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오늘의 묵상 - 에스겔 25:1-11

심판의 말씀 속에 숨어 있는 소망

본문: 에스겔 25:1~11


여는 말

에스겔 25장은 책 전체의 큰 전환점입니다. 24장까지 예루살렘을 향하던 심판의 말씀이 이제 방향을 돌려 이스라엘을 둘러싼 일곱 민족을 향합니다. 그 첫 상대가 암몬과 모압인데, 이들이 심판받는 이유는 군대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무너질 때 "아하 좋다" 하며 기뻐하고 조롱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심판 선언은 포로로 끌려간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뒤집힌 소망의 메시지였습니다. 오늘 새벽, 남의 고통 앞에 선 내 마음을 비추어 보고, 심판의 말씀 뒤에 숨어 계신 하나님의 마음을 함께 발견하기 원합니다.


1. 하나님은 남의 몰락을 즐기는 마음을 반드시 물으십니다 (1~7절)

"내 성소가 더럽힘을 받을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이스라엘 땅이 황폐할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유다 족속이 사로잡힐 때에 네가 그들에 대하여 이르기를 아하 좋다 하였도다" (3절)

암몬은 롯이 작은딸에게서 낳은 벤암미의 후손으로(창 19:38), 이스라엘과는 친척뻘 되는 민족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배경이 있습니다. 에스겔 21장을 보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갈림길에 서서 예루살렘을 칠지 암몬의 수도 랍바를 칠지 점을 쳤고, 결국 칼끝이 예루살렘을 향했습니다(겔 21:20~22). 암몬은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무너지자 안도는 곧 조롱으로 바뀌어 "아하 좋다"를 외쳤습니다. 이 '아하'는 히브리어로 '헤아흐'라는 감탄사인데, 남이 망하는 꼴을 보며 터뜨리는 고소함의 탄성입니다.

다윗을 조롱하던 원수들이 "아하, 아하, 우리가 목격하였다"(시 35:21) 할 때 쓰인 바로 그 말이고, 예레미야애가는 예루살렘이 무너질 때 지나가는 자들이 다 이렇게 손뼉 치고 머리를 흔들며 비웃었다고 증언합니다(애 2:15~16).


3절이 성소가 더럽혀질 때, 땅이 황폐할 때, 백성이 사로잡힐 때라는 세 마디를 나란히 세운 것도 의도적입니다. 성전과 땅과 백성, 곧 하나님과 그 백성을 잇는 관계의 심장부가 무너지는 그 세 장면마다 암몬은 환호했다는 것입니다. 6절에 이르면 이들은 말로만이 아니라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온 마음을 다해 멸시하며 즐거워합니다. 남의 몰락이 이들에게는 온몸으로 즐기는 축제였습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정확히 되갚음의 구조로 임합니다. 유다가 겪은 그대로, 암몬의 땅은 동방 사람에게 넘어가 노략당하고, 자랑이던 수도 랍바는 낙타의 우리와 양 떼가 눕는 곳이 되며, 백성은 만민 중에서 끊어집니다(4~7절). 여기에 뼈아픈 역설이 있습니다. 암몬이 그렇게 피하고 싶어 하던 바벨론의 칼은 피했지만, 정작 그들은 '동방 사람들', 곧 광야를 떠도는 유목민들의 손에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제국의 군대가 아니라 천막 치고 다니는 유목민에게 수도를 내어주는 것, 이보다 더 굴욕적인 결말은 없습니다. 7절에서 하나님은 끊어 버리고, 멸하고, 없애 버리겠다는 세 개의 동사를 쏟아부으시며 암몬을 역사에서 지우겠다고 하십니다. 잠언은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잠 24:17)고 경고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망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조롱하는 자에게는 긍휼이 없다는 것, 이것이 오늘 본문의 엄중한 선언입니다.


2. 원수를 심판하신다는 것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8~11절)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모압과 세일이 이르기를 유다 족속은 모든 이방과 다름이 없다 하도다" (8절)

모압 역시 롯의 큰딸에게서 난 친척 민족이었고(창 19:37), 세일은 에서의 후손 에돔을 가리킵니다(창 36:8~9). 이들의 죄는 말 한마디였습니다. "유다 족속은 모든 이방과 다름이 없다." 너희가 선택받은 백성이라더니 망하는 것을 보니 다른 나라와 똑같지 않으냐, 너희의 하나님도 별수 없지 않으냐는 조롱입니다. 유다를 겨눈 말 같지만 실은 언약을 세우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부정하는 말이었기에, 하나님은 이것을 자신을 향한 도전으로 받으시고 모압의 방벽이던 국경의 영화로운 성읍들을 침략자 앞에 여시겠다고 하십니다(9절).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아야 합니다.

예루살렘이 잿더미가 된 마당에, 하나님이 왜 굳이 암몬과 모압의 조롱을 이토록 심각하게 문제 삼으실까요? 겉으로 보기에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신 것 같았습니다. 성전은 더럽혀졌고 백성은 포로가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열방을 향한 이 심판 선언은, 하나님이 여전히 이 백성의 보호자이심을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자기 백성과 자기 땅을 조롱하는 것을 결코 팔짱 끼고 구경만 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구약학자들은 에스겔 25~32장의 열방 심판 신탁을 '부정형으로 표현된 소망의 말씀'이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에스겔서는 심판(1~24장), 열방 심판(25~32장), 회복(33~48장)의 순서로 짜여 있어서, 열방 심판이 심판에서 소망으로 넘어가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그 한복판인 28장 25~26절에는 "내가 이스라엘 족속을 만민 중에서 모으고 그들이 그 땅에 평안히 살리라"는 회복의 약속이 심겨 있습니다.


포로지에서 이 말씀을 들은 백성에게 원수를 향한 심판 선언은 곧 이런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직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구나.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삶이 무너져 하나님이 나를 떠나신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하나님이시며 나를 향한 조롱을 자신을 향한 조롱으로 받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마 25:40)이라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자신을 하나로 묶으십니다.


3. 하나님의 목적은 심판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5, 7, 11절)

"내가 모압에 벌을 내리리니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11절)

오늘 본문에서 세 번 반복되는 후렴이 있습니다.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5, 7, 11절).

에스겔서 전체에 칠십 번 넘게 나오는 이 인정 공식은, 25장의 짧은 신탁들이 하나같이 이 문장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학자들은 이런 형식의 말씀을 '증거 말씀'이라고 부르는데, 역사 속에서 벌어지는 하나님의 모든 개입이 결국은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는 자기 계시의 순간이라는 뜻입니다.

만약 이 후렴이 없었다면 열방 심판 신탁은 포로민들의 민족 감정을 달래 주는 통쾌한 복수극에 그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 속이 시원해지는 데 있지 않고, 암몬과 모압 같은 조롱하던 민족들까지도 여호와가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는 데 있습니다. 여기 '알다'는 히브리어 '야다'인데,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 겪어서 아는, 삶으로 확인된 인격적인 앎을 뜻합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의 방향을 점검하게 합니다. 포로지의 유다 백성은 원수가 망한다는 소식 자체를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건을 통해 "너희가 나를 알게 되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우리도 기도의 응답, 문제의 해결, 억울함이 풀리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사건들 속에서 이루기 원하시는 최종 목적은 언제나 같습니다. 이 일을 통해 네가 나를 더 깊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유다의 멸망 앞에서 열방은 하나님도 끝났다고 조롱했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 역사의 한복판에서 자신이 온 열방의 주권자이심을 드러내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구할 것도 형편의 회복만이 아니라, 그 형편 속에서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자라는 것입니다.


맺는 말

오늘 본문은 세 가지를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남의 몰락 앞에서 "아하 좋다" 하는 마음을 반드시 물으시고, 그 마음을 즐긴 그 자리로 심판을 되돌리십니다. 그러나 그 심판 선언은 동시에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셨다는 소망의 증거이며, 그 모든 일의 최종 목적은 조롱하던 자들까지도 여호와를 아는 데 있습니다.

오늘 하루, 누군가의 넘어짐 앞에서 내 마음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살피고, 무너진 것 같은 내 형편 속에서도 여전히 나의 보호자 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모든 일을 통해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찬양 (추천 2~3곡)

  1. 새찬송가 342장 〈너 시험을 당해〉 (오늘의 찬송) — 시험과 환난의 때에 주께 아뢰라는 권면이, 조롱과 어려움 중에도 하나님께 피하는 오늘 본문의 묵상과 맞닿아 있습니다.

  2. 주가 보이신 생명의 길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1. 최근 나와 불편했던 사람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 마음에 가장 먼저 스친 감정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마음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내어놓을 수 있습니까?


  2. 지금 내 삶에서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것 같다"고 느끼는 영역이 있다면, 오늘 본문이 보여 준 '여전히 보호자 되시는 하나님'을 그 영역에서 어떻게 신뢰하겠습니까?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1. 더빛교회가 고통당하는 지체 곁에 말없이 서서 함께 우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2. 세상이 교회를 조롱하는 시대에 더빛교회가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이 여전히 교회의 보호자 되심을 믿으며, 삶의 열매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드러내어 조롱하던 이들까지 주를 알게 되는 통로가 되게 하소서.

댓글


Contact Us.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흥덕4로 61  |  office@thevit.org  |  Tel: 031-272-7822 ㅣ FAX: 031-217-7822

  • White Facebook Icon
  • White YouTube Icon
  • White SoundCloud Icon
bottom of page