 그렇게해서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고도 하시고, 십자가의 길을 가는데 방해된다고 하셔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단단하고 고집스러운 나의 마음 때문에 어리석게도 계속 반복해서, 오히려 더 강화되어 칼을 휘두를 수 밖에 없는 구조가 있습니다.


또 이런 구조를 방어하기 위한 힘도 많이 쓰게 되는데, 어제 본문에서 빌라도, 대제사장&장로, 군중 각각이 누군가는 책임을 회피함으로,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죽이자고 주장함으로, 대세에 순종함으로... 자기 방어를 하고 있는것이 곧 예수님을 죽이는 것임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 고집스러운 구조를 고집하고 주장하는 어리석은 자리에 있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이 익숙한 길에서 벗어난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본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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