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기억하는가?
어제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테필린 기말시험을 치뤘습니다.
테필린 시험은 크게 3가지로 진행됩니다. 구술시험, 필기시험, 그리고 에세이…
무슨 대학 전공시험 아니냐구요? 물론 아닙니다. 그렇지만 한 학기동안 암송했던 요한복음 중에서 한 장을 무작위로 뽑아서 암송하고, 필기시험은 괄호 안에 들어갈 단어나 구절을 써야 합니다. 또 내게 감동이 되었던 성경 구절 3가지와 그 이유를 서술해야 합니다.
각 가정에서도 시험을 준비하며 몇 주간 아이들과 씨름하시고, 아이들은 눈물겨운 시간을 보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렇게 아이들의 심령에 새겨진 말씀들은 인생의 순간 순간마다 분명 가치를 발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말씀 암송을 어렵게 느끼는 이유는 우리의 뇌가 자꾸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과연 우리 뇌 속에서 기억은 어떻게 형성되는 걸까요?
일반적으로 뇌과학을 연구하는 분들은 우리 뇌에서 새로운 사실을 학습하고 기억하는 기관이 ‘해마’라고 말합니다. (그 모양이 바다에 사는 해마 처럼 생겼습니다)
해마는 뇌로 들어온 감각 정보들을 단기간 저장하고 있다가 이를 대뇌피질로 보내 장기기억으로 저장하거나 삭제하는 일을 합니다.
이때 해마가 장기기억으로 보내거나 삭제하는 기준은 ‘정보가 입력될 때의 감정의 강도’와 ‘정보의 반복 횟수’에 따른다고 하는데요, 저는 이 부분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듣고, 생각할 때 느끼는 감정의 강도에 따라, 아무런 감정이 없거나 약한 정보는 폐기하고 강한 감정을 가지는 정보는 장기기억으로 보내서 저장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과거의 어떤 충격적이고 커다란 감정을 느꼈던 사건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다시 말해서 우리의 뇌가 정보를 기억한다고 할 때 단순히 그 정보 자체만을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가 입력될 때의 모든 ‘경험과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저장되고, 그럴 수록 더 의미있는 기억으로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를 테필린 방법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테필린 할 때에도 내용에 대한 이해와 감정을 느끼며 암송하는 것과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암송하는 것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음을 봅니다.
정확하게는 우리가 본문을 처음 접할 때는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지만, 계속 말씀을 읇조리는 가운데 점점 내용이 마음에 와닿고, 감정이 생겨나며, 심지어 내 삶에 적용하게 되면 말씀이 더 의미있는 정보로 우리의 뇌에 새겨지겠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테필린 할 때 단순히 반복하기 보다, 연기를 하듯이 감정을 넣어보고 목소리도 바꿔보면서 한다면 좀더 재미있고 효과적으로 우리의 뇌가 장기 기억으로 저장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암송할 때 손 동작을 이용한다든지, 드라마 찍듯이 연기하면서 암송 해보면 아이들도 훨씬 즐겁게 테필린하고, 그런 본문은 더 오랜 시간을 기억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아마도 본문을 암송할 때 이입했던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함께 떠오르기 때문이 아닐까요?
기억하는데 있어 중요한 두 번째는 ‘정보의 반복 횟수’라고 했습니다. 정보의 감정 강도가 약하더라도 반복 횟수가 많으면 해마는 장기 기억으로 인식한다는 것이지요.
우리 뇌에서는 '뉴런'이라는 신경세포들이 '시냅스'라는 신경망을 형성합니다. 그리고 시냅스는 경험이나 학습에 의하여 변형되는데, 바로 여기에 정보를 기록하고 저장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변형이 쌓이고 ‘강화’될 수록 해당하는 일의 프로세스가 빠르게 처리됩니다. '수초'라고 하는 전선의 피복 같은 것이 두터워지면서 정보의 이동을 더 빠르게 만든다고 하지요.
이런 면에서 반복학습을 능가할 다른 학습법은 없습니다. 테필린을 잘 하는 방법도 결국은 많이 소리내어 반복한 사람이 가장 잘 기억하게 되는 것이지요. 머리가 좋고 나쁨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단기 기억을 잘 하는 사람(머리가 좋은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장기 기억은 본인의 피나는 노력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해마에 대해 알아보면서 재미있었던 부분은, 밤에 수면을 취하는 동안 해마가 낮에 경험한 정보들을 재정리하고 통합하여 장기 기억으로 보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충분한 수면(잠)을 통해서 우리의 뇌는 더 잘 기억하고 저장한다는 것이지요.
여기까지 우리 뇌에 어떻게 정보를 기억하는지 정리해보았는데요,
우리의 뇌는 강한 감정을 포함한 정보들을 오래 기억한다.
정보의 반복 횟수가 많아질 수록 더 잘 기억한다.
충분한 수면을 통해 낮에 입력된 정보들이 정리 통합되어 저장된다.
이제 곧 새해가 다가옵니다. 2022년에는 주님과 말씀으로 동행하기 위하여 테필린을 다시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말씀을 묵상하고 읇조리는 가운데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으로 한 구절 한 구절 마음에 새겨보면 좋겠습니다.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시119: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