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에스겔 28장 20-26절
- 박정배

- 7월 22일
- 3분 분량
가시가 제거되는 회복의 날
본문: 에스겔 28장 20~26절
여는 말
두로를 향한 긴 심판 예언이 끝나고,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시선은 두로 북쪽의 이웃 도시 시돈을 향합니다. 짧은 일곱 절이지만 그 안에는 심판과 회복이라는 두 얼굴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오늘 새벽, 하나님의 심판 선언이 그분의 백성에게는 왜 위로의 소식이 되는지, 우리를 아프게 하던 가시가 제거되는 회복의 날을 함께 묵상하기 원합니다.
1.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찌르는 가시를 잊지 않으십니다 (20~23절)
"인자야 너는 얼굴을 시돈으로 향하고 그에게 예언하라 … 시돈아 내가 너를 대적하나니" (21~22절)
시돈은 두로 북쪽에 인접한 항구 도시로, 겉보기에는 이스라엘과 무역하며 지내던 평범한 이웃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 속에서 시돈은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찌르고 아프게 한 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바로 시돈 출신입니다. 그녀는 시돈 왕 엣바알의 딸로, 바알 숭배 풍습을 북 이스라엘에 들여와 온 나라를 타락시켰습니다(왕상 16:31). 칼과 군대로 침략한 적은 없어도, 우상숭배라는 독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병들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너를 대적하나니"라는 선언은 히브리어로 '힌니 알라이크', 곧 "보라, 내가 너를 향해 맞서 섰다"는 뜻의 무서운 전투 선포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대적자가 되어 나서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위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괴롭히는 자를 결코 못 본 체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전염병과 피 흘림과 칼의 심판(23절)은 잔인한 신의 분풀이가 아니라, 자기 백성을 아프게 한 것에 대한 신실한 응답입니다. 그리고 그 심판을 통해 "무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지라"(22~23절)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에스겔서 전체를 관통하는 이 후렴구는 심판의 목적이 파괴가 아니라 '앎'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온 열방이 여호와가 누구신지 알게 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역사에 개입하시는 이유입니다.
2. 심판의 날은 곧 가시가 제거되는 날입니다 (24절)
"이스라엘 족속에게는 그 사방에서 그들을 멸시하는 자 중에 찌르는 가시와 아프게 하는 가시가 다시는 없으리니" (24절)
시돈에게는 심판의 날이지만, 이스라엘에게는 가시가 뽑히는 회복의 날입니다. '찌르는 가시'와 '아프게 하는 가시'라는 표현은 일찍이 하나님이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에게 하신 경고를 떠올리게 합니다. 가나안 주민을 그대로 두면 그들이 "너희 눈에 가시와 너희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민 33:55). 그 경고대로 이방 이웃들은 수백 년 동안 이스라엘의 옆구리를 찔러 온 가시였습니다. 유혹으로, 멸시로, 조롱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끊임없이 아프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그 가시를 직접 뽑아내겠다고 하십니다.
가시는 뽑히기 전까지는 계속 아픕니다. 우리 삶에도 그런 가시들이 있습니다. 신앙을 조롱하는 사람, 오래된 상처,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유혹의 통로들. 하나님은 그 가시의 존재를 아시고, 그것이 뽑힐 날을 이미 정해 두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시를 뽑는 주체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점입니다. 이스라엘은 시돈에게 복수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대적하시고, 하나님이 친히 제거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이를 갈며 복수를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가시밭길 가운데서도 그날을 신뢰하며 걷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흩어진 백성을 모아 평안히 살게 하십니다 (25~26절)
"그들이 그 가운데에 평안히 살면서 집을 건축하며 포도원을 만들고 … 내가 그 하나님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26절)
심판 선언 끝에 갑자기 눈부신 회복의 약속이 열립니다.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진 이스라엘을 모으시고, "내 종 야곱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25절). '야곱에게 준 땅'이라는 표현이 귀합니다. 포로로 끌려간 백성이 땅을 잃은 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지만, 그 땅을 주신 하나님의 언약은 취소되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회복을 통해 "여러 나라의 눈앞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다"고 하십니다. 원어로는 '니크다쉬티', 곧 "내가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리라"는 말인데, 하나님은 백성을 벌하실 때만이 아니라 무너진 백성을 다시 일으키실 때 당신의 거룩하심을 온 세상에 드러내신다는 것입니다. 회복이 곧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 회복의 그림이 참 구체적입니다. 집을 건축하고, 포도원을 만들고, 평안히 삽니다(26절). 집과 포도원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닙니다. 내일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집을 짓지 않고, 쫓겨날 것을 걱정하는 사람은 포도나무를 심지 않습니다. 이 약속은 곧 "너희에게 다시 일상을 주겠다, 내일을 계획할 수 있는 안전을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징계는 하나님 백성의 끝이 아니라 정결과 회복으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우리의 참 평안은 가시 면류관을 대신 쓰신 예수님께로부터 옵니다. 우리를 찌르던 죄의 가시를 당신의 몸으로 받으신 그분 안에서, 우리는 이미 회복의 날을 살기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맺는 말
오늘 본문은 세 가지를 우리 마음에 새겨 줍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찌르는 가시를 잊지 않으시고 친히 대적자가 되어 주십니다. 원수를 향한 심판의 날은 백성에게는 가시가 뽑히는 회복의 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흩어진 자를 모아 집을 짓고 포도원을 가꾸는 평안한 일상으로 돌려보내십니다. 지금 우리 옆구리에 가시가 박혀 아프더라도 낙심하지 맙시다. 가시를 보시는 하나님, 가시를 뽑으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 자리에 평안을 심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 하루를 시작합시다.
오늘의 찬양 (추천)
새찬송가 494장 「만세 반석 열리니」 — 생명의삶 오늘의 찬송. 우리를 지키시는 피난처 되신 주님 안에 숨는 고백이 오늘 본문의 '평안히 거주하리라'는 약속과 맞닿아 있습니다.
시선 — 우리 안의 가시를 제거하시는 주님을 기대합니다. 그분을 바라보며 기다립니다.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지금 나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가시' 같은 사람이나 상황은 무엇입니까? 나의 믿음에 가시같은 남겨진 우상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내 손으로 뽑으려 애쓰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께 맡기며 기도하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하나님이 주신 회복의 약속을 믿는다면, 오늘 내가 다시 시작해야 할 '집 짓기와 포도원 가꾸기' — 즉 믿음으로 계획하고 심어야 할 일상의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더빛교회 성도들 가운데 관계의 상처와 세상의 조롱이라는 가시로 아파하는 지체들을 주님이 친히 싸매시고, 그 가시가 제거되는 회복의 날을 소망 중에 기다리게 하소서.
우리 공동체가 흩어진 영혼들을 모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돌아오는 이들이 평안히 신앙의 집을 짓고 열매 맺는 포도원 같은 교회가 되게 하소서.

느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우상숭배이다. 내 감정과 원함이 우상이 되어 절제하지 않고 사는 삶에 대해서 경고하신다. 끊임없이 다른 사람에게 눈을 향하게 하고 비교하며 시기하고, 이세벨의 영과 같이 나를 높이고 채워줄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며 찾아다닌다. 에스겔 말씀을 통해 나의 평생이 시기와 질투가 동기가 되어 자포자기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실패까지도 즐거워하며 함께 실패하기를 바라는 악한 마음을 보게 하셨다. 자기 집착과 비교와 시기가 평생의 가시가 되어 나를 찌르고 다른 사람도 찌르는 비참한 삶을 살게 한다.
이런 나에게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내게 행하고 계시는 일은 느낌대로 달려가는 삶을 멈추고 제단 뿔에 나를 묶는 결단을 하게 하시는 것 같다. 나 스스로는 벗어날 수 없기에 교회를 통해서, 말씀에 집중하는 시간을 통해서, 다시금 받아 주시며 교회 안의 질서에 순복하고 엎드릴 수 있게 기회를 주고 계신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멸시하는 자들을 가만두지 않으시고 친히 대적하시는 하나님을 보게된다. 그리고 가시가 제거된 후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땅에 모여 거주하며 평안히 살며 집을 건축하고 포도원을 가꾼다. 오늘 본문을 보며 새로웠던건 시돈이 칼이나 무기로 이스라엘 백성을 대적한 것이 아니라 바알 숭배 풍습을 퍼트리므로 이스라엘 백성을 타락시켰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상숭배를 가만두시지 않으시고 친히 대적하시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신다.
이 시대의 우상숭배는 자기 원함과 욕심대로 달려가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 우상이 결국 가시가 되어 나를 찌른다. 나또한 내 원함과 욕심을 향해 달려가는 게 매일 자동으로 돌아간다. 사소하게는 오늘 하루 내 육체를 따라 편하게 있고 싶은 마음, 내 감정을 옆사람에게 주장하고 싶은 마음,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고 인정받지 못하거나 못하는 것에 대해선 가리고 숨기고 싶은 마음… 그렇게 사람들 가운데 분주히 살다보니 하나님 앞에서…
"무리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지라" "무리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겠고"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내가 그 하나님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공의의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시돈을 향해 심판을 선언하신다. 하나님은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구원과 은혜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에게는 심판으로.
공의의 하나님 앞에 나는 떳떳하게 '가시'라고 표현할 만한 어려움이 있을까 싶다. 하나님 편에 서 있기 때문에, 의를 행함으로 오는 어려움보다 오늘도 당장 심판 자리에 가도 무방한 죄의 열매들을 마주하기 바쁘다.
날마다 적나라하게 주어지는 피드백들, 피드백을 받으면서도 그래도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고 끝까지 주장하고 싶은 분노와 고집이 있다, 나의 분노와 고집은 오늘 이 자리에 부르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그분이 여호와이심을 드러내시지만 정작 오늘 나는 내 자존심 하나 지키기 위해 애쓰다가 허무하게…
지금 나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가시' 같은 사람이나 상황은 무엇입니까? 나의 믿음에 가시같은 남겨진 우상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내 손으로 뽑으려 애쓰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께 맡기며 기도하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나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죄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과 상관없이 형성된 나를 바라보는 시선,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나를 불안하게 하고 찌르고 방어하게 하고 공격하게 한다. 하나님이 주인 되셔서 일하시는 현실을 왜곡하여 바라보고 견딜 수 없게 만든다. 돈, 성, 권력(높아짐), 능력. 세상이 추구하는 이것들을 나도 추구하고 있다. 이 중심이 바뀌어야 하나님의 일하심에 나를, 세상을 섞지 않고 믿음으로 하는 것이 가능하다. 스스로를 그리고 다른 사람을 돈으로 판단하고, 능력으로 판단하는 마음이 내게 있다. 그렇게 보지 않으려고도 했던 것 같지만 하나님이 빛으로 드러내셔서 나의 말과 행동을 통해 내…
오늘 설교에서는 시돈에 대한 책망과, 또 시돈 사람이었던 이세벨에 대한 말씀이 등장한다. 우상을 숭배하며, 회개할 기회 앞에서도 내 기분대로 선택하고 휘두르는 이세벨의 마음처럼, 내 마음도 그렇다. 어제 본문과 같이 내가 신이 되려 하는 교만한 마음. 나는 관계 속에서 휘두르는 힘으로, 사람들 앞에 내가 하는 일로 나를 최대한 부풀려 나를 높이고자 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하나님이 회개할 기회를 아무리 주셔도, 내 원하는 것, 내 방식을 포기하지 않고 내 감정과 기분대로 선택해왔다. 그것은 나로 비인격적인 관계밖에 할 수 없는 고장나고 뒤틀린 인격이 되게 하였고, 또 아무리 수고해도 주님이 받으실 수 없는 더러움 밖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바르고 옳은 것보다, 뒤틀렸고 어두움을 추구하며 살아왔다. 사람 앞에 사는 삶을 스스로 힘으로 멈출 수가 없고, 내 인생을 패대기친 채 유아와 같이 사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